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

3 Dots

▪ 한국공예는 전통 기법을 재해석하고 확장하며, 국내외 예술 시장에서 스펙트럼을 다양하게 넓혀가고 있다.

▪ 상대적으로 한국공예에 관심이 적었던 국내 젊은 층의 관심이 최근 높아지며 힙트래디션(Hip Tradition) 열풍이 일고 있다.

▪ 한국공예의 가치가 유행과 소비에 매몰되지 않고 국가와 세대에 관계 없이 계속 사랑받고 전승되기 위해서는 지속적인 문제의식과 관심이 필요하다.

 


 

한국공예는 뛰어난 기술과 특유의 미학으로 오랫동안 사랑받아 왔다. 한국공예 작가들은 전 세계를 무대로 활발히 활동하고, 그들의 전시와 작품은 꾸준히 주목받아 왔다. 해외 예술품 수집가들은 달항아리, 나전칠기, 청자 등 수려한 한국의 미에 열광한다. 고급 선물로 실용성을 겸비한 전통 공예품을 건네는 경우도 흔하다. 그뿐 아니다. 공예 체험 공방에도 관광객들의 예약이 늘 꽉 차 있다. 일부는 한국 전통 공예 기술과 디자인을 정식으로 배우고 싶어 하기도 한다. 한류 열풍이 불면서 콘텐츠를 통해 노출되는 한국 전통 공예품에 대한 관심도도 높아지는 추세다.

 

이처럼 국내보다 해외에서 한국공예에 대한 반응이 더 뜨거운 요즘이다. 그 가치에 의문을 품는 경우는 드물지만 내수 시장에서도 한국공예가 그만큼 대중성이 있냐는 질문엔 쉽게 답하기 어렵다. 그 누구보다 빠르게 트렌드를 좇는 청년층에게는 지나치게 예스럽고 무겁거나 초고가 예술품의 이미지가 강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몇 년 사이 한국공예를 향한 청년들의 시선이 서서히 변하고 있다. 특별히 한국공예에 대한 젊은 층의 관심이 높아지며 《공예주간》과 《공예트렌드페어》 등 관련 행사 참여 수가 매년 증가하고, 한국 전통 공예를 대중적으로 풀어낸 각종 굿즈 구매와 화제성이 압도적으로 늘어났다.

 

이렇듯 한국공예는 작품성과 국내외 시장 모든 측면에서 지속적인 확장을 이뤄나가는 중이다. 그러나 한국공예의 안정적인 국내 대중성 확보, 해외 시장 진출과 관련해 고민할 지점은 여전히 많이 남아있다. 어떻게 하면 한국공예가 국가와 세대를 넘어 유의미한 대중성을 확보할 수 있을까?

《2023 밀라노 한국공예전》에서 <공예의 변주(Shift Craft)>를 즐기는 관람객 ⓒ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
《2023 밀라노 한국공예전》에서 <공예의 변주(Shift Craft)>를 즐기는 관람객 ⓒ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

정체성의 확장, 시장의 확장: 전통과 변주, 해외 시장 진출과 개척

지난해 《밀라노 디자인 위크》에서 열린 《2023 밀라노 한국공예전》은 역대 최고급으로 긍정적인 반응을 얻으며 실제적인 해외 시장 진출 목표를 달성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펠트리넬리에서 <공예의 변주(Shift Craft)>라는 주제로 열린 메인 전시에는 한국 작가 20명의 65작품이 올랐다. 도자, 금속, 나무, 유리, 옻칠, 낙화 등 다양한 분야에서 정통성에 응용과 변주를 더한 개성 넘치는 작품들은 그 자체로 한국공예의 정의 자체를 확장했다. 당연히 전 세계 문화예술계의 찬사를 받을 뿐 아니라, 인테르니(Interni)와 도무스(Domus) 등 각종 유명 디자인 매거진이 꼽은 주요 전시에도 당당히 이름을 올렸다.

 

기존의 한국공예가 지닌 고루한 이미지를 깬 과감한 시도는 해외 진출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2023 밀라노 한국공예전》 구병준 총감독은 작가들의 해외 시장 진출에 초점을 맞춰 전시 자체가 실제 비즈니스로 연결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었다고 밝힌 바 있다. 한국공예의 아름다움은 익히 알려졌으니 이제는 구체적인 판로를 짜겠다는 것이었다. 구병준 감독은 그에 맞춰 섹션을 구성하고 비즈니스 관계자들을 적극 초청했다. 특히 로산나 올란디(Rossana Orlandi) 로갤러리에서 열린 서브 전시에서는 신진 작가들의 작품 판매가 중점적으로 이루어졌다. 이러한 노력 덕분에 해외 바이어들이 공예 작품에 주목하는 것을 넘어 실제 거래를 제시하는 경우가 더 늘어났다.

 

영국 대표 공예 행사인 《2023 런던공예주간》에서 열린 《라이트 오브 위빙(Light of Weaving: Labour-Hand-Hours)》 전 역시 도자기, 유리, 말총, 직물, 천연 옻칠 등 전통적인 기법을 변주하고 확장한 한국공예 작품들로 주목을 받았다. 그중 가장 화제가 된 것은 2021 청주국제공예공모전 대상, 2022 로에베 재단 공예상 대상을 받은 정다혜 작가의 작품이었다. 갓에 사용된 말총 기법을 토기 형태와 합쳐 현대적으로 해석한 정다혜 작가의 말총 오브제 시리즈는 전통 기술의 창의적인 재해석과 확장을 이뤄냈다는 평을 받았다. 로에베 재단 공예상 대상 수상자 중 최초로 영국에서 개인전을 열기도 한 정다혜 작가의 작품은 전시가 종료되기도 전에 대부분의 작품이 팔리며 인기를 실감하게 만들었다.

 

《2023 런던공예주간》에서 선보인 또 다른 특별전 <달항아리; 말하지 않은 이야기(Moon Jar; The Untold Story)>는 전 세계 뮤지엄과 컬렉터들에게 가장 인기 많은 달항아리에 집중한 전시를 선보였다. 달항아리의 전통 제작 기법에 작가의 독자적인 해석을 더해 형태, 재료, 색감을 자유롭게 표현한 작품들은 달항아리의 정체성을 한층 더 확장했다. 한국 현대 도예의 지평을 연 이 특별전은 한국공예에 대한 관심이 한창 높아진 영국 시장 진출에 신호탄을 쏘아 올린 셈이다.

보그 코리아 표지를 장식한 정다혜 작가의 <말총 오브제> ⓒ Vogue Korea
《두바이 다운타운 디자인》 행사 모습 ⓒ BRABBU

이외에도 한국공예는 상대적으로 알려지지 않은 새로운 해외 시장도 눈에 담고 있다. 중동 지역 최대 규모 《두바이 디자인 위크》의 디자인·공예 분야 박람회인 《두바이 다운타운 디자인》에는 총 6명의 한국 작가가 26점의 작품과 함께 참가했다. 달항아리, 유리, 옻칠, 금속, 도자 등 다양한 작품들이 호평을 받았다. 지난해에는 주요 아트 페어에서 이미 주목받은 작가들을 중심으로 비교적 적은 수의 작품을 선보였으나 향후 더 다양한 한국 작가의 작품을 적극적으로 선보일 계획이라고 한다. 2024년에는 아랍에미리트 K-브랜드 해외홍보관에 한국공예 상설전시관이 생길 예정이다. 중동은 여느 국가 못지않게 예술품 구매가 활발하게 이루어지는 지역으로, 한국공예가 목표로 삼는 또 다른 시장이기 때문이다.

 

이렇듯 한국공예는 전통의 계승과 변주, 해외 시장 진출과 판로 개척으로 그 스펙트럼을 확장하며 전 세계 주요 아트 페어에서 뛰어난 성과를 얻고 있다.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에 따라 전시 참여뿐 아니라 해외 시장 진출과 관련된 교육과 상담도 함께 이루어져 앞으로 더 좋은 소식이 많이 들려올 것으로 기대된다.

 

그러나 여전히 고민할 지점은 남아있다. 한류 열풍이나 소수의 유명 작가, 정부의 지원에 기대지 않는 독자적이고 장기적인 관점에서 국내외 시장의 저변을 다져가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전 세계 무대로 나아가기 전에 먼저 국내 대중을 목표로 삼아야 한다는 필요성도 제기되고 있다. 한국공예 기술과 미학의 기반이 되는 전통, 문화, 역사의 보전과 발전은 결국 국내 대중의 관심도와 밀접한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뮷즈에서 선보인 반가사유상 미니어처 ⓒ 국립중앙박물관 뮷즈
뮷즈의 자개소반 무선 충전기 ⓒ 국립중앙박물관 뮷즈

힙트래디션의 등장, 가치와 소비 사이 대중성이라는 과제

앞서 살폈듯 현대 한국공예는 이전의 고착화된 이미지를 벗고 스스로 탈피를 거듭하며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그러나 한국 공예품 구매는 여전히 해외 시장과 소수의 컬렉터에게만 치중되어 있다. 특히 국내 대중, 그중에서도 청년층의 관심도는 아직 많이 낮다. 한국공예가 지닌 전형적인 이미지 때문이기도 하고, 아트페어나 갤러리를 장식한 초고가 작품들이 여전히 대중성과 거리가 먼 컬렉터의 전유물처럼 여겨지기 때문이다. 이처럼 국내에서 한국 공예품은 꽤 오랫동안 중장년층 이상의 선호도가 높은 물건 또는 격식을 차린 선물, 외국 손님들을 위한 특수 선물이라는 이미지를 벗어나지 못했다. 그러나 최근 2~3년 사이 커다란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2021년, 국립중앙박물관 뮤지엄숍 뮷즈(MU:DS)에서 선보인 고려청자 이어폰 케이스와 반가사유상 미니어처는 MZ세대 사이에서 큰 화제를 불러일으키며 이례적으로 품절 대란을 일으켰다. 이후 국립중앙박물관은 문화재를 감각적인 실생활 용품으로 재해석하고 한국 전통 문양과 공예 기술을 대중화한 다양한 굿즈를 꾸준히 내놓았다. 인센스를 겸한 파스텔 톤의 금동대향로 미니어처나 자개소반 모양의 무선 충전기 등 젊은 세대를 공략한 제품들은 SNS에서 꾸준히 MZ세대의 픽을 받고 있다. 이 유행 덕분에 전통문화를 힙하게 즐긴다는 힙트래디션(Hip Tradition)이라는 단어까지 등장했다.

 

2023년 국립중앙박물관의 관람객 수는 천만 명을, 뮷즈의 매출액은 149억 원을 넘었다. 전통문화 상품 매출은 처음으로 110억 원을 돌파했다. 문구, 패션, 생활, 인테리어, 주방, 디지털, 취미, 도서 등 카테고리 또한 수요에 따라 점점 더 넓어지고 있다. 이러한 변화를 끌어낸 주요 고객은 20~30대다. 2024년 초입부터 덕수궁의 역사와 이야기를 담은 굿즈가 또다시 완판 신화를 기록하며 힙트래디션의 명성을 이어가는 중이다. 덕분에 관련 굿즈와 공예품을 만드는 업체와 스타트업들이 다수 부상하기도 했다. 외국인들이 주를 이루던 기존의 전통 행사나 전시에 대한 국내 젊은 층의 관심도도 높아졌으며, 전통 공예와 관련된 각종 취미 및 전문 교육 역시 활기를 띠고 있다.

 

이처럼 국내 젊은 층이 한국 공예품을 적극적으로 생산하고 구입하며 대중화에 앞장서는 움직임은 고무적이긴 하지만 일각에서는 단순히 이미지 소비에만 치중한다는 지적도 있다. 실제로 한국 전통 공예 기술, 그 기법이 품은 역사와 문화, 독자적인 미학 등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상태에서 굿즈를 무분별하게 생산하고 소비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대중의 선호도, 대량 생산과 소비에만 기댔을 때의 폐해다. 이에 대한 분명한 문제의식을 느끼고 한국공예에 대한 진지한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는 반성의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그럼에도 아직까지는 긍정적인 영향이 더 크다. 국립중앙박물관은 단순히 제품만 홍보하는 것이 아닌 굿즈의 원천유물을 명시하며, 그 역사·문화적 의미와 사용 기법, 문양 등에 대한 자세한 정보를 전달한다. 전시와 연관해 내놓은 트렌디한 굿즈는 전시 자체에 대한 대중의 관심도를 높이고, 실제 방문으로까지 이어지게 만든다. 정기적으로 열리는 뮷즈 공모전은 문화재를 활용한 실용적이면서도 창의적인 작품이 계속 나올 수 있는 기반이 된다. 굿즈 제작에 참여한 소규모 기업과 작가들이 지속적인 활동을 통해 수익을 창출하고 직업을 이어간다는 장점도 있다.

 

이외에도 《공예주간》, 《공예트렌드페어》, 《청주공예비엔날레》 등 국내 대규모 공예 행사에서도 예술과 일상, 전통과 트렌드를 아우르는 다양한 시도가 이루어지고 있다. 《2023 공예주간》은 핫플로 유명한 신사하우스, 문화역서울284, 연남방앗간 등에서 MZ세대를 겨냥한 키치하고 감각적이며 전통미와 트렌디함이 공존하는 다양한 작품을 선보였다.

 

《2023 공예트렌드페어》는 전시보다 유통 박람회 역할에 초점을 맞추고, 한국의 미학을 살린 전통 공예품들이 바이어뿐 아니라 대중의 적극적인 소비를 끌어낼 수 있도록 다채로운 프로그램을 준비했다. 행사의 관람객 수와 거래 규모 역시 이전 연도에 비해 큰 폭 증가했다. 다양한 국내 공예 행사의 방향성이 대중의 관심도와 같은 선상으로 나아간다는 증거다.

 

이처럼 힙트래디션은 일시적인 게 아닌, 계속 이어갈 하나의 문화로서 자리 잡고 있다. 전통 예술과 기술, 역사, 문화의 가치를 알리는 동시에 실용성을 겸비하고, 최근 새롭게 부상한 친환경과 자원 재순환 이슈까지 아우르는 공예품이 계속 등장하며 대중을 폭넓게 품고 있다. 그럼에도 대량 생산과 환경 파괴, 역사의식 부족, 과도한 이미지 소비 등 눈부신 성공 밑에 깔린 해결 과제들은 여전히 많다. 그러나 이를 해결하려는 노력이 수반된다면, 현재의 힙트래디션 동향은 한국공예의 국내 대중화와 해외 진출에 모두 긍정적인 영향을 줄 것이다.

뮷즈가 서울여성공예센터 더아리움과의 협업으로 선보인 여성 공예가들의 작품 ⓒ 국립중앙박물관 뮷즈
《2023 공예트렌드페어》 모습 ⓒ 세계일보

국가와 세대의 경계를 넘어 펼쳐질 한국공예를 위해

《일본 전통 공예 주간(Japan Traditional Crafts Week)》은 도쿄 시내 상점 곳곳에서 일본 전통 공예품을 만날 수 있는 행사다. 독특한 점은 관광객이나 일본의 청년층뿐 아니라 중장년층, 노년층 모두가 자신이 좋아하는 공예품을 만나기 위해 오픈런을 즐기며 적극적으로 참여한다는 점이다. 한국공예에 젊은 층의 관심이 쏠리며 새로운 소비자로 MZ세대가 떠오르고 있지만, 한국 공예품에 오랫동안 관심을 쏟아온 중장년층 이상의 소비자의 가치 역시 잊어서는 안 된다. 전 세대가 함께 즐길 수 있는 행사와 프로그램을 기획하는 일이 그래서 중요하다. 전통 공예 기술을 이어가고 있는 기술자들 역시 대부분 기성세대라는 점 또한 기억해야 한다. 진정한 대중성이란 꼭 하나의 세대만을 겨냥하지 않기 때문이다.

 

한국공예에 대한 해외 시장의 수요가 여전히 높은 상황에서 그들에게 어떠한 역사, 문화, 전통 기술에 대한 이해와 설명 없이 단순히 이국적인 이미지만을 판매하는 행위도 주의해야 한다. 실제로 고증을 거치지 않거나 의미를 왜곡해 공예품을 제작하고 판매하며 이를 무분별하게 소비하는 것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있다. 이럴 경우 수입은 늘지언정 한국공예에 장기적인 이득이 되지 못한다. 역사의식과 한국공예에 대한 정확한 인식을 위해 개인적 노력과 제도적 방안 마련이 동시에 이루어져야 하는 이유다.

 

한국 전통 공예의 맥을 이어갈 젊은 작가들이 부족하다는 점도 앞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다. 인기는 높아졌지만 단순한 소비와 관심, 취미를 넘어 역사와 미학을 공부하고 전통 기술을 익히고 발전시킬 젊은 세대는 정작 부족하다. 그러나 한국공예의 미학은 공장식 대량 생산이 아닌 수작업의 가치에 기반한다. 대중화를 위한 디자인과 굿즈 제작이 현재 가장 핫하다고 할지라도 그 중심에서 한국 전통 공예 기술 자체가 세대를 넘어 전수되지 않는다면 사그라드는 건 시간문제다. 그렇기에 시장 판로를 개척하는 것 이상으로 한국공예가 가진 기술과 미학을 제대로 계승하는 동시에 작가의 개성을 더하는 시도와 연구에도 역시 전폭적인 지원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