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아이돌, 트렌디한 유튜버, 그리고 밀레니얼을 타깃으로 한 나름의 활동 영역과 기반을 가진 젊은 인플루언서가 기업과 손을 잡는 건 그리 놀랄 일도 아니다. 모든 기업이 필요로 하는 효과적인 마케팅 수단은 소비자와 밀접한 접점을 가진 이들이다. 바로 이에 해당하는 인플루언서는 다양한 브랜드와의 협업을 통해 소비자에게 노출되고 있다. 그러나 노출되고 있다는 것은, 정확히 말하면 그 역시 소비되고 있다는 말과 상통한다. 그 소비의 끝에 다다르면 결국 식상함과 몰개성에 직면한다. 지속적인 마케팅의 결과로 마주하는 이들, 젊은 인플루언서의 한계랄까. 그러나 결국 이 한계가 새로운 신인류의 극적인 등장을 위한 포석과도 같다고 느껴지는 요즘이다. 바로 오늘날 화두가 되는 시니어 인플루언서 말이다.
모델 김칠두는 1955년생이다. 65세의 고령에도 모델로 왕성히 활동 중이다. 2018년 F/W 헤라 서울패션위크로 데뷔한 그는 이후 10・20대를 타깃으로 하는 스트릿 패션 브랜드, 그리고 중장년층을 대상으로 하는 의류 기업의 모델로 일하고 있다. 웬만한 젊은 인플루언서를 압도하는 팔로워 7만 명의 SNS 계정을 넘어 TV 광고와 언론 인터뷰에 이르기까지, 그의 존재감은 20대 인플루언서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다. 이 밖에도 60세의 시니어 패션모델이자 유튜버인 김광택, 한국의 닉 우스터(Nick Wooster)라 불리는 꽃할배 여용기 등 젊은 세대에 결코 뒤처지지 않고 나름의 경쟁력을 어필하는 시니어 인플루언서가 속속 등장하고 있다. 10・20대 모델을 압도할 만큼 독특하면서도 개성 있는 60대 모델의 등장. 우리는 그들의 출현을 이렇게 부르게 되었다. 패션모델 김칠두를 원하는 브랜드가 계속해서 늘어나고 있다는 사실은 어찌 보면 당연한 수순이자 결과일지도 모르겠다.
사실 미국 패션업계에서 브랜드와 시니어 인플루언서의 협업은 보편화된 방식이다. 일찍이 럭셔리 브랜드 구찌(Gucci)에서 주얼리와 시계 모델로 88세 여배우 티피 헤드렌(Tippi Hedren)을 캐스팅했고, 20대를 타깃으로 한 SPA 브랜드 망고(Mango) 역시 작년에 60대 교수 린 슬레이터(Lyn Slater)를 모델로 발탁했다. 이미 시니어 인플루언서의 영향력은 태평양 건너편에선 이미 검증이 끝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나는 66세가 늙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26세가 더 늙어 보일 때도 있다. 나보다 나이 많은 친구들이 있는데, 그들도 자신이 젊다고 생각한다.
– 린다 로딘(Linda Rodin), 60대 스타일리스트
트렌디한 에세이가 출간되는 출판계 또한 마찬가지다. 여전히 젊은 작가가 득세하는 상황에서, 시니어 인플루언서의 영향력은 저 멀리 변방에서부터 존재감을 더하고 있다. 인스타그램 스타 노부부인 이찬재와 안경자는 『돌아보니 삶은 아름다웠더라』를 출간했으며, 일본의 노부부 본과 폰(BON&PON)은 감각적인 커플 스타일링으로 화제가 되어 국내에서도 『본과 폰』을 출간했다. 노부부의 일상과 콘텐츠가 더는 그들 세대에 한정되지 않고 젊은 층에도 어필하고 있다. 젊은 층이 공감할 수 있는 지점만 있다면 시니어도 존재감을 드러낼 수 있다. 이를 통해 얻는 강력한 차별성은 물론이거니와 시니어만의 친숙함과 편안함 역시 젊은 층을 설득하는 데 효과적인 무기가 된다는 것이 국내에서도 점차 증명되고 있다.
이런 트렌드에서 기업은 단순히 시니어 인플루언서를 모델로 활용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브랜드 파급에까지 영역을 넓히고자 한다. 뉴발란스(New balance)가 런칭한 프로젝트 겸 마케팅의 일환인 #아빠의그레이 캠페인은 그래서 더 주목할만하고,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할 수 있다. 아빠의 프로필 사진을 바꾸기 위한 자녀의 노력을 담담하게 보여주는 이 캠페인은 묵직한 메시지를 전달한다. 젊은 세대와 아버지 세대의 소통, 연결을 강조해 젊은 층에도 커다란 호응과 반향을 일으키며 뉴발란스의 브랜드 이미지 향상에 크게 기여했다. 올드한 모델이 등장할지라도 모델의 태가 올드하지 않거나, 또는 기업이 표현하고자 하는 바를 메시지 안에 담아 풀어내는 방식이 힙하다면 젊은 소비자는 반응한다.
지금까지 언급된 시니어 인플루언서와 그들을 활용한 표현 방식 모두 시장과 젊은 소비자에게 유효하다는 결론으로 귀결됐다. 그렇다면 앞으로도 시니어 인플루언서가 기업의 효과적인 마케팅 수단으로 자리 잡게 될까. 아래의 근거를 통해 각종 브랜드와 이들의 협업이 당분간 지속되거나 혹은 그 기세를 더해가지 않을까, 유추해 볼 수 있다. 먼저, 근래 소비시장에서 시니어의 약진을 이유로 꼽을 수 있다. 현대백화점 관계자에 따르면 지난해 패션 상품을 구매한 60대 이상의 매출이 전년 대비 8.5% 늘었으며, 온라인몰 역시 61.3%의 매출 신장률을 기록했다. 시니어의 소비는 인구 고령화와 맞물려 더욱 증가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전체 타깃의 모수 자체가 커지는 현 상황에서, 이들에게 친숙한 시니어 모델을 활용한 마케팅의 증가는 당연한 수순이다. 미국에서 이미 그레이네상스(Greynaissance)*라는 단어가 생겨난 것도 시장에서 이들의 위치와 잠재력을 뒷받침한다.
*그레이네상스: 백발(Grey)과 전성기(Renaissance)의 합성어
무엇보다 가장 근본적이면서도 중요한 이유는, 젊은 인플루언서의 한계와도 맞닿아 있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젊은 소비자에게 어필할 수 있는 개성과 독특함이라는 이들의 무기 말이다. 워낙 치열한 분야이다 보니 캐릭터 자체로 차별화를 줄 수 있는 건 아무래도 한계에 부딪히기 마련이다. 개성이 있다고는 하지만 조금만 먼발치서 보면 다들 비슷비슷한 캐릭터를 흉내 낼 뿐이다. 결국 젊은 인플루언서 역시 트렌드에 맞춰 서로를 대체하는 형국이 아닐까. 이런 상황에서 평범하지 않은 나이, 반전과도 같은 패션, 캐릭터가 있는 시니어의 등장은 독특함을 넘어 비범해 보이기까지 하다.
게다가 이들의 빛나는 장점은 앞서 언급한 바처럼 전 연령층을 아우르는 힘이다. 기업의 핵심 타깃인 젊은 층을 공략하기에도 효과적인 차별성이 있을 뿐만 아니라, 모두에게 어필할 수 있는 존재라면 기업 입장에선 금상첨화가 아닐까. 세대 간의 단절을 타파하는 데 기여하고 소통을 독려할 수 있다는 장점은, 단순한 판매를 넘어 브랜드 이미지에도 효과적인 장치로 기능한다는 면에서 뉴발란스의 사례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또한, 단순한 메시지 전달을 넘어 곳곳에 흩어져 존재하는, 구매력이 있는 시니어의 연대를 강화하는 효과까지 얻을 수 있다.
꼰대스럽지 않은 뉴 식스티라는 시니어 인플루언서들의 정체성
젊은 세대에게 친숙한 대상이자 닮고 싶고, 또 되고 싶은 존재로 어필
사람은 늙는다. 원치 않아도 우린 늙는다. 그건 바꿀 수 없는 만고불변의 진리 아닌가. 그렇다면 우린 선택을 해야 한다. 라떼는 말이야로 일관하는 꼰대 같은 어른이 될지, 혹은 젊은 세대와 어깨를 나란히 하며 동등하게 소통하는 친구 같은 어른이 될지 말이다. 시니어 인플루언서의 등장과 존재를 통해 우리는 지향하고 싶은 어른의 모양을 어느 정도 그려볼 수 있게 됐다. 멋지게 늙을 수 있다는 희망. 따라서 이들에게 보내는 열렬한 함성에는 닮고 싶은 어른의 모습을 발견했다는 환호도 분명 있을 것이다.
청춘을 규정하는 데 나이는 단지 숫자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이들을 보며 다시금 느낀다. 꿈을 잃어버리는 그 순간이야말로 청춘이 지나간 순간이라는 어느 책의 글귀를 떠올려보며, 과연 나의 청춘은 언제까지일지 그 유효기간을 가늠해본다. 섣불리 나이로 청춘을 규정하지 않겠다는 다짐 역시 하게 된다. 하고 싶은 일이, 꼭 해보고 싶은 무언가가 있지만 이미 늦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시니어 인플루언서를 주목하길 바란다. 이들은 누군가가 인생의 황혼기라 멋대로 규정하는 노년에, 오히려 마치 인생 2회차인 듯 마음껏 자신만의 끼를 발산한다. 청춘을 정의하는 편협하면서도 협소한 사고의 틀을 깨뜨릴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60세가 되어서도 여전할, 당신의 청춘 역시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