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이트 모던(Tate Modern), 테이트 브리튼(Tate Britain), 테이트 리버풀(Tate Liverpool), 테이트 세인트 아이브스(Tate St Ives)…. 영국을 대표하는 테이트(Tate)는 네 개의 미술관이 네트워크처럼 연결된 현대미술 전문 재단이다. 테이트 네트워크라고 불리는 이 미술관들은 1897년 설탕 제조업체를 운영하고 있던 사업가 헨리 테이트(Henry Tate)의 아이디어에서 시작됐다. 그는 자신이 소장한 미술 작품을 기증하면서 영국 화가들의 작품을 전시할 공간이 부족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새로운 전시 공간을 만들고자 했다.
헨리 테이트는 밀뱅크 교도소(Millbank Prison)를 개조해 내셔널 갤러리(The National Gallery of British Gallery)를 개관하고 영국 작가들의 예술 작품을 한곳에 선보였다. 이후 1932년 헨리 테이트의 뜻을 기리기 위해 테이트 갤러리로 공식 명칭을 바꾸고, 1955년 내셔널 갤러리에서 완전히 독립했다. 1988년 테이트 리버풀, 1993년 테이트 세인트 아이브스, 그리고 2000년 테이트 모던이 개관하면서 비로소 테이트 네트워크가 구축되었다.
테이트 네트워크 역사의 시작: Tate Britain
테이트 네트워크의 시작은 밀뱅크 교도소 부지에 지어진 테이트 브리튼이다. 시드니 스미스(Sidney R.J. Smith)가 설계한 이곳은 고전적인 건축 양식으로도 유명하다. 건립 100주년이 되던 2001년에 증축되어 현재의 모습을 갖추었으며, 2011년 내부 재건축을 위한 테이트 브리튼 밀뱅크 프로젝트를 통해 고전적인 건축 양식과 현대의 디자인이 잘 어우러진 모습으로 거듭났다.
테이트 브리튼에 들러야 할 단 하나의 이유를 꼽는다면 영국의 국민 화가인 윌리엄 터너(William Turner)의 컬렉션을 들 수 있다. 윌리엄 터너는 빛을 탁월하게 묘사한 화가로, 눈보라의 형태를 빛의 묘사에 집중해 표현한 그림으로 유명하다. 테이트 브리튼은 윌리엄 터너 미술관이라 불릴 정도로 그의 작품을 많이 소장하고 있으며, 특히 영국 20파운드 지폐에 새겨진 윌리엄 터너의 자화상 원본을 감상할 수 있다.
터너의 컬렉션 외에도 토머스 게인즈버러(Thomas Gainsborough), 존 컨스터블(John Constable), 윌리엄 호가스(William Hogarth) 등 1500년대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영국 작가들의 작품을 다수 소장하고 있어 영국 미술의 역사를 살피기에 가장 적합하다. 전시실 벽에는 영국 예술의 500년을 연도별 도표로 살펴볼 수 있는 코너도 마련되어 있다.
윌리엄 터너의 이름을 딴 터너 상(Turner Prize) 또한 테이트 브리튼이 주관한다. 터너 상은 한 해 동안 가장 주목할 만한 전시나 미술 활동을 한 50세 미만의 영국 미술가에게 수여되는 대표적인 현대미술상으로, 1984년 제정되었다. 매년 5월에 4명의 후보 작가를 지명하고 10월부터 테이트 브리튼에서 전시를 열어 12월 초 수상자를 선정한다. 수상자는 2만 파운드의 상금과 함께 영국 최고 권위의 현대미술상을 수여하는 영예를 얻게 된다. 터너 상은 현대미술에 관한 일반 대중의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데 크게 기여했는데, 시각적 충격을 주는 예술 작품이 후보에 오르며 무엇이 예술인가? 라는 논쟁을 촉발한 전력이 있다.
런던이 사랑하고 세계인이 사랑한: Tate Modern
테이트 네트워크가 영국을 대표하기까지는 그 뒤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테이트를 지원해 온 영국 정부의 노력이 컸다. 마거릿 대처(Margaret Thatcher) 정부 시절에는 영국 산업구조에서 제조업 비율이 감소하기 시작했다. 이때 부가가치가 높은 지식 산업이 부상하면서, 대처의 뒤를 이은 토니 블레어(Tony Blair) 내각에서도 창조산업을 국가 전략산업으로 육성하기 시작한다. 2007년 집권한 고든 브라운(Gordon Brown) 총리 또한 향후 10년 비전을 제시하면서 창조산업의 영역을 문화산업 전반으로 확장했으며, 현대미술품 전시를 후원하는 기업들에게 세금 환급 혜택을 주는 등의 정책을 수립했다.
창조산업의 가장 대표적인 성공 사례가 바로 테이트 모던 설립이다. 2000년 밀레니엄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진행된 미술관 설립 계획은 미술사에 한 획을 긋는 프로젝트인 동시에 도시재생 차원에서도 많은 주목을 받았다. 미술관 부지를 구하지 못하던 차에 낙후된 지역의 버려진 화력발전소를 개조해 전시 공간을 조성한 것이 영국을 대표하는 미술관의 탄생으로 이어진 것이다.
테이트 모던을 대표하는 전시 공간은 길이 155m, 폭 23m, 높이 35m의 거대한 터빈홀(Turbine Hall)로 볼 수 있다. 외부 공간과 실내 공간의 중간 영역이기도 한 이곳은 새로운 유형의 장소 특정적 미술을 내보이기에 적합한 공간이다. 2003년에 이 공간을 활용한 올라퍼 앨리아슨(Olafur Eliasson)의 <날씨 프로젝트(The Weather Project)>가 대표적 사례로 남아 있다. 그는 200여 개의 공업용 전구로 인공 태양을 설치했는데, 당시 현대미술 역사상 최대 규모의 실내 설치 작품이었다. 사람들은 태양을 느끼듯 바닥에 누워 천장에 비친 자기 모습을 바라보기도 하고, 전시장 구석구석을 거닐며 실내의 자연을 경험했다. 현재 터빈홀은 전시가 열리지 않는 기간에는 시민의 휴식 공간으로 쓰이며, 테이트 모던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공간으로 자리매김했다.
테이트 모던은 1900년대부터 동시대 미술까지 다양한 실험미술 장르를 아우르는 전시를 선보인다. 일반적인 미술관이 시대나 사조에 의해 소장품을 수집하고 분류한다면, 테이트 모던은 20세기를 아우르는 미술품을 네 가지 주제―풍경(사건∙환경), 정물(오브제∙실제의 삶), 인체(행위∙몸), 역사(기억∙사회)―로 분류하는 것이 특징이다. 이는 기존의 접근 방식과 다르지만, 현대미술 작품의 분류 체계로서 적합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상설 전시로는 아니쉬 카푸어(Anish Kapoor), 바넷 뉴먼(Banett Newman), 프란시스 베이컨(Francias Bacon), 루치오 폰타나(Loucio Fontana), 앤디 워홀(Andy Warhol) 등이 있다.
당신 곁에 있는 예술: Tate Liverpool
런던 이외의 지역에 위치한 가장 큰 현대미술관으로는 테이트 리버풀이 있다. 리버풀은 영국 북서부 머지사이드주의 도시로, 산업혁명 때 영국 제1의 항만도시로 성장한 곳이다. 록 밴드 비틀즈(The Beatles)가 결성된 곳이자 축구팀 리버풀 FC와 에버턴 FC의 연고지로도 유명하다. 화물 창고를 개조한 테이트 리버풀은 처음 건축 설계가 시도될 때만 해도 모험으로 여겨졌다. 벽돌 외형의 화물창고가 미술관과 어울리지 않는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하지만 1980년대 리버풀 혁신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7층 창고 건물이 5층 현대미술관으로 탈바꿈할 수 있었고, 2007년에는 입구를 새로 단장해 출입구부터 독특한 느낌을 자아내게 되었다.
테이트 리버풀은 도시가 지닌 브랜드에 걸맞게 대중적이고 상업적인 작품들을 주로 전시한다. 기획 전시는 20세기와 21세기 작품 위주이며, 소장품 전시로는 마르셀 뒤샹(Marcel Duchamp), 사라 루카스(Sarah Lucas), 윌리엄 브레이크(William Blake), L.S. 로리(L. S. Lowry) 등의 작품이 있다. 동시대 미술관이 단순히 소장품을 수집하고 전시하는 역할을 하는 데 그치지 않고 사람들의 전반적인 여가 활동에 관여하는 만큼, 테이트 리버풀의 기획은 사람들에게 친근함을 선사한다.
All About 도시재생: Tate St Ives
마지막으로 테이트 세인트 아이브스는 콘월주의 세인트 아이브스에 위치한 미술관이다. 폐쇄된 가스공장을 개조한 이곳은 콘월 지역의 랜드마크가 되어 많은 방문객의 사랑을 받고 있다. 테이트 네트워크에 속한 다른 미술관들과 마찬가지로 이곳 또한 도시재생의 뛰어난 사례로 꼽힌다. 윤기 나는 재질의 원형 건물은 철거된 가스 홀더의 바닥을 연상시키고, 건물 중심부의 테라스는 재생 건축을 은유한다. 이처럼 도시재생은 테이트의 정체성을 이루면서 더 많은 사람에게 편의를 제공하고 있다.
테이트 세인트 아이브스는 시민에게 문화 향유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개관한 만큼, 영국 작가들의 순회 전시가 자주 진행되는 편이다. 순회 전시는 지역을 바꿔 가며 여러 곳에서 열리는 전시를 말한다. 현재는 영국의 조각가인 바바라 햅워스(Barbara Hepworth)의 전시가 열리고 있다. 햅워스는 웨이크필드에서 태어났으나 세인트 아이브스로 이주해 이곳에서 평생 작품 활동을 한 만큼, 세인트 아이브스 지역을 찾는 사람들에게 다양한 영감을 주고 있다.
테이트 네트워크는 16세기 영국 미술 작품부터 동시대 미술 작품에 이르기까지 7만여 점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 현재도 계속해서 규모를 확장 중인, 전 세계 몇 안 되는 미술관 중 한 곳이기도 하다. 특히 영국 미술의 부활이라는 측면에서 테이트 네트워크가 큰 역할을 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1990년대 영국을 중심으로 활동하던 젊은 미술가들인 영 브리티시 아티스트(Young British Artists, YBAs)를 비롯해 최근에는 전위적인 현대미술가들의 후원과 홍보 역할까지 수행하면서 고전 미술부터 동시대 미술까지 아우르는 하나의 네트워크로 기능하고 있다.
그뿐 아니라 테이트 네트워크는 도시재생 측면에서도 좋은 선례를 남겼다. 밀뱅크 빌딩을 증축한 테이트 브리튼, 폐화물 창고를 활용한 테이트 리버풀, 가스 공장 부지에 설립한 테이트 세인트 아이브즈, 뱅크사이드 발전소를 수용한 테이트 모던 등 각각의 분관은 만들어지는 과정에서부터 스토리를 담고 있으며, 이러한 스토리는 도시재생이라는 테이트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데 커다란 역할을 수행했다. 이로써 테이트는 영국의 대표적인 미술관으로 자리매김했을 뿐만 아니라 영국의 미술을 전 세계적으로 알리는 데 기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