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

3 Dots 

  • 아티스트 콜렉티브 미스치프(MSCHF) 전시 《MSCHF: NOTHING IS SACRED》, 대림미술관, 2023.11.10~2024.3.31
  • 미스치프의 작업은 표면적으로는 상업적으로 보이지만 그 내면을 들여다보면 자본주의 소비사회를 반추하게 만드는 작품이 많다.
  • 미스치프는 자신들이 비판하려고 했던 소비주의 중심에 스스로를 세워 두는 방식으로 논란에 정면으로 마주한다.

 


 

우리에게 성역은 없다. 판매할 수 없는 것도 없다.

–  아티스트 그룹 미스치프(MSCHF)

 

미술관은 갤러리와 달리 작품을 파는 곳이 아니기에 “판매할 수 없는 것은 없다”라고 말하는 이들의 전시를 미술관에서 여는 것이 과연 가능한 일인지 물음표가 떠올랐다. 그러다 이내 고개가 끄덕여졌다. 미스치프의 작품이 걸린 미술관에서는 전시작을 판매하지 않으며 그저 사회 현상을 재치 있게 비꼬는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을 뿐이었다.

 

미스치프는 현재 진행 중인 전시 《MSCHF: NOTHING IS SACRED(2023.11.10~2024.3.31)》를 통해 소개되기 전까지는 국내에 많이 알려지지 않았던 그룹이다. 실제로 활동 기간도 그리 길지 않다. 2019년, 미국 뉴욕 브루클린을 기반으로 가브리엘 웨일리(Gabriel Whaley), 케빈 와이즈너(Kevin Weisner), 루카스 벤텔(Lukas Bentel), 스티븐 테트로(Stephen Tetreault)가 설립했는데, 예술가 그룹인 이들은 하나의 기업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래서일까? 미스치프는 자신을 스스로 정의하기보다 장난(mischief)이라는 이름에서 유래된 듯한 유쾌하지만 도발적인 작품들을 선보인다.

 

이들의 작업은 표면적으로는 상업적으로 보이기도 하지만 내면을 들여다보면 사회 현상을 되돌아보게 만드는 작품이 많다. 예술, 패션, 기술 및 사회적 문제에 이르기까지 장르를 가리지 않고 경계를 무너뜨린다. 익숙한 일상 제품에 자신들의 아이디어를 접목해 예상치 못한 방법으로 사회적 현상을 다루는 식이다.

사회 문제를 꼬집은 의료비 청구서 회화 

가장 주목받은 작품은 미국 의료 시스템의 허점을 꼬집은 <의료비 청구서 회화(Medical Bill Art)>다. 한국과 달리 의료보험이 상당히 비싼 미국에서는 한번 아프면 병원비가 빚이 되어 일상생활을 영위하기 힘든 상황에 내몰리게 된다. 미스치프는 잡지에 광고를 실어 프로젝트의 참여자를 모았다. 약 100명이 연락을 했고, 참여자의 의료 부채가 개인 부주의가 아닌 부상이나 사고로 인한 것인지 확인했다. 그런 뒤 무작위로 3명을 선택했고, 6ft(약 180cm)의 캔버스에 그들의 진료비 영수증을 유화로 그렸다. 

 

이 그림은 뉴욕 소재의 갤러리에 7만 3,360달러(한화 약 1억 원)에 판매되었다. 수익금은 수만 달러의 의료비로 고통을 겪던 영수증 주인들의 빚을 탕감하는 데 사용되었고, 개인의 빚을 청산하는 것을 넘어 미국 의료시스템에 대한 수많은 논평을 만들어냈다. 이 작품은 현대 사회의 불합리한 구조에 저항하고자 한 것으로, 미국 의료 부채의 시스템적 문제를 생각하게 만든다. 

 

버킨스탁이 된 버킨백

수많은 작업 중에서도 유독 돋보이는 슬리퍼. 이 작품은 에르메스(Hermes)의 시그니처 백인 버킨백(Birkin Bag)을 잘라 만들었다. 버켄스탁(Birkenstock)의 샌들로 만들어서 붙인 <버킨스탁(Birkinstock)>이라는 이름도 유쾌하다. 명품백의 대명사인 버킨백을 자른 것도 충격적인데, 가방 가죽으로 만든 슬리퍼를 더 비싼 가격에 판매한 이들의 재간은 더욱더 놀랍다. 사용된 가죽의 종류와 신발 크기에 따라 최소 34,000달러(한화 약 3,700만 원)에서 최대 76,000달러(한화 약 8,462만 원)까지 다른 가격을 매겼다. 이미 최상급의 소재로 제작된 가장 럭셔리한 명품이 다시금 원자재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작품으로, 새로운 변화를 더해 가치를 상승시킬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함과 동시에 소비주의를 비판한다.

MSCHF, <Medical Bill Art>, 2020. ⓒ 미스치프(대림미술관 제공)
MSCHF, <Birkinstock>, 2021. ⓒ 미스치프(대림미술관 제공)

작다고 가격도 낮을까? 초미니 핸드백

미스치프는 계속해서 현대의 소비주의를 다룬 작업을 선보인다. 소금 한 톨보다 작은 루이비통(Louis Vuitton) 가방이 상상되는가? 현미경으로나 겨우 볼 수 있는 초미니 루이비통 가방이다. 400만 원대 루이비통 온더고 토트백 디자인을 형광 초록색의 초미니 가방으로 만들었다. 가방의 크기 단위는 마이크로미터로, 전시장에서는 현미경으로 감상하게끔 설치되어 있다. 이 작품 또한 8,400만 원에 낙찰됐는데, 가방의 본래 기능을 무시한 채 개념만을 판매하는 현 세태를 비판하는 의도를 담았다.

 

만화 속 이미지 그대로, 빅 레드 부츠

미스치프 하면 <빅 레드 부츠(Big Red Boots)>를 빼놓을 수 없다. 만화 속 캐릭터의 부츠를 떠올리면 생각나는 그 모양 그대로 실제 부츠를 만들었다. 전 세계 셀럽들을 중심으로 아톰 부츠라고 불리며 열풍을 일으켰는데, 실제로는 아톰에서 영감을 받은 것이라기보다 미국 TV 만화 시리즈 <도라 디 익스플로러(Dora the Explorer)>의 캐릭터 중 말하는 원숭이가 신고 다니는 신발에서 착안한 것이라고 한다. 누가 이런 걸 신을까 하지만, 이 부츠를 신고 모습을 드러낸 인플루언서들이 셀 수 없이 많다.

 

대림미술관에서 이 부츠를 구매할 수는 없지만, 온라인에서는 웃돈을 얹어야 살 수 있을 정도로 큰 인기를 끈 작업이다. 미스치프가 이러한 한정판 제품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바는 무엇일까. 아무래도 희소성 있는 것들을 소유하고 싶어 하는 현대인들의 소비 심리를 꼬집기 위해서가 아닐까 한다. 우리는 점점 실제 필요에 의해 무언가를 구매하는 것이 아니라, 상징적인 무언가를 구매하는 경향을 보이기 때문이다.

MSCHF, <Microscopic Handbag>, 2023. ⓒ 미스치프(대림미술관 제공)
MSCHF, <Big Red Boots>, 2023. ⓒ 미스치프(대림미술관 제공)

지능적인 범법, 경고장 그랑프리

이쯤 되면 상표권 문제에 부딪힐 법도 하다는 생각이 든다. 미스치프는 <경고장 그랑프리(C&D Grand Pix)> 작품에서 코카콜라, 디즈니, 아마존, 테슬라, 서브웨이, 마이크로소프트, 월마트, 스타벅스 등 8개 대기업의 상표권을 의도적으로 침해한다. 그리고 지난해 이들 기업의 로고를 이용한 옷을 만들어 판매했다. 가장 먼저 상표 침해를 중단하라는 경고장(C&D)을 보낸 기업을 우승자로 선정하고, 해당 기업의 로고가 찍힌 옷의 구매자에게 우승자 모자를 추가로 주는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많은 이들이 디즈니를 우승자로 예상했지만 최종 우승자는 서브웨이였다. 전시장에서 서브웨이가 보낸 경고장을 만날 수 있다.

 

예수 신발과 사탄 신발

100여 점의 전시작 중 가장 도발적인 작품으로는 아무래도 <예수 신발(Jesus Shoes)>과 <사탄 신발(Satan Shoes)>을 꼽아야 할 것 같다. 예수와 콜라보레이션을 했다는 도발적인 문구부터 시선을 사로잡는다. 나이키 에어맥스 97을 커스텀하여 제작한 <예수 신발>의 아웃솔에는 요르단강에서 가져온 성수가 들어 있다.

 

반면 래퍼인 릴 나스 엑스(Lil Nas X)와 협업해 만든 <사탄 신발>에는 사람의 피 한 방울이 들어가 있다. 미스치프가 이 작품으로 꼬집고자 했던 것은 상업계의 무분별한 콜라보레이션이었다. 너나 할 것 없이 브랜드를 섞는 콜라보레이션을 비판하는 이 작품은 나이키와 협의 없이 출시해 법정 분쟁에 휘말려 화제의 중심이 되었고, 전량 회수 조치됐다. 이 역시 마찬가지로 대중에게 미스치프의 존재를 각인시키는 계기로 작용했다.

MSCHF, <C&D Grand Prix>, 2022. ⓒ 미스치프(대림미술관 제공)

《신성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NOTHING IS SACRED)》라는 전시 제목처럼, 미스치프의 작업에는 성역이 없다. 예수와의 콜라보레이션 작품만 봐도 그렇다. 이처럼 미스치프는 이제까지 당연시 해온 사회적 관습을 되돌아보게 만드는 작품을 계속 선보이는 중이다. 한편 그들의 행보에 항상 물음표가 따라붙기도 한다. 기성 권력을 조롱하면서도 상업적인 성공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미스치프의 한정판 판매품들은 고가에 팔렸고, 재판매와 리셀 열풍을 불러일으켰다. 미스치프는 자신들이 비판하려 했던 소비의 중심에 스스로를 놓아둠으로써 논란에 정면으로 마주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