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4년은 콘텐트(content)가 처음 등장한 해이다. 20세기 말, 레게 스타일이 전국을 강타했고 오렌지족과 X세대가 한 시절을 주름 잡았다. 그때 처음 시작된 인터넷 상용 서비스는 콘텐트를 대중적인 용어로 정착시켰고, 이후 복수형 콘텐츠(contents)가 되기까지 콘텐트는 단순히 소비 대상이 아닌 우리의 현실 세계 인식을 반영하고 창조하는, 그 자체가 되었다.
그런데 유흥거리이자 미디어가 선사한 시청각적 소비 거리였던 콘텐츠가 어느 순간부터 불편하다. 이 불편함은 두 가지 방향으로 작동한다. 어떤 시청자는 자신의 정체성, 위치, 상황을 부정적으로만 그려내는 미디어가 불편하다. 여성들은 극성스럽거나 남성으로 대표되는 존재의 도움을 받거나 감정적으로 예민한 존재로 묘사된다. 노인의 삶은 자식들에게 기생하거나 불행하거나 새로움을 추구하고 도전하기보다 포기하고 자조하는 삶으로 그려진다. 장애인은 자신의 장애를 극복한 경이로운 존재이거나 비장애인의 도움이 필요한 존재로 등장한다.
때로는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 어딘가 작위적인 캐릭터 설정이 불편할 때도 있다. 어릴 적부터 동일시할 정도로 좋아해 온 캐릭터가 스핀오프에서 확인해 보니 퀴어라는 설정, 시대극에서 유색인종이 귀족 역할이라는 점, 초능력이 있어야 할 슈퍼히어로가 청각장애인이라는 점 등. 시대극, 히어로물 등 캐릭터 형상화가 고정된 장르일수록 골수팬들의 반발은 심하다. 장르 내 캐릭터 형상화가 고정되어 있는 동안 한쪽은 배제되어 왔고 한쪽은 적극 결집되어 왔다. 자신의 정체성을 부정적으로 그리거나 중심 캐릭터로 형상화되지 않았기에 골수팬이 되고 싶어도 될 수 없었던 이들이 있었으며, 그간 축적되어 온 장르 문법 아래 팬이 된 이들은 이런 유의 새로운 시도가 당황스럽거나 자신의 팬심을 부정당한 것 같아 불쾌하다. 콘텐츠는 그렇게 불편해져 왔다.
선한 영향력이 키워드가 된 이후부터 선한 콘텐츠들이 각광받는 시대다. 그렇다고 콘텐츠가 선하게 소비되는 것만은 아니다. 로스쿨을 수석 졸업한 자폐 스펙트럼 변호사의 대형 로펌 생존기를 그린 ENA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2022)가 우영우 신드롬을 만들어 가는 와중에 이를 패러디한 유튜브 콘텐츠 <이상한 와이프 우와소>는 자폐 스펙트럼을 희화화했다는 직면에 마주했다. 드라마 속 캐릭터에 대한 패러디인가, 자폐 스펙트럼에 대한 희화화인가. 유튜버 우와소 이러한 논란과 관련해 다음과 같은 입장문을 남겼다. “우영우가 자폐증 증상을 가진 사람들에 대해 친근하고 귀엽고 사랑스럽고 좋은 이미지를 만들어 준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저는 오히려 장애를 너무 신성불가침 영역으로 삼으면 그들이 더욱더 고립될 거라고 생각한다”, “이런 말투를 우리 삶의 자연스러운 말투 중 하나로 받아들이고 친숙해지고 이해할 기회가 생길수록 비로소 모두가 함께할 수 있는 더 나은 사회가 되는 것 아닐까”라고 덧붙였다.
기업의 행보가 찬반의 대상이 되는 경우도 있다. 디즈니‧픽사의 <토이스토리>의 스핀오프 <버즈 라이트이어>가 중동‧아시아 국가 14곳에서 상영 허가를 받지 못했다. 이유는 영화 속 동성 부부의 입맞춤 장면 때문이다. 상영 금지 국가 중 하나인 중국은 디즈니 측에 해당 장면 편집을 요청했고 디즈니는 이에 대해 수정하지 않을 것을 명시했다. 일반적으로 디즈니는 이런 요청을 받으면 줄거리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 한 수용해 편집하곤 했다. 그러나 이에 대한 조직 구성원들의 문제 제기가 뒤따랐고 디즈니는 이를 반영해 편집하지 않기로 한 것이다.
다양성의 가치로, 디즈니의 전환과 갈등
2005년 밥 아이거(Robert Iger) 전 CEO 취임 후 디즈니는 D&I(Diversity & Inclusion, 다양성과 포용성)를 필두로 대내외적 변신을 꾀했다. 두드러진 건 캐릭터들의 변화였다. <미녀와 야수>(2017) 실사 영화 속 캐릭터 르푸를 시작으로, <토이스토리4>(2019) <어벤져스:엔드게임>(2019), <스타워즈: 라이즈 오브 스카이워커>(2019), <이터널스>(2021), <닥터 스트레인지: 대혼돈의 멀티버스>(2022)에 성소수자 혹은 퀴어 요소들이 등장했다. 수동적인 여성상을 그려왔다는 비판을 수용해 <겨울왕국>(2013)에서는 자신의 모험을 떠나고 서로를 구원하는 여성 간의 연대를 그려냈다. 대외적으로도 2016년 밥 아이거는 “종교적 신념을 근거로 LGBTQ+에게 서비스 제공을 거부하는 것을 용인하는 법안”에 대한 거부권을 조지아 주지사가 행하도록 설득하는 데 성공하기도 했다.
작품 외적으로도 변화가 있었다. 2021년 여름 디즈니월드의 관객 안내 방송 문구는 다음과 같이 바뀌었다. 신사 숙녀 소년 소녀 여러분(ladies and gentlemen, boys and girls)에서 모든 꿈 꾸는 이들(dreamers of all ages)로 말이다. 지정 성별의 한계를 인식해 성별을 지칭하지 않은 포괄적인 명칭으로 바꾸자 보수 진영은 디즈니 보이콧을 펼치며 불만을 표했다. 취임 당시 정치적 문제에 개입하지 않겠다고 했던 밥 차펙 CEO는 2022년 3월 직원들에게 보낸 메일에서 “댜앙성이 담긴 우리의 이야기는 바로 기업으로서 우리의 선언”이라며 “그것은 어떤 트윗이나 로비 활동보다 더욱더 강력하다”고 밝혔다.
디즈니의 이러한 경영 철학은 돈세이게이법안(Don’t Say Gay)을 두고 플로리다 주 정부와 갈등이 빚어지며 찬반 논쟁의 중심에 서게 되었다. 미국 플로리다주는 올해 3월, 어린 학생(유치원, 초등학교 1~3학년)에게 교내에서 동성애 관련 교육을 하지 못하도록 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론 드산티스(공화당) 주지사는 학교 교사가 아닌 부모가 자녀에게 성적 지향이나 성정체성에 대해 설명해야 한다며 법안을 통과시켰고 이 법은 오는 7월부터 시행될 예정이다. 바이든 행정부는 이는 반(反)성소수자 법안임을 명시하며 비판했고 플로리다 전역에서는 해당 법안에 대한 항의가 일어났다. 디즈니 또한 이 물결에 동참하며 “혐오스러운 법안이 폐지될 때까지 플로리다주에 대한 건설과 투자를 중단”하고 플로리다주에 정치자금을 풀지 않겠다고 밝혔다.
문제는 이러한 디즈니 행보에 반발한 플로리다주 상원이 1968년 이후 지정된 특별 조세 지구의 지정을 취소하는 법안을 가결하면서 디즈니월드가 자리 잡은 리디크리크 개선 지구가 내년부터 독자적 행정 단위의 지위를 잃게 될 위기에 처했다는 점이다. 사실상 해당 지구에서 디즈니는 스스로 세금을 내고 예산을 집행하면서 연간 수천만 달러를 아꼈고 독자 행정, 조세 특권을 누렸다. 디즈니는 수십 년 동안 누린 세제 혜택을 잃게 되었고 이에 따라 디즈니월드 리조트를 이전하는 문제도 쉽지 않게 되었다. (마찬가지로 플로리다주 또한 리디크리크가 발행한 채권 10억 달러 이상이 플로리다 주 정부 부담으로 넘어올 리스크를 감당해야 하며, 혹 디즈니가 러브콜을 보내고 있는 캘리포니아로 이전할 경우 6만 6,000명의 일자리 축소를 감당해야 한다)
디즈니 vs 플로리다주 사태는 현재 콘텐츠 산업이 미국에 내서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는 ‘문화 전쟁’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음을 시사한다. (문화 전쟁이란 한 국가 내에서 정치적 입장이나 사회적 계층, 소득이나 자산, 연령, 성, 종교, 인종, 지역 등이 서로 다른 집단 사이의 충돌을 가리키는 용어이다) 콘텐츠 기업은 더 이상 미적지근한 중도의 영역에 머무르기 어렵다. 낙태법 찬반, 이민자 수용 문제, LGBTQ+ 등 사회 면면이 진보와 보수로 갈려 기업들에게 어떤 정치적 입장에 설 것인지를 요구한다.
디즈니 또한 사건 초기, 플로리다에서 해당 법안이 발의될 때 적극적으로 반대 의견을 피력하지 않았다는 정황이 포착되며 진보 성향을 띈 내부 직원 및 진영으로부터 호된 비판을 받았다. 그 이후 해당 법안에 대한 입장을 뒤늦게 표명해 결국 정치적 올바름 (Political Correctness)문제 앞에서 선택할 수밖에 없는 현 콘텐츠 및 미디어 산업의 현주소를 보여주었다. 밥 차펙 CEO는 주주들에게 “정치적 양극화 속에서 어떤 입장을 정하는 것은 마치 바늘에 실을 꿰는 것만큼이나 어렵다고”고 호소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기업들은 점점 더 정치적 고아가 되고 있음”을 “공화당의 포퓰리즘과 민주당의 진보 가치 사이에서 우군을 찾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음”을 지적한다.
PC주의가 콘텐츠를 재미없게 만든다는 지적
론 드산티스 플로리다주지사는 디즈니를 향해 다음과 같은 코멘트를 남겼다. “캘리포니아에 근거지를 둔 워크(woke) 회사가 우리 주를 운영하게 놔두지 않겠다.” 워크(woke, 깨어있다)는 워크 문화(woke culture)와 일맥상통하는 용어로 “젠더 및 인종, 성소수자 차별 등의 문제에 의식을 갖고 깨어 있는 것” 정도로 정의된다. 진보 진영에서는 관련 이슈에 감수성을 지니고 행동하는, 깨어있는 상태로 풀이될 수 있다. 보수 진영은 awake, not woke란 반대어를 만들어 “깨어있되 진보 성향의 이슈엔 반대한다” 의미로 진보 진영을 비꼬는 데 사용하곤 한다.
미국에서는 워크 자본주의에 반대하는 안티 워크 자본주의 흐름이 보수 진영을 중심으로 펼쳐지고 있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은 이윤을 늘리는 것이다”라는 신자유주의 경제학자 밀턴 프리드먼이 주창한 주주 자본주의를 기조로, 기업이 현재 트렌드인 ESG 경영만을 위시해 이윤을 점차 경시하고 있음을 지적한다. 이들은 기업은 주주뿐 아니라 고객, 공급자, 직원, 지역사회 등 모든 이해관계자의 이익을 살펴야 한다는 이해관계자 자본주의에 반대하며 모두 지속 가능성을 과시하는 데만 혈안이 되어있을 뿐, 대기업들이 수익을 내는 이익 집단이 아니라 깨어 있는 유사 정부처럼 행동하고 있음을 지적하며 불만을 토로한다.
중앙선데이 기사 <런던에 웬 흑인 귀족? 지나친 PC 역풍에 콘텐트 공룡 휘청>에서도 넷플릭스의 유료 가입자 수 감소와 디즈니의 주가 하락의 원인에는 PC 주의가 있음을 지적했다. 해당 기사에서는 과도한 PC 추구 콘텐츠의 급증에 반감을 느낀 소비자들이 발걸음을 돌리고 있다고 분석한다. 그 이유는 다음의 세 가지로 나뉜다. ① 미성년자 보호 기능이 있지만 성인용 콘텐츠를 미성년 자녀가 시청할 수 있음 ② 기존의 백인 주인공을 유색인종 및 성소수자로 대체하는 식의 원작 왜곡 ③ 아시아인 캐릭터는 여전히 비중이 낮고 조연급에 머무는 선택적 PC함이 그 이유이다.
시대 변화에 발맞춰 캐릭터 설정이 변하는 점도, 원작의 오리지널리티를 숭배한 원작 팬들에게는 당혹스러울 수 있다. 애니메이션에서 하얀 피부를 지닌 인어공주나 백설공주가 실사판에서 유색인종으로 묘사될 때 즉각적으로 수용하기 어려워하는 반응도 같은 맥락이다. 특히 백설공주는 이름에서도 유래되듯, 캐릭터의 본래 속성이 하얀 피부를 지녔기에 원작의 설정까지 “과도하게” 거스르며 PC주의를 실현하려는 콘텐츠들의 행보가 일부 팬에게는 반감을 살 수 있다.
“다양성에 반대하는 게 아니라, 기존 캐릭터의 설정을 – 백인 → 유색인종, 남성 → 여성, 이성애자 → 퀴어 등 단순히 바꿔치기해 원작의 완성도를 떨어뜨려야 하냐는 게” 팬들의 원성이다. 차라리 새로운 캐릭터, 새로운 이야기의 주인공 혹은 중심인물로 설정해 별도의 작품으로 만들어 다양성을 실현하는 게 더 타당하다는 주장이다. (사실 콘텐츠의 PC함에 반대하는 반응에는 여러 층위 양상이 있다. ①원작 내 주연급 인물의 설정 변경에 대한 거부 반응 ②원작 내 조연급 혹은 배경 상황의 설정 변경에 대한 거부 반응 ③장르 내 새로운 캐릭터 등장에 대한 거부 반응 ④콘텐츠가 PC하지 않다고 받는 비판에 대한 비판, 그저 콘텐츠는 재미로 보는 것이라는 반응)
그럼에도 왜 PC함인가
디즈니와 넷플릭스의 PC 추구가 구독자 수를 얼마나 잃게 했는지에 대한 유의미한 통계치나 연구는 아직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리스크를 감수하면서도 전 세계적으로 정치적 양극화가 심해져 가고 있는 오늘날 왜 다국적 콘텐츠 기업은 PC함을 추구하고자 하는 걸까? 기존의 원작 설정까지 바꾸어가면서, 원작 팬들을 잃을 수 있다는 리스크에 노출되면서, 왜 익숙한 것을 따르는 사람의 심리를 거슬러 변화를 꾀하며 D&I(다양성과 포용성)를 기업의 핵심 가치로 두고자 하는 것일까?
상업적으로 말하자면 결국에는 새로운 소비자를 찾아 나서야 하기 때문이다. 과거 일부 1세계 중심으로만 콘텐츠를 팔던 할리우드 시장은 백인 남성 주인공이 유색 인종 악당을 무찌른다는 줄거리로 충분히 콘텐츠 수요 대상자에게 다가갈 수 있었다. 그러나 글로벌 대상의 새로운 수요층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백인/남성/비장애인 시각에서 묘사했던 것들이 누군가에게는 불쾌함으로 다가왔고 결국 더 많은 글로벌 고객을 소비자로 끌고 오기 위해 ‘인종/젠더/장애 등 다양한 스펙트럼’ 속에서 주인공을 만들어야 하는 필요가 따라오게 된 것이다.
특히 OTT가 기존의 TV 시청 행태와 다르다는 점은 이러한 다양성을 자연스레 증진할 수밖에 없는 배경이 되었다. 과거 가구당 TV 한두 개를 보유해 가족 단위로 집단 시청하는 흐름이 주류를 이루었다면 이제는 스마트폰을 보유한 개인이 하나의 OTT 계정을 가지고 개별적인 시청이 가능하다. 집단적 시청에서 개인적 시청으로 넘어가면서 개인의 취향에 맞는 보다 세분된 콘텐츠 소비가 가능해짐에 따라 자연스레 기업은 더 다양하고 세밀화된 캐릭터 및 이야기 제조가 필요해진 것이다.
사회학 연구자 최태섭 작가는 『모두를 위한 게임 취급 설명서』를 발간하며 진행한 한 인터뷰에서 게임업계 상황을 언급하며 현 콘텐츠 산업이 다양성을 추구하는 이유 또한 새로운 소비자 확보를 위한 비즈니스적 이유란 주장에 힘을 실었다. 실제로 2019년 문화체육관광부 조사 결과를 보면 게임을 이용하는 코어 집단은 청년-남성-미혼이지만 게임을 취미로 꼽는 인구의 30%는 여성이다. 최 작가는 “30%는 최소 추정치이고 게임이용자실태조사에서는 더 크게 나타난다”라고 강조한다.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PC함이 싫다고 목소리를 내는 이들이 목소리가 큰 소수일 가능성이 있다고 언급한 최 작가는 모든 남성 게이머들이 그런 입장에 동조하는지 알 수 없으며 무엇보다 게임업계는 새로운 시장을 만들어야 하므로 코어 집단의 말만 들을 수 없는 상황이라고 설명한다.
또한 기업 입장에서는 미래 소비자층 MZ세대의 성향을 적극 고려해야 할 수밖에 없다. 대학내일20대연구소에서는 화이트 불편러(2018) – 소피커(2019) – 선취력(2020) – 선한 오지랖(2021)을 거쳐 EGS 감수성에 이르기까지 MZ세대가 꾸준히 불편함을 표출해 세상을 바꿔 왔음을 분석했다. 대학내일이 정의하는 ESG 감수성이란 “MZ세대에게 생존 문제로 다가온 환경 감수성, 소외된 사람 없이 모두 공존할 수 있는 다양성 존중과 사회적 감수성을 포괄하는 단어”다. 상품을 생산하는 과정과 결과물, 밸류체인이 올바른지, 마케팅 영역에서 특정 계층을 차별하거나 부정적으로 묘사하지는 않는지를 감시한다.
사실 MZ세대는 ESG 경영이 트렌드화되면서 너무나 많은 기업이 외치는 ESG가 공허하고 기만적임을 알고 있다. 그렇기에 미래의 소비자와 끊임없이 접점을 모색하고 코어 소비자로 끌어오기 위해 콘텐츠 기업 또한 진정으로 다양성을 존중하고 다양한 인력을 핵심으로 두는 D&I를 핵심 가치이자 목표로 삼는 것이다.
넷플릭스는 2021년 <다양성/포용 보고서>를 발간해 자신들의 콘텐츠가 얼마나 다양한지, 사회구성원 모두를 반영하려고 노력했는지를 업계 최초로 밝히고자 시도했다. CJ ENM 또한 같은 해 연말 <2021 ESG 리포트: 콘텐츠와 커머스, 선한 영향력의 시작>을 발행해 콘텐츠의 선한 영향력 사례로 <슬기로운 의사생활 시즌2>, <스트리트 우먼 파이터>, 조직 내 인력 다양성 고용 현황(장애인, 외국인 비율 등)을 밝혔다.
앞서 MZ세대는 “모두” 공존할 수 있는 다양성 존중과 사회적 감수성을 지향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사실 국가별로, 계층별로, 성별, 장애 유무 등 다양하게 교차되는 정체성 속에서 어디까지 허용하고 어디까지를 “모두”라는 단어에 포괄할 수 있는지 합의하는 것 또한 큰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누군가는 장애인을 차별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하지만 난민이나 이민자를 수용하는 건 또 다른 문제라 생각할 수 있다. 차별 또한 단순히 하나의 정체성에만 고착되어 작용하는 게 아니라, 다층적이고 교차되는 형태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MZ세대가 ESG 감수성을 지향한다고 해도 그 정도와 범위와 세부 이슈에 대한 합의는 결코 도달할 수 없는, 요원해 보이는 고행길과도 같다. 그러니 오늘날과 같이 정치적 양극화와 문화 전쟁이 일상화된 현실에서 콘텐츠 산업을 한다는 건 결코 모두에게 사랑받을 수 없는, 정치적 고아이자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는 것만 같은 어려움에 직면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콘텐츠 산업은 다른 산업군과 달리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아야 하며, 끊임없는 네트워킹 속에서만 상업적 가치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얼마든지 대체 가능하며, 누군가에게는 선호인 것이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극도의 불호가 될 수 있다. PC주의에 대한 피로함을 토로하며 거부감을 표현하는 이들도 한몫한다. 사회적 자정 작용이 원활하지 않기에 콘텐츠 변화와 다양성 확보에 백래시로 응답하는 이들의 의견이 주류가 아닌 소수임에도 더욱 과대 대표화되는 현상도 벌어진다.
PC함, PC주의란 워딩이 가진 한계도 고려해야 한다. PC, 정치적 올바름은 소수자에 대한 차별적 언어표현과 사회적 통념을 지적하기 위해 사용된 단어인 동시에 무엇이 옳고 그른지에 대한 단정적인 규정 그 자체가 되기도 했다. 토론과 논의 여지가 사라진, 너무나 교조적으로 변한 정치적 성향 ~주의가 결합되면서 경직되었다. PC가 지닌 순기능과 의도에도 불구하고 동시에 피로감 그 자체가 된다는 점을 인정하고, 콘텐츠 산업 또한 기계적 PC함을 경계하면서 좀 더 유연한 방향을 찾아 나서야 하는 건 아닐까. 콘텐츠를 소비하는 관객 또한 “마음에 안 드니 안 보고 말아”식의 소비주의적 행태가 아닌, 왜 싫은지 어떤 부분에서 문제인지, 또 왜 소수자성이 접목되었을 때 거부감이 드는지 자문해야 하는 건 아닐까.
창작자들도 PC를 대할 때 경직된 채 교과서적으로 이를 따르지 말아야 하며, “이건 그저 영화야, 오락거리라고. 싫으면 소비하지 마”식의 알레르기적 반응으로 스스로를 철옹성에 수감해서는 안 된다. 어찌 되었든 콘텐츠를 만든다는 건 메시지를 기호화한 것이고, 그것이 어떻게 해석되는지는 결국 누가 수용하는지에 달라질 수밖에 없다. 그 수용체는 결코 크리에이터 혼자만 해석하는 독자적 영역이 아니기 때문이다.
최근 영화 <헤어질 결심>으로 다시 스크린을 찾은 박찬욱 감독은 2016년 영화 <아가씨>의 미국 개봉을 앞두고 CNN과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진정으로 하고 싶은 얘기가 있고 예술적으로 표현하고 싶은 게 있다면 항상 정치적 올바름의 범위 안에 머무를 필요는 없습니다. 하지만 선택을 했다면 비판을 받을 준비가 돼 있어야 합니다.” 비판받을 준비가 되어 있다는 점, PC함을 교조적으로 따르지 않되 동시에 자신의 콘텐츠에 열린 태도를 견지해야 한다는 점, 그렇게 산출된 콘텐츠가 메시지가 되어 사회 속에서 논쟁이 오갈 수 있는 세계로 만들어야 한다는 점, 그게 콘텐츠가 정치적 올바름을 대해야 하는 태도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