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

우리 모두에게 있어 환경은 꽤 무거운 주제다. 다양한 콘텐츠에서 환경이나 환경 보존 문제에 대해 다룰 때 이를 장난스럽게 노출시키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뉴스 보도에서는 인간의 욕심으로 인해 파괴되어가는 생태계에 관한 관심을 촉구하고, 탐사 다큐멘터리에서는 다양한 관찰과 여러 학자의 의견을 근거로 기후 변화가 가져올 재앙들에 대한 경고한다. 환경오염으로 인해 간접적인 피해를 입은 동식물, 그리고 사람들이 등장할 때면 그것이 우리 모두의 미래가 될까 걱정이 앞서기도 한다. 그래서 그런지 환경오염이라는 주제가 미디어에 등장할 때마다 왠지 모르게 마음에 부담이 생긴다.

 

이렇게 무겁고도 중대한 주제 안에서 살아 움직이는 이야기를 통해 우리 일상을 차분히 톺아보게 돕는 환경 축제가 있다. 바로 서울환경영화제(Seoul International Eco Film Festival)다. 2004년, 재단법인 환경재단에 의해 처음 시작되어 올해 18번째 생일을 맞은 서울환경영화제는 세계 3대 환경영화제이자 아시아 최대 규모의 환경영화제이며, 우리나라 유일의 환경영화제이다. 2021년의 경우 총 25개국에서 제작된 64편의 영화가 소개되었다. 온, 오프라인을 합쳐 총 87회차 중 38회차가 매진되었다고 하니 꽤 많은 사람이 주목하고 있는 영화 축제이기도 하다.

b66f159c-2065-4462-a1a7-3e9d3464e85a Ⓒ SEFF

서울환경영화제에는 꽤 멋있는 사명이 있다. 영화라는 예술을 매개로 환경에 관한 이야기를 풀어내는 과정을 통해 환경과 인간의 공존을 모색하고 미래 환경을 위한 대안과 실천을 논의하는 것이 이 영화제의 가장 큰 존재 목적이다. 영화제라는 기본적인 포맷 안에서 서울환경영화제만이 지닌 특별한 매력이 있다면 환경이라는 거대한 담론이 담아야 할, 그리고 담을 수 있는 다양한 측면의 이야기들에 주목한다는 점이다.

 

여느 영화제와 마찬가지로 매년 하나의 큰 화두를 주제 삼아 영화제가 열리는데, 작품의 장르나 포맷을 기준으로 상영 프로그램이 구성되는 대부분의 영화제와 달리 서울환경영화제의 프로그램들은 기후, 생명의 공존과 같은 환경 관련 키워드들을 중심으로 영화를 묶는다. 예를 들어 2021년 영화제 프로그램 가운데 이야기하는 풍경이라는 제목의 섹션에서는 공간이라는 주제를 다룬 재건축, 재개발, 구도심 재생에 관련된 각 나라의 영화들이 소개되었다.

 

각 국가가 처한 사회 및 경제적 여건은 다르지만, 각자가 지닌 환경 문제, 그리고 맹목적인 도시 개발에 대한 문제 제기를 통해 모두가 보편적으로 공감할 수 있을 만한 이야기들을 다양한 색깔과 감성으로 전달하고 있다. 영화제 특성상 다큐멘터리 형식의 영화들만 소개될 것 같다는 오해를 받기도 하지만 출품작들 가운데는 창작(fiction) 영화들도 눈에 띄어 영화제를 더욱 풍성하게 만든다.

2021년 서울환경영화제 상영 프로그램 Ⓒ SEFF

서울환경영화제는 그저 영화라는 도구로만 환경에 관해 이야기하지 않는다. 모든 행사에서 환경에 대해 이야기하고 또 어떻게 하면 환경이라는 주제를 대중들로 하여금 생각하게 만들 것인지 고민한다. 시네마그린틴은 다음 세대인 어린이와 청소년에게 기후 위기의 심각성과 환경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마련된 교육 프로그램이다. 이 프로그램에 참여한 청소년들은 환경 영화를 감상하고 이와 연계된 친환경 프로그램들에 참여한다. 또한 환경에 관한 책을 읽고 이를 바탕으로 토론하기도 한다. 영화와 독서를 매개로 환경에 대해 자연스럽게 이야기하고 또한 미래 세대들이 환경을 지키는 일이 왜 중요한지 인식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 준다. 그뿐 아니라 여러 재활용품을 활용하는 만들기 활동을 통해, 리사이클 제품들도 일상생활에서 유용한 가치를 지닐 수 있는 소중한 자원임을 소개하기도 한다.

 

모든 참가자를 대상으로 하는 프로그램들도 여럿 준비되어 있다. 그린라운드(Green Round)에서는 다양한 환경전문가들이 추천하는 환경 관련 서적들을 소개한다. 각 전문가가 환경 관련 책을 추천하고 그 책을 통해 우리가 어떤 문제들을 고민해야 하는지 알려준다. 그뿐 아니라 매년 소개된 영화 가운데 하나를 꼽아 심도 있게 해당 주제에 대해 소개하고 이야기하는 에코 토크와 에코 포럼도 진행된다. 2021년의 경우 <퍼머컬쳐: 먹고 심고 사랑하라>, <느린 텃밭, 느린 밥상> 이 두 편의 영화를 가지고 지속가능한 농업을 위해라는 주제의 에코 토크가 열렸다.

 

또한 올해 영화제에서는 노 모어 플라스틱이라는 타이틀의 특별 전시체험행사를 마련하기도 했다. 플라스틱을 포함한 모든 쓰레기 문제에 대해 생각해 보고 더 나아가 해결 방안을 제시하고자 만든 이 전시에는 20개의 관련 업체들이 참여했다. 업사이클링을 키워드로 다양한 아이디어 및 실제 판매되고 있는 제품들을 소개하고, 나만의 업사이클링 이어폰 케이스를 만드는 체험까지 선보였다.

서울환경영화제의 다양한 프로그램들 Ⓒ SEFF 인스타그램

코로나 시대를 맞은 서울환경영화제는 2020년을 기점으로 디지털 영화제로의 전환을 선언했다. 팬데믹으로 인해 촉발된 것이긴 하지만, 디지털 상영을 통해 탄소 절감을 실천할 수 있다는 것이 영화제의 틀이 변모하게 된 큰 이유였다. 2020년에는 자체 비디오 플랫폼을 구축하여 홈페이지를 통한 전면 온라인 상영을 실시했고, 2021년에는 최소한의 오프라인 상영과 함께 다양한 콘텐츠 플랫폼에서 영화를 감상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하이브리드 영화제로 전환됐다.

 

이 과정에서 ESG 경영에 관심을 보이는 몇몇 기업들이 서울환경영화제가 디지털 영화제로 전환되는 데 적극적인 도움을 주기도 했다. 한 통계에 따르면 약 40만 명의 관객이 서울환경영화제의 상영작을 온라인으로 시청했다고 하니, 오프라인으로 개최했을 때보다 더 많은 관객과 소통하는 결과를 낳았다고 볼 수 있다.

 

이 같은 변화에 발맞추어 영화제의 많은 프로그램도 유튜브와 같은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진행되었는데, 위에서 소개했던 교육 프로그램들과 토크쇼, 그리고 감독과의 인터뷰 등이 모두 포함됐다. 환경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다양한 모습으로 사람들과 소통하는 동시에 환경을 생각하는 영화제의 정체성을 지켜가려는 노력이 돋보인다.

영화는 긴 호흡을 가진 이야기다. 이야기의 호흡이 길다는 것은, 그만큼 우리가 이야기들을 보고 접하며 생각할 수 있는 시간 또한 길게 만들어 준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 긴 시간의 이야기 속에서 우리는 의문을 던지기도 하고, 공감하기도 하고, 때로는 걱정하기도 한다. 이러한 반응들은 자연스레 그 문제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진다. 어떤 경우에는 관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사태의 심각성과 위험성에 대해 짧고 굵게 사실을 전달하는 것이 더 효과적일 수 있다.

 

그러나 서울환경영화제는 환경이라는 중요한 주제를 다룰 때 팩트로 폭격하는 것만이 꼭 능사가 아님을 보여준다. 영화를 매개로 사람들이 환경과 관련된 다양한 주제와 관점들을 더욱 깊이 생각하고 들여다볼 수 있도록 돕는다. 그리고 그 과정을 통해 얻은 통찰을 바탕으로 함께 모여 환경에 대해 토의할 수 있는 장을 열어 준다는 점에서 큰 가치가 있다. 혹시 이 글을 읽는 당신도 지구의 미래와 환경에 대해 걱정하고 있는가? 그렇다면 이번 주말에는 서울환경영화제에서 소개되었던 영화를 하나 감상해 보는 게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