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

지난 5월 부산 벡스코에서 열린 아트 부산(ART BUSAN)이 4일간 8만여 명의 방문 관람객과 350억 원 이상의 매출을 기록하며 아트페어의 역사를 새로 썼다. 아트페어는 여러 갤러리가 모여 미술 작품을 전시・판매하는 행사다. 다양한 미술계 행사 중 1990년대에는 비엔날레가 각광을 받았다면, 2000년대 들어서는 아트페어가 미술 이벤트로서의 대중적 파급력을 보여주고 있다. 실험적이면서도 비상업적인 작품이 주로 출품되는 비엔날레와 달리, 아트페어에는 판매를 목적으로 작품이 전시된다. 몇 년 전 독일의 대표 일간지인 <디벨트(DIE WELT)>는 이러한 현상에 대해 지는 비엔날레, 뜨는 아트페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이처럼 아트페어는 미술계의 핵심 이벤트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오늘날에는 미술품이 거래 가능한 하나의 상품으로 인지되고 있지만, 르네상스 시기 이전에는 후원의 개념으로 여겨졌다. 예술가들이 기량을 펼칠 수 있도록 물적 지원을 아끼지 않았던 이탈리아의 메디치 가문이 그 예다. 이 시기에 미술품은 왕과 귀족, 종교인들의 전유물로 인식됐다.

 

미술품이 상업적으로 거래된 초기 사례는 15세기 초 설탕 무역의 중심지였던 벨기에 안트베르펜(Antwerpen) 지역에서 찾을 수 있다. 돈과 물자가 넘쳐나는 이곳 무역도시에서 미술품 거래시장이 열리곤 했다고 전해진다. 17세기 초에는 네덜란드에 아트 딜러들이 등장하며 미술시장이 본격적으로 형성되었고, 18세기에는 영국에서 소더비(Sotheby’s), 크리스티(Christie’s) 등 경매 회사가 설립되며 작품이 거래되기 시작했다. 프랑스혁명 이후에는 파리의 신흥 부르주아 계급을 중심으로 미술품 수요가 늘어났고, 1960년대 이후부터는 미국이 미술시장의 중심지가 되었다.

 

일반적으로 미술품이 유통되는 구조는 크게 세 가지다. 갤러리와 아트페어, 옥션, 그리고 미술관. 1차 시장인 갤러리는 미술품 컬렉터와 직접적인 관계를 유지하면서 아트페어의 주체로 기능한다. 갤러리는 작품 거래를 활성화할 뿐 아니라 작가와 전략적 파트너가 되어 그들을 조명하는 역할도 수행한다. 2차 시장인 옥션은 미술품의 가격 경쟁을 통해 거래를 유도하며, 새로운 가격을 설정함으로써 미술유통에서 중요한 비중을 차지한다. 다음으로 미술관은 갤러리와 옥션과는 다른 역할을 하는데, 주로 전시, 수집, 연구, 교육 등과 같은 기능을 수행한다. 미술관은 「박물관법」에 따라 수집된 작품을 재판매할 수 없어 미술품의 종착지가 된다. 이 세 가지 외에도 아트펀드나 대여 시장, 저작권 시장 등이 존재한다.

아트 부산 전경 Ⓒ 아트 부산
아트 부산 전경 Ⓒ 아트 부산

불과 20년 전만 해도 미술의 흐름을 분석하고 작가와 작품의 가치를 평가하는 일은 전적으로 미술관의 소관이었다. 작품의 가치를 매기는 데 있어 미술시장의 역할은 존재했으나 제한적이었고, 미술사학자와 평론가 같은 전문가들의 비평이 주를 이뤘다.

 

그러나 1980년대 경제 호황기를 타고 미술시장도 부흥기를 맞이했고, 상업적인 아트페어 역시 점차 미적인 권위를 획득하게 되었다. 전 세계 각 지역에서 아트페어가 설립된 것도 이 시기 즈음이다. 국제적인 아트페어로는 스위스 바젤 아트페어(Art Basel), 시카고 아트페어(Art Chicago), 독일의 퀼른 아트페어(Art Cologne), 프랑스의 피악(FIAC), 스페인의 아르코 아트페어(Art Arco) 등이 있다. 이밖에 영국의 프리즈(Frieze), 중국국제화랑박람회(CIGE)도 많이 언급되는 편이다.

 

국내 미술시장은 경기성장기인 197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작가와 컬렉터 사이에 갤러리라는 매개자가 개입하여 유통하는 시장 형태가 등장한 것이다. ‘현대화랑’을 비롯한 다양한 갤러리들이 등장한 것도 이 시기다. 그러다 1997년 IMF 경제 위기를 맞아 미술시장이 붕괴했고 이로 인한 미술시장의 침체가 오랫동안 이어졌다. 다행히도 2000년대 초부터는 세계적으로 경기 확장이 일어나며 미술시장이 부활했다.

 

미술시장의 부흥을 알리는 조짐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바로 아트페어다. 곳곳에 위치한 수많은 갤러리를 직접 찾아다니지 않아도 한곳에서 미술품을 감상하고 거래할 수 있다는 것이 아트페어의 가장 큰 장점이다. 미술품 컬렉터의 입장에서는 마치 백화점에 방문한 것처럼 한눈에 작품을 감상하고 구입할 수 있다. 어느 정도 규모가 있는 아트페어의 경우 주최 측에서 참여 갤러리를 심사하기 때문에 공신력이 담보된다는 것도 장점이다. 이는 컬렉터들의 의사결정 과정을 단축시키는 효과가 있다.

국내에서는 1986년부터 시작된 화랑미술제가 가장 오래된 아트페어로, 현재까지 열리고 있다. 서울국제미술제(SIAF), 청담미술제, 마니프서울국제아트페어(MANIF), 서울오픈아트페어(SOAF) 등 다수의 국내 아트페어가 현재까지 개최되고 있다. 이중 대표적인 아트페어로는 한국국제아트페어(KIAF, Korea International Art Fair)를 꼽을 수 있다.

 

KIAF는 미술시장의 활성화와 미술 대중화에 이바지할 목적으로 2002년부터 매년 개최되고 있는 행사다. 관람객 수, 참여 갤러리 수, 출품 작가, 거래 금액 등 여러 가지 면에서 국내 최대 규모로 평가받고 있다. 국내 작가들은 KIAF를 통해 국제무대에 진출할 수 있는 교두보를 확보했다. 특히 출범 첫해부터 마련된 학술 프로그램은 미술품 거래를 위한 행사라는 한계를 넘어 미술에 대한 담론을 끌어내는 장으로도 기능하고 있다. 올해 10월 15일부터 17일 사이 개최 예정인 제20회 KIAF도 많은 기대를 불러 모으고 있다.

 

최근에는 ‘한국국제아트페어’나 ‘아트 부산(ART BUSAN)’ 같은 전통적인 의미에서의 아트페어 외에도 기업을 중심으로 하는 아트마켓이 많이 생겨나고 있다. 특히 미술품 투자에 관심이 많은 MZ세대를 중심으로 신진작가와 초보 미술품 컬렉터를 연결하려는 시도가 돋보인다. 신한카드가 지난 6월 개최한 ‘더프리뷰 한남’이 그 예다. 이 행사에서는 미술품 구매에 관심 있는 MZ세대를 위해 최초로 참가비를 없앴고 작품이 판매될 경우 후불할 수 있도록 하는 등 일반인들이 아트페어를 자연스럽게 즐길 수 있도록 배려했다.

 

올해 6월 미술품 판매 시장에 진출한 롯데백화점은 MZ세대 컬렉터를 겨냥하여 디지털 갤러리인 ‘온라인 갤러리관’을 열고, 작품을 비대면으로 구입할 수 있도록 했다. 신세계백화점은 해외 유명 브랜드숍이 입점해 있는 강남점 3층에 ‘아트 스페이스’를 열었다. 패션 브랜드들과 함께 회화, 사진, 조각 등 현대미술 작품을 120점가량 배치해 판매까지 연결하고 있다. 이외에도 ‘맨션나인’과 같은 소셜마켓은 신진작가를 발굴하고 대중과의 접점을 마련할 수 있도록 온・오프라인 공간을 동시 운영하면서 예술을 매개로 하는 콘텐츠를 개발하고 있다. ‘그림팔이소년’이라는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면서 소속작가를 소개하고 관객과의 소통을 매개하려는 시도가 돋보인다.

KIAF 행사 전경 Ⓒ Kiaf SEOUL

갤러리에서 기획전을 열어 컬렉터를 유입시키고 판매하는 전략은 그 효과가 점점 미미해지고 있는데 반해, 오픈된 공간인 아트페어에서 다수의 작품을 동시에 살펴보면서 구입하는 방식이 미술품 유통시장의 대세가 되고 있다. 이에 따라 갤러리의 비즈니스도 점차 아트페어를 통하게 되고, 기업들과 문화 관련 단체에서도 아트페어와 아트마켓에 관심을 두고 있다. 미술 생산자보다는 미술 소비자의 눈높이에 맞춘 아트페어는 앞으로도 미술 이벤트로서의 파급력을 확산시켜 나갈 것으로 예상된다. 예술가들의 작업은 그 자체로도 의미 있지만, 그들의 작품을 누가 소장하는지에 따라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 낸다. 아트페어는 이미 예술을 즐기는 또 하나의 방법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