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인으로 도시의 서사를 다시 쓴다면 그 안에는 어떤 내용 담길까? 태국의 심장과 같은 도시, 방콕의 나이스한 내일을 위해 진행된 방콕디자인위크 2023(태국 창조경제진흥원 주관)이 지난 2월 4일부터 2월 12일까지 개최되었다. 2018년 처음 시작된 이래로 지난 5년간 약 175만 명의 방문객과 13억 7천만 밧(한화 약 510억) 이상의 경제적 가치를 창출해 온 방콕디자인위크인 만큼 올해도 방콕 9개 지역에서 약 530개 이상의 프로그램을 선보이며 역대 최대 규모로 진행되었다.
2023년 방콕디자인위크의 주제는 Urban-Nice-zation. 도시가 나이스해지기 위해 무엇이 필요하며, 디자인은 좋은 도시화에 어떻게 기여할 수 있는지에 관한 답을 찾는 여정이었다. 모두를 위한 모범 답안을 찾기 위해 방콕디자인위크는 좁은 의미의 제품 디자인에만 머물지 않고 도시 전체를 지속가능하고 아름답게 만드는 쪽을 택했다.
모두를 위한 나이스한 도시: Urban ‘Nice’ zation
올해 방콕디자인위크는 좋은 도시화가 갖추어야 할 조건으로 환경(Nice for Environment), 이동성(Nice for Mobility), 문화(Nice for Culture), 비즈니스(Nice for Business), 커뮤니티(Nice for Community), 다양성(Nice for Diversity)을 꼽았다. 외관상 서로 다른 영역인 듯 보이는 이 조건들은 삶이라는 커다란 카테고리 안에서 대부분 연결되어 있다. 이동성이 보장되지 않는 도시에는 사람들이 살 수 없고, 문화 또한 다양해질 수 없으며, 비즈니스의 확장성도 보장되지 않는다. 시민의 이동권조차 보장하지 못하는 도시에서는 당연히 생태학적 연대감 또한 발전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처럼 방콕디자인위크가 제시한 여섯 가지 조건들은 좋은 도시를 만들기 위해서는 시민에 대한 배려가 우선이라는 그들의 신념을 드러낸다. 이런 다짐을 반영하듯 올해 방콕디자인위크 프로그램은 지역 커뮤니티와 밀접하게 맞닿은 모습이었다.
방콕디자인위크 2023은 포멀한 느낌이 물씬한 특정 장소나 전시장에만 국한하지 않고 도시민과 관광객이 오가는 도시 곳곳의 거리, 카페, 음식점 등 친숙하면서도 신선한 전시 공간들을 위트 있게 창조했다. 전시장과 같이 격식 있는 공간뿐 아니라 대중에게 친숙한 일상적인 장소들을 디자인위크에 활용해 경계를 낮추고 접근성을 한껏 높였다는 평을 얻었다.
일반적인 상업 공간으로 쓰이는 매장과의 협업은 놀랍게도 대중 접근성을 높이는 것 외에도 홍보 측면에서 톡톡한 시너지 효과를 만들어냈다. 방콕디자인위크에 대해 전혀 몰랐거나 무관심했던 시민이 커피 한잔하러 들른 카페에서 우연히 방콕디자인위크를 전시를 접한 일이 계기가 되어 프로그램에 관심을 두게 되거나 병원, 버스 정류장 등 발길 닿는 일상의 공간에서 마주한 전시 작품을 통해 프로그램에 눈을 뜨게 되는 등 홍보 측면에서도 자연스럽고 효과적인 상생 효과를 만들었다.
온오프를 활용한 영리한 홍보 전략
방콕디자인위크만의 다채롭고 신선한 홍보는 온라인에서도 이어졌다. 다량의 정보를 필요에 따라 깔끔하게 갈무리한 공식 홈페이지, SNS를 통한 실시간 행사 정보 업데이트, 관람객들의 편의를 고려한 구글 스팟 지도 제공 등은 오프라인과 마찬가지로 도시민과 관광객의 입장을 한껏 배려한 모습이었다.
그중 이번 방콕디자인위크에서 대내외적으로 많은 주목을 받은 온라인 홍보 전략 중 하나가 바로 구글맵을 활용한 주요 스팟 표기 지도였다. 구글맵 위에 방콕디자인위크의 주요 행사 스팟을 표시해 낯선 땅에서 새로운 길을 찾는 관람객들의 불편을 최소화하고 시간과 동선을 단축하기 위한 발상이었다. 특별히 이번 방콕디자인위크는 역대 최대 규모로 진행된 만큼 지역마다 행사 장소가 여러 곳에 분포되어 있어 길을 잃거나 잘못된 곳으로 찾아갈 위험이 있었다. 방콕디자인위크는 이 점을 인지하고 구글맵에 스팟을 표기하고 링크를 공유해 방콕의 세부 지리가 낯선 여행자들이 관람하고 싶은 전시 장소나 현재 서 있는 곳에서 가장 가까운 관람 스팟을 찾을 수 있도록 돕는 데 유용하게 사용됐다.
공식 홈페이지는 프로그램 및 전시 정보를 상세히 제공하되 많은 정보로 인해 길을 잃지 않도록 단정히 카테고리화한 모습이다. 행사 장소 및 규모가 방대한 만큼 9일간 방콕디자인위크를 효과적으로 즐길 수 있는 다양한 방안을 고심한 모양이었다. 방콕디자인위크 2023의 공식 맵 외에도 라이트, 로컬, 비즈니스, 수공업 등 참여자의 필요에 따른 최적의 루트를 고려한 프로그램 등이 안내되어 효율적인 관람을 돕는다. 특별히 512개에 달하는 전시 프로그램은 날짜-행사 성격-지역으로 갈무리해 검색할 수 있도록 시스템화해 길 위에서 불필요한 시간을 낭비하지 않게 만든다. 공식 홈페이지에서는 쇼케이스, 전시, 워크숍 등의 정보 외에도 2018년부터 2021년까지 매해 진행된 방콕디자인위크의 아카이브 또한 확인할 수 있다.
SNS 채널인 인스타그램에서는 실시간 행사 소식 및 주요 스팟 소개가 이어졌다. 방콕디자인위크에 관심이 있는 팔로워들이 관련 정보를 계속 받아볼 수 있도록 다양하고 임팩트 있는 피드들이 계속 올라왔다. 프로그램도, 행사 지역도 다양한 만큼 자칫 복잡해질 수도 있는 상황을 고려해 메인 일러스트 디자인을 중심으로 통일성 있고 주목도 높은 SNS 홍보를 이어갔다. 간결하면서도 감각적이고 힙한 이번 방콕디자인위크의 라임빛 일러스트를 활용한 다양한 인스타 피드는 역동적이고 활발하게 진행 중인 디자인위크의 현장감을 느끼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우리가 만드는 지속가능한 도시
오프라인 행사 현장에서는 방콕디자인위크 2023의 여섯 가지 가치를 다양한 각도에서 담아낸 여러 프로그램들이 곳곳에서 진행되었다. 방콕의 차이나타운인 야오와랏(Yaowarat) 지역에서 열린CITY X TROOPER X ACADEMIC PROGRAM은 도시개발에 흥미가 있는 시민을 초청해 13개 교육기관과 함께 지역 주민들의 니즈를 공유하고 지역 발전을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를 살폈다. CITY X TROOPER X ACADEMIC PROGRAM은 특별히 이동성을 강조해 버스정류장의 접근 편리성을 높이고 등나무 같은 재료로 방콕 분위기를 살린 버스정류장을 디자인해 공개하기도 했다.
크롱 산(Klong San) 지역에서 진행된 또 다른 프로그램에서는 방콕의 정체성을 문화/예술/음식 관점에서 살피고 이러한 지역 문화를 어떻게 산업으로 발전시킬 수 있을지 고민했다. 특별히 이 팀은 수상 시장 콘셉트로 꾸며진 방콕의 쇼핑몰 ICONSIAM과 협업해 보트 여행이라는 신선한 아이템을 개발하고, 방콕의 문화가 담긴 공예품을 판매하기도 했다. 지역 활성화가 일으킬 수 있는 젠트리피케이션의 위험을 인식하고 지역만의 고유한 정체성을 보존하겠다는 방콕의 선제 대응 인식이 엿보이는 프로젝트였다.
그뿐 아니라 전통적으로 목재를 생산해 온 방 포(Bang pho)지역에서는 현지에서 난 목재로 등불을 만들어 Bang Pho Wood Street을 세웠다. 여러 등불을 한곳에 모아 하나의 건축물로 구성한 Wood Street Pavilion은 지역 주민 간 화합을 상징하고 해당 지역의 목재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 데 기여했다.
뿐만 아니라 여러 목재 제품을 판매해 해당 지역 문화와 자연 체험을 유도해 지역 정체성을 강조하기도 했다. 그곳에서 나고 자란 목재 장인들이 만든 다양한 생산품을 통해 전통문화가 어떻게 자연과 공존하는지, 도시와 자연의 연결 지점으로서의 전통문화를 어떻게 활용할지에 대한 좋은 대안이 되었다. 이 외에도 남은 목재를 이용해 주차장이었던 공간을 공공 공원으로 탈바꿈해 지역 주민이 함께 쉬며 유대감을 도모할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기도 했다.
프라 낙혼(Phra Nakhon)과 낭 릉(Nang Loeng)에서는 지역 문화를 통해 커뮤니티를 연결할 방안을 모색하기도 했다. 신라빠꼰 대학교(Silpakorn University)을 포함해 다양한 공간에서 지역 문화에 관한 자료를 제공하고 주민을 위한 쉼터를 지정했는데 이 공간들은 시민뿐 아니라 유기견까지 포용할 수 있도록 제작되어 좋은 반응을 얻었다. 특별히 태국 안무가, 음악가와 협업하여 지역 전통문화를 현대 문화와 결합한 프로그램을 제시해 젊은 세대에게도 좋은 평을 얻었다. 지역 공동체 쉼터를 개발해 특색 있는 전통과 현대 문화를 함께 녹여낸 이 프로그램의 방향성은 방콕디자인위크 2023이 관광객만을 위한 축제가 아닌, 지역 주민을 존중하며 유대감을 발전시키는 방향으로 성장하고 있음을 드러냈다.
도시의 바퀴가 되는 Business 산업 모델
좋은 도시의 여러 조건을 충족하기 위해서는 지역 산업 발달이 필수적이다. 먹고사는 일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선의로 세운 대의들은 자칫 빛 좋은 개살구에 그치기 쉽다. 방콕디자인위크는 이러한 필요 역시 염두에 둔 듯, 관광을 비롯한 여러 산업군의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하기도 했다. 그중 단연 눈에 띈 프로젝트는 케이스티파이(Casetify)와 방콕디자인위크 2023의 협업이었다.
독보적 디자인으로 유명한 케이스티파이와 콜라보한 방콕디자인위크는 방콕만의 특색을 핸드폰 케이스에 힙하게 담아냈다. 열 명의 태국 출신 예술가와 함께한 결과물은 단순한 여행 기념품으로 치부하기엔 작품에 가까운 수준이었다. 그뿐 아니라 비료로 재활용 가능한 대나무 섬유 케이스를 출시해 지역 제품이라는 정체성과 함께 지속가능성까지 충족했다.
Green LIVING, Green Good Live를 주제로 개최된 농업 박람회에서는 까셋산 대학교(Kasetsart University)가 주체가 되어 시장에서 발생하는 폐기물을 줄일 방안을 모색했다. 비즈니스 관점에서 환경 문제에 대한 인식 개선을 촉구하고 지역 시장과의 공존 방법을 고민하며 폐기물 문제를 다루어 대내외적으로도 많은 주목을 받았다.
그 외에도 방콕디자인위크는 아리(Ari) 지역을 관광 산업으로 발전시키기 위해 Open House, Open town, Open City를 선보이기도 했다. 사운드 아트 전시회 및 지역 역사 관련 전시 등 관광 산업 개발을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개최했는데, Ari의 특색이 담긴 녹지 공원에서는 QR 코드를 이용해 그 지역에 사는 캐릭터가 관광객과 함께 대화하는 프로그램을 진행하기도 했다. 녹지를 보존해 지역 환경과 공존할 만한 산업을 끊임없이 모색하는 Ari의 프로그램은 방콕디자인위크 2023의 핵심 조건인 산업과 환경을 모두 충족시켰다.
깊고 넓은 방콕의 내일을 위해
이처럼 방콕디자인위크 2023은 역대 최대 규모에 걸맞게 다양한 영역에서 폭넓은 프로그램을 선보였다. 그런데도 크기에만 집중해 프로그램을 비일관적으로 구성하지 않고, 좋은 도시화(Urban-Nice-Zation)라는 대주제에 맞는 프로그램을 개발하면서 통일적인 체계를 이루었다. 도시 축제로서의 정체성을 포기하지 않으면서도 지역 공동체, 환경, 이동성과 같은 정치적 사안까지 고려해 성공적인 축제를 개최한 것이다. 방콕의 주요 기능인 관광 산업 개발에만 한정하지 않은 점도 주목할 만하다. 이처럼 주민과 공존하며 좋은 도시에 대해 고민하고, 지역 문화 전파 방안까지 모색한 방콕디자인위크 2023의 깊고 넓은 보폭은 방콕의 내일을 기대하게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