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

코로나19가 창궐한 이후, 우리는 이웃의 건강을 기원한다. 이웃이 안전해야 나도 안전할 수 있다. 이 당연한 말은 마치 사회주의자의 혁명 문구처럼 취급받았지만, 코로나19의 발병으로 전 세계의 슬로건이 되었다. 이웃의 안전을 걱정하고 정보를 공유해야 (말 그대로) 살 수 있다. 이웃과 정보를 공유하고, 선의를 베풀며 자신의 안전과 생존을 보장받는다. 코로나19가 품앗이를 부활시킨 것이다.

 

품앗이는 경제적 교류뿐만 아니라 이웃과의 연대감과 신뢰감을 쌓게 해준다. 신뢰감이 전제되지 않은 품앗이는 불가능하다. 노동을 제공할 기반이 없기 때문이다. 같은 지역에 산다는 귀속의식은 노동과 정보의 교환을 수월히 만들고,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더 두터운 상호 의존을 구축한다. 21세기의 품앗이는 이런 지역 기반의 선순환을 통해 이루어진다. 코로나19와 코로나 블루(corona blue)를 이웃과 함께 극복할 힘이기도 하다.

 

이런 시대에 지역을 기반으로 한 소셜 플랫폼이 성장하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2008년 미국에서 사라 리어리(Sarah Leary), 니라브 톨리아(Nirav Tolia), 프라카시 자나키라만(Frakash Janakiraman), 데이비드 와이젠(David Wiesen)이 공동 창업한 넥스트도어(Nextdoor)는 로컬 소셜 플랫폼의 성장을 보여준다. 2019년 10월에 2,700만 명이던 월 사용자가 2020년 4월에 6,000만 명으로 두 배 이상 늘었으며, 기업가치 또한 150억 달러에서 210억 달러로 증가했다. 넥스트도어는 지역∙실명 인증을 통해 특정 지역에서 실제로 거주하는 사람들만 커뮤니티에서 활동하도록 보안을 중심으로 설계했다.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이 개방성과 교류를 우선시한 것에 비하면 폐쇄적이지만, 그렇기에 믿고 정보를 공유할 수 있다.

넥스트도어의 'Neighborhood Favorite Winner' 인증을 받은 뉴올리언스의 'Petite Rouge' 커피 트럭 Ⓒ Nextdoor
넥스트도어와 월마트의 'Neighbors Helping Neighbors'는 한 주민이 대표로 장을 봐오는 현대판 품앗이의 모범 사례다 Ⓒ Nextdoor

주민들은 넥스트도어를 통해 지역의 좋은 신상 카페를 추천받거나, 피아노를 가르치는 좋은 선생님이 있는지 찾는다. 지역에 위험한 사람이 있다면 이웃에게 조심하라는 글을 올리기도 한다. 또한, 급히 출장을 떠날 때 베이비시터를 요긴하게 구할 수 있다. 때로는 주민 스스로가 이웃을 위해 베이비시터를 자청하기도 한다. 특히 코로나19가 전 세계적으로 유행하는 가운데, 넥스트도어는 지역사회에서 이웃과 연대할 수 있는 새로운 기능들을 추가했다.

 

자원봉사를 희망하는 유저가 지도에 자신의 위치와 할 수 있는 일을 등록하면, 이를 확인한 이웃들이 도움을 요청한다. 몇몇 지역에서는 사회적 거리두기를 위해 월마트와 넥스트도어가 파트너십을 맺고 런칭한 Neighbors Helping Neighbors 기능을 통해, 한 이웃이 대표로 장을 봐오기도 한다. 넥스트도어는 정보의 신속성뿐만 아니라, 명확성에도 공들이고 있다. 공공기관이 게시한 정보를 피드 상단에 노출하고, 게시글에 Covid-19를 입력하면 정보의 출처와 게시물의 파급효과를 상기시키는 경고 메시지를 띄워 코로나 관련 루머를 방지한다. 이웃과의 현대판 품앗이를 통해 포스트 코로나의 불안과 고립감을 극복하도록 돕는 지역 소셜 플랫폼이다.

 

국내의 당근마켓도 넥스트도어와 같이 지역 기반의 소셜 플랫폼으로 성장 중이다. 당근마켓의 출발점은 중고거래 플랫폼이었다. 하지만 지역이라는 핵심 요소를 추가해, 지역 인증을 거쳐 거주지에서 최대 6km 거리 내의 유저와만 거래하도록 했다. 물론 택배 거래도 가능하지만, 지역 주민들은 주로 만나서 거래하기 때문에 유사 플랫폼보다 신뢰도가 높다. 또한 매너온도라는 시스템을 통해 판매자의 신뢰도를 관리한다. 사람의 평균 체온인 36.5도로 시작하는 매너온도는 판매자의 후기가 좋을수록 올라간다. 판매자 프로필에 공개된 거래 이력, 리뷰, 동네 인증 횟수는 임의로 삭제할 수 없는 것이 특징이다.

 

당근마켓을 단순한 중고거래 플랫폼으로 치부하기는 어렵다. 당근마켓이 추구하는 바는 지역 소셜 플랫폼이기 때문이다. 공동창업자인 김용현 공동대표의 말처럼 인터넷이 지역 간 경계를 허물었다고는 하지만, 지역 내에서의 관계를 촘촘히 만든 것은 아니다. 서로의 베이비시터가 되어줄 사람은 많지만, 그들을 연결해줄 플랫폼이 없다. 공유할 정보는 많지만, 정보를 공유할 광장이 없다. 당근마켓은 이런 빈자리를 채워 지역 안의 관계망과 정보를 공유하는 플랫폼을 구축하고자 한다. 실제로 당근마켓 안의 커뮤니티 기능인 동네생활은 지역의 각종 정보가 활발히 공유되고 있다. 이웃들이 지역의 생활 정보뿐 아니라 코로나 확진자 동선과 지역 약국의 마스크 재고량 등 공공의 이익에 관한 정보도 나누는 것이다.

동네 인증을 완료해야만 사용할 수 있는 당근마켓 Ⓒ 당근마켓

당근마켓을 제외한다면 한국에는 지역 기반의 소셜 플랫폼이 없는 것은 확실하다. 그러나 플랫폼이 없다고 지역 커뮤니티가 없는 것은 아니다. 한국에서는 맘카페가 오래전부터 지역 커뮤니티를 대신해왔다.

 

네이버에 있는 맘카페만도 9,600여 개다. 당근마켓이 구분한 6,500개 지역보다 훨씬 세밀하다. 맘카페에서 주고받는 정보는 가사에 한정되지 않는다. 아이들이 다니는 좋은 학원, 외식하기 좋은 맛집, 간단히 산책하기 좋은 공원 등 일상 속 정보 외에 공적인 정보 또한 빠르게 공유된다. 코로나19가 발생한 이후, 해당 지역 구청의 대응이나 확진자 동선 등을 실시간으로 발 빠르게 나누는 정보의 장이 되기도 했다. 또한 결식아동용 도시락을 기부하거나 의료진에게 후원하는 등, 지역 상생을 위한 움직임을 보이는 플랫폼이다.

 

맘카페는 다른 커뮤니티에 비해 유대감이 높은 편이다. 이들의 유대감은 같은 지역 주민임과 동시에, 같은 어머니라는 정체성에서 한층 강해진다. 같은 지역에서 같은 고민을 공유하고, 비슷한 일상을 살아가기에 연대감과 신뢰감이 쌓이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내 옆집과 앞집에 나와 같은 고민을 하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은 삶을 외롭지 않게 해준다. 왜 지역 커뮤니티가 원활하고 활발해야 하는지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네이버에 개설된 맘카페의 수는 9,607개에 달한다. 그중 하나인 검단신도시 지역의 '검암맘' 카페에서는 반찬봉사, 플리마켓, 파티 등의 활발한 지역 교류를 관찰할 수 있다

넥스트도어와 당근마켓, 맘카페는 지역에 살아가는 사람과 사람을 연결한다. 각각의 성격은 조금씩 다르지만, 공통점은 분명하다. 지역 소셜 플랫폼은 우리가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려준다. 우리의 곁에는 이웃이 있으며, 그들과 함께 위기를 극복해 나간다. 이 당연하고 단순한 사실만으로도 우리는 크고 작은 위로를 받는다. 모두가 홀로 극복할 수 없는 전 세계적 재난 앞에 서 있다. 사회는 비대면을 권장하고, 언택트 시대에 발맞출 것을 요구한다. 자연히 멀리 있는 친구나 친척보다 가까이 있는 이웃에게 힘을 얻는 이유다. 이웃과 정보와 대화를 나누며 서로의 안위를 돌보는 연대의 힘을 알게 된 지금, 우리는 더 이상 혼자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