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사는 공간은 소리로 가득 차 있다. 바람이 불고, 물이 흐르는 자연적인 소리부터 차가 지나가고,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인공적인 소리 모두가 우리가 주변 환경에서 느낄 수 있는 소리다. 자칫 느끼지 못할 수 있지만, 사실 이러한 소리의 집합체는 공간 안에 있는 청자들과 관련 없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소리를 듣고, 그 소리와 공간에 존재하는 요소들을 연관 지으며 상호작용한다. 더 나아가, 이러한 소리 들을 통해 우리는 공간에 대한 이미지를 만들어가며, 정체성을 부여하기도 한다.
일상적 소리의 중요성을 일깨운 대표적인 사람 중 하나는 바로 음악가 존 케이지다. 특히나 그의 대표작인 <4분 33초>는 “무엇이 음악인가?”라는 사람들의 일반적인 관념을 완전히 뒤엎어버린 사례라고 볼 수 있다. 완벽하게 갖춰진 오케스트라와 지휘자가 4분 33초 동안 아무런 연주도 하지 않고, 악장의 시작과 끝에 피아노를 여닫는 모습은 사람들을 충격에 빠뜨리게 했다. 이 작품을 통해 존 케이지는 음악이 꼭 작곡을 거쳐서 만들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제시하였다. 4분 33초의 본질은, 악기들이 어우러진 오케스트라의 선율이 아닌, 공연장에서 들려오는 기침 소리와 같은 매우 일상적이고 흔한 소리 역시 음악이 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소리 들은 사람들의 무의식 속에 자리 잡으며 공간을 형성한다.
사실, 도시도 4분 33초와 크게 다르지 않다. 물론 도시에도 오케스트라가 공연하거나 통상적인 의미에서 음악이 나올 수도 있다. 하지만 이는 매우 특수한 경우이며, 보통은 수만 가지의 일상적인 소리가 발산되며 주변 환경을 구성한다. 이렇게 다양한 소리(Sound)가 혼합되며 하나의 풍경(Landscape)을 만드는 현상을 “사운드스케이프(Soundscape)”라고 부른다. 도시의 환경이 조경(Landscape Architecture)이라는 시각적인 방법으로 아름다워질 수 있는 것처럼, 사운드스케이프 역시 청각적인 방법으로 도시 환경을 발전시킬 수 있다.
사운드스케이프, 그리고 도시
그렇다면 사운드스케이프는 과연 무엇인가.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사운드스케이프는 소리를 뜻하는 영어 단어 sound와 풍경을 뜻하는 영어 단어 scape로 이루어진 합성어다. 이 용어는 1970년대에 캐나다의 작곡가이자 교육자인 레이먼드 머레이 쉐이퍼(Raymond Murray Shafer)가 처음 사용하였으며, 그는 시각이 장소를 보여줄 수 있다면, 청각 역시 장소를 풍경화(Landscaped) 된 단위로 인지하게 만들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음향 생태학(acoustic ecology)적 차원에서 사운드스케이프는 자연물과 동식물, 그리고 인공적인 소리를 모두 포함하며, 청자를 둘러싼 환경의 소리에 대한 인식도 중요한 요소로 여겨진다.
초기의 사운드스케이프의 개념은, 조경의 개념과 마찬가지로 놀라움(Remarkableness), 즉 미학적 측면이 강조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사운드스케이프의 초점은 도시적, 사회경제학적, 환경적 측면이 주목받으면서 보다 일상적인 음향 환경을 다루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특히 도시의 소음을 관리하는데 사운드스케이프의 개념이 활용되기 시작했다. 다시 말해, 소음을 완전히 없애는 대신 소음의 영향을 줄 일 수 있는 긍정적인 음향 환경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이를 조성하는 데는 백색 소음, 자연의 소리, 혹은 듣기에 좋다고 여겨지는 인공적인 소리 등 다양한 방법이 있다. 이러한 사운드스케이핑은 우리가 음향환경과 맺는 상호작용의 경험을 더욱 긍정적으로 바꾸며, 우리가 부여하는 장소의 정체성까지도 좋은 영향을 준다.
효과적인 사운드스케이핑이 조성된 대표적인 사례는 바로 일본 지하철의 발차음이다. 열차가 출발할 때 들리는 발차음은, 1989년 JR 동일본이 처음 도입한 이래로 현재까지 사용되고 있다. 초기의 발차음들을 만들어낸 사운드 엔지니어 히로아키 이데의 말에 따르면, 도입 이전의 지하철역은 매우 시끄러워 스트레스를 유발하는 환경이었다고 한다. 그는 지하철역 특유의 음향환경과 이용자들의 심리 등 복합적 요소들을 면밀하게 분석하였고, 벨 소리의 발차음을 고안하였다. 이후에도 그는 멜로디들을 수정하며 약 300여 개의 발차음을 만들어냈고, 이용자들의 긍정적인 반응을 끌어내는데 기여하였다.
도쿄 지하철의 토자이 선의 발차음을 포함하여 170여 개의 발차음을 작곡한 밴드 카시오페이아의 전 키보디스트 무카이야 미노루는 음향환경과 더불어 지리적 요소까지 고려하여 발차음을 발전시켰다. 역의 고도와 형태, 지역민들의 특성, 유명한 상징물 등이 그 예시다. 언뜻 보면 일본 지하철의 발차음은 미학적인 요소를 가미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처럼 보이지만, 위의 두 작곡가가 말하는 사운드스케이프의 본질은 여기서 끝이 아니다. 발차음은 지하철 문이 닫히기 전 7초 동안 울리는데, 이는 무리한 승차에 대한 부담감을 줄여주며 동시에 승차할지, 혹은 다음 열차를 기다릴지에 대한 판단을 유도한다. 실제로 발차음은 무리한 승차로 인해 일어나는 사고를 25%가량 감소하는 데 일조하였다. 사운드스케이프가 보다 실질적인 대안으로 변해온 것처럼, 발차음 역시 현대의 사운드스케이프로서 지하철역이라는 장소의 여러 측면을 새롭게 디자인해 온 것이다.
사운드스케이프의 시각화
소리는 기본적으로 형태를 띠지 않는다. 사운드스케이프의 “스케이프”라는 단어도 사실 추상적 맥락에서의 풍경이다. 하지만, 건축을 만나면 이야기는 조금 달라진다. 우리 주변에서 흔히 관찰할 수 있는 분수 역시 조경의 역할뿐만 아니라 사운드스케이프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사운드스케이핑의 차원에서 건축은 다양하게 활용될 수 있다. 분수나 물레방아와 같이 자연물의 소리를 의도적으로 입혀 원하지 않는 소리를 마스킹(Masking) 하는 전통적인 방법부터 소음을 통과 시켜 완전히 다른 소리로 바꾸는 현대적인 방법까지 그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
자연이 연주하는 바다 오르간
오래전부터 조경가들은 자연환경을 최대한 가깝게 묘사한 조경을 설계해왔고, 사운드스케이프 역시 마찬가지로 자연의 소리를 가져오는 시도를 했다. 하지만 그 반대로, 자연이 사운드스케이프를 만들도록 유도한 사례도 오래전부터 존재해왔다. 대표적으로 고대 그리스 시절부터 있었던, 바람으로 소리를 내는 바람 하프(Aeolian Harp)가 있다. 하지만 사운드스케이프의 개념이 점차 구체화하면서, 자연이 음향 환경과 상호작용하는 방식은 점점 진화하고 있다.
크로아티아에 해안가에 위치한 자다르(Zadar)라는 도시에는 바다 오르간(Morske orgulje)이 있다. 건축가 니콜라바시츠(Nikola Bašić) 가 설계한 이 거대한 오르간은 언뜻 보면 거대한 계단과 비슷한 형태를 띤다. 하지만 바다와 맞닿아 있는 7개의 계단 밑에는 각각 5개, 총 35개의 폴리에틸렌 파이프들이 있고, 파도가 이곳에 부딪히면서 공기를 위로 밀어내 진동을 유발한다. 진동은 곧 수면 위에 위치한 공기구멍을 통해 소리로 전환된다. 파도는 매 순간 그 형태와 세기가 달라지기 때문에, 이에 따라 들리는 소리 역시 일정하지 않으며 임의적이다.
바다 오르간은 단순히 신기하게 보이기 위해 설계된 것이 아니다. 자다르는 2차 세계대전의 여파로 크게 붕괴한 상태였고, 전쟁 이후 급격한 복구 작업이 이루어졌다. 그러나 복구 과정은 상당히 혼란스러웠고, 이에 해안가는 콘크리트 벽이 되고 만다. 이곳에 바다 오르간이 설치되면서 관광객뿐만 아니라 자다르의 사람들도 바다를 다시 찾기 시작했고, 죽어 있었던 해안가는 다시 활력을 갖게 되었다. 궁극적으로 바다 오르간은 사람들이 자연의 신비로운 소리를 들음으로써 잊고 있었던 도시의 가치를 되새기고, 공간에 새로운 정체성을 입혀 긍정적인 상호작용이 이루어지는 데 환경을 만든 것이다.
소리를 재활용하는 오르간 오브 코르티
현대미술이 발전함에 따라 정지되어 있었던 미술 작품들은 “움직임”이라는 요소가 추가되기 시작했고, 곧 키네틱 아트(Kinetic Art)의 탄생으로 이어져 왔다. 이러한 변화는 조각의 변화에도 영향을 주었고, 정적 상태였던 조각상들에 소리라는 요소가 포함되기 시작했다. 이렇게 소리를 직접 내거나, 외부에서 나오는 소리를 바꿀 수 있는 형태의 조각들을 소리 조각(Sound Sculpture)이라고 한다. 소리 조각들은, 그동안 우리가 소리에 대해 가지고 있었던 통념들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고, 소리가 우리와 상호작용할 수 있는 다채로운 방식들을 독창적인 방법으로 제시한다.
2011년 런던 페스티벌에서 선보였던 오르간 오브 코르티(Organ of Corti)는 음파를 조절하거나 변형할 수 있는 실린더 형태의 음향 메타물질(Acoustic Metamaterial)들로 구성된 소리 조각이다. 청각 기관의 이름을 그대로 따온 이 작품은 여러 장소로 이동이 가능하며, 주변에 있는 소리가 통과하면 이를 진동하게 만들어 마치 음이 있는 바람과 같은 소리로 변환시킨다. 실린더의 형태가 전부 상이하여 사람들은 지나가면서 각기 다른 소리를 들을 수 있고, 실린더 사이의 틈이 특정한 주파수의 음파만 통과시키기 때문에 이에 상응하는 음향을 차단하거나 증폭시킬 수 있기도 하다.
비록 단기간만 선보였지만, 이 소리 조각은 우리가 제거해야 한다고만 생각했던 도시의 소음이 하나의 자원으로 이용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시하여 발상의 전환을 도모하였다. 또한, 이동식으로 제작되었기 때문에, 실험하고자 하는 대상이 도시의 소음뿐만 아니라 자연의 소리까지도 포함될 수 있다는 점에서 이용할 수 있는 반경이 매우 넓다는 것도 알 수 있다. 기존에 소음을 위한 해결책으로 쓰였던 방음벽은 소리를 차단하는 데 효과적이지만, 특정 장소에는 설치하지 못하는 제약이 있다. 만일 오르간 오브 코르티가 더욱 발전된 모습으로 설계된다면, 장소의 제약 없이 소음을 새로운 음악적 체험으로 재생산할 수 있는 대안이 될 것이다.
일상을 사운드스케이핑한 노이너 공원
도시의 사운드스케이프를 만들 때는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할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오로지 전문가만이 사운드스케이프 조성 활동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지역 주민들의 참여가 더 중요한 이유는 그 지역의 음향 환경 속에서 지속해서 살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어떤 경우에는 전문가의 거대하고 실험적인 건축물보다는, 일상적인 공공건축물들에 사운드스케이프를 입히는 것이 더 효과적인 도시 음향 환경을 만들어나가는데 일조할 수 있다.
독일 베를린에 위치한 노이너 공원이 바로 그런 예시다. 음향 전문가들과 공원 주변에 사는 주민들은 서로 협력하여 공원을 재디자인 했고, 소음 문제를 포함한 복합적인 사회 문제들에 대한 대안을 마련하였다. 그들은 주변의 소리를 집중적으로 탐색하며 걷는 소리 산책(Soundwalking)을 비롯한 음향 측정, 전문가 인터뷰 등을 통해 음향 지도를 만들었고, 최대한 다양한 주민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워크숍을 개최했다. 이후 축적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소음 차단을 위한 돌망태 벽, 자연의 소리를 담은 거리 가구들과 같은 시설들이 설치되었다. 사운드스케이프를 위한 시설 이외에도 안전이나 레저를 위한 시설들도 함께 설치되어 전반적인 공원의 개선이 이루어지도록 하였다.
노이너 공원의 사운드스케이프 디자인 프로젝트는 전통적인 소음 마스킹 방법이 주로 사용되었다. 그렇지만 주민들이 적극적으로 동원되었고, 연구방법 역시 기존 소리 연구 방식을 따르지 않았다는 점에서 매우 혁신적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사운드스케이핑을 도시재생과 포용의 장을 조성하는데 활용한 것도 의미가 있다. 실제로 공연 주변에는 아이와 노인, 외국인이 많은 비율을 차지하고 있었고, 실업률과 약물 오남용의 비율도 높은 상태였기에 정부 차원에서 개발계획을 추진하고 있었다. 교통수단으로 인한 소음은 여전하지만, 새로운 음향 환경을 조성함으로써 공원은 사람들에게 즐거운 경험과 함께 사회적인 활력을 불어넣는 공간적 매개체가 되었다고 볼 수 있다.
사운드스케이프 연구의 발전은 곧 소리가 공간과 사람에게 주는 영향력에 대한 인식이 점차 강화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소리는 청각만 자극하는 것이 아닌, 사람들의 건강 전반에 깊숙이 침투하고 있다는 사실을 많은 사람이 점차 깨닫고 있다. 또한, 소리가 공간의 정체성에 대한 인식 역시 좌우할 수 있다는 것도 마찬가지로 논의되고 있다. 여기서 건축은 이러한 사운드스케이프 담론을 실제 세계에서 효과적으로 실현하고, 어떤 방식으로 사운드스케이핑을 할지 구체화를 하는 데 상당한 도움을 줄 수 있다. 앞으로 건축과 사운드스케이프가 만나 어떤 시너지 효과를 낼지 그 가능성을 상상해보며 글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