F.A.

현재 우리의 삶을 한 문장으로 표현해본다면 비대면을 강조하는 시대라고 일컬을 수 있다. 개인용 컴퓨터가 보급된 지 20여 년이 채 지나지 않아 PC를 활용한 인터넷 뱅킹이 활성화되었고, 스마트폰의 폭발적인 수요 덕분에 비대면을 강조한 모바일 뱅킹 시장이 성행하고 있다. 신기술의 적용은 이제 한 분야의 전유물이 아닌 시대를 대변하는 상징물이 된 셈이다.

 

이 사례를 가장 잘 보여줄 수 있는 것은 예술계의 변화다. 최근 관객들은 “경험은 최고의 스승이다”라는 말을 실천하듯 한 방향 소통이 아닌 쌍방향 소통, 쌍방향 소통을 넘어 작품 참여자로 더욱더 능동적인 관람 태도를 취하고 있다. 작가의 생각과 표현 방식을 몸소 받아들이고, 한 걸음 더 나아가 개인의 철학을 담아 작품을 해석해보고자 하는 것이다. 예술계는 관객의 기대에 부응할 수 있는 다양한 기술력을 도입하고 있다. 이를 통해 다양한 사회적 이슈에 대응하는 방안을 마련하거나 관객에게 한 걸음 더 다가가는 예술을 실천한다.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예술과 기술의 만남에는 어떤 플랫폼이 활용되고 있는지 함께 빠져들어가 보자.

 

 

국립중앙박물관 – 도슨트 서비스, 한계를 뛰어넘다

박물관이나 미술관마다 작품의 깊이를 더하는 도슨트 서비스를 제공한다. 도슨트 서비스를 즐기는 방법은 다양하다. 도슨트 진행 시간에 맞춰 전시를 관람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개인적인 관람을 마친 후 처음으로 돌아가 다시 도슨트와 함께 전시를 관람하는 사람도 있다. 그만큼 질적으로 수준 높은 관람을 보장하기 때문에 도슨트의 역할은 점점 중요도가 커지고 있다. 한편 도슨트 서비스를 불편해하거나 아쉬워하는 사람도 적잖이 찾아볼 수 있는데, 제한적인 시∙공간이 그 이유다. 정해진 시간을 놓치면 중간부터 듣거나 다음 타임을 기다려야 하는 불편함과 다수의 사람이 이동하기 때문에 동선이 겹쳐 작품을 제대로 감상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에 국립중앙박물관에서는 기존 도슨트 서비스의 한계를 넘는 의미 있는 서비스를 운영하였다.

 

국립중앙박물관 신라실에서 진행된 AR 도슨트 시범 서비스는 관람객이 AR 글래스를 착용한 후, 신라시대 유물에 관한 다양한 증강현실 콘텐츠를 체험하는 도슨트 시범 서비스다. 유물이라는 특화된 전시 환경에 맞춤형 문화 기술을 응용한 사례로, 유물 만져보기∙유물 관련 정보 보기∙유물 원형 복원하기∙역사 속 인물과 대화하기 등 관람객이 주도적으로 전시를 즐길 여러 장치를 마련했다. 전시의 몰입도를 높여주는 체험과 정보가 적절하게 결합하여 어린이 관람객뿐만 아니라, 체험형 전시 경험 빈도가 적은 성인 관객에게도 특별한 경험을 선사했다. 첨단과학기술의 대표적 사례로 손꼽히는 AR과 예술의 만남은 긍정적인 시너지 효과를 통해 그 활용도가 더욱 높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서울시립미술관 – 몰입의 즐거움이 가득한 전시

AR 글래스의 또 다른 도입 사례는 서울시립미술관의 ≪영원한 나르시시스트, 천경자 상설전≫이다. 본 전시회는 AR 글래스를 활용해 관람객이 예술과 가까워지는 전시 경험을 제공하였는데,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AR 도슨트를 처음 경험해보는 관람객을 위해 튜토리얼을 적용한 점이다. 사용 방법이 아무리 간단한 제품이라 하더라도, 전 연령층이 이해할 수 있는 맞춤형 설명은 현실적으로 매우 힘든 이야기다. 비대면으로 진행될 경우, 개개인에게 맞추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서울시립미술관은 사용자 스스로 흥미를 느끼도록 간단한 튜토리얼을 통해 개인에게 적합한 해설 난이도를 제공했다.

 

몰입의 즐거움을 주장한 심리학자 미하이 칙센트미하이(Mihaly Csikszentmihalyi)에 따르면 개인의 능력과 해설의 난이도가 적절하게 균형을 이룰 때 몰입이 가능하다고 한다. 바로 이를 위해 기존 전시회에서 220명의 관람 패턴을 분석하고, AR 도슨트의 역할과 컨셉에 대한 고민을 진행했다. 관람의 동선에 맞춰 다양한 인터랙티브 요소를 제공하고, 일반 해설 매체에서 느끼지 못했던 색다른 경험을 통해 전시 경험을 확장하였다. 그 결과, 사용 방법이 익숙지 않아 경험 자체를 꺼리는 사람들의 진입 장벽을 낮추고, 체험형 인터랙티브 전시를 통해 누구나 풍부한 전시 경험을 하도록 도왔다. AR 글래스를 통해 관람객의 재미와 정서적 만족, 몰입도가 높아지는 만큼 한국화, 서양화 등 다양한 해설 분야에서 활약이 기대된다.

해설 난이도에 따른 다양한 인터랙티브 전시 형태 Ⓒ SAM SEOUL

일리노이 홀로코스트 박물관&에듀케이션 센터 – 사라지는 역사를 기록하다

유형 문화재나 형체가 있는 물품이라면 AR, VR 등 다양한 기술을 활용해볼 수 있다. 하지만 형체가 사라지거나 존재하지 않는 것이라면 어떤 기술을 적용할 수 있을까? 일리노이 홀로코스트 박물관&에듀케이션 센터(Illinois Holocaust Museum and Education Center)에서는 3D 홀로그램을 활용해 홀로코스트 생존자의 생생한 증언을 기록했다. 13명의 홀로코스트 생존자를 인터뷰하여, 홀로코스트에 관한 경험으로 2천 가지가 넘는 질의응답을 진행하였다. 실제 인물을 고화질 카메라와 조명으로 채워진 반 돔 스튜디오 한가운데서 여러 각도로 장시간 촬영하여 움직이는 홀로그램 형태로 제작하고, 음성인식 기술과 머신러닝을 이용하여 박물관 방문객과 실시간 대화가 가능한 인터랙티브 기술을 구현하였다.

 

이를 통해 관객들은 실제 인물과 대화하는 듯한 경험으로 역사 속의 생생한 이야기를 언제나 들어볼 수 있게 되었다. 해결되지 못한 역사 속 증인은 역사의 통로이자 목소리가 된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라는 문구처럼 어쩌면 우리에게 기술이 필요한 진짜 이유는 과거의 역사를 보존하기 위해서 일지도 모른다.

시대가 변하는 만큼 기술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의 수용 속도는 점점 빨라지고 있다. 이에 예술은 더는 기술을 외면할 수 없고, 기술은 더는 예술을 소외할 수 없게 되었다. 비대면의 시대는 아이러니하게도 서로가 홀로 설 수 없는 국면을 맞이하고 있다.

 

이제 개막된 예술과 기술의 결합 시대. 작품 세계를 보존하면서 기술력을 입히는 작업 자체가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는 대단한 도전이다. 그 변화의 물결 앞에 있는 관람객들은 이 커다란 변화를 지켜보고 있다. 아직은 고가의 장비나 특정 장소에서만 구현 가능한 기술력이 한계로 지적되지만, 비대면의 시대에서 예술이 사람들의 삶 속으로 쉽게 스며들 방법은 기술의 흐름 위에 자연스럽게 몸을 맡기고 파도를 즐기는 방법이지 않을까? 한쪽으로 편향된 것이 아닌 각자의 부족한 점을 채운 진정한 융합이 이루어지는 순간, 우리는 모두 새로운 물결에 함께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