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Dots
▪ 부산에서 진행되는 게임 전시회 지스타(G-STAR)는 게임 팬들을 위한 B2C 전시와 업계 전문가를 위한 B2B 비즈니스 행사를 병행하며 한국 게임 산업의 역동성과 기술력을 세계에 알리는 전략적 쇼케이스다.
▪ 서울 푸드 페스티벌은 한식 세계화 및 글로벌 미식 문화 교류를 추구하며 한류의 열기를 K-food로 이어가는 데 일조한다. 다소 고급화된 식문화를 지향한다는 지적이 있으나 점차 그 범주를 넓히며 글로벌 미식 관광 도시로서의 서울의 내일을 기대하게 만든다.
▪ 비무장지대에서 개최되는 DMZ 피스트레인은 “음악으로 한반도에 평화를” 가져오겠다는 모토로 세계 시장에 평화의 메시지를 전하는 인디/록 음악 위주의 음악 페스티벌이다. 가평 자라섬재즈페스티벌은 아시아 대표 재즈 축제로서, 세계 정상급 재즈 아티스트와의 협연 및 지리적 특성을 활용한 특별한 무대들로 매회 10만 명 안팎의 관람객을 유치 중이다.
축제(Festival)는 라틴어 Festum(기쁨, 즐거움)에서 유래한 개념으로, 본래의 종교적 의례에서 시작해 오늘날의 문화, 예술, 공동체 가치를 아우르는 복합 플랫폼으로 진화했다. 고대 인류가 신에게 감사를 표하고 공동체 결속을 다지기 위해 시작한 축제의 원형은 중세 유럽의 수확 감사제나 아시아의 풍년 기원제처럼 인류 문명 전반에 걸쳐 중요한 문화적 장치로서 기능해 왔다. 근대 이후, 산업화와 도시화의 진전에 따라 축제는 단순한 기념행사나 오락의 차원을 넘어 지역 경제를 견인하고 문화 정체성을 세계에 알리는 전략적 자원이 되었다. 특히 글로벌 시대에 접어들며 이질적인 문화 간에 새로운 접점을 마련하고 문화적 소통 및 상호이해의 장을 여는 중요한 매개체로 자리 잡았다.
오늘날 우리의 축제들 역시 이러한 세계적 흐름 속에서 새로운 역할을 부여받고 있다. 단순한 문화 향유를 넘어 축제를 통해 한국의 산업 역량과 지역 고유의 브랜드 가치를 해외 시장에 전달하는 문화 마케팅 채널로서 기능하기 시작한 것이다. DMZ 피스트레인 음악 페스티벌이 전하는 평화의 메시지, 서울 푸드 페스티벌이 소개하는 한국 미식의 정체성, 그리고 지스타(G-STAR)가 선보이는 게임 산업의 세계적 경쟁력 등은 한국 축제가 문화적·산업적 가치를 입체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장이 되었음을 시사한다.
이 글에서는 한국을 대표하는 게임, 음식, 음악 분야의 주요 축제를 중심으로 그 기원과 진화, 프로그램의 독창성, 지역사회에 미치는 영향 등을 살피는 한편, 독일 Gamescom, 미국 NYC 와인 & 푸드 페스티벌, 영국 글래스톤베리 페스티벌(Glastonbury Festival), 스위스 몽트뢰 재즈 페스티벌(Montreux Jazz Festival)과의 비교를 통해 한국의 축제가 글로벌 시장 속에서 산업과 지역 브랜드 확장 통로로서 어떤 가능성을 지녔는지 조명하고자 한다.


한국 게임 산업의 저력: 지스타 (G-STAR)
2005년 첫발을 내디딘 지스타(G-STAR)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국제 게임 전시회로, 1990년대 대한민국게임대전(KAMEX)의 역사를 계승하며 급성장하는 게임 산업의 위상에 걸맞은 종합 게임쇼를 목표로 탄생했다. 초기 일산 킨텍스 개최(2005~2008년) 시기의 한계를 극복하고 2009년 부산으로 이전해 새로운 도약의 전기를 마련, 24만 명 관람객 유치라는 성공을 거두며 한국 최대이자 세계적인 게임쇼로 발돋움했다.
지스타는 단순한 게임 전시회를 넘어 한국 게임 산업의 역동성과 기술력을 세계에 알리는 전략적 쇼케이스이자 도시 부산을 게임 문화 허브로 브랜딩하는 데 성공한 대표적인 문화-산업 융합 모델이다. 게임 팬들을 위한 B2C 전시와 업계 전문가를 위한 B2B 비즈니스 행사 병행 방식은 지스타를 자리 잡게 한 핵심 성공 요인이기도 하다. 국내외 주요 게임사의 신작 발표와 체험 이벤트는 대중적 열기를 이끌고 동시에 진행되는 비즈니스 플랫폼으로서의 기능은 실질적인 산업 성과를 창출하는 동시에 게임 산업 생태계 활성화에 기여하는 핵심 동력이 된다. 여기에 더해 G-CON 컨퍼런스, e스포츠 대회, 코스프레 이벤트 등 다채로운 부대행사는 지스타를 종합 엔터테인먼트 축제로 만들고 부산시 등 지자체의 적극적인 지원은 지역 축제 분위기를 고조시킨다.
게임에 큰 관심이 없다면 지스타의 유명세와 인지도, 그리고 실질적인 파급효과를 가늠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지스타는 비수도권에서 개최된다는 지역적 한계에도 불구하고 매년 수십만 명의 방문객을 유치하며 부산 지역 경제에 실질적으로 기여한다는 점에서 부산을 넘어 한국을 대표하는 상징적인 축제로 이미 자리 잡았다. 특히 관광 비수기인 11월에 열려 벡스코 인근 숙박·관광업계에 활력을 불어넣고 “젊고 역동적인 게임 도시 부산”이라는 도시 브랜드를 강화하는 효과로 이어지고 있다. 산업적으로는 국내 중소 게임사에게 해외 진출의 발판을, 해외 게임사에게는 한국 시장 진입의 교두보를 제공하는 핵심 플랫폼으로서 그 경제적 가치가 매우 크다.
2014년에 이미 20만 명 이상의 방문객을 기록했으며 블리자드, EA 등 글로벌 기업들의 참여를 끌어내 국제적 위상을 높인 지스타는 지금도 출범 당시 목표였던 “세계 3대 게임쇼” 진입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현재 도쿄게임쇼, Gamescom 등과 견줄 만큼 아시아 대표 게임 이벤트로 확고히 자리매김했으며 해외 매체와 업계의 주목도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독일의 Gamescom과 한국의 G-STAR
지스타와 비견될 만한 또 다른 세계적인 게임 페스티벌로는 독일의 게임스컴(Gamescom)이 있다. 2009년에 시작된 세계 최대 게임 박람회인 Gamescom은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글로벌 게임쇼라는 토대 아래 세계 게임 산업 문화를 선도해 왔다. 해마다 37만 명 이상이 방문하는 압도적인 규모와 글로벌 신작 발표의 중심지라는 상징성 덕에 앞서 소개한 지스타와 비교해 볼만한 지점이 존재한다.
두 페스티벌 모두 일반 관람 존과 업계 비즈니스 존을 분리해 운영하고 국제 콘퍼런스를 동반하는 등 비슷한 구성으로 전 세계 게임 개발사들에게 교류의 장을 제공한다. 그러나 규모 면에서 현재로서는 독일의 게임스컴이 한국의 지스타보다 월등히 크며 전 세계 게임산업의 연말 결산과 같은 자리로 인식된다. 반면 지스타는 온라인게임과 모바일게임 강세의 한국 시장이 반영된 콘텐츠 위주라는 독자성이 있다. 게임스컴이 서구 게임 산업을 대표하는 글로벌 축제라면 지스타는 동아시안 게임 산업의 허브로 기능하며 상호보완적인 위치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실제로 두 행사 간의 협력이나 인력 교류가 이뤄지기도 하고 지스타 조직위가 게임스컴 등의 선진 운영 노하우를 벤치마킹해 한국 게임의 위상을 알리는 기회로 삼고 있어 앞으로 두 페스티벌 사이의 시너지가 기대된다.
지스타가 게임스컴의 선진 운영 노하우를 벤치마킹하고 지속적인 협력 관계를 구축해 한국 게임의 고유한 경쟁력을 더욱 강화한다면 아시아를 대표하는 독자적인 글로벌 게임쇼 브랜드로서의 입지를 더욱 확고히 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더 나아가 점차 대중화되고 있는 모바일 게임 산업에서의 입지를 바탕으로 국제 게임 페스티벌로서의 그 입지를 공고히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글로벌 미식 문화의 향연: 서울 푸드 페스티벌
서울 푸드 페스티벌은 서울을 무대로 한식의 세계화와 글로벌 미식 문화 교류를 추구하는 대규모 축제다. 2008년 서울시가 주최한 “Taste of Seoul”을 시작으로 잠시 중단되었다가 2015년 TV조선 주최로 부활한 뒤 연례행사로 자리 잡았다. 국내외 미슐랭 스타 셰프들을 대거 초청해 한국 전통 음식과 세계 요리와의 만남을 주선하고 서울시와의 협력을 통해 도시 브랜딩과 연계한 문화 축제로 발전시켜 가는 중이다. 2024년에는 서울시와 TV조선이 공동 주최하며 규모를 확대하는 등 지속적인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서울 푸드 페스티벌은 K-Food의 세계적 인기를 발판 삼아 서울을 “글로벌 미식 관광 도시”로 포지셔닝하려는 전략적 문화 상품과 같다. 국내외 최정상 셰프들의 협업은 단순 미식 행사를 넘어 한식의 현대적 해석과 세계 음식 문화와의 창의적 융합을 보여주는 문화 외교의 장으로 기능한다. 주요 프로그램인 “그랜드 갈라 디너, 포핸즈/식스핸즈 디너, 마스터 클래스” 등은 고급 미식 경험을 제공하며 “피크닉 온 더 브릿지”와 같은 행사는 대중과 미식을 공유하려는 시도로 읽힌다. 또한 해외 셰프 및 미디어 대상 한식 소개 프로그램, 종가 음식 시연회 등은 한국 음식 문화의 깊이를 알리고 사회 공헌 이벤트를 통해 미식의 사회적 가치를 실현하려는 노력으로 이해된다.
결과적으로 서울 푸드 페스티벌은 미식 관광객 유치를 통해 서울의 관광 수입 증대 및 관련 상권 활성화에 기여하고 있다. 국내 셰프들에게는 국제 교류를 통한 역량 강화의 기회를, 중소 식품 기업 및 농가에는 홍보와 판로 개척의 장을 제공하는 등 산업적 파급 효과도 창출한다. 서울시의 지원 아래 공공장소에서 열리는 행사는 시민의 참여를 유도하며 식문화에 대한 관심을 높이고 도시 이미지를 제고하는 공공적 가치를 실현한다.
지난해인 2024년 행사에 약 5만 명의 방문객이 참여하는 등 그 규모가 지속적으로 확대되고 있으며 세계적인 스타 셰프들의 참여와 미디어 노출을 통해 국제적 인지도 역시 점차 높아지고 있다. 아시아를 대표하는 미식 축제로 성장할 만한 잠재력을 지닌 서울 푸드 페스티벌은 스타 셰프 중심의 프로그램 외에도 K-Food의 다양성과 스토리를 체험할 수 있는 대중 참여형 콘텐츠를 강화하고 지속가능성 및 사회 공헌 가치를 접목해 축제의 국제적 공감대와 브랜드 가치를 높여나가고자 한다.
미국 NYC 와인 & 푸드 페스티벌과 서울 푸드 페스티벌
서울 푸드 페스티벌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가늠할 때 단번에 떠오르는 행사 중 하나는 바로 미국 뉴욕의 대표 미식 행사인 NYC 와인 & 푸드 페스티벌(NYCWFF)이다. 서울 푸드 페스티벌과 NYCWFF는 세계적인 셰프 참여와 도시 미식 문화 홍보, 그리고 미식 관광 촉진이라는 공통점을 지닌다. 2008년 시작되어 16년 이상의 역사를 가진 NYCWFF는 Food Network 주도로 운영되며 행사 수익금 전액(현재까지 1,480만 달러 이상)을 자선단체에 기부하는 강력한 공익성을 특징으로 한다.
미국을 대표하는 미식 행사인 뉴욕 와인 & 푸드 페스티벌과 서울 푸드 페스티벌은 서로 닮은 면이 많다. 먼저 세계적인 셰프와 음식업계 인사가 참여해 다양한 미식 이벤트를 연다는 점과 도시의 음식 문화를 홍보하고 음식 관광을 촉진한다는 점이 같다. 약 16년간 이어져 온 NYCWFF는 탄탄한 역사와 후원을 바탕으로 행사 수익을 통해 지금까지 1,480만 달러 이상의 자선 모금을 달성한 자선 목적 축제이기도 하다. 매년 나흘 동안 50여 개 이벤트에 5만 명 이상의 방문객이 몰리며 수익금 전액을 기아 퇴치 등의 자선단체에 기부하는 형태로 운영된다.
반면 서울 푸드 페스티벌은 상업 방송사가 주최해 도시 브랜드 제고와 미식 문화 교류에 중점을 둔 행사로서 아직까지 자선 모금의 비중은 크지 않다. 또한 NYCWFF가 뉴욕 현지의 식당·와이너리·유명 브랜드와 협업해 버거 배틀, 타코 페스타 등 대중 친화적 이벤트를 여는 반면 서울 푸드 페스티벌은 한식과 파인다이닝을 결합한 갈라 디너 등 다소 고급 지향적인 프로그램이 많다. 그러나 이런 차이점에도 불구하고 두 축제 모두 세계 미식가의 관심을 끄는 행사로 성장하고 있다. 서울 푸드 페스티벌 역시 향후 뉴욕처럼 글로벌 미식 축제로 자리 잡기 위해 자선 연계나 대중 참여 프로그램을 늘리는 방향으로 그 확장을 모색해 볼 수도 있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훈풍이 부는 한류가 K-food로 이어지는 지금의 추세라면 서울 푸드 페스티벌이 NYCWFF와 같은 세계적 축제로 도약하는 것 역시 그리 먼 미래의 일이 아닐 수도 있다.
분단의 땅에 울리는 평화의 선율: DMZ 피스트레인 음악 페스티벌
DMZ 피스트레인(DMZ PEACE TRAIN) 음악 페스티벌은 한반도 분단의 상징인 비무장지대(DMZ) 인근 철원에서 평화와 화합을 노래하는 독특한 음악 축제다. 2018년 시작되어 그 역사는 짧지만, 영국 글래스톤베리 페스티벌(Glastonbury Festival) 고문 마틴 엘본(Martin Elbourne)과 국내 잔다리페스타 관계자들의 만남, 그리고 “음악으로 한반도에 평화를”이라는 염원이 결합해 탄생했다. 철원군 등 지자체와의 협력을 통해 실현된 첫해, 전 공연 무료 진행으로 그 진입 문턱을 낮췄고 지금까지 최소한의 티켓 가격 정책을 유지하고 있다. 코로나19로 인해 잠깐 중단되기도 했으나 2022년 재개되어 매년 평화의 메시지를 이어가고 있다.
DMZ 피스트레인은 세계 유일의 분단 현장이라는 독보적인 장소성과 평화라는 강력한 메시지를 결합한, 대체 불가한 문화 콘텐츠로 자리매김해 왔다. 비록 규모는 작지만 상업성보다 진정성과 상징성에 집중함으로써 깊은 울림을 준다. 동시에 예술을 통한 평화 구축 담론을 이끄는 플랫폼이기도 하다. 철원 고석정, 노동당사, 월정리역 등 분단의 상흔이 남은 공간에서 펼쳐지는 공연은 관객에게 잊을 수 없는 경험을 선사한다. 라인업 또한 상업성보다는 메시지와 다양성에 초점을 맞춰 국내외 인디, 록, 월드뮤직 등 다양한 장르의 뮤지션을 초청해 국경을 초월한 협연 무대를 선보인다. DMZ의 자연과 어우러진 캠핑형 축제 형태로, 관객들은 음악 감상과 더불어 분단 현실을 체험하며 평화의 의미를 되새길 수 있다.
참가 규모는 수천 명 수준으로 대형 축제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분단 지역에서 열리는 평화 콘서트”라는 유니크한 콘셉트만큼은 국내외 음악 애호가와 언론의 시선을 끌 만하다. 특히 유럽, 미주 등 해외 관객 및 미디어의 관심이 이어지고 있다는 점은 이 축제가 지닌 상징적 힘을 보여준다. 규모보다는 의미와 상징으로 국제 사회에 각인되고 있으며 세계 유일의 평화 음악 축제라는 정체성을 바탕으로 글로벌 문화 담론 속에서 꾸준히 언급되는 중이다. 그러므로 이 축제의 글로벌 확장은 규모의 확대보다는 평화의 메시지 확산으로 그 초점을 맞춰야 한다.
영국 글래스톤베리 페스티벌과 한국 DMZ 피스트레인
DMZ 피스트레인의 기획에 영감을 준 영국 글래스톤베리 페스티벌은 규모와 역사 면에서 월등히 거대하지만 축제 초기 이상주의적 정신을 바탕으로 시작되었다는 측면에서 통하는 면이 있다. 글래스톤베리는 1970년 농장주 마이클 이비스(Michael Eavis)가 자신의 농지에서 시작한 소규모 음악 축제로 출발해 첫 해 관객은 1,500명에 불과했으나 지금은 매회 20만 명 이상 운집하는 세계 최대 야외 음악제가 되었다. 히피 문화와 반전 운동의 영향을 받아 성장했기에 평화·사랑·환경이란 메시지가 축제의 뿌리에 있고 현재도 환경단체(Oxfam, Greenpeace)를 후원하고 수익금을 기부하는 등 사회적 책임을 다한다. DMZ 피스트레인도 시대와 장소는 다르지만 음악을 통한 평화 운동이라는 이상을 내걸고 있다는 점에서 글래스톤베리 초기의 취지와 맥을 같이한다.
그러나 구현 방식에서는 다소 차이가 있는데 글래스톤베리가 팝, 록, 일렉트로닉, 월드뮤직 등 장르를 초월한 거대한 음악 축제로 진화하여 매년 유수의 글로벌 스타들이 총출동하는 반면 DMZ 피스트레인은 의도적으로 상업성을 배제하고 인디/록 위주의 소규모 무대들을 운영한다는 점이다. 공간적으로도 글래스톤베리가 900헥타르 농지에 수십 개 무대를 세우는 거대 야영 페스티벌인데 비해 DMZ 페스티벌은 접경지의 특수성을 고려해 분산된 작은 공연 위주로 꾸며진다.
그럼에도 두 축제 모두 대화합을 목표로 한 이상주의를 내세운 독특한 개성과 충성도 높은 팬층을 보유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DMZ 피스트레인이 향후 규모를 늘린다면 글래스톤베리만의 환경친화적 시스템, 지역 주민과의 공생 등의 운영 노하우를 벤치마킹할 수 있고 무엇보다 음악을 통한 사회개혁 메시지를 지속적으로 공유함으로써 글래스톤베리와 같은 문화적 아이콘으로 성장할 수 있다. 향후 마틴 엘본이라는 연결고리를 통해 글래스톤베리의 아티스트를 초청하거나 협업 프로젝트를 진행한다면 두 축제 간의 교류 시너지도 기대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자연 속의 세계 재즈 향연: 자라섬재즈페스티벌
자라섬재즈페스티벌은 경기도 가평군 자라섬에서 매해 가을 열리는 아시아 대표 재즈 축제다. 2004년 첫 회 3만 명으로 시작해 3년 만인 2006년 10만 명을 돌파하는 등 빠르게 성장하며 침체된 국내 재즈 신(Scene)에 활력을 불어넣고 수도권 외곽 지역의 문화 관광 활성화에 기여했다. 가평군과 지역 주민의 적극적인 지원 속에서 개발이 제한되었던 유휴지 자라섬을 매력적인 문화 공간으로 탈바꿈시키는 데 성공했다. 그 결과 재즈 애호가뿐 아니라 일반 대중에게도 사랑받는 가을 축제로 자리 잡았으며, 코로나19 상황에서도 온·오프라인 하이브리드 방식을 도입하는 등 지속적인 발전을 보여주고 있다.
자라섬재즈페스티벌의 가장 큰 특징은 수도권 외곽의 유휴 공간이었던 자라섬을 “자연 속 음악 섬”이라는 매력적인 문화 공간으로 변신시켜 문화적 장소 만들기(Cultural Place-making)에 성공한 사례라는 점이다. 매년 특정 국가를 조명하는 “포커스 프로그램”은 지속적인 국제 교류와 네트워크 확장을 위한 영리한 전략이기도 하다. 세계 정상급 재즈 아티스트를 초청하는 메인 스테이지와 국내 및 실험적 음악을 선보이는 보조 무대, 재즈 캠프와 마스터클래스 등 교육 프로그램, 지역 연계 문화 이벤트 등 다각적인 구성은 축제의 깊이와 매력을 더한다. 무엇보다 잔디밭에 돗자리를 펴고 자유롭게 음악을 즐기는 피크닉형 관람 문화를 통해 자연과 음악의 조화를 극대화하며 도시형 재즈 공연과는 차별화된 자라섬만의 강력한 정체성을 구축했다. 누적 관객 수백만 명 이상을 기록하며 대한민국 대표 음악 축제로 성장한 자라섬재즈페스티벌은 매회 10만 명 안팎의 관람객을 유치하고 있으며 해외 재즈 팬들의 방문도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국제 재즈 전문 매체에 소개되는 등 글로벌 인지도 역시 점진적으로 상승하고 있다.
스위스 몽트뢰 재즈 페스티벌과 자라섬재즈페스티벌
세계적인 재즈 페스티벌 하면 대다수가 떠올리는 축제가 하나 있다. 바로 1967년에 시작된 스위스의 몽트뢰 재즈 페스티벌(Montreux Jazz Festival)이다. 반세기가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이 세계적인 재즈 축제는 재즈뿐 아니라 록, 팝 등 다양한 장르의 거장들이 참여하며 대중적 인기를 확보했다. 아름다운 제네바 호숫가와 어우러진 공연 환경, 그리고 마일스 데이비스(Miles Davis)부터 딥 퍼플(Deep Purple)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전설적인 라이브 녹음 아카이브(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로 명성이 높다.
2주간 약 25만 명 이상이 찾는 거대 축제인 만큼 페스티벌 기간에는 도시 전체가 음악 관광지로 변모한다. 자라섬재즈페스티벌 역시 재즈를 중심으로 국제적인 명성을 쌓아가고 있지만 몽트뢰와는 다른 독자적인 색깔을 띤다. 자라섬은 아시아 재즈 신에 초점을 맞춰 자연 친화적인 야외 축제 분위기를 강조하는 반면 몽트뢰는 오랜 역사와 방대한 아카이브, 실내외 공연장을 아우르는 복합적인 구조를 자랑한다.
만일 자라섬이 몽트뢰의 성공적인 브랜딩과 아카이브 구축 전략을 참고하며 “아시아 대표 자연 친화 재즈 축제”라는 고유의 정체성을 강화한다면 몽트뢰와는 차별화된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결국 몽트뢰 재즈 페스티벌 같은 글로벌 브랜드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아시아 재즈 허브의 역할을 더욱 강화해야 한다는 의미다. 긴 기간에 걸쳐 아시아-유럽 등 대륙 간 재즈 교류 프로젝트를 주도하고 자라섬만의 친환경적이고 여유로운 축제 분위기를 강점으로 내세운다면 전 세계 재즈 애호가들을 끌어들일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이를 위해서는 공연 아카이브의 디지털화 및 온라인 스트리밍 강화를 통해 시공간을 넘어선 글로벌 팬덤 구축에도 힘써야 한다.
앞서 살펴본 한국의 대표 페스티벌들은 게임, 음식, 음악이라는 상이한 분야에서 출발했으나 모두가 한국적인 문화를 나누는 플랫폼이자 글로벌 소통의 창구라는 공통된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그러나 이 축제들은 여기에 더해 한국의 산업 경쟁력과 지역 고유 브랜드를 세계에 소개하고 각인시키는 “문화적 자산”으로도 기능하고 있다.
지스타는 단순한 게임 전시회를 넘어 K-게임의 기술력과 콘텐츠 경쟁력을 아시아, 유럽 등지에 소개하는 수출 창구로 확장 중이며, 서울 푸드 페스티벌은 K-Food의 글로벌 인식을 확장하는 브랜드 플랫폼으로 작동하고 있다. DMZ 피스 트레인은 한반도의 평화 메시지를 세계로 전하는 문화적 내러티브의 전달 수단이며, 자라섬재즈페스티벌은 자연과 공존하는 지역 예술 생태계의 정체성을 전 세계 음악 팬들에게 알리는 통로가 되고 있다. 이처럼 이 축제들은 단순한 연례행사를 넘어 한국의 문화적 매력과 산업적 역량을 세계에 알리는 중요한 문화적 자산이 되었다. 그렇기에 이들 페스티벌의 글로벌 확장이 가지는 의미는 매우 명료하다. 한국의 문화 자산과 지역 특색, 산업 역량을 복합적으로 엮어 해외에 전달하는 문화 마케팅 수단인 것이다. 더 나아가 앞으로 세계 주요 축제들과의 교류 및 협력을 통해 한국 축제가 글로벌 시장 속에서 문화적 가치를 입체적으로 확장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시사하기도 한다.
물론 한국 축제들의 성공적인 글로벌 확장을 위해서는 보완해야 할 점도 분명하다. 지속적인 콘텐츠 품질 향상, 운영 시스템의 전문화, 그리고 확고한 축제 철학의 견지가 필수적이다. 또한 디지털 기술을 활용한 온·오프라인 경험의 확장, 지속가능성 및 포용성과 같은 시대적 가치를 축제에 적극적으로 반영하려는 노력도 병행되어야 한다. 각 축제의 고유한 내러티브를 더욱 정교하게 다듬고 국제 관객이 공감할 수 있는 보편적 언어로 재해석하는 작업이 병행되어야 한다. 축제의 경험이 단지 일회성이 아닌 한국 산업과 지역 브랜드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설계하는 일도 중요하다. 결국 한국의 축제는 문화의 소비 지점을 넘어 문화와 산업, 지역 정체성이 만나는 접점으로 진화해야 승부를 볼 수 있다는 결론이다. 이를 통해 한국은 단순한 문화 콘텐츠 강국을 넘어, 글로벌 문화 경제 생태계 속에서 독보적인 브랜드 스토리를 가진 국가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