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는 우리에게 경험이 될 것인가, 체험이 될 것인가. 경험은 어떤 일을 일정 기간 지속하거나 여러 번 반복하는 것을 뜻한다. 반면 체험은 어떤 일을 해본다는 점에서 경험과 유사하지만, 결정적으로 그 일이 비일상적이고 이색적이며 의도적으로 기획되었다는 점에서 구별된다. 마치 우리가 연애를 연애 경험이라고 표현하지 연애 체험이라는 말은 사용하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코로나19는 경험의 성격에 가깝다. 단, 코로나19를 경험하며 탄생한 우리의 기발함(혹은 돌아가기)은 체험에 가깝다.
디자인은 코로나19 이전부터 체험의 영역에 속해 있었다. 일상에 산재한 기성품부터 예술적 특수성을 지닌 작품까지. 작가의 의도와 사용자의 체험이 결합해 이색적인 독특성과 비일상성을 불러온다. 어떤 디자인은 우리를 일상에서 벗어나게 하는 동시에 다시금 하나의 규율이 돼 우리의 일상에 안착하기까지 한다. 무한한 체험에서 유한한 경험이 되어 돌아온다. 그렇다면 시대별 디자인의 가치를 발굴하고 디자인의 다음을 제시하는 국제 디자인 어워드는 어떤 체험적 설계로 우리에게 유한한 경험을 선사할까? 특별히 코로나19로 대면할 수 없는 상황 속에서 발굴된 새로운 어워드 디자이닝(designing)은 무엇일까? 언택트 시대를 맞은 세계 3대 디자인 어워드(레드닷, iF, IDEA)를 중심으로 답을 찾아보고자 한다.
레드닷(Red Dot Design Award)
#온라인멤버십 #모든것은온라인으로
1955년 독일에서 시작된 이후 60년 이상의 전통을 자랑하는 세계 최대 디자인 어워드, 레드닷은 독일 iF, 미국 IDEA와 함께 세계 3대 디자인 어워드로 꼽힌다. 매년 제품 디자인(Product Design), 컨셉 디자인(Design Concept), 브랜드 및 커뮤니케이션 디자인(Brands & Communication Design) 3개 부문에서 수상작을 선정해 발표한다. 가장 뛰어난 한 작품에 수여하는 루미너리(Luminary) 외에도 베스트 오브 더 베스트(Best of the Best), 위너(Winner), 그리고 아너러블 멘션(Honorable mention)까지 부문별로 다양한 상이 주어진다. 레드닷 디자인 어워드 수상작들은 레드닷 디자인 뮤지엄에 전시되는 영예도 누린다.
2021년 제품 디자인 부문 최고의 영예는 컴퓨터 제조업체 Acer와 Porsche Design이 협력한 Porsche Design Acer Book RS가 수상했다. 컨셉 디자인에서는 루마니아에 기반을 둔 .lumen 회사와 DESIRO Vision이 협력한 lumen – 시각 장애인을 위한 안경이 수상했다. 현재 전 세계 4,000만 명으로 집계되는 시각장애인은 2050년까지 1억 명을 넘어설 전망이며, 기술 진보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흰 지팡이와 안내견에만 의존해 지내고 있다. 그러나 안내견마저도 2만 8,000마리에 불과해 그 수가 턱없이 부족하다. 그렇기에 lumen – 시각 장애인을 위한 안경은 기존에 흰 지팡이와 안내견에만 의존해 이동하던 시각 장애인에게 새로운 이동 수단을 제공하고자 한다. 최신 자율 주행 기술과 로봇 공학 기술을 활용한 이 디자인은 시각 장애인에게 새로운 솔루션이 될 수 있다.
올해의 브랜드에는 일본 은행 미나뱅크가 선정됐다. Hiroaki Seto가 디자인한 블랙앤화이트 톤의 인터페이스가 독특한 브랜드 정체성을 형성했으며, 은행의 전통적인 이미지를 과감히 부수었다는 평을 얻었다. 또한 디지털 영역으로 옮겨 온 은행의 새로운 비즈니스 문화 모델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 커뮤니케이션 디자인 부문 9개의 영역에서는 다음의 프로젝트들이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 일러스트레이션 시리즈 부문 24 Solar Terms & Gods
- 특별 간행물 부문 daydream – jumping he
- 키 비주얼 GAFA Online Degree Show 2020
- 오디오 스폿 부문 Gender Gaps
- 기능 설치 부문 Mesh Virus-Control Flag Partition
- 음료 포장 Milgrad
- 포스터 시리즈 MINImalism
- 서체 디자인 Signifier
- 웹사이트 부문 당신은 왜 창의적이지 않습니까?
코로나19로 인해 통상적으로 진행해 오던 Essen 전시회장에서의 대면 시상식 개최가 불가능해지자, 레드닷은 온라인 전시회를 통해 각 부문의 수상작을 발표했다. 그렇기에 앞서 언급한 수상작들은 모두 2021 온라인 전시회 웹사이트에 방문해 확인할 수 있다. 수상 사실을 알게 된 수상자들의 기쁨과 환희 순간은 볼 수 없는 것일까? 레드닷은 #reddotmoment이란 해시태그 이벤트를 열어 수상자들로부터 레드닷 상을 받던 순간을 담은 동영상을 요청했고 이를 취합해 홈페이지에 업로드 했다. 올해 23명의 국제 심의위원들 역시 화상 회의 기술을 적극 활용해 모두 비대면으로 심의를 진행했다고 한다.
그럼 수상자 및 참여자 간 네트워킹은 어떻게 진행되었을까? 레드닷은 레드닷 네트워크라는 웹사이트를 통해 2019년 10월부터 디자인 스튜디오 및 에이전시를 위한 디자인 플랫폼을 온라인으로 운영하고 있다. 전 세계 디자인 전문가, 기업가, 관리자를 한데 모았으며 각종 정보, 지식, 견해 및 네트워킹을 위한 플랫폼으로서 멤버십 제도도 운영하고 있다. 멤버십의 연회비는 200유로(한화 약 27만 원)다. 멤버들은 레드닷으로부터 브랜딩, 디자인, 제품 및 커뮤니케이션 영역과 관련된 전략 상담을 받을 수 있고, 자신의 비즈니스와 관련된 출판, 전시회 설계, 업계 최신 트렌드, 이벤트 개최, 조직 내 심층 워크숍 등 영역에서도 조언을 얻을 수 있다. 또한 원한다면 2011년부터 데이터베이스화된 레드닷 수상자 및 심사위원에게 직접 연락할 수 있는 콘택트 풀에 접근할 수도 있다.
iF (iF Design Award)
#디자인마라톤 #온라인전시회
1953년에 시작된 국제 디자인 어워드는 매년 60개국에서 10,000여 건에 달하는 출품작을 신청받고 있으며 전 세계적으로 우수한 디자인의 상징 그 자체로도 여겨진다. 독일 비영리 재단 iF International Forum Design GmbH가 주최하는 이 시상식의 초기 기획 의도는 로고 iF(Industrie Forum)에서 드러나듯 잘 설계된 산업 제품에 대중들의 관심을 집중시키는 것이었다. 그렇게 (산업 제품) 디자인이 그 자체로 지닌 중요함과 디자인이 달성할 수 있는 그 모든 것(사용자, 브랜드, 사회와 소통)을 널리 알리는 편을 지향했다. 이처럼 산업 제품이 브랜드로서 좀 더 사회와 긴밀하게 소통하기 바랐던 iF는 2017년부터는 소셜 임팩트 부문(iF Social Impact Prize)을 신설해 문제 해결자로서의 산업 제품의 역할을 부각하기 시작했다. 해당 부문에 출품하기 위해서는 UN이 제시한 지속 가능한 개발 목표(SDGs)를 충족해야 하며 불평등, 기후 위기, 차별 및 혐오 이슈에 대해 솔루션을 제시해야 한다.
매년 약 2,000명의 관객이 독일 뮌헨 BMW 벨트에서 오프라인으로 만나 수상의 밤을 기렸던 일이 무색하게 코로나19 앞에서는 iF도 비대면 방식의 새로운 전환을 모색해야만 했다. 기발한 iF답게 2021년, iF 디자인 마라톤을 새롭게 시작했다. 12일 동안 유럽-아메리카-아시아를 횡단해 말 그대로 총 57,850km의 긴 여정을 이어간 디자인 마라톤은 패널 세션, 로드쇼 피칭, 하이브리드 혹은 라이브 프로젝트 프레젠테이션 등으로 구성되었다. 다루는 주제는 지속 가능성, 디자인 교육, 이동성, 디자인 사고 및 창의성 등이었으며 지난 9월 6일 iF가 탄생한 장소인 독일 하노버에서 개막한 이후 9월 21일 중국 청두에서 최종 결승선을 통과했다. 디자인은 마치 마라톤과 같다는 명제에서 출발한 이 프로젝트는 팬데믹 시대 속 디자이너들이 각자의 비즈니스를 지속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데 목적이 있었다. 첫 여정의 시작인 하노버에 있는 프로 오피스 쇼룸에서 5명의 패널은 이 주제에 대해 심층적인 토크쇼를 진행하기도 했다. 자세한 프로그램의 구성은 iF 디자인 마라톤 웹사이트에서 확인이 가능하다.
9월 14일에는 대한민국 서울에도 들렀다. 한국디자인진흥원(KIDP)의 젊은 디자이너들이 BMW DesignWorks 전문가와 멘토-멘티로 매칭되어 두 가지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첫 번째 팀 ONAIR는 안도(Relief)를 주제로 사회적 거리두기 장기화에 따른 대중교통 이용에 대한 국민 불안감을 해소하는 디자인을 고안하고자 했다. 두 번째 팀 AXRO은 흥분(Excitement)을 주제로 운전 그 자체가 가져다주는 즐거움과 여행에서 운전이 여행객에게 얼마나 흥분을 가져다주는지를 조명했다. 디자인 마라톤 이외에도 비대면 시대 속 iF가 시도한 또 다른 혁신은 바로 iF 트렌드 전시회였다. 2020년 처음 도입된 이 디지털 전시회는 매해 iF 수상작을 통해 발견되는 디자인 트렌드의 최선의 경향성을 제시한다. 매년 빠르게 변화하는 디지털 트렌드 속에서 가장 선두를 이끄는 수상작들을 위해 새로운 트렌드를 발굴한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있다. 참고로 2020년에 발굴된 트렌드는 다음 8가지이다.
① Healthy Living ② Holistic Nature ③ Information Intelligence ④ Smart Living ⑤ Sustainability ⑥ Urban Mobility ⑦ User Experience ⑧ Working Environments.
iF 큐레이터 프랭크 지렌버그는 이 8가지 트렌드가 현재 경제와 사회 영역에서 디자인이 일궈낼 수 있는 혁신의 바로미터임을 지적하며, 일상의 영역에서 디자인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보여 준다고 언급한다. 미래에 우리는 어떻게 소통할 것인가?, 도시 속에서 취할 수 있는 최고의 이동수단 혹은 이동성은 무엇인가?, 기술 혁신이 개인의 삶과 건강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현재 내가 속한 직장(의 디자인)이 어떻게 내 생산성을 향상시킬 수 있는가?, 일과 삶의 균형은 무엇인가?와 같은 질문들이 바로 그 예이다.
IDEA
#온라인디자인콘퍼런스 #디자인의사회적역할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디자인 시상식 중 하나인 IDEA(International Design Excellence Awards)는 미국산업디자이너협회(IDSA)에서 주관하는 디자인 어워드로 디자인계의 노벨상이라 불린다. 2021년을 기준으로 41주년을 맞이하는 이 시상식은 산업 디자인의 우수성을 기리기 위해 탄생했으며 이 시상식에서 수상한 디자인은 2010년부터 미시간주에 위치한 헨리 포드 박물관에 전시되고 있다. 이 박물관은 매년 170만 명 이상의 방문객이 들르는 장소로 300년 이상의 유물들을 소장한 것으로 유명한 국가적 명소이기도 하다. IDEA 시상식은 총 20가지 세부 영역으로 나뉘며 부문마다 기본상격인 골드, 실버, 브론즈를 수여한다. 특별상으로는 다크 블루(의장상), 라이트 블루(큐레이터 선택), 레드(피플 초이스), 베스트 인 쇼(멀티컬러)가 있다.
IDEA는 2018년부터 시상식뿐 아니라, 디자인계의 다양한 의제를 발굴하고 확산하기 위한 콘퍼런스를 운영하고 있다. 국제디자인콘퍼런스(IDC, International Design Conference)에서는 산업디자이너, UX디자이너, 디자인매너저, 비주얼앤브랜드디자이너 등 다양한 영역에서 디자인과 관련된 활동을 하는 모든 이들에게 콘텐츠가 제공된다. 2021년에는 온라인 형태로 9월 22일부터 23일까지 이틀에 걸쳐 진행되었다. 크게 6개의 트랙으로 나뉘어 총 50개 이상의 섹션으로 구성되었던 올해 IDC에서는 기후(위기), 코로나19, 사회적 이슈 영역 등에서 디자인의 임팩트와 역할을 십분 강조하였다.
눈여겨볼 만한 세션은 다음과 같다. 테이블에 앉을 수 없는 사람들을 위한 디자인(트랙1, 구글 선임연구원, Melissa Ferere), 디자인을 통해 트라우마 치유(트랙2, Efecem Kutuk), 더 나은 내일을 위한 디자인(트랙3, 이돈태(삼성전자 기업디자인센터장 전무)), 좋은 아이디어가 어디에도 적용되지 않는 이유 및 해결 방법(트랙6, Kelly Custer). 이상 2021 IDC 홈페이지에서 다시보기 티켓을 구매하면 모두 확인해 볼 수 있다. 2021년 IDEA 시상식은 9월 21일 언택트 라이브로 진행되었으며, 사전에 무료로 등록한 참가자들은 줌(zoom)으로 접속해 시상식을 관람할 수 있었다. 디자인의 사회적 역할과 임팩트를 점차 더 강조하는 IDEA의 추세를 따른 올해의 수상작 몇 가지를 살펴보자.
소셜 임팩트 디자인 부문에서는 Badger Shield가 눈에 띈다. 코로나19 이후 글로벌 공급망이 붕괴됨에 따라 감염으로부터 의료진을 보호할 장비 PPE(personal protective equipment)가 부족해지자 생겨난 플랫폼이다. PPE 중 안면 보호대 디자인을 제공하는 오픈 소스 플랫폼은 400여 개에 달하는 전 세계 (안면 보호대) 제조업체의 요청을 수용하고 통일할 수 있도록 만들어 코로나19 창궐 직후 신속한 안면 보호대 생산을 견인했다. 하루에 200만 개 이상 만들어지는 안면 보호대 생산 라인을 책임지는 이 오픈 소스 플랫폼은 Delve사와 위스콘신대가 협력해 디자인했으며 그 공로를 인정받아 소셜 임팩트 부문 금상을 수상했다.
디지털 상호작용 부문에서는 Haptic이 금상을 수상했는데, 시각 장애인이 스마트폰 내 구현된 UI를 감각할 수 있도록 돕는 디자인이다. 시각 장애인은 주로 청각에 의존해 스마트폰 화면을 조작한다. 그러나 시끄러운 환경에서는 음성 읽기 서비스를 이용하기 어려우며 사생활 보호 또한 되지 않아 비효율적이다. 때에 따라서는 타인에게 소음으로 여겨질 수도 있다. Haptic은 진동 효과를 활용해 사용자가 스마트폰 내 인터페이스의 요소를 식별하고 주요 정보에 접근할 수 있도록 만든 언어 시스템을 개발했다. 이상의 주요 디자인 시상식을 통해 우리는 비대면 시대 속 디자인 시상식의 변화를 살펴볼 수 있었다. 단순히 시상식이 온라인으로 진행되었다는 형식적 차원의 변화뿐 아니라 시상 부문 및 수상작들을 통해 점차 세계 주요 어워드에서 디자인의 사회적 역할과 임팩트를 강조함을 확인할 수 있었다.
앞서 코로나19는 우리 일상에 이미 침투했으며 일상 그 자체(위드 코로나)로 기능하고 있다는 점에서 경험이라고 의미화했다. 또한 디자인은 미학적 체험을 선사한다는 이유로 체험의 영역에 속한다고 정의했다. 디자인이 왜 체험에 해당하는지 앞선 세계 3대 주요 디자인 시상식을 살펴본 후 이유를 하나 더 덧붙이고 싶다. 코로나19라는 부정적 체험이 계속해서 우리의 경험을 구성하고 에너지를 하락시킨다면, 디자인은 이 부정성의 연쇄 작용을 끊고 계속해서 해결과 긍정의 변화로 우리를 견인한다는 점에서 체험이라고 말이다.
그렇게 디자인은 우리에게 고정될 수 없는 체험으로서 기능한다.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 갈 디자인이 일으킬 사회적 변화는 고무적이며, 주요 디자인 시상식에서 호명된 디자인의 사회적 임팩트는 팬데믹 시대와 상호작용 속에서 도출된 디자인의 책무가 될 수 있다. 그러니 디자인은 결코 경험의 영역에만 머무를 수 없다. 미학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가장 일상적인 영역에 혁신을 일으킬 수 있는 디자인은 결코 고정될 수 없는, 체험 그 자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