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은 흔히 실외에 지어진, 또는 고정된 하나의 건물이라는 관념이 많다. 이 때문에 건축물의 전체적인 모습만 인식하며, 건축물을 구성하고 있는 물리적 구조물과 이들이 어떠한 과정을 거쳐 지금의 모습을 하고 있는지 모르는 경우가 많다. 또한, 건축을 전공하지 않은 사람들은 건축학도 혹은 건축가의 삶을 깊게 이해하지 못한다. 건축과 사람들과 함께 교류하면서 그들이 공유하는 문화와 언어는 지금까지 만난 타 학과의 사람들과 비교했을 때 판이하다는 것을 느꼈다. 건축의 세계는 우리가 아는 것보다 훨씬 깊고, 무궁무진하다.
건축에 대한 관심을 해소하고자 다양한 전시회를 다니게 되었는데, 오늘은 서울시립남서울미술관에서 진행된 ⟪모두의 [건축] 소장품⟫ 전시를 공유해보고자 한다. 2020년 4월 16일부터 8월 2일까지 열린 이 전시에는 총 8개의 기관과 40여 명의 작가・팀이 참여하였다. “건축을 어떻게 수집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 답을 던지는 공통적인 주제로, 미술관 두 개의 층에서 상이한 테마를 가지고 전시가 개최되었다.
건축, 역사를 설계하다 – 전통 건축, 사물의 편린
1층에서는 미술관의 전신인 구 벨기에영사관 분리된 부재들과 대한민국 국보 1호인 숭례문, 운현궁 등 한국의 전통 건축물에서 분리된 부재들을 보존하여 전시하고 있었다. 한국적인 양식을 갖춘 부재들과 서양적인 양식을 갖춘 부재들을 분리하지 않고 병치한 상태로 전시해서인지, 둘의 차이점이 명확하게 보이는 듯했다. 한국 건축 부재는 목재를 사용하여 엮는 방식, 서양 건축 부재는 석조를 사용하여 쌓는 방식인 것이 가장 가시적인 구분점이었다. 그렇지만 건축 모양이 목조의 결구 형식에서 유래되었고, 이것이 영적인 목적에서 장식의 목적으로 변화되었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나타나기도 했다.
한국 건축물의 보존, 연구, 수집 등에 대한 논의가 본격화된 시점은 바로 2008년 숭례문의 발화 사건 이후다. 사실 한국의 많은 전통 건축물은 목재로 지어져 수명이 매우 짧고, 병충해나 화재에 취약하여 보존이 상당히 필요한 상태였다. 여기서 우리는 한 가지 질문을 던질 수 있다. ‘보존하는 것이 어떤 가치가 있기에 보존해야 하는 것인가?’, ‘부재를 수집하는 것이 도대체 어떤 의미가 있는가?’이다. 이 질문의 본질은 바로 역사・문화적 맥락에 있다. 각각의 건축 부재는 의미 없이 만들어진 것이 아닌 하나하나가 선대인들의 철학관과 우주관, 사상을 투영한 산물이다. 그리고 이들이 각기 다른 방식으로 한데 어우러져 하나의 건축물이 되는 것이다. 완성된 건축물은 분절되어 있었던 가치들을 연결하고 순환시킴으로써 선대인이 가지고 있는 무의식의 정신세계를 확립한다. 이는 선대인에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오늘날 우리들의 기저에 깔린 문화적 정체성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어떤 이들은 전통 건축을 보존하는 것이 왜 중요한지 잘 이해하지 못하며, 어떤 이들은 한국 전통 건축의 기반이 되는 선대인의 사상이 한국의 발전을 저해하기 때문에 정체성으로부터 탈피해야 한다고도 말한다. 이러한 움직임은 궁극적으로 한국의 재개발과 주거공간 문제점을 발생시켰다. 효율성과 경제발전이라는 명목하에, 6.25를 기점으로 도시화가 진행되면서 전통 건축물의 보존은 등한시되었다. 그 자리는 대량으로 설계된 아파트가 대신하였다. 하지만 숭례문이 불에 탔을 때 전 국민이 깊은 슬픔을 느꼈던 것처럼, 우리의 문화적 정체성은 생각보다 깊게 마음속에 존재한다. 즉, 전통을 무시하고 상반되는 가치만 앞세웠을 때 사회적 문제가 복합적으로 발생하게 된다. 전통 건축에 담긴 문화적 맥락을 이해했을 때 비로소 우리가 보이고, 사회의 문제점에 대한 대안을 생각할 수 있는 통찰력이 생기게 되는 것이다.
건축의 세계를 들여다보다 – 건축현장, 창작의 흐름
2층에서는 설계 사무소의 건축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에 대한 과정을 공간적 흐름을 통해 전시하고 있었다. 다양한 기관들과 건축가들이 참여한 전시로, 그들이 제공한 아카이브와 건축 과정에서 생성된 각종 부산물을 살펴보며 건축이 각 주체의 노력이 축적되어 완성되는 일련의 체계라는 것을 알 수 있도록 조성해두었다.
설계실에서는 1950년대부터 지금에 이르는 건축 프로젝트와 시각 자료, 설계 자료들이 전시되었다. 트레이싱지 위에 그린 도면부터 제도기, 측량기, 3D 스캐닝 등과 같은 도구들을 통해 그동안 설계 방식이 어떻게 변해왔는지를 생생하게 재현하고 있었다. 대부분 일상생활에서 보기 힘들지만 설계실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도구들로, 건축가들 모두가 이들에 대한 지식을 공유한다는 점에서 그 독특한 생활 시스템을 잠시나마 경험한 순간이었다. 또한, 삼일빌딩과 당인리 문화창작발전소를 다룬 프로젝트 전시 부분에서 설계 자체 과정과 사용 도구들이 어떻게 창작・해체・재구성되어 새로운 의미를 얻게 되는지도 알 수 있었다.
건축은 단순히 재료를 축적하여 건물을 만드는 것이 아닌, 철학과 예술 등 복합적인 가치와 건축가가 가진 본연의 상상력에 깊이를 더해 하나의 작품을 완성하는 과정으로 볼 수 있다. 건축가의 방은 직접적인 건축물을 전시하는 대신 건축가의 눈으로 관찰한 사회와 일상, 건축가가 상상한 이미지 등을 스케치・사진・조형 등으로 표현한 생산물을 보여주었다. 건축가들은 본격적으로 설계하기 전, 답사를 다니고 그 장소를 여러 방법으로 기록한다. 답사와 기록은 비 건축가에게도 익숙한 단어들이지만, 단어가 양쪽에게 의미하는 바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우리에게는 새로운 경험을 얻고 추억하기 위한 것이지만, 건축가들에게는 설계를 위해 영감을 조합하고 구체화하는 중요한 단계라고 볼 수 있다.
모형실은 두 공간으로 나누어져 있었다. 첫 번째 방인 모형 스터디실에서는 우드 블럭이나 나무와 같은 여러 재질로 만들어진 작은 크기의 3차원 모델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이곳에서 모형은 대략적인 구조를 표현하는 정도에서 건축가가 구상한 바를 온전하게 그려내는 견고한 수준으로 발전한다. 더불어 한 건축물은 제작자의 구상 의도에 따라 그 모습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것도 이곳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두 번째 방인 <모형 제작실>에서는 모형 작업장에서 쓰인 도구와 다양한 건축 재료에 대한 서적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모형을 만들 때는 건축 용어 자체를 아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속에 담긴 의미를 아는 것이 더 중요하다. 재질과 도구에 따라 달라지는 색, 질감, 형태 등은 모형을 인식하는 스키마(Schema)에도 영향을 주고, 건축가의 생각과 직접적으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견본실은 건축 부재 및 마감재와 같은 설치물들을 실제 현장에 적용하기 전, 심미성・안정성과 같은 가치들을 검증하기 위해 만들어진 견본들을 전시하고 있었다. 모형실의 모형들과는 달리, 이곳은 실제 건축물에 쓰인 설치물들을 전시하기 때문에 현장감과 재료가 주는 느낌이 다를 수밖에 없다. 또한, 설치물들은 안정성을 위해 수리적으로 측량과 계산을 거쳐 만들어졌으며, 이는 건축물이 인문학과 예술, 과학, 기술이 종합된 복합물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일깨워주는 대목으로 존재한다.
자료실은 역사적으로 보관의 가치가 있는 건축 자료들을 전시하고 있었다. 문서로 된 기록을 주로 보관하는 일반적인 기록원과 달리, 건축기록원은 도면 설계를 중심으로 건축 이전 기록부터 초기 도면, 미완성 도면, 그리고 최종 설계물의 사진이나 모형 등을 보관한다는 게 가장 중요한 차이점이었다. 이 전시에서 가장 핵심이 되는 부분이 바로 자료실이라고 생각하는데, 그 이유는 바로 건축의 수집이라는 부분을 가장 잘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자료실은 한국 전통 건축에 대한 정보와 의미부터 건축의 언어, 과정 등 건축가의 삶을 다양한 매체를 통해 총체적으로 담아낼 수 있다. 더 나아가 비 전문가가 알기 어려운 건축 세계의 시스템을 풀이하여 두 세계를 연결하는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는 공간이 되는 것이다.
일반적인 사람들에게 건축이 무엇이냐고 물어보면, 건설업이나 부동산업과 동일한 분야라고 여기는 이들이 많다. 하지만 유심히 들여다보면 건축은 인문학과 상당히 맞물려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부분은 현실적으로 수익성과 거리가 있어 자연히 등한시되고 있다. 건축의 가치를 브랜드나 지역에 따른 부동산 개념으로 생각하는 우리들의 시선과 관념이 아직도 건축과 인문학의 연결고리를 약하게 만드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렇다면 ‘건축을 수집하는 것은 무엇인가’라고 질문을 던진다면 어떤 대답이 돌아오게 될까?
여전히 건물이나 모형 등 유형적인 것을 많이 떠올리리라 생각한다. 하지만 이 전시를 관람한 이후 깨닫게 된 것은, 유형적인 부분 이외에 사상・철학・언어・사고방식과 같이 무형적인 가치도 함께 수집하는 것이 바로 진정한 의미의 건축의 수집이라는 점이다. 결국 건축 수집이라는 것은 우리는 자신의 정체성을 이해하게 되고, 비로소 건축의 세계를 이해하는 과정을 의미한다. 이를 통해 우리는 주체적으로 자신이 살아가는 공간을 구성하고, 건축 설계의 과정에서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하는 힘을 길러 문화를 바라보는 통찰력을 얻을 수 있게 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건축의 수집이 전하고자 하는 진정한 의미는 건축과 건축가의 세계를 설명함으로써 건축은 건설 그 이상의 것이라고 일깨워주는 역할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