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

국가나 사회 구성원에게 두루 관계됨을 의미하는 공공(公共)의 개념은 시대에 따라 끊임없는 변화를 맞이했다. 현재도 우리 삶에서 다양한 형태로 공유와 공감을 전파하는 매개체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공공이라는 개념은 왜 존재했던 것일까? 어원을 통해 그 뜻을 살펴보자면, Public의 어원은 사람들・백성들을 뜻하는 라틴어 명사인 Populus에서 파생된 것이라 널리 알려져 있다. 어원에 관하여 여러 주장이 있으나 Republic(공화국)의 라틴어 표현인 Res Publica의 어원이 Populus에서 파생된 것으로 짐작했을 때, 다수를 위해 공적인 일을 수행한다는 것을 공공의 기원으로 볼 수 있다. 『조선왕조실록』에서도 법, 민심, 외교 등 다양한 분야에서 공공(公共)을 위해 뜻을 함께하는 모습을 찾아볼 수 있다.

 


법(法)이란 것은 천하(天下)의 공공(公共)한 것이므로, 한 사람이 사사(私私)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신(信)이란 것은 인군(人君)의 대보(大寶)이므로, 비록 한마디 말이라도 소홀히 할 수 없는 것입니다.

– 태종실록 18권, 태종 9년 10월 2일 경자 3번째 기사

 

이처럼 공공은 과거부터 공공의 이익 혹은 평등을 위해 존재했다. 현재도 공공공간, 공공의료, 공공정보, 공공예술, 공공미술 등 장소성・보편성・예술성과 같이 다수가 함께하고 누릴 수 있는 모습으로 형태를 구체화하고 있다. 그중 공공미술은 그 형태가 가장 분명하고, 실천하고자 하는 목표가 뚜렷하다. 대중들을 위한 미술인 공공미술은 장소와 결합을 중시하던 전통적 의미를 넘어 사회적・문화적・정치적 소통의 공간으로 확장되는 현대적 의미로 발전해가고 있다.

 

우리나라 공공미술은 2000년 후반부터 공공미술 프로젝트가 활발하게 전개되었는데, 특히 지방자치단체와 기업들이 브랜드의 긍정적 이미지 구축 및 대중문화발전 기여를 위해 공공미술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서울특별시는 2006년부터 2021년 현재까지 서울 도심 곳곳에서 시민 곁의 공공미술을 실현하고자 다양한 참여 방식과 작품 공모 및 제작을 진행하고 있다. 이에 서울특별시의 공공미술을 설치미술형, 작가주도형, 시민참여형 등 세 가지 유형으로 분류해 공공미술의 다양한 사례를 살펴보고자 한다.

설치미술형

이 유형은 공공공간에 설치된 작품을 시민이 관람하는 형태로, 문화의 다양성을 추구하고 다수의 시민이 즐길 수 있도록 대규모의 공간에서 진행되는 프로젝트가 대다수다. 시민이 공간을 경험하고, 관람하는 모든 과정이 작품의 완성과 연결되는 미래지향적이며 지속가능한 연결을 목표한다. 설치미술형은 다른 유형에 보다 의미 있는 장소의 발굴이 중요하며, 작품에 장소성을 녹여낼 창의적 실현 또한 중요하다.

 

홍제유연(弘濟流緣)은 2019년 서울은미술관 공공미술 프로젝트로 탄생한 작품이자 공간이다. 서울시 서대문구 유진상가는 대한민국 초기 주상복합건물의 원형을 보존한 곳이자 한때 군사용 방어시설로 전쟁 발발 시 북한의 진입로 차단을 위해 설계된 곳이기도 하다. 또한 재개발 등 사회적 이슈로 50년간 사람들의 발길이 멈춘 곳이기도 하다. 하지만 공공미술 프로젝트 심사위원 만장일치로 유진상가 지하 공간이 선정되면서 새로운 모습으로 태어난 것이다. 물과 사람의 인연이 흘러 예술로 치유하고 화합한다는 뜻을 담은 이 공간은 공간 원형을 최대한 보존하며, 예술가들이 공간에서 영감을 받은 작품을 전시하며 주목받았다. 또한, 공간을 다시금 되찾은 시민들의 작품도 함께 전시하여 지속가능한 예술의 실천을 목표한다.

 

서울 지하철 6호선 녹사평역 지하예술정원 또한 2018년 서울은미술관 공공미술 프로젝트를 통해 탄생했다. 녹사평역은 푸른 풀이 무성한 들판이라는 뜻을 지닌 곳으로 서울시청의 신청사 건설 계획에 발맞춰 만든 지하철역이었다. 그러나 시청 이전 계획이 무산되면서 거대한 공간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실정이었다. 이에 공공미술 프로젝트를 통해 녹사평의 아름다운 건축구조를 활용하여, 자연의 빛과 식물의 특별함을 경험할 수 있는 정원이 있는 미술관으로 탄생하게 된 것이다.

 

초록의 즐거움을 만날 수 있는 하나밖에 없는 특별한 장소, 보타닉 서울을 꿈꾸며 용산공원의 진입점이자 공공미술의 중심지로 사람과 자연의 선순환을 통해 장소성과 역사성을 되새기는 공간으로 제 역할을 찾게 되었다. 현재까지도 일상 속 쉼터이자 예술 작품으로 시민의 삶과 함께하는 공간으로 사랑받고 있다.

작가주도형

작가주도형은 작가가 주도하는 작품에 시민이 참여하는 형태를 일컬어 칭하였다. 공모전이나 참여, 기획을 통해 선정된 작품을 시민이 관람하는 형태에서 설치미술형과 유사하지만, 작품의 완성에 있어 공간성보다는 작가의 작품 세계가 조금 더 강조되는 측면에서 작가주도형으로 분류하게 되었다. 시민참여가 일부 포함될 수 있으나 다소 소극적인 형태를 띠고 있다. 이 유형은 대개 전시를 통해 공공미술을 실현하고 있으며, 누구에게나 열린 공간을 활용한다는 점이 가장 큰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서울로미디어캔버스는 서울로 7017에서 조망이 가능한 위치에 전시가 가능한 미디어캔버스를 설치해 시민의 예술 향유 기회를 확대하고자 시작되었다. 시민이 공감하고 직접 참여할 수 있는 참여형 미디어 플랫폼으로, 시민이 향유하고 공감할 수 있는 미디어아트, 영상, 콘텐츠 등 빛으로 표현 가능한 예술작품을 지속해서 전시하고 있다. 작가 협업 전시와 공모를 통해 선정된 작가・시민의 작품을 전시하며, 공공미술 프로젝트의 명성을 이어가고 있다. 2021년에도 <기획공모 개인전>, <네이처 프로젝트 공모>, <시민영상공모> 등 세 개 분야의 작품을 공모하며, 도심 속 공공미술을 실현하고 있다.

 

우이신설 문화예술철도는 우이신설선 역사에 상업 광고를 배제하고, 양질의 문화예술 콘텐츠를 전시하여 시민 일상에 예술적 경험을 증진하기 위해 시작되었다. 일상을 찾아가는 문화예술 경험과 모두에게 열린 오픈 전시 플랫폼으로, 다양한 유형의 전시를 시민들에게 제공한다. 전시는 크게 주제전시, 협력전시, 오픈전시 세 가지로 성격을 달리하고 있다.

 

주제전시는 우이신설문화예술철도 큐레이터의 기획 전시로, 현재 <시간여행자 : TIME TRAVELLER>, 아티스트스테이션 <우주극장> 등 다양한 주제전이 진행되고 있다. 협력전시는 다양한 문화예술기관 협력을 통해 신진작가 지원과 예술계와 지속적인 상생을 도모한다. 오픈전시는 시민, 작가, 기획자 등 누구나 심사를 거쳐 본인의 콘텐츠를 전시할 수 있다. 이를 누구나 작가가 될 수 있는 특별한 경험을 누릴 수 있다.

시민참여형

시민참여형은 공공미술 프로젝트에서 가장 흔한 사례이자 보편적인 유형으로, 공공미술의 지향점을 담아 분류하였다. 시민참여형은 위의 두 유형이 적절히 혼합되어 있으며, 도심 서울을 중심으로 공공미술을 통해 도시공간을 향유한다는 점이 가장 큰 특징이다. 작가와 시민의 공통 경험을 통해 공공미술로 도시의 문제를 새롭게 바라보고, 해결하는 진취적 형태를 띤다. 상상력과 창의력을 펼치는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체험하고 참여하며 공공미술의 영역을 확장하는 것이 특징이다.

 

서울은 공공미술 축제는 공공미술을 매개로 작가와 시민이 경험을 공유하고, 작품을 함께 완성하는 과정을 진행한다. 매년 다양한 주제로 프로젝트를 실시하며, 작가의 예술성과 시민의 대중성을 반영한 콘텐츠를 통해 공공미술의 긍정적 인식을 강화하고, 장소의 가치를 다시금 재해석보는 과정을 거친다.

 

2018년 진행한 공공미술 프로젝트 「퍼블릭✕퍼블릭」은 광화문 광장을 중심으로, 열림을 주제로 광장의 형태와 의미를 맥락화하여 참여・체험형 공공미술을 실천했다. 이를 통해 광장미술의 개념을 정립하고, 광장을 새롭게 해석하는 새로운 체험을 경험하도록 하였다.

 

I・MEME・U는 새로운 대중문화의 흐름인 밈(MEME)을 주제로 진행된 공공미술 축제다. 코로나-19로 타격을 받은 공공미술의 방향성을 모색하는 자리이자 작가들에게 참여의 기회를 제공해 활력을 불어넣고자 하였다. 모방・복제・재창조된 디지털 콘텐츠를 통해 대중문화 코드를 예술로 새롭게 탄생시키고, 물리적 장소의 한계성을 온-오프라인의 연계성을 통해 현대적 공공미술을 실천하고자 하였다. 현장에서는 작가의 작업 과정에 참여해 자신의 모습이나 성향을 새로운 작품으로 창조시킬 수 있고, 온라인에서는 참여형 프로그램 SNS 채널을 통해 문화적 코드로 승화한 공공미술을 즐길 수 있도록 했다.

공공미술은 다양한 모습으로 일상에 더욱더 가까워지고 있다. 대규모의 공간을 경험할 수 있거나 작가의 작품이 공공을 향해있거나 심지어는 집에서 즐길 수 있는 형태로 앞으로 발전 가능성이 더욱 기대되는 분야다. 위의 공공미술 사례는 사실 한 가지 유형으로 규정될 수는 없다. 공공을 대상으로 하는 예술 분야인 만큼 시민 참여는 모든 사례에 해당하고, 작가 의도나 장소성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또한 모든 유형에 포함된다.

 

하지만 공공미술을 세 가지의 유형으로 분류할 수 있을 만큼 공공미술의 한계점 역시 분명하다. 시민의 주도적인 참여를 목표하고 있지만, 전문성이 약하다는 이유로 시민의 참여는 소극적인 형태일 수밖에 없다. 또한 장소나 작가 의도가 반드시 모두의 공감을 얻을 수 없다는 점에서 장벽에 부딪히기도 한다. 이 시선을 달리한다면, 공공미술이 가진 가능성을 바라볼 수도 있다. 도심의 모습을 새롭게 바라볼 수 있는 경험을 선물하고, 일상에서 경험하지 못할 예술적 경험을 통해 내가 사는 곳, 우리가 살아갈 곳의 방향을 다시금 점검해볼 기회를 선사하기도 한다. 이것이 바로 공공미술이 지는 가장 특별한 가치일 것이다. 공공미술이 우리 삶과 더욱더 친밀해지기 위해서는 새로운 아이디어로 접근하기 보다 시민의 공감에서 출발해 전통적 의미와 현대적 의미가 고루 담긴 진정성 있는 예술 작품의 실현이 더욱더 중요하지 않을까? 새로운 세대와 새로운 시대를 잇는 전통의 가치가 무엇인지 우리 모두의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