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

3 Dots 

▪ 비거니즘의 부상과 함께 가장 한국적인 채식인 사찰 음식이 전 세계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 사찰 음식을 즐기는 MZ세대는 일상 챌린지부터 밀키트 제품, 교육 프로그램 등 다양한 채식 산업과 문화를 변화시키고 있다.

▪ 대중화에 수반되는 또 다른 환경 오염을 주의하고 사찰 음식이 품은 지속가능성을 이어가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채식과 한식. 글로벌 푸드 시장에서 이 두 단어는 언제부턴가 늘 함께였다. 그 시작점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1990년대 말부터 기내식으로 제공된 비빔밥이 있다. 고기 고명을 제외하거나 다른 식재료로 대체할 수 있기에 채식을 지향하는 전 세계 사람들로부터 환영받은 첫 한식이었다. 2000년대 초반, 채식을 지향하는 다수의 할리우드 스타들이 비빔밥과 김치 등 한식 예찬론을 펼치며 채식과 한식에 대한 관심은 더욱더 커졌다. 이처럼 초기에는 건강한 다이어트 채식에 초점을 맞춘 한식이 글로벌 시장에서 주목받았다. 하지만 대중화라는 점에서는 여전히 유의미한 성과를 거두지는 못했다.

 

한식이 글로벌 트렌드가 된 것은 2010년대 이후 K-드라마, 영화, 먹방 콘텐츠의 성공 덕분이었다. 채식 위주는 아니었지만 이 일을 기점으로 한식에 대한 전 세계의 관심도는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성장했다. 그러던 중 2017년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셰프의 테이블> 정관 스님 편이 화제를 일으켰고, 시리즈가 공개된 후 한국의 사찰 음식에 대한 관심도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식생활을 포함한 라이프 스타일 전반에서 지속가능성과 공생을 추구하는 비거니즘(Veganism)과 사찰 음식의 특징이 완벽히 맞물렸기 때문이었다. 특히 채식 인구가 많은 영국, 독일 등지에서는 사찰 음식이 더욱더 환영받았다.

 

이전까지 글로벌 시장에서 한식의 유행은 특정 음식에 한정된 경우가 많았다. 치킨, 김밥, 소주 등 콘텐츠에 자주 노출된 음식을 소비하는 방식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찰 음식의 유행은 결이 좀 다르다. 특정 음식의 생산과 소비를 넘어, 가치관에 따라 식습관과 식문화를 바꾸려는 움직임이기 때문이다. 현재 사찰 음식은 가지를 뻗어나가며 전 세계의 식문화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채식과 관련된 각종 산업, 학교, 레스토랑, 일상 챌린지 등 다양한 분야에서 사찰 음식이 만들어낸 변화를 살피며 생산과 소비를 넘어 음식에 가치를 담는 사찰 음식과 식문화의 미래에 대해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

먹는 행위 그 이상, 음식을 대하는 삶의 태도 

사찰 음식은 최근 들어 주목받기 전부터 한식에서 오랫동안 큰 비중을 차지해 왔다. 사찰 음식이 고급 한식으로 소개되거나 외국인을 대상으로 한 프로그램에 들어가는 경우도 비교적 흔했다. 다만 대중적인 관심, 그중에서도 특히 젊은 세대의 관심에서 크게 벗어나 있었을 뿐이었다. 고기와 자극적인 양념이 들어가지 않아 맛이 없고, 음식을 절대 남기지 않는 식사 예법 때문에 부담스럽다는 인식이 컸다. 그뿐만 아니라 사찰 음식을 접할 수 있는 곳도 많지 않았고,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곳도 매우 적었다. 한국에서조차 관심이 적고 외국에서도 문화 체험 이벤트 정도로만 접할 수 있다 보니 대중성과는 거리가 먼 음식이었다. 

 

사찰 음식의 대중화를 위한 노력은 끊임없이 있어 왔지만 그 기회는 성공적인 홍보가 아닌 사회 변화로부터 찾아왔다. 바로 비거니즘의 등장이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 기후 위기와 환경에 대한 관심이 커졌고, 식문화에 대한 변화가 촉구되면서 비거니즘이 하나의 커다란 문화로 자리 잡았다. 비거니즘에는 단순히 동물성 식재료를 먹지 않겠다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다. 내가 먹는 음식이 어디서 왔고,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음식이 우리 상 앞에 놓이기까지의 전 과정을 이해하고 그 과정에서 환경과 인간, 동물 등을 해치는 일을 최소화하겠다는 신념이다. 

 

그건 사찰 음식이 만들어지는 기반이기도 했다. 사찰 음식은 흔히 “정신을 먹는다”고들 한다. 특정 음식만이 아닌 채식에 대한 가치관, 자연과 사람을 대하는 태도, 음식을 만들고 먹는 마음 등을 모두 포함한다는 뜻이다. 비거니즘이 라이프 스타일을 이루는 주요 철학으로 자리 잡으면서, 사찰 음식을 주목하는 이들도 자연스럽게 늘기 시작했다. 한때는 사찰 음식을 어렵게 느끼게 만들었던 부분이 오히려 지금은 사찰 음식에 주목하게 만드는 이유가 된 것이다.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선재 스님의 사찰 음식 프로그램 ⓒ 한국불교문화사업단
사찰 음식을 만드는 모습을 촬영하는 정관 스님 ⓒ 넷플릭스

요즘 애들의 채식, 사찰 음식

특히 자신의 가치관을 빠른 행동 변화로 끌어내는 MZ세대가 적극적으로 채식을 실천한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들이 비거니즘에 가장 잘 부합하는 사찰 음식에 관심을 가지는 건 어쩌면 당연하다. 사찰 음식 중심의 템플 스테이에 참여하는 연령대만 언뜻 살펴보아도 젊은 세대가 80% 이상, 그중에서도 외국인의 비중이 상당히 높다는 걸 알 수 있다. 10년 전만 해도 그 비중이 반대였던 걸 생각해 보면 그야말로 단기간에 일어난 큰 변화다. 이러한 변화가 가능했던 이유는 사찰 음식에 대한 젊은 세대의 인식 변화 덕분이다. 지난 몇 년 사이 사찰 음식의 문턱은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템플 스테이와 각종 프로그램으로 인해 부쩍 낮아졌다. 가벼운 체험 행사부터 전문 사찰 음식 교육까지, 외국인을 대상으로 한 사찰 음식 행사도 더욱더 다양해졌다.

 

특히 비거니즘의 천국이라고 불리는 영국 런던에서의 사찰 음식에 대한 반응은 더 뜨겁다. 영국의 채식주의 인구는 60만 명이 넘으며, Gen Z 평균 5명 중 1명이 채식을 지향한다고 한다. 이에 맞춰 비건 레스토랑의 수도 최근 폭발적으로 늘었다. 비건 친화 도시에서 1위를 차지한 런던에만 200개가 넘는 비건 식당과 400개가 넘는 채식 관련 시설이 존재한다. 관련 행사도 많고, 식료품점 어디서나 비건 제품을 손쉽게 구할 수 있다. 당연히 그만큼 사찰 음식에 대한 주목도도 높다. 런던은 사찰 음식을 단순한 체험을 넘어 하나의 문화로 받아들이는 데 가장 먼저 앞선 도시이기도 하다. 2017년 사찰 음식이 막 본격적으로 주목받기 시작했을 때, 런던은 그 어떤 도시보다 빠르게 사찰 음식 워크숍을 진행했다. 지금도 세대를 넘나드는 다양한 사찰 음식 워크숍과 체험 행사가 가장 많이 열리는 곳은 바로 런던이다.

 

영국 다음으로 비건 친화도가 높은 독일 베를린에서는 유독 비건 아시아 음식이 인기가 높다. 특히 비건 한식당 필 서울 굿(Feel Seoul Good)은 독일 MZ세대에게 큰 인기를 얻으며 SNS에서 입소문을 타기도 했다. 정석적인 사찰 음식은 아니지만 채식을 기반으로 한 한식 레스토랑이 거둔 큰 성공은 가장 한국적인 채식인 사찰 음식의 시장 진출을 기대하게 만든다. 이외에도 미국 뉴욕과 로스앤젤레스, 호주 멜버른, 싱가포르, 태국 방콕,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폴란드 바르샤바, 스페인 바르셀로나 등 세계 최대 채식 도시의 MZ세대들은 한식과 사찰 음식에 더욱더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빠르게 늘어나는 채식 레스토랑과 행사에서 갈수록 더 많은 K-채식 푸드가 등장하는 사례만 봐도 알 수 있다.

 

이제 외국인들이 템플 스테이에 참여해 직접 사찰 음식을 만들거나 사찰 음식점을 방문하는 건 흔한 일이 됐다. 유명 해외 가수가 한국에 온 뒤 사찰 음식점을 들렀다는 이야기가 화제가 되기도 했다. 1월 한 달 동안 채식을 하는 글로벌 캠페인 비거뉴어리(Veganuary)를 포함해 하루 한 끼 채식 챌린지, 3일, 7일, 30일 등 특정 기간을 정한 비건 챌린지 트렌드에 따라 사찰 음식을 즐기고 재해석한 레시피가 SNS에서 공유된다. K-Temple Food라 불리는 사찰 음식을 포함한 한식 비건 팝업 스토어가 열리면 줄이 늘어선다. 사찰 음식이 그만큼 MZ세대가 원하는 새로운 경험으로 널리 알려졌다는 뜻이다.

 

이 모든 변화의 중심에는 가볍고 재밌는 분위기에서 친구들과 사찰 음식을 즐긴다는 특징이 있다. 그만큼 사찰 음식은 전 세계 MZ세대에게 점점 더 접하기 쉬운 음식이 되어가고 있다. 핵심 가치는 공유하되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사찰 음식의 대중화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제 MZ세대에게 사찰 음식은 진지하고 무거운 종교나 맛없고 무언가 부족한 음식이 아닌, 새로운 문화와 음식 체험이 생태계 보호와 윤리적 소비로까지 연결되는 힙하고 재미있는 경험으로 자리 잡았다. 현재 MZ세대에게 템플 스테이와 사찰 음식은 하나의 힙한 트렌드다.

사찰 음식 밀키트 ⓒ 오뚜기
영국의 마트 체인, 세인즈버리사의 채식 식품 코너 ⓒ 박소현, 한겨레

글로벌 채식 시장에 선 사찰 음식

MZ세대의 움직임은 실제로 전 세계의 채식 생태계를 바꿨다. 젊은 채식 인구가 많은 영국과 독일의 레스토랑, 카페에서는 어디서나 비건 옵션을 찾아볼 수 있다. 대형 마트에도 아예 채식 코너가 따로 있다. 완전한 채식을 추구하는 비건부터 유연한 채식을 즐기는 플렉시테리언(flexitarian)을 위한 수많은 옵션이 존재한다. 식품의 종류와 가짓수도 무척이나 다양해 그 규모가 상당하다. 그뿐만 아니라 영국의 20개가 넘는 대학교는 지속가능한 학교를 위한 목표를 세우고, 기후변화 관련 교육 활동과 더불어 학생 식당의 채식화를 추구하고 있다. 학생들의 적극적인 요구와 참여를 바탕으로 대학 내의 교육 과정과 식문화도 점차 바뀌는 중이다.

 

글로벌 채식 시장 역시 MZ세대의 소비를 중심으로 매년 압도적인 성장을 이루고 있다. 해외뿐 아니라 국내 기업은 매년 새로운 채식 식품을 선보이고 있으며, 기존에 인기 있던 제품을 완전한 채식 형태로 바꾸어 선보이기도 한다. 빠르게 성장하는 채식 시장에서 사찰 음식의 변화도 돋보인다. 과거의 사찰 음식은 주로 체험 프로그램, 교육, 워크숍 등의 형태로만 선보여졌다. 하지만 최근에는 간편식과 밀키트 등에 대한 선호도가 높은 MZ세대를 겨냥한 사찰 음식 제품이 다양하게 개발되고 있다. 채식 제품을 대형마트와 온라인 등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만큼, 사찰 음식 역시 간편하게 구입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사찰 음식의 인기가 높아지면서 맛을 내는 데 가장 중요한 장류, K-소스에 대한 관심도가 높아졌다. 그러한 변화에 발맞춰 CJ제일제당은 글로벌 비건 인증인 브이라벨(V-Label)을 받은 18종의 고추장을 해외 시장에서 선보였다. 그뿐 아니라 CJ는 사찰 음식 전문가들과 함께 사찰식 만두, 팥죽, 공양 밥 간편식 등을 출시했다. 오뚜기는 유명 사찰 음식점인 두수고방과 함께 산나물 비빔밥, 들깨버섯죽 등 다양한 사찰 음식을 컵밥과 죽 밀키트로 소개했다. 신세계 푸드는 사찰 음식을 기반으로 하는 단팥빵, 목탁 빵 등 다양한 베이커리를 선보였으며, 화엄사에서 개발한 비건 버거는 매장 판매뿐 아니라 밀키트 형식으로 온라인 판매도 함께 진행하고 있다. 이러한 사찰 음식을 재해석한 간편식은 호주, 이탈리아, 미국, 독일, 영국,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아랍 등 채식 인구가 많은 국가로 다양하게 진출하고 있다. 사찰 음식을 가볍게 접해보고 싶은 외국 MZ세대에게 이러한 사찰 음식 밀키트는 상당히 인기가 높다.

 

채식과 사찰 음식에 대한 MZ세대의 수요는 시장만 확대한 것이 아니다. 사찰 음식 교육 역시 변화했다. 과거 사찰 음식 전문가들은 스님 등 종교인 또는 중년 이상의 연령층이 다수였다. 하지만 최근 들어 사찰 음식을 배우는 젊은 층이 늘어났으며, 국적도 더욱더 다양해지고 있다. 요리전문학교 르 꼬르동 블루 런던(Le Cordon Bleu London) 캠퍼스에서 처음으로 사찰 음식 강좌가 정규 학위 과정으로 자리 잡았고, 이후 본교 파리 캠퍼스와 캐나다 오타와 캠퍼스까지 그 과정이 확대되었다. 정식으로 사찰 음식을 배우기 위해 한국으로 유학을 오는 경우도 많아졌다. 단순한 취미로 사찰 음식을 체험하는 젊은 층이 증가했을 뿐 아니라, 이제는 다양한 국적을 가진 젊은 요리사들이 사찰 음식을 전문적으로 배우는 중이다. 종교와 문화, 세대를 뛰어넘어 요리사들이 사찰 음식을 진지하게 배우고 연구하며 발전시킨다는 점은 당연히 주목할 만하다. MZ세대가 사찰 음식을 소비하는 걸 넘어 자신의 커리어로 삼고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한국이라는 테두리를 벗어나 전 세계의 젊은 세대가 또다시 새롭게 변주해 갈 사찰 음식의 미래가 더욱더 기대되는 이유다.

르 꼬르동 블루 파리에서 사찰 음식 수업을 진행한 홍승 스님 ⓒ 연합뉴스
사찰 음식을 맛보는 청중들 ⓒ 연합뉴스

사찰 음식이라는 힙한 트렌드의 명과 암

이처럼 사찰 음식은 전 세계 MZ세대의 가치관과 공명하며 짧은 유행을 지나 종교, 문화, 세대를 뛰어넘는 하나의 대중적인 트렌드가 되어가고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해결해야 할 과제들은 남아있다. 사찰 음식을 그저 세계 시장에 알려야 할 하나의 메뉴로 여기고 상품화시키는 방식으로 접근한다면, 사찰 음식이 전 세계인의 사랑을 받은 근본적인 이유가 전복될 수 있다. 음식의 대중화와 상업화에 수반되는 과도한 대량 생산과 소비, 그로 인해 또 다른 낭비와 환경 오염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채식 시장이 커지고 밀키트 등이 출시되며 대중화에는 성공했으나 그로 인해 발행하는 음식 낭비와 쓰레기 증가 문제가 지적되고 있다. 사찰 음식 역시 마찬가지다. 무분별하게 만들어지는 음식과 공장화된 밀키트의 다량 생산은 사찰 음식을 먹는 취지 자체를 흐린다.

 

사찰 음식은 한 그릇의 음식이 우리 앞에 놓이기까지 이루어지는 모든 과정을 이해하고 존중하며, 나와 우리 모두를 해하지 않는 방법을 모색하는 것이다. 건강한 제철 식재료를 버리지 않고 모두 사용하며, 자극적인 맛을 추구하는 다량의 소비보다는 음식을 정성스럽게 만들고 감사히 먹는 마음이 필요하다. 그렇기에 사찰 음식에서는 가까운 지역의 농산물을 이용하고, 제철 먹거리를 지향하며, 다양한 문화 안에서 음식의 변주를 즐기는 일이 중요하다. 많이 알려지고 시장을 점유하는 것만이 성공이 아니다. 사찰 음식에 담긴 진정한 지속가능성의 의미를 이해하고 종교를 뛰어넘어 하나의 바람직한 식문화로 전파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사찰 음식의 세계화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