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

3 Dots

▪ 할리우드를 필두로 세계는 지금 올드 IP를 리메이크하거나 영화화하는 미디어믹스 트렌드가 한창이다.

▪ 영화 <바비>는 바비를 둘러싼 다양한 젠더 담론,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는 어른이 된 원작 팬들을 위로하는 서사와 피치 캐릭터의 변화로 현대적 가치에 맞춰 창작되었다.

▪ 마텔과 닌텐도는 바비, 마리오 외에도 자사의 브랜드를 계속해서 영화화하는 IP 확장 전략으로 사업을 다각화할 예정이다.

 


 

첫사랑한테 4.5를 주는 바보는 없어.

 

지난 2023년 1월, 영화 <더 퍼스트 슬램덩크>가 개봉했을 때 한 관객이 리뷰 플랫폼 왓챠피디아에 별점 5점과 함께 남긴 코멘트다. 이 코멘트는 5천여 개의 “좋아요”를 받으며 27년 만에 영화로 돌아온 <슬램덩크>를 반기는 팬들의 여전한 애정을 보여줬다. 감독과 각본은 원작 작가인 이노우에 다케히코(井上雄彦)가 맡았는데, 원작에서 다뤄지지 않은 이야기를 추가했다. 원작에서 이미 다룬 산왕공고와의 경기가 주 배경이지만, 그 안에 비중이 적었던 송태섭을 주인공으로 내세웠다. 영화에서는 그의 유년 시절을 풀어내며 원작에서 볼 수 없었던 스토리와 연출을 더했다. 다케히코는 한 인터뷰에서 (송태섭은) 만화 연재 당시에도 서사를 더 그리고 싶은 캐릭터였다고 밝혔다. 어쩌면 콘텐츠 업계에서는 무한한 새로움보다 내면 깊은 곳을 건드리는 익숙한 그 무엇이 더 귀할지도 모른다.

 

최근 개봉한 영화 <웡카> 역시 소설가 로알드 달(Roald Dahl)이 1964년에 발표한 <찰리와 초콜릿 공장>이 원작이다. 이 소설은 이미 1971년과 2005년 두 차례나 영화로 만들어졌는데, 2023년의 <웡카>가 전작들과 다른 점이라면 바로 원작 이전의 이야기를 다루는 프리퀄이란 점이다. 웡카의 젊은 시절로 돌아가, 그가 어떻게 세계 최고의 초콜릿 메이커가 되었는지 성장기를 그린다. <웡카>의 영화감독이자 시나리오 작가인 폴 킹(Paul King)은 이전 영화들과 비교해 <웡카>는 원작에는 없는 오리지널 시나리오가 있다고 강조한다. 원작을 참고하되 감독의 상상을 덧대 초콜릿 업계에 갓 입문한 젊은 웡카의 도전기를 새로 써 차별점을 만들었다.

 

익숙한 소재에 신선함을 더해서일까? <웡카>는 북미 개봉 첫 주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하며 전 세계 누적 수익 4억 6,585만 달러(한화 6,130억 원)를 달성했다. 이는 할리우드의 차세대 유망주이자 이미 세계적인 배우가 된 주인공인 티모시 샬라메(Timothée Hal Chalamet)의 필모그래피 중 역대 최고 수익이다. 국내에서도 개봉하자마자 2024년 외화 최고 오프닝 스코어(17만 9,742명)를 기록하며 관객 수 300만 명을 가뿐히 돌파했다.

 

<더 퍼스트 슬램덩크>와 <웡카>가 보여준 것처럼 한때 우리를 사로잡았던 올드 IP는 여전히 숨겨진 저력을 지니고 있다. 관객은 익숙함 속에서 그리움과 신선함이란 양가감정을 동시에 느끼고, 크리에이터는 무에서 유를 창조해야 한다는 부담감을 덜 수 있다. 그래서일까? 현재 콘텐츠 업계에서 올드 IP는 연이은 히트 기록을 남기며 잠재적인 킬러 콘텐츠로 활발히 제작·발굴되고 있다. 이들의 화려한 귀환 뒤에는 어떤 요인들이 숨어 있을까?

26년만에 영화로 돌아온 슬램덩크 시리즈 ⓒ NEW
2024년, 2005년, 1971년 세 차례 영화로 리메이크된 <찰리와 초콜릿 공장> 속 역대 윌 리 웡카 ⓒ TODAY

전 세계를 핑크빛으로 물들인 1959년생 바비 

2023년 최고의 영화를 꼽으라면 주저 없이 <바비>를 고르겠다. 2023년 창립 100주년을 맞이한 워너브라더스의 역대 최고 흥행작이 된 <바비>는 <해리포터와 죽음의 성물 2부>와 <아쿠아맨>, <조커>를 뛰어넘는 흥행 스코어로 전 세계 총수입 약 14억 4,563만 달러(약 1조 9,299억 원)를 벌어들였다. 각본을 쓰고 연출한 그레타 거윅(Greta Gerwig)은 여성 감독 최초로 단독 연출작 10억 달러 클럽에 가입하는 영예를 안기도 했다. 

 

1959년 처음 출시된 인형 바비는 글로벌 장난감 회사 마텔(Mattel)의 작품이었다. 창업자 루스 핸들러·엘리엇 핸들러(Ruth Handler·Elliot Handler) 부부는 어린 딸에게서 영감을 받았는데, 1950년대 당시 딸이 종이로 된 숙녀 인형에 종이 옷을 입히며 엄마 놀이 하는 걸 본 부부가 딸을 위한 제대로 된 인형을 만들기로 결심했다. 각종 옷, 신발, 장신구 등을 착용할 수 있는 성인 여성 인형 바비가 그렇게 탄생했다. 딸의 이름 바버라를 따 바비(Barbie)란 이름을 붙였다. 2년 뒤 연이어 출시된 남자 친구 켄(Ken)도 아들 이름에서 따왔다. 1959년 뉴욕 장난감박람회에서 첫선을 보인 바비는 아기 인형이 주류이던 당시에 센세이션을 일으키며 첫해에만 35만 개가 팔렸고, 지금도 전 세계적으로 연 5,800만 개가 팔리는 인형계의 스테디셀러로 자리매김했다.

 

올해로 65살이 된 바비는 긴 역사만큼이나 다양한 비판을 받았다. 여성의 성을 상품화하고 어린이에게 전형적인 미인상과 외모지상주의를 심어주며 백인우월주의를 반영한다는 게 주요 지적이었다. 사람으로 치면 가슴 36, 허리 18, 엉덩이 33인치의 비현실적인 비율이지만 소위 아름다운 체형의 표준으로 여겨져, 외모에 지나치게 치중해 성형수술 중독이나 거식증을 겪는 현상 등을 일컬을 때 바비 증후군이라고 불리기도 했다. 이에 마텔은 다양한 인종과 외양의 바비를 내놓으며 비판에 직면했다. 직업도 과학자, CEO, 경찰관, 의사 등으로 확대해 전통적인 성역할을 재현한다는 지적으로부터 탈피하려고 했다. 더 나아가 “당신은 무엇이든 될 수 있다(You can be anything)”를 새로운 슬로건으로 내세우며 최근에는 보청기, 의족, 휠체어를 사용하는 바비를 출시해 시대 변화에 발맞춰 나가는 중이다. 그 결과 지금까지 200여 종의 다양한 바비들이 제작됐다. 

 

2023년, 마텔은 한 걸음 더 나아가 바비를 영화 속 캐릭터로 만들 것을 결심한다. 2018년부터 마텔의 회장이자 CEO로 영입된 이넌 크라이츠(Ynon Kreiz)는 마텔 필름을 발족하며 장난감과 자사 캐릭터의 지식재산권(IP)을 활용한 엔터테인먼트 사업을 새로운 성장 전략으로 제시한다.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받은 영화 <댈러스 바이어스 클럽>의 제작자 로비 브레너(Robbie Brenner)를 마텔 필름 책임자로 스카우트하기도 했다. 크라이츠는 마텔이 (인형을 비롯한 장난감) 지식재산권이 탄탄함에도 그간 이를 제대로 활용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영화 제작사가 아닌 마텔에게 자사 브랜드의 영화화는 상당한 도전 과제였다. 이때 바비를 아예 영화로 만드는 건 어떻겠냐고 제안한 이는 다름 아닌 할리우드 배우이자 제작자 마고 로비(Margot Robbie)였다. 그녀는 남편과 함께 세운 제작사 럭키챕(LuckyChap)을 통해 바비를 영화화하겠다고 나섰다. 

로비는 과거 하퍼스 바자(Harper’s BAZZAR)와의 인터뷰에서 왜 럭키챕을 세웠냐는 질문에 다음과 같이 답했다. 자신이 아내이거나 여자 친구로만 나오는 대본을 선택하고 싶지 않아서. 그녀는 데뷔 초 세간의 명성을 가져다준 마틴 스코세이지(Martin Scorsese)의 <더 울프 오브 월 스트리트>에 출연했지만, 금발의 생각 없는 미녀를 연기해야 했고 전신 노출까지 감행했다. 로비는 월스트리트저널과 인터뷰에서 작품을 고를 때면 늘 남성 캐릭터를 맡고 싶었다며, 반대로 사람들이 우리가 제작하는 대본을 보며 여성 캐릭터를 탐낸다면 정말 멋지지 않을까. 그 생각으로 제작에 참여하고 있다고 포부를 밝혔다. 그렇게 만든 작품은 <아이, 토냐>, <버즈 오브 프레이>, <프라미싱 영 우먼> 등 개성 있는 여성 캐릭터들이 주인공이 된 영화들로, 평론가들의 호평과 함께 상업적으로도 유의미한 성공을 거뒀다.

 

그럼에도 마고 로비는 전 세계인 모두가 알 법한 대중성을 가진 바비라는 IP에서 큰 잠재력을 본 동시에 무척 조심스러웠다고 한다. 바비 인형이 여성 신체를 규정하고 정형화한다는 비판 때문이었다. 또한 바비는 마블코믹스 같은 만화 속 캐릭터가 아니었기에 애초에 서사가 없는 캐릭터였다. 바비와 세계관을 드라마타이즈하는 것도 하나의 도전 과제였을 터였다. 로비는 눈여겨보던 배우이자 감독인 그레타 거윅을 각본 작업에 참여하도록 설득했다. 거윅은 과거 <레이디 버드>를 통해 17살 여고생의 혼란하고 복잡한 성장기를 훌륭히 그려내 골든글로브 작품상을 받았으며, 루이자 메이 올컷(Louisa May Alcott)의 고전소설 『작은 아씨들』을 각색해 클래식하며 타협하기를 거부하는 입체적인 여성 캐릭터를 만들었다. 로비의 눈에는 한때 여성들의 베스트 프렌드이자 성차별의 아이콘으로 의미화된 바비를 영화로 불러오기에 가장 적합한 감독이었다.

 

거윅은 한 인터뷰에서 바비가 전 세계적으로 잘 알려진 브랜드이고, 사람들은 바비에 대해 다양한 의견을 갖고 있다. 어떨 때는 바비가 시대를 앞섰지만, 어떨 때는 뒤처졌기 때문에 용기가 필요했다. 두려움이 있으면서 동시에 좋은 작품이 나올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며 의뢰받은 당시를 회고했다. 그녀는 연인이자 영화 <결혼 이야기>의 감독인 노아 바움백(Noah Baumbach)과 <바비> 대본 작업에 착수했고, 시나리오 개발기는 개방(open), 자유(free)란 두 가지 키워드로 압축할 수 있었다고 한다. 애초에 서사가 없던 세계관이니 새로운 이야기를 쌓는 과정은 하나의 도전이자 상상력을 극대화하는 쾌감의 세계였을 것이다. 여담이지만 초기에 바비를 왜 영화로 만드냐고 의문을 표했던 바움백도 후에 완성된 각본을 보고 본인이 연출하고 싶다며 은근슬쩍 본심을 표했다고 한다. 거윅은 농담과 진담이 섞인 이 말에 (이건 내 것이니) 물러서라며 마찬가지로 농담과 진담을 섞어 선을 그었다.

다양한 모습을 선보이고 있는 바비 인형들 ⓒ MATTEL
<바비> 세트장에 있는 마고 로비, 아나 크루즈 케인, 그레타 거윅, 하리 네프 ⓒ Jaap Buitendijk

저희 어머니는 바비가 만드는 전형성 때문에 바비를 좋아하지 않으셨습니다. 영화는 바비가 스스로 그 전형성을 넘어서 성장하고, 여러 가지 복잡한 뉘앙스를 가지게 만드는 작업이었습니다.

– 그레타 거윅

 

사실 감독인 거윅도 바비의 한계를 인지하고 있었다. 영화는 바비를 둘러싼 복잡한 담론을 그대로 스토리라인으로 극화했다. 페미니즘 코드를 전면에 깔면서 현실을 풍자하는 핑크빛 블랙 코미디를 내세웠다. 바비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는 바비랜드에서 살던 바비가 미스테리한 사건을 겪으며 현실 세계로 향한다. 그곳에서는 바비랜드와 달리 성차별과 온갖 유리천장을 경험하며 차별과 배제를 깨닫는다. 반대로 서브 역할인 켄은 바비랜드에서 보잘것없는 바비의 상대역으로만 머물다, 현실 세계에서 남성 중심 가부장제를 학습하며 켄 중심의 켄 랜드를 만들고자 혁명을 일으킨다. 여기에 디스코 음악, 두아 리파(Dua Lipa), 샘 스미스(Sam Smith) 등 유명 팝가수 참여 OST, 핑크빛 세트장이 더해지며 뮤지컬적인 재미가 첨가된다. 영화사적으로 유명한 영화를 패러디하며 씨네필들에게는 이스터에그와 같은 재미도 준다. 1959년 바비가 출시된 순간의 센세이션을 스탠리 큐브릭 영화 <2001 : 스페이스 오다세이> 중 일부 장면을 그대로 패러디하기도 했다.

 

대중은 영화로 귀환한 어린 시절 추억의 장난감을 격렬히 반겼다. 단순히 장난감을 영화로 만든 것 이상의 통찰력 있는 시각과 현실 풍자를 더한 덕에 영화는 전 세계 여성들의 강력한 지지를 받으며 성공했다. 소위 애국·사회주의 영화가 휩쓰는 중국 극장가에서도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다. 개봉 일주일 만에 389만 명이 관람했고 매출 규모 또한 예상치의 2배인 1억 9,400만 위안(약 347억 원)을 기록했다. 중국 여성들은 바비를 상징하는 핑크색 옷차림으로 극장을 찾았고, <바비>는 처음 인형으로 출시되었을 때만큼이나 커다란 센세이션을 불러왔다. 미국 작가 리타 홍 핀처(Leta Hong Fincher)는 파이낸셜타임스에서 중국 여성들이 드디어 사회가 불평등하고 여성 혐오적이란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중국은 비교적 남녀가 평등한 사회로 알려졌지만, 그럼에도 중국 여성들은 직장에선 여자라 불이익을 받고, 가정에선 가사와 육아를 더 많이 맡아야 한다고 토로한다. 중국 공산당 지도부인 정치국원 24명 중 여성은 한 명도 없다. 중국에서 보기 드문 여성주의 영화란 평가를 받으며 활발하게 젠더 이슈를 나누는 공론의 장이 된 것이다.

 

그 외에도 <바비>는 영국, 멕시코, 브라질, 호주 등 세계 곳곳에서 큰 인기를 끌었다. 이런 바비 현상에 대해 영화시장 조사업체 박스오피스 닷컴의 수석 분석가인 숀 로빈스(Shaun Robinson)도 바비는 여성성에 대한 문화적 논의를 새롭게 불러일으키며 업계도 예상하지 못할 만큼 세계적인 현상이 됐다고 평가했다. CNBC는 바비는 영화 팬들이 여전히 양질의 영화와 특별한 공동체적 경험을 위해 기꺼이 극장을 찾을 의사가 있음을 보여준다고 설명하며 그 의의를 밝혔다. <바비>는 제96회 아카데미 후보 명단에서 작품상, 각색상, 남우조연상, 여우조연상 등 8개 부문 후보에 올라 그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이는 올드 IP가 지닌 다양한 담론과 역사성을 살려 작품으로 구현해 낸 훌륭한 케이스라 할 수 있다. 그것이 설사 한때 자신의 과거를 비판하고 풍자하는 방향으로 가더라도 말이다.

스크린에서 만나는 추억의 게임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

2023년 글로벌 흥행 영화 1위가 <바비>였다면 2위는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였다. 박스오피스 상위 10위 중 별도의 오리지널 스토리가 없는 IP 콘텐츠는 <바비>와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가 유일하다. <바비>가 젠더를 둘러싼 다양한 담론과 사회 현실을 풍자했다면,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는 게임 세계관과 캐릭터 자체를 스크린으로 충실히 재현하는 데 집중했다. 슈퍼 마리오는 일본 회사 닌텐도에서 개발한 아케이드 게임으로 1985년 9월 13일에 출시되었다. 아케이드 게임은 비교적 게임의 난이도가 쉬워 반복 플레이할 수 있는 게임을 의미한다.

슈퍼 마리오는 플레이어가 마리오를 조작해 버섯 왕국을 탐험하며 세계 정복을 꿈꾸는 악당 쿠퍼로부터 피치 공주를 구하는 단순 조작 게임이다. 마리오가 인기를 끈 비결은 너무 쉽거나 어렵지 않은 적정한 난이도와 플레이어가 직접 발견하도록 자발성을 심어두었기 때문이었다. 마리오의 아버지라 불리는 게임개발자 미야모토 시게루(宮本茂)는 심리학자 미하이 칙센트미하이(Mihaly Csikszentmihalyi)가 몰입(flow)이라고 칭한 심리 기제를 게임에 적용했다. 플레이어는 정해진 룰만 따르는 게 아닌, 스스로 연구하고 시행착오를 거치며 숨겨진 아이템을 발견하고 허공으로 이곳저곳 점프하며 새로운 것을 발견한다. 기획은 성공적이었다. 출시 직후 무서운 속도로 인기를 얻어 일본에서만 631만 카피, 글로벌 시장에서는 4천 24만 카피를 판매했다. 역대 일본 게임 판매량 4위를 차지한 <마리오> 시리즈는 역사상 가장 많이 팔린 게임으로 기네스북에 등장했다.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폐막식에서는 당시의 일본 총리 아베 신조(安倍晋三)가 도쿄 올림픽의 홍보 목적으로 슈퍼 마리오로 분장해 큰 환호를 받기도 했다.

 

130년 역사를 자랑하는 게임개발·콘솔 회사인 닌텐도는 <포켓몬>, <마리오>, <동물의 숲>, <젤다의 전설> 등 그간 굵직한 히트 게임을 만들어 왔다. 모두 국내에서도 마니아층이 두터운 게임들이다. 최근 닌텐도는 꾸준히 새로운 게임과 콘솔을 개발하면서도 IP 무한 확장에 본격 시동을 걸었다. 첫 번째 이유는 팬들의 IP에 대한 충성도가 높기 때문이다. <포켓몬스터 스칼렛·바이올렛>은 게임이 출시되었을 당시, 메타크리틱 72점으로 낮은 평가를 받았지만 역대 닌텐도 게임 중 최고 속도의 판매 기록을 보였다. 이는 여전히 포켓몬을 좋아하는 로열한 팬들이 많다는 걸 보여준다.

 

두 번째 이유는 서사화하기 유리한 풍부한 세계관과 개성 있는 캐릭터다. 액션 어드벤처 게임인 <젤다의 전설>의 배경은 드래곤과 용사가 나오는 서구 판타지 세계관이다. 또한, 오픈 월드에 가까운 세계에서 플레이어는 엄청난 자유도를 기반으로 자기만의 게임을 만들 수 있어 유저에게 고평가를 받는다. 플레이어가 어떤 생각을 가지고 게임을 하든 이를 이뤄지게 한다는 게 제작진 의도였던 만큼, 게임 내에는 플레이어마다 다양한 변수를 수용할 방대한 세계관이 빌드업되어 있다. 영화로 창작될 때 다룰 수 있는 소재가 무궁무진하다는 의미다. 마지막 이유는 앞서 마텔이 그랬듯 수익 창구의 다각화다. 닌텐도는 2020년 IP 접촉 인구 확대를 테마로 내세워 일상에서 소비자들이 닌텐도 IP를 만나도록 애쓰고 있다. 기업의 인지도와 수익을 개선하고자 영화 외에 장난감, 패션, 테마파크 등 전방위적으로 IP 확대를 모색하고 있다.

 

그런데 생각 이상으로 대박이 났다. 미국 제작사와 합작한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 영화가 글로벌 인기를 끌면서 IP 확장 전략이 장기적으로 회사 성장을 견인할 것으로 예측됐다. 그 덕에 닌텐도 주가도 일 년 사이에 58%가 뛰었다. 많은 평론가는 성공 요인으로 두 가지를 분석한다. 첫 번째, 원작의 세계관과 캐릭터를 그대로 재현해 향수를 제대로 자극했다는 점. 두 번째, 이제는 어른이 되어 버린 플레이어들이 공감할 수 있는 서사와 고민을 영화에 녹였다는 점이다. 마리오를 플레이하며 즐거웠던 유년 시절의 기억과 팍팍한 어른의 삶이 교차하는 플레이어들을 제대로 타겟팅한 전략이었다. 여기에 원작에는 없는 프리퀄까지 다루며 궁금증도 해소한다. 마리오와 루이지 형제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 또 어떻게 버섯 왕국에 들어오게 되었는지, 악당 쿠파가 슈퍼스타를 어떻게 손에 넣기 되었는지 등 게임에서는 물음표로 남겨진 이야기를 다룬다.

뉴욕 브루클린의 평범한 배관공으로 그려지는 마리오와 루이지 형제 ⓒ thesupermariobrosmovie
2023년 글로벌 박스오피스 TOP 10. 1위 <바비>, 2위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 7위 <웡 카> ⓒ Box Office Mojo

마리오 형제는 브루클린에 사는 평범한 배관공 형제였다. 어느 날 배수관 공장 문제 때문에 도시가 위기에 처한다. 둘은 이를 해결하려다 미스터리한 초록색 파이프 안으로 빨려 들어가게 되고 새로운 차원으로 이동을 한다. 형 마리오는 피치가 통치하는 버섯 왕국에 도착하지만 동생 루이지는 악당 쿠파가 있는 다크랜드로 납치 당한다. 마리오는 피치, 키노피오와 의기투합해 루이지를 구하고자 쿠파에 맞서기로 결심하고 이 과정에서 스펙타클한 어드벤처를 겪게 된다.

 

이야기의 기본 줄거리는 이와 같다. 원작과 눈에 띄게 다른 점은 마리오가 피치 공주를 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공주는 영웅에 의해 구해져야 한다는 낡은 이야기를 현대화해 이 둘이 합심해 루이지를 구한다는 설정으로 바꿨다. 또한 마리오 형제는 자기 몫을 책임져야 하는 팍팍한 현실을 마주하는 어른으로 묘사된다. 게임 속 공주를 구하던 단순 배관공이 아니다. 그렇기에 이들에게 피치 공주를 구하는 미션보다 더 중요한 건 자기만족과 자기 삶에 대한 자기 효능감이다. 비난의 폭격을 맞은 극 중 마리오는 이렇게 말한다. 다들 우릴 무시하잖아. 초라한 기분이 싫어. 이 이야기 속에서 마리오는 슈퍼 마리오로 성장하며 초라한 삶에서 스스로 만족하는 삶으로 나아가고자 한다. 그게 이 모험이자 여행의 의미이다. 어른이 된 오늘날의 플레이어들이 그에게 짠함을 느끼면서 공감할 수 있는 긴요한 설정이다.

 

게임 UI를 그대로 재현한 장면도 관객의 향수를 자극했다. 함정이 많은 벽돌 다리, 일정한 속도로 움직이는 장애물, 식인 꽃 등 게임에 나왔던 요소들이 똑같이 재현되었고 관객은 자신의 과거 플레이 경험을 상기하며 다음을 예측할 수 있게 된다. 마리오가 뛰는 속도가 점프 거리를 보며 아 저렇게 좁게 뛰면 안 되는데, 아 저기에 숨겨진 아이템이 있는데! 하면서 어느새 영화 속에 몰입한다. 또한 마리오 카트 요소도 접목해 반가움을 더했다. 무지개 로드를 질주하는 마리오와 주변 캐릭터들을 보면서 우리는 익숙함이 주는 재미와 반가움에 미소 짓게 된다.

 

마리오 성공에 힘입어 닌텐도는 순차적으로 자사의 IP를 영화화할 계획이다. 작년 11월 닌텐도가 발표한 계획을 살펴보면 영화의 감독은 <메이즈 러너>를 제작한 웨스 볼(Wes Ball)이 맡을 예정이다. 웨스 볼은 <반지의 제왕>과는 다른 결의 멋진 판타지 어드벤처 영화를 만들고 싶다. 항상 미야자키 하야오가 만든 애니메이션의 실사화 영화를 보고 싶다고 생각해 왔는데 <젤다의 전설> 실사화 영화를 통해 보여주고 싶다며 연출 포부를 밝혔다. <메이즈 러너>를 통해 각양각색의 던전을 구현하고 모션캡처 또한 시도해 본 감독이기에 <젤다의 전설>의 영화감독으로 안성맞춤이라는 의견이 많다. 앞으로도 이런 방식으로 올드 게임 IP를 영화로 소환하는 미디어믹스는 점차 늘어날 전망이다.

버섯왕국의 통치자이자 용맹한 공 주로서 현대적 면모를 더해 재탄생한 영화 속 피치 ⓒ thesupermariobrosmovie
영화 <위키드> 포스터 ⓒ IMDb

오리지널보다 막강한 오리지널리티

이 외에도 소설에서 출발해 뮤지컬로 오래 사랑받다 연말에 영화로 개봉하는 <위키드>, 20년 전 하이틴 영화의 대명사였던 <퀸카로 살아남는 법> 등 올드 IP는 끊임없이 소환되고 있다. 이러한 현상에는 여러 이유가 있다. 하나는 기존의 두터운 팬층을 흡수할 수 있는 익숙함의 매력, 또 다른 하나는 시대의 향수를 자극하기 때문이다. 미국 소설가 존 코에닉(John Koenig)이 2012년에 만든 신조어 “아네모이아(Anemoia)”는 성인이 되어 과거의 경험을 기억하고 돌아보는 레트로가 아닌, 아예 접해 본 적 없는 문화를 동경하는 현상을 말한다.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에서 주인공을 지배하는 감정은 아네모이아다. 그는 파리에서 자신이 동경하던 과거의 작가들을 만나며 자신이 경험하진 못한 1920년대 파리를 좇게 된다. 이처럼 올드 IP는 오리지널 스토리보다 막강한 디 오리지널(the original)로, 일종의 낭만성을 앞세워 원작을 경험하지 못한 팬들까지 끌어당기는 힘이 있다.

 

영화 홍보 측면에서도 유리하다. 사전에 입소문을 내 팬들의 기대감을 증폭시키기에 수월하기 때문이다. 대개 영화가 재밌거나 흥행이 예상된다면 일찌감치 홍보를 시작하고 정보를 적극적으로 흘린다. “그 영화 기대되더라”는 입소문을 퍼뜨려 개봉일에 빵 터지도록 기대를 잔뜩 쌓아두는 식이다. 요즘처럼 SNS가 발달한 시대에서 발 빠른 홍보로 사전에 의제를 독점하는 영화들은 성공할 가능성이 높다. (물론 뚜껑을 열어 봤을 때 생각보다 별로면 그만큼 화제성이 빠르게 식기도 한다.) 올드 IP들은 어느 정도 콘텐츠에 대한 사전 정보가 공유되어 있기에 관객과 사전에 라포를 형성할 시간이 충분하다. 관객의 머릿속에 이미 빌드업된 IP는 그만큼 관객과 친해지기에 허들이 낮다는 의미이다.

 

그렇다고 모든 올드 IP가 영화가 성공했냐고 묻는다면 당연히 아니다. <듄> 시리즈를 연출한 드니 빌뇌브(Denis Villeneuve) 감독은 <듄: 파트2> 국내 기자 간담회 때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제가 영화제작자로서 오래전부터 생각한 건, 그 어떤 것도 당연하게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는 겁니다. (중략) 거만하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제 동료들과 제가 이 영화에 대해 굉장히 자부심을 갖고 있지만, 그렇다고 이 영화가 완벽하다고 말씀드리는 건 아닙니다. <콘택트>, <블레이드 러너 2049>로 거장 반열에 오른 빌뇌브도 이렇게 생각한다고 함은 콘텐츠 사업, 특히 영화에는 왕도가 없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특히 오래된 IP에게는 현대화 작업이 필수다. 오늘날의 가치와 맞닿아 지금의 관객에게 울림 있게 다가올 때 리메이크작을 넘어 고유한 시선을 지닌 작품이 된다. 그렇게 보면 중요한 건 올드 IP만이 아닐 수 있다. 올드 IP 속에 무엇을 담아내는지 크리에이터만의 시각, 오리지널리티가 진정한 IP의 핵심이다. 하늘 아래에 새로운 게 없다 하지만 하늘 아래에 정확히 일치하는 것도 없다. 콘텐츠 춘추전국 시대 속에서 올드 IP는 뉴 IP로 환골탈태하며 크리에이터들의 새로운 영감의 원천이 되고 있다. 그것이 하나의 트렌드를 넘어 콘텐츠 산업을 주름잡는 주류가 될 수 있을지, 관객은 성찬을 즐기며 흥미롭게 지켜보면 될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