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글로벌 미술계가 아시아의 실험미술에 주목하고 있다. 그간 실험미술 역사가 미국과 유럽 등 서구를 중심으로 논의되어 왔다면, 최근에는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의 실험미술을 재조명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서구 중심적 사고에 대한 반성과 새로운 지역에 대한 관심이 한국 실험미술이 주목받게 된 계기가 된 것으로 보인다.
미술계에서 실험이란 새로운 방법이나 형식을 시험 삼아 시도해 본다는 의미를 지닌다. 즉, 실험미술은 전통 장르인 회화나 조각에만 국한되지 않고, 오브제와 설치, 해프닝과 영상 등 관련된 다양한 작업을 총칭한다. 한국의 현대미술사에서는 1960-70년대 나타난 일련의 경향을 실험미술로 분류하는데 국립현대미술관이 솔로몬 R. 구겐하임 미술관과 공동 주최한 전시 《한국 실험미술 1960-70년대》(2023. 5. 26.~7. 16.)에서 당시 나타난 실험적인 경향의 작품들을 살펴볼 수 있다.
한국형 실험미술의 세계
한국의 실험미술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당시의 시대적 배경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1960-70년대는 제3공화국에서 제4공화국으로 이어지는 박정희 정부 시기로, 급격한 경제발전이 이루어지고 있었지만 정치사회적으로는 암울하고 혼란스러운 분위기가 감돌았다. 4·19 혁명과 5·16 군사 정변을 거치며 민주화의 열망이 좌절당하는 일을 겪었고, 언론의 자유가 크게 위축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국의 젊은 예술가들은 기성세대와 제도를 비판하기 위해 실험적인 미술을 선보였다. 특히 대한민국미술전람회(국전)라는 기존 미술 제도에 대한 거부와 저항이 한국형 실험미술을 촉발하는 계기가 되었다. 국전은 1949년부터 1981년까지 총 30회 동안 이어져 온 정부 주도의 미술 공모전이었다. 당시 젊은 작가들은 보수적인 국전에 대항해 실험적이고 새로운 미술을 선보였다.
이들은 국전에 반발하는 의미로 《청년작가연립전》(1967)을 개최한다. 오리진, 무동인, 신전동인과 같은 그룹에 소속된 젊은 작가들은 국전 반대 구호가 적힌 피켓을 들고 거리로 나섰고, 당시 주류를 차지하던 앵포르멜 경향에 반발해 반(反)예술을 외쳤다. 반예술은 기성 가치를 부정하고 예술의 구성요소를 새롭게 하려는 시도다.
《청년작가연립전》에 출품된 작품 중 하나로 정강자의 <키스미>가 있다. 신전의 멤버였던 정강자는 여성의 입술을 거대 조각 작품으로 형상화했다. 여성의 입술을 확대해 노골적으로 표현한 것은 여성의 욕망을 당당하게 드러내려는 시도로 읽힌다. 핑크빛의 거대한 입술이 치아를 둘러싸고 있고, 흰 치아 사이에는 듬성듬성 벗겨진 치아가 보인다. 치아 사이에는 고무장갑, 여성의 얼굴, 이 얼굴에서 떨어져 나온 두 개의 눈과 같은 오브제가 부착되어 있다. 이 오브제들은 당시의 가부장적인 사회 분위기 속에서 여성의 신체 부위를 과감하게 내세워 억압당한 여성의 몸을 극대화한다.
《청년작가연립전》은 국내 최초의 해프닝이 시도된 전시라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해프닝은 일종의 퍼포먼스로, 화가의 연극이라고도 불린다. 일회성이 강한 공연 예술이나 작품 전시 등을 총칭하는 개념이다. 국내 최초의 해프닝인 <비닐우산과 촛불이 있는 해프닝>(1967. 12. 14.)은 미술비평가 오광수가 각본을 쓰고, 무동인과 신전동인 멤버들이 참여했다. 여자 2명과 남자 8명, 비닐우산 1개, 새끼줄, 촛불 10개, 성냥 1통, 의자 1개, 휴지 등이 등장했고, 노래 “새야 새야 파랑새야”를 합창하는 형식으로 이루어졌다. 비닐우산에 꽂힌 촛불을 끄고, 마지막에는 우산을 짓밟는 행위로 끝이 나는데, 이는 문명 비판의 내용을 담으려는 의도로 전해진다.
한국화단에 등장한 새로운 사조, AG(한국아방가르드 협회)
《청년작가연립전》을 기반으로 해서 등장한 그룹이 바로 한국아방가르드협회(AG)이다. AG는 “전위예술에의 강한 의식을 전제로 빚은 빈곤의 한국화단에 새로운 조형 질서를 모색 창조하여 한국 미술 문화 발전에 기여한다”라는 모토를 내걸고 시작되었다. AG는 1969년 창립되어 1972년까지 《환원과 확장의 미학》(1970), 《현실과 실현》(1971), 《탈관념의 세계》(1972) 전시를 개최함으로써 실험미술이라는 새로운 질서를 보여주었다. AG의 창립 회원은 곽훈, 김구림, 김차섭, 김한, 박석원, 박종배, 서승원, 이승조, 최명영, 하종현이며, 여기에 오광수, 이일 등의 미술평론가가 합세했다. 이들은 서구와 일본의 미술 잡지에 의존하던 당시의 사조에서 벗어나 한국 미술이 처한 상황을 새롭게 인식하고 방향성을 찾으려는 노력을 지속했다.
AG 2회전에 참여한 이강소의 <소멸-화랑 내의 술집>은 서울 중구 YWCA 빌딩 지하 명동화랑을 실제 술집처럼 꾸며놓은 작품이다. 작가는 실제 술집에서 사용하는 탁자와 의자를 가져다 놓은 뒤 무교동 길거리에서 주워 온 메뉴판까지 설치했다. 이 작품은 사물을 생경한 맥락에 놓아둠으로써 관람자로 하여금 상황을 새롭게 인식할 수 있게 만든 일종의 해프닝이다. 이강소는 이 작품에 대해 “우리 일상의 관습적인 현실을 떼어내어 화랑이나 미술관의 시공간으로 옮겨 실행했을 때, 우리의 일상 혹은 주변을 무엇인가 조금 다른 위상으로 경험할 수 있는 것이란 데 관심이 있었다”라고 말한다. 작가는 이처럼 관객들이 주체가 되는 미술을 시도하면서 미술이 현실에 깊숙이 개입해 있다는 사실을 드러내려 했다.
AG의 창립 회원이었던 하종현의 작품도 주목할 만하다. <작품 73-13>은 전통적인 캔버스의 틀 대신 합판 위에 마포를 덮어씌운 뒤, 그 위에 철조망을 설치하고 나사로 고정한 작품이다. 작가는 공장에서 대량으로 생산되는 재료를 통해 도시의 급격한 변화를 담아냈다. 또한 격자 형태의 철조망은 6·25 전쟁 이후 한국의 상황을 은유한다. 캔버스 뒤쪽을 파고드는 철조망의 뾰족한 부분이 눈에 띄는데, 이는 당시 유신정권을 상징하는 것으로도 읽힌다.
나와 논리의 세계, ST
《한국 실험미술》에서 중요한 위상을 차지하는 그룹은 1971년 활동을 시작한 ST이다. ST는 Space & Time의 약자로, 화가이자 미술비평가인 김복영을 비롯해 이건용, 박원준, 김문자, 한정문, 여운 등이 참여한 그룹이다. ST는 AG와 비교했을 때 좀 더 철학적이고 미학적인 작업을 내세웠다. 특히 이들은 개념미술에 주목했다. 개념미술은 아이디어 그 자체가 작품이 되는 미술인 만큼, ST의 시도는 현대미술에 다가가기 위한 본격적인 시도로 볼 수 있다.
ST를 대표하는 작가로는 이건용을 꼽을 수 있다. 이건용은 행위 자체를 목적성에서 떼어내어 논리적으로 분석하면 세계에 대한 지각에 다다를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의 작품 <손의 논리>는 두 손이 만들어 내는 행위와 형태를 통해 하나의 이벤트를 만들어 낸다. 작가는 양손의 엄지를 맞대거나, 손가락을 접고 펴는 가운데 엄지끼리만 맞닿게 만들고, 네 개의 손가락을 서로 마주하게 하는 등 여러 형태로 손을 움직인다. 그런데 이런 행위는 즉흥적으로 아무렇게나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논리적인 계획에 따라 진행된 것이다. 작가는 이렇게 논리(Logical)를 더하는 행위(Event)를 로지컬-이벤트(Logical-Event)라 이름 붙였다. 우리가 일상에서 행하는 평범한 행위를 계획된 논리 아래 강박적으로 반복함으로써 그 행위를 본래의 맥락에서 이탈시키고 이를 통해 행위 자체를 새롭게 사고하는 것이다.
ST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또 다른 작가로 성능경이 있다. 성능경은 이건용과 함께 이벤트와 같은 행위미술을 선보였으며, 신문이나 사진 등을 활용해 작품을 제작했다. 그는 작품 <위치>를 통해 미술 잡지가 지닌 권력에 대해 질문하는 이벤트를 구상했다. 총 10개의 행위로 이루어진 이 이벤트에서 작가는 「공간」이라는 잡지를 머리, 어깨, 팔에 올려놓거나 입으로 물고, 턱과 목 사이, 겨드랑이나 가랑이 사이에 끼웠다. 작가는 이러한 행위를 통해 잡지의 상징적인 가치를 물리적으로 위치시키면서 미술 잡지의 위상을 다시 한 번 되짚고자 했다.
‘거꾸로’ 전통
전시에 집중적으로 소개된 이승택은 한국 실험미술의 선구자로, 전통예술의 재발견을 통해 거꾸로 돌파구를 마련한다는 개념을 내세웠다. 전위미술은 전통을 부정하는 것에서부터 출발하는데, 이승택은 고드랫돌, 성황당, 옹기, 낫 등의 전통적인 오브제에서 우리의 정체성을 찾으면서 거꾸로 된 미술을 선보였다.
“나는 세상을 거꾸로 보았다. 거꾸로 생각했다. 거꾸로 살았다.”
– 이승택 –
이승택이 AG 2회전에서 선보인 <바람> 시리즈는 바람, 물, 불, 연기, 안개 등 형체가 없는 소재를 가지고 자연의 움직임과 형태를 만들어 낸 작품이다. 이러한 이승택의 조각 작품들은 비(非)조각으로 불린다. 반(反)조각이 조각 개념에 반대되는 것이라면, 비(非)조각은 조각이 아닌 것이라는 의미를 지닌다. 당시 조각의 재료로 인지되지 못했던 소재를 선택하고 현대 미술에 대한 새로운 개념을 설정함으로써 당시의 억압적인 사회 분위기에 반기를 든 것으로 볼 수 있다. 작가는 비조각 개념을 통해 우리에게 조각이란 무엇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이승택은 고드랫돌을 감거나 묶은 작품도 다수 제작했다. 일반적으로 조각은 깎거나(carving) 살을 붙이는(modeling) 방식으로 제작되는데, 조각의 개념에서 지속적으로 탈피하려고 했던 이승택은 감기와 묶기라는 방식을 고안해 냈다. 그는 감기와 묶기의 대상으로 시멘트, 석고, 기와, 나무 등 여러 소재를 선택했고, 그중에서도 고드랫돌을 자주 사용했다.
고드랫돌은 손으로 돗자리를 엮을 때 사용하는 홈이 파진 돌이다. 민속품으로서의 고드랫돌이 한민족의 과거 일상을 대변하는 문화의 영역에 속한 사물이라면, 이승택의 고드랫돌은 미술가라는 개인에 의해 미학의 영역으로 진입하게 된 사물로 볼 수 있다. 이승택의 작품세계는 조각에서 출발해 비조각에 이르고, 이러한 비조각은 다시 드로잉, 회화, 퍼포먼스, 사진-회화 등으로 제작되며 장르를 뛰어넘는다. 실험적인 행위를 통해 기존의 고정된 형태를 새롭게 바꾸는 방식이 돋보인다.
당시의 실험미술 작가들은 상파울루, 도쿄, 카뉴, 인도 등에서 열린 해외 비엔날레에 직접 참가하면서 지구촌 담론을 형성해 나갔다. 해외 비엔날레에 참가한다는 것은 사회적 억압과 국전이라는 제도를 돌파하는 하나의 출구로 여겨졌다. 이들은 서구의 작가들과 동등하게 경쟁하고 소통하면서 글로벌 미술사의 층위를 다양화하는 데 기여했다. 이는 한국의 현대미술사에서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그동안의 현대미술은 서구로부터의 유입이라는 기본 틀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를 다시 서구 미술의 중심지에서 우리만의 독창적인 언어로 선보이게 된 것이기 때문이다.
한국의 실험미술 작가들은 1970년대 이후에도 《한국미술대상전》, 《한국미술협회전》, 《앙데팡당전》, 《에꼴 드 서울》, 《서울 비엔날레》 등 각종 단체전을 통해 전위적인 작품들을 지속적으로 선보이면서 한국 미술계에 활기를 더했다. 당시 암울한 시대적 상황 속에서도 기성세대에 저항하는 작품을 꾸준히 선보임으로써 저항 정신을 이어 나간 것이다. 이제 한국 실험미술은 현대미술사의 큰 줄기에서 한 위치를 점할 수 있게 되었다. 이번 전시는 7월 중순 국립현대미술관에서의 전시가 끝나면 9월 뉴욕 구겐하임미술관, 내년 2월 로스앤젤레스 해머 미술관으로까지 이어질 예정이다. 당시 작가들이 내세웠던 전위적인 발상이 자유로운 세계를 향한 몸짓이었던 것처럼, 이번 순회전 또한 한국의 실험미술이 20세기의 중요한 아방가르드 실천 중 하나라는 사실을 인지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