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

2018년도 국내 3대 비엔날레의 호평과 비평 사이, 

다음을 기약하며 

 

비엔날레는 2년마다 열리는 국제현대미술전시회를 이른다. 1895년 이탈리아 베니스에서 황제의 은혼식을 기념하는 국제 미술전람회 개최를 계기로 시작되었으며, ‘2년마다’라는 의미를 가진 이탈리아어 비엔날레(biennale)가 고유명사로 자리잡아 통용되어 왔다.

이후 미국 휘트니 비엔날레(1932년), 브라질 상파울루 비엔날레(1951년) 등이 창설되면서 확산되던 비엔날레 전시가 한국에 창설된 건 1995년이다. 세계화를 외치던 김영삼 정부의 기조에 더해 광주의 문화예술 전통과 5∙18 광주민주항쟁 이후 국제사회 속에 널리 알려지기 시작한 광주 민주정신을 새로운 문화적 가치로 승화하기 위한 ‘광주비엔날레’가 창설된 것이다. 1995년부터 9월 20일부터 11월 20일까지 광주광역시 중외공원 전시관 등에서 세계 50개국 90여 작가의 작품을 전시한 제1회 광주비엔날레는 약 160만 명의 관람객이 다녀갔다.

 

지난 9월, 광주와 부산, 서울에서 열리는 한국의 3대 비엔날레가 일제히 개막했다. 이들 전시는 개막 당시 새로운 시도를 과감하게 수용한 혁신으로 주목받았지만, 폐막이 가까워올수록 호평과 비평이 엇갈리는 상황이다. 각각의 비엔날레 전시는 무엇을 새롭게 시도했고, 그럼에도 무엇을 놓쳤던 것일까?

광주비엔날레

주제: 상상된 경계들(Imagined Borders)

기간: 2018년 9월 7일~11월 11일

장소: 비엔날레 전시관, 국립아시아문화전당, 광주광역시 일원

©광주비엔날레 페이스북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역사를 자랑하는 광주비엔날레는 올해로 12회를 맞았다. 2018년 제12회 광주비엔날레의 주제는 ‘상상된 경계들(Imagined Borders)’이다. 모든 공동체는 상상의 산물이라고 주장하는 베네딕트 앤더슨의 저서 <상상된 공동체>에서 개념을 차용했다.

 

해방 이래 개최된 역대 미술 행사 중 최대 규모를 자랑한다는 제12회 광주비엔날레는 기존의 단일 총감독제 대신 다수 큐레이터제를 시행하면서 주목받았다. 대표이사를 겸하는 김선정 총괄 큐레이터와 더불어 영입된 11명의 큐레이터는 7개의 전시를 통해 지정학적 경계를 넘어 정치, 경제, 감정, 세대 간 복잡해지면서도 눈에 보이지 않게 굳건해지고 있는 경계에 대해 이야기한다. 출신지와 주 활동 무대가 다른 11명의 큐레이터가 기획한 7개의 전시 각각은 다채로운 볼거리를 선사하지만, 동시에 하나의 큰 주제로 수렴되지 않아 관객이 길을 잃게 한다는 비평을 받기도 했다.

광주비엔날레 전시관과 국립아시아문화전당 문화창조원에서 펼쳐진 주 전시 이외에도 ‘GB커미션’과 해외 유수 미술관이 자국의 신진 작가와 지역 작가의 작품을 광주에서 감상할 수 있도록 전시하는 ‘파빌리온 프로젝트’가 주목받았다. 특히 GB 커미션은 광주라는 장소의 특정성에 주목한 프로젝트로, 국외 유명 작가들이 빛과 거울 등의 감성적 소재와 설치 표현 방식을 통해 광주의 상처와 기억을 되살린 장소특정적 설치미술 전시다. 5∙18 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의 감시 아래 고문 등으로 다친 시민들을 대상으로 치료와 조사가 이뤄졌던 옛 국군광주병원에서 진행되었다.

부산비엔날레

주제: 비록 떨어져 있어도

기간: 2018.09.08~11.11

장소: 부산현대미술관, 구 한국은행 부산본부

반면, 부산에서는 작가 수를 줄이는 대신 집중도를 높이는 선택을 했다. 34개국 66명(팀)이 참여한 2018 부산비엔날레의 주제는 ‘비록 떨어져 있어도’로 분열된 영토의 모습을 작품으로 보였다. 전쟁이나 식민지화, 적대적 외교관계로 인한 분열이 비단 영토뿐만 아니라 사람의 심령에도 작용한다는 생각을 기반으로 전시는 지구상의 수많은 분할된 영토를 심리적 차원으로 재구성한다. 이는 관람객이 정치적, 경제적, 군사적 권력이 어떻게 이 세계를 작금의 양태로 만들고 장악하게 되었는지 자문하고, 더 나아가 그 과정 속에서 분열과 분할이 한층 강화되거나 약화되었는지 고민하도록 요구한다.

부산비엔날레는 지역 미술인들의 자발적인 행동으로 창설되었다는 점에서 다른 비엔날레와의 차별성을 가진다. 본래 부산에는 부산청년비엔날레(1981년 창설)와 환경미술제인 바다미술제(1987년 창설), 그리고 부산야외조각심포지엄(1991년 창설) 등 세 종류의 전시가 각기 진행되고 있었다. 그러던 것을 합쳐 1998년 부산국제아트페스티벌(PICAF)이란 이름으로 개최했고, 2001년부터는 그 명칭을 부산비엔날레로 바꾸면서 2002년 동명의 이름으로 전시가 개최되었다. 현대미술전, 조각심포지엄, 바다미술제 등 종류가 다른 세 전시를 합한 비엔날레는 부산비엔날레가 세계 최초다.

 

을숙도에 새롭게 지어진 부산현대미술관 이외에도 구 한국은행 부산본부를 2018 부산비엔날레의 전시 장소로 포함했다는 점도 주목받았다. 부산비엔날레 주최측은 과거부터 화이트큐브를 벗어나 지역의 장소를 전시공간으로 활용해왔다. 2010년 제5회에는 부산요트경기장을, 2012년 제6회에는 부산진역사를, 2014년 제7회와 2016년 제8회에는 고려제강 수영공장(현. F1963)을 전시 공간으로 채택함으로써 잊힌 부산의 명소들을 재조명하고 도시를 재생하는 데 힘써 온 것이다. 특히 고려제강 수영공장의 경우 두 회의 비엔날레를 연달아 개최하며 부산 지역의 대표 명소로 자리잡는 데 성공한 전력이 있다.

©artasiapacific

올해 전시가 진행된 구 한국은행 부산본부 또한 부산광역시 문화재자료 제70호로 근대적 조형이 돋보이는 건물이다. 부산현대미술관에서는 과거 냉전 시대를 비롯해 오늘날 다시 냉전 상태로 회귀하고 있는 기이한 상황을 중점적으로 살펴보았다면, 구 한국은행 부산본부에서는 현재 우리 사회의 정황을 과학소설의 관점에서 바라보고, 이를 토대로 구상한 대안적 미래지향 시나리오를 펼쳤다.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

주제: 좋은 삶 (Eu Zên)

기간: 2018년 9월 6일~11월 18일

장소: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본관

©서울미디어시티비에날레 페이스북

2000년 개막한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구. SEMA 비엔날레 <미디어시티서울>)는 현대미술 중에서도 미디어아트를 중점적으로 다룬다. 1회 총감독인 송미숙에 따르면 명칭에 사용되는 ‘미디어’는 의사소통의 수단이자 매체로, 예술의 표현 매체라는 뜻에 더해 동북아시아의 전략 허브이자 다리로서 서울을 가리키기도 하며, 동시에 미디어 아트와 연관된 미디어 테크놀로지 등을 복합적으로 가리킨다.

 

올해로 10회를 맞은 미디어시티서울은 그 이름을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로 바꾸며 쇄신을 꾀했다. 기존의 1인 감독 체제를 벗어나 ‘콜렉티브’라고 불리는 공동 기획 형식의 체제를 꾸린 것이다.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장 홍기빈, 더북소사이어티대표 임경용, 독립큐레이터 김장언, 무용평론가 김남수 등 전혀 다른 전문가들로 꾸려진 디렉토리얼 콜렉티브는 대화를 통해 공통된 관심사를 이끌어내는 등 다중지성 공론의 장을 만들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그들이 말하는 다중지성에는 전시기획자뿐만 아니라 전시장을 찾은 모든 관람객들이 포함된다. 제10회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의 주제 ‘좋은 삶’은 고대 그리스어 ‘Eu Zên’으로 옮겨진다. 전시 주제가 옛 그리스 아테네 사람들의 질문 ‘좋은 삶이란 무엇인가’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이다. 또한 미술관 1층에는 공론의 장인 아고라(Agora)가 꾸려졌다. 49개 프로그램이 71회 이상 진행되는 아고라에서는 관객이 프로그램에 참여하며 생각을 공유하고 소통하는 것을 의도했다. 즉,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에서는 단순한 작품 전시를 넘어 관객을 전시의 장으로 끌어들였으며, 이를 통해 비엔날레에 초대된 모두가 ‘유기적 연대’를 만들어내기를 기원했다.

장소-특정적(site-specifity) 전시의 필요성

 

앞에서 열거한 세 비엔날레 외에도 창원조각비엔날레, 대구사진비엔날레, 청주공예비엔날레 등 각 지자체에서는 다양한 형태의 비엔날레를 창설하고 유지하기 위한 노력을 펼치고 있다. 그러나 그 수가 늘어나는 현상과 반비례하게 비엔날레에 대한 실질적 관심은 하락하고 있는 상황이다. 제1회 광주비엔날레 관람객 수가 160만 명이었던 것에 비해 2018 광주비엔날레 관람객 수는 32만 명, 부산비엔날레의 관람객 수는 30만 명에 그쳤다. 과거처럼 공무원이나 학생들이 방문하도록 공문을 보내는 소위 ‘동원령’이 없어진 것을 고려하더라도 크게 감소한 수치다.

 

광주/부산/서울미디어시티 비엔날레가 폐막한 지금, 전문가들은 하락한 관심의 원인을 벼락치기 준비로 인한 비슷한 전시 구성에서 찾는다. 전시감독 구성과 기구 재편 등으로 개막을 7~8개월 정도 남겼을 때 기획전의 주제가 정해지다 보니 세계 미술의 새 화두를 제시하거나 비엔날레의 정체성을 묻는 질문은 묻힐 수밖에 없다는 의견이다. 또, 단기간에 전시 덩치를 키우기 위한 집단기획진 시스템은 주제에 대한 다채로운 소재나 표현 방식을 담아낼 수 있지만, 전체 전시의 집중도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범세계적인 화두를 타 비엔날레에서도 볼 수 있는 방식으로 풀어낸, 유행의 답습이라는 평가도 피하지 못했다. 1995년 개최된 뮌스터 조각 프로젝트 이후 비엔날레는 각국의 차별화된 행사를 통해 개최국만의 독자적인 비엔날레를 구축하고자 하는 시도를 계속해왔다. 특히 글로컬리즘(glocalism)을 통해 지역의 특수성을 통한 세계화를 추구하며, 궁극적으로는 과거 서구 미술과의 수직 관계를 벗어나 자국 문화를 보존하고 발전시키며 이로부터 국제 담론을 형성하도록 만드는 것을 비엔날레의 역할로 인식해 왔다.

 

*글로컬리즘(glocalism): 세계통합주의(globalism)와 지역중심주의(localism)가 결합해 탄생한 새로운 개념. 세계통합주의와 지역중심주의, 동질화와 이질화 등 이분법적 대립에 머무르지 않고, 양쪽의 장점을 서로 인정하고 받아들이면서 새로운 질서 체계로 나아가는 것을 의미한다.

광주/부산/서울 비엔날레에서도 장소-특정적 전시는 호평을 받았다는 사실을 다시금 상기해볼 필요가 있다. 광주비엔날레에서는 지역의 역사적 맥락을 활용해 공간을 선정하고 기획한 전시인 ‘GB커미션’이 부산에서는 그동안 주목받지 못했던 근대 건축물을 활용한 전시관 ‘구 한국은행 부산지점’의 전시가 수작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이러한 장소-특정적 전시들은 다른 곳에서는 재현할 수 없기에 독자적이면서도 고유한 전시라는 평가를 받을 수 있다.

 

비엔날레 재단에 등록된 전 세계 비엔날레 수는 200여 개에 달한다. 그중 한국에서는 16개의 비엔날레가 열리고 있으며, 2018년에는 그중 8개가 개최되었다. 이쯤 되면 전시에 가보지 않은 사람도 미디어에 연속적으로 등장하는 ‘비엔날레’라는 이름을 지겹게 느낄지도 모르겠다는 우려가 드는 것도 사실이다. 실제로 한 미술평론가는 좁은 땅 안에 너무도 많은 비엔날레가 열리고 있다고 비판한다. 이런 비판이 합당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각각의 전시가 독자성을 확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굳이 그 전시장에 갈 이유를 제시하지 못한다면, 비엔날레는 사람들이 말하는 것처럼 지역의 홍보수단이자 치적으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 비엔날레의 지역특유성은 동시대 세계 각지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이루어지는 다수의 비엔날레들이 각각 개별적 가치를 두고 존재하는 이유가 될 수 있다는 주장을 지나칠 수 없는 이유다.

 

이제 다시 2년의 시간이 남았다. 새로운 시도에도 불구하고 많은 비판과 비평을 받았던 만큼, 다음 비엔날레를 주목하는 눈은 더욱 많아질 것이다. 무턱대고 그 수를 줄여야 한다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현대 사회가 수평적이고 다양화된 만큼, 다양한 장소에서 다채로운 주제의 국제미술전시회가 열린다는 점은 의미 있기 때문이다. 다만, ‘그동안 이렇게 해왔기 때문에’라는 관습이나 지역의 랜드마크가 될 만한 홍보용 행사가 아닌, 비엔날레 본연의 역할을 다시 한번 상기하며 사람들이 전시를 찾아야 할 이유를 제시할 수 있기를 고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