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

모든 사람은 커뮤니티(Community, 공동체)에 속해 있다. 커뮤니티는 개인의 자아와 정체성을 형성하는 데 굉장한 영향력을 끼치며, 커뮤니티의 성격에 따라 구성원들의 삶의 양태는 확연히 달라진다. 커뮤니티의 종류 또한 매우 다양하다. 본인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태어나자마자 가입되는 부모와 가족, 그리고 국가와 같은 커뮤니티가 있는 반면, 커뮤니티의 구성원으로서 자격을 갖추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경우나 비슷한 목적을 가진 사람들끼리 자발적으로 커뮤니티를 형성하는 예도 있다.

 

과거 커뮤니티라는 단어는 공통적 특징과 성격을 지닌 하나의 집단을 지칭하는 데 국한해 사용되었다. 그러나 최근 들어 인터넷의 보급, 웹 2.0 시대가 도래함에 따라 커뮤니티의 개념 틀이 달라지게 되었다. 웹 2.0 시대의 핵심 키워드라 할 수 있는 공유(sharing), 연결(connection), 그리고 상호작용(interaction)의 중요성이 대두되면서, 현대의 커뮤니티는 특정한 목적과 관심사를 바탕으로 개인의 참여(participation)에 의해 정보가 공유되는 성격으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인터넷 사용 보편화와 함께 오프라인이 아닌 온라인에서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사람들끼리 만든 커뮤니티들도 생겨나기 시작했다. 생면부지의 사람들이라도 관심사 또는 목적이 일치할 경우 정보를 공유하고 활동에 참여함으로써 하나의 공동체를 만든다. 현대의 커뮤니티 개념 아래서는 모일 수 있는플랫폼만 존재한다면 언제든 같은 지향점을 가진 하나의 집단이 태어날 수 있다.

 

이처럼 커뮤니티가 인구통계학적으로만 의미 있는 집단의 범위를 넘어 정보의 공유와 연결을 통한 상호작용을 이루는 유기적 집단으로 변모하면서, 많은 콘텐츠 플랫폼이 사용자 커뮤니티를 형성하는 것을 최우선 과제로 삼고 있다. 플랫폼이 제공하는 콘텐츠를 하나의 공통분모로 삼아 그 분야의 매력을 느끼는 사람들을 모으는 것이다.

 

각 플랫폼의 콘텐츠를 소비하는 유저들이 그 안에서 커뮤니티를 형성하면, 자연스레 그 콘텐츠들에 대한 높은 수준의 관여(involvement)와 공유가 생겨난다. 그로 인해 플랫폼에 대한 충성도 및 서비스에 대한 애정도가 더욱더 깊어지고 유지되며 플랫폼의 존속 수명은 자연스레 길어진다. 최근 많은 콘텐츠 플랫폼이 광고 수입에 의존하지 않고 회원제 구독 서비스를 운용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그뿐 아니라 최근에는 커뮤니티를 이용해 플랫폼 충성도를 고양하는 정도를 넘어 플랫폼의 운영 모델 자체가 커뮤니티에서 생성되는 콘텐츠로부터 시작되는 경우도 존재한다.  지식공유 플랫폼 [폴인(fol:in)]에서는 링커라고 불리는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 450명들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지식 콘텐츠가 생성된다.

 

폴인에 가입한 회원들은 링커들의 살아있는 이야기를 들음으로써 다양한 분야의 트렌드를 익히고 새로운 분야에 대한 지식을 쌓는다. 링커 가운데 본인의 분야를 주도하는 구루가 있다면 그들의 선진 지식을 흡수할 수도 있다. 예를 들면, 링커 가운데 대학에서 오디오사운드를 연구한 한 회사의 CTO(최고기술책임자)가 자사의 최신 인공지능 기반 기술인 가창음성합성에 대해 설명해 주거나 국제 콩쿠르에서 우승한 바이올리니스트가 무대에서 좋은 연주를 위해 어떻게 모험을 이겨 내고 있는지 이야기를 들려주는 식이다.

살아 있는 이야기로 구성된 콘텐츠들은 자연스럽게 능동적인 모임을 이끌어 낸다. 폴인에서는 플랫폼을 통해 소개된 하나의 콘텐츠를 가지고 세미나와 스터디를 진행한다. 남성 그루밍 비즈니스를 주제로 하는 스터디에서는 한 달 동안 해당 비즈니스에 종사하는 연사들이 강연을 이끌고, 스터디에 참여한 회원들은 매주 연사들과 함께 질의응답 및 그룹 토의 시간을 가진다.

 

때로는 스터디에서 나온 질문들을 바탕으로 직접 리서치와 설문조사를 진행하며 회원들의 궁금증을 해결하기도 한다. 이런 방식의 세미나와 스터디가 매달 여러 개씩 이어진다.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이 서로의 지식을 공유하겠다는 목적으로 한 데 모인 것만으로도 콘텐츠가 끊임없이 생산되며 하나의 멋진 커뮤니티가 완성되는 것이다.

폴인 스터디에 참여하고 있는 사람들 © fol:in

때로는 그냥 모여서 서로의 이야기를 풀어내는 것만으로도 커뮤니티가 완성되는 경우도 있다. 낯선대학이라는 모임은 7명의 대학원 친구가 각자의 인맥 7명을 초청해 49명의 인원으로 시작한 직장인 네트워킹 커뮤니티다. 2019년 4기까지 오프라인 모임이 유지됐으며 현재는 코로나 때문에 비대면으로 모임이 진행되고 있다.

 

이 커뮤니티에서는 멤버 모두가 연사가 된다. 일반적인 지식을 공유하는 때도 있지만 구성원들이 삶에서 겪은 경험을 바탕으로 자신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들을 들려주는 것을 지향한다. 대관 공간을 빌려 일반적인 강연을 하는 경우도 있고, 자신들이 일하고 있는 공간으로 구성원들을 초청해서 특별한 체험을 제공하기도 한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낯선대학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콘텐츠가 된다.

 

이 모임의 기획자 백영선 씨는 낯선 사람 효과에 주목하여 이 모임을 창안했다. 존스홉킨스대학의 마크 그라노베터(Mark Granovtter)가 주창한 이 이론에 따르면 한 개인을 새로운 세상으로 이끄는 것은 자신과 친한 사람보다 낯선 사람이라고 얘기한다. 낯선 사람을 만나 새로운 세계를 접하며 신선한 자극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낯선 이에게 내 이야기를 공유하고, 낯선 이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것이 이 커뮤니티 존재 목적의 전부이지만, 낯선대학이라는 플랫폼에서만 즐길 수 있는 희귀한 콘텐츠 경험이기에 사람들은 낯선대학생이 되기를 원한다.

현대의 커뮤니티는 피동적으로 탄생하지 않는다. 대다수의 커뮤니티는 개인의 참여를 통해 능동적으로 만들어진다. 그리고 콘텐츠는 그 안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한다. 능동적인 커뮤니티가 유지되기 위해서는 그 안에서 정보, 즉 콘텐츠가 활발히 공유되어야 하며 그 콘텐츠로 인해 많은 사람이 연결되어야 한다.

 

밴 앨스타인(Van Alstyne) 보스턴대 교수는 앞으로의 플랫폼 사업은 돈이 되는 사업을 찾는 것이 아니라 어떤 가치를 창출할 것인지를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가치가 창출되는 환경에서 모종의 생태계가 탄생할 수 있으며, 이런 생태계가 구축되어야만 사람들의 지속적인 참여를 통해 네트워크가 유지될 수 있다. 이런 관점에서 플랫폼이 생산하고 유통하는 콘텐츠는 그 서비스를 이용하는 커뮤니티가 좇는 가치이자 존재 이유가 된다.

 

콘텐츠는 모든 종류의 정보이다. 그리고 많은 사람은 가치 있는 정보를 얻기 위해 기꺼이 시간을 투자할 의향이 있다. 그 때문에 양질의 콘텐츠는 하나의 커뮤니티를 이끌 수 있을 만큼 큰 힘을 가진다. 지금 당신도 유익한 정보일까 싶어 이 글을 읽고 있을 것이다. 정보 안에서 상호작용하는 필자와 당신은 적어도 이 시간만큼은 작은 커뮤니티를 이루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