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

2022년 11월 15일 개막식과 함께 제3회 제주비엔날레 《움직이는 달, 다가서는 땅(Flowing Moon, Embracing Land)》의 막이 올랐다. 2017년 제1회 제주비엔날레가 개최된 후 5년 만에 공식적으로 열리는 행사다. 5년의 시간은 제주비엔날레가 전달하고자 하는 목소리를 더욱더 단단하게 만드는 기간이 되었다.

 

제주비엔날레는 지금까지 제주도의 고유한 지리적 조건과 지역성을 바탕으로 현대미술의 국제적인 공론장을 펼쳐왔다. 특히 이번 제3회 제주비엔날레는 코로나 팬데믹으로 전 지구적 위기를 겪은 후 현대미술이 향해야 할 지점을 다시 성실히 짚어보며, 그동안 우리에게 부족했던 지구 생태계 전체의 공생과 공존에 대한 담론을 제주의 자연 곳곳에서 펼쳐갈 수 있는 중요한 자리로 꾸려졌다.

 

제3회 제주비엔날레는 2022년 11월 16일부터 2023년 2월 12일까지 총 89일간 제주도 곳곳에서 펼쳐진다. 비엔날레에서는 박남희 예술감독을 중심으로 총 16개국 55명(팀)의 예술가가 선보이는 165점의 작품을 만나볼 수 있다. 주제관인 제주도립미술관과 제주현대미술관, 위성전시관인 제주국제평화센터, 삼성혈, 가파도AiR(가파도 아티스트 인 레지던스), 미술관옆집 제주 등 제주도의 자연과 문화 예술을 상징하는 총 6개의 장소를 포함한 제주의 곳곳에서 다양한 전시, 퍼포먼스, 토크, 퍼블릭 프로그램이 열려 더욱더 다채로운 행사를 즐길 수 있다.

2022 제3회 제주비엔날레 《움직이는 달, 다가서는 땅(Flowing Moon, Embracing Land)》 포스터 Ⓒ 제주비엔날레

‘움직이는 달, 다가서는 땅’과 같이 생동하는 비엔날레

모든 전시와 프로그램은 제3회 제주비엔날레의 주제인 움직이는 달, 다가서는 땅의 의미와 밀접하게 연결된다. 움직이는 달, 다가서는 땅은 자연 안에서 모든 것이 상호 연결된 세계의 공존 윤리와 관용을 함축한 표현이다. 움직이는 달은 시간에 따라 그 모습을 바꾸는 달처럼 끊임없이 흐르는 자연의 시간과 변화의 속성을 의미한다. 이에 대한 지각과 이해는 인간이 그동안 파괴해왔던 생태계의 자연스러운 순환과 생동성의 회복을 향한 첫 단추가 된다.

 

다가서는 땅은 자연에서 호흡하는 객체들의 관계적 행위를 함축한 표현이다. 오랜 역사와 생명이 쌓인 땅에 발을 딛고 자연에 다가서며 연결되는 경험은 그 상호작용을 시작으로 커다란 지구 공동체의 공존으로 나아가는 길을 만들어낸다. 그러므로 움직이는 달, 다가서는 땅은 이 전염병과 기후 위기의 시대에 전 지구적 공생을 향한 예술적 실천을 말하는 핵심적인 표현인 셈이다.

 

그러한 주제 아래 제3회 제주비엔날레는 독특하고 독자적인 생태계를 가진 제주의 자연과 신화, 역사에 뿌리를 두고 지구 공동체에 대한 상상을 펼쳐가는 전시를 선보인다. 그뿐만 아니라 주제를 한층 더 깊게 이해할 수 있는 온·오프라인 융합 프로그램, 담론을 펼쳐갈 수 있는 전문적인 프로그램과 함께 느끼고 경험할 수 있는 시민 참여형 퍼블릭 프로그램도 마련되어 있다. 이때 움직이는 달, 다가서는 땅은 단순한 상징을 넘어 움직이고 다가서는 행동, 우리에게 필요한 실천을 강렬하게 요구하는 표어가 된다. 즉, 이번 제주비엔날레는 예술가와 시민들이 함께 체험하며 느끼고 생각한 것을 실제 행동으로 바꿔보는, 힘껏 생동하는 커다란 축제의 장이다.

제3회 제주비엔날레 전시 장소 Ⓒ 제주비엔날레

다양성을 포용하는 독특한 생태 환경을 가진 제주도, 비엔날레의 무대가 되다

제주비엔날레 전시가 열린 제주도의 총 6곳의 장소는 이번 비엔날레의 개최 의의와 주제를 선보이는 무대의 역할을 훌륭하게 해낸다. 제주도는 세계적인 화산섬으로, 기후 및 생물 다양성이 풍부한 생태 환경을 기반으로 고유한 문화와 역사를 쌓아 올린 섬이다. 그렇기에 지구 공동체를 위한 예술적 상상과 실험의 장인 제주비엔날레가 펼쳐지기에 가장 어울리는 장소이자 그 자체로도 자연으로부터 예술적 영감을 채울 수 있는 곳이다.

 

제주 미술의 정체성을 이어가는 지역 대표 미술관인 제주도립미술관, 제주도 문화예술의 상징이자 잘 보전된 자연환경과 어우러진 제주현대미술관은 이번 제주비엔날레의 주제관이다. 주제를 깊이 있게 보여주는 다수의 주요 작품을 이곳에서 만날 수 있다. 미술관의 내외부에 설치된 작품과 주변의 자연환경이 하나의 동선으로 연결되어있어 인간과 자연의 합작처럼 느껴지는 전시를 만나볼 수 있다는 점이 특별하다.

 

제주도 곳곳에 위치한 위성 전시관에서도 여러 작품을 만나볼 수 있다. 제주의 고유한 자연을 예술과 함께 경험할 수 있다는 점에서 더욱더 주목할만한 전시와 프로그램이 가득하다. 위성 전시관은 총 4곳으로, 장소 자체의 역사·문화적 가치와 매력도 뛰어나다. 그중 하나인 제주국제평화센터는 세계평화의 섬으로 공식 지정된 제주도에서 지구 공동체와의 평화와 상생을 위한 방법을 고민해볼 상징적인 자리를 마련한다. 또 다른 위성 전시관이자 국가지정문화재 사적 제134호, 제주 개벽 신화의 발원지인 삼성혈은 수백 년 된 고목이 버티고 있는 한반도에서 가장 오래된 유적으로, 오래된 자연과의 연결감을 느껴볼 수 있는 중요한 장소다.

 

가파도 AiR(가파도 아티스트 인 레지던스)는 제주도 본섬과 마라도 사이에 있는 가파도의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국내외 예술가들의 창작활동을 지원하는 국제 레지던시로, 고유한 생태계 위에서 피어나는 제주도 문화예술의 산실을 엿볼 수 있는 곳이다. 위성 전시관인 가파도 AiR를 포함한 가파도 전역에서 이번 제주비엔날레의 작품을 관람할 수 있으니 함께 둘러보면 더 좋다. 제주현대미술관 바로 옆에 자리한 미술관옆집 제주는 제주도 전통가옥의 모습을 엿볼 수 있을 뿐 아니라 자연 공동체의 삶을 반영한 독특한 전시 공간과 레지던시를 만날 수 있는 장소다. 이번 비엔날레에서는 그동안 미공개였던 공간을 활짝 열어 관람객을 맞이한다.

제주도립미술관 Ⓒ 제주비엔날레
가파도 AiR(가파도 아티스트 인 레지던스) Ⓒ 제주비엔날레

지구 공동체와 함께 호흡하는 전시

밀밀(密密), 면면(綿綿), 유유(幽幽), 미미(黴黴)

제3회 제주비엔날레의 예술감독은 박남희 홍익대학교 영상커뮤니케이션 대학원 초빙교수가 맡았다. 1995년 삼성문화재단 어시스턴트 큐레이터를 시작으로 현재까지 동시대 미술이론과 문화예술 현장에 대한 관심을 놓지 않으며 전시기획과 미술비평 분야에서 활발한 활동을 펼쳐왔다. 2013년 청주국제공예비엔날레 전시감독, 2016년~2020년 국립아시아문화전당 본부장, 2019년 국제전자예술심포지엄 예술감독을 역임했을 뿐 아니라 수많은 전시기획을 맡으며 현대미술을 통한 동시대의 담론을 끌어내는데 탁월한 능력을 선보여왔다.

 

박남희 감독이 이번 제주비엔날레를 통해서 하고자 한 이야기를 함축한 움직이는 달, 다가서는 땅은 총 4가지 세부 주제로 구성된 전시로 이어진다. 밀밀(密密), 면면(綿綿), 유유(幽幽), 미미(黴黴)는 허균의 『한정록』에 나온 문구에서 따온 단어로, 자연 속에서 그 흐름과 함께 호흡하며 자연스럽게 공존의 의미를 되새겨볼 수 있는 경험을 말하고 있다.

 

“고요함이 극에 달하면 봄 못 속의 물고기처럼 미미하게 숨을 내쉬며, 움직임이 극에 달하면 칩거한 온갖 벌레처럼 고요하게 숨을 들이쉰다. 고른 호흡은 바로 이것과 같다. 면면(綿綿·가늘고 길게 이어짐), 밀밀(密密·고요하고 깊음), 유유(幽幽·그윽함), 미미(微微·있는 듯 없는 듯)하게 숨을 내쉬니 온몸의 만 가지 구멍으로 기가 따라 나가고, 숨을 들이쉬니 온갖 구멍으로 기가 따라 들어오는 것이다. 이것이 늙은이를 젊게 하는 약이다.”

– 허균, 『한정록』-

(1) 밀밀(密密): 해와 달은 차고 기울어 – 오래된 신화로부터 시작하는 공동체의 가능성

 

이러한 세부 주제의 의미는 작품을 통해 진정한 경험의 세계로 스며든다. 먼저 밀밀 密密 : 해와 달은 차고 기울어는 신화적 자연 공명의 세계를 담아낸다. 해와 달이 차고 기우는 것처럼 순환하는 자연의 법칙은 그 자체가 신화이자 신비로운 생명의 근원이다. 그 세계에 발을 들이는 것은 커다란 지구 공동체의 미래를 그려가는 첫 지점이 된다. 특히 자디에 사 작가와 팅통창 작가의 작품은 오래된 신화로부터 출발해 현재와 미래를 비추는 거울 앞에 서는 신비로운 경험을 선사한다.

 

한국계 캐나다인으로 조각, 회화, 빛, 소리, 퍼포먼스 아트 등 다양한 방법으로 한인 디아스포라의 경험과 정체성을 작품에 녹여낸 자디에 사(Zadie Xa) 작가는 이번 제주비엔날레에서 어릴 적 어머니가 들려주었던 한국 설화와 신화를 녹여낸 작품을 선보인다. <지구 생물과 공상가를 위한 달의 시학>은 바리공주 설화를 바탕으로 조각, 빛, 소리가 결합된 멀티미디어 작품이다. 관객은 바리공주가 되어 마스크, 의상, 조각 등 설치물이 상징하는 초자연적 존재와 마주하고, 이들과 함께 지구를 치유하는 여정에 오르게 된다.

 

대만의 팅통창(Ting Tong Chang) 작가는 설치, 영상, 잉크 드로잉, 콜라주, 조소 등 다양한 방법으로 공동체의 공간과 시간, 개인의 잠재적 대화를 탐색하는 목소리를 담아왔다. 이번 제주비엔날레에서는 삼성혈과 김녕사굴의 설화를 재구성한 영상 작품 <푸른 바다 여인들>을 통해 설화를 바탕으로 한 인간의 기원, 탄생, 죽음의 흐름을 이야기한다. 특히 제주도 민요를 연구하며 제작한 어망, 부표, 조개, 바위를 활용한 독특한 악기를 이용한 음악 작업을 한국 전통 무용과 함께 영상에 담았다는 점이 주목할만하다.

자디에 사, 지구 생물과 공상가를 위한 달의 시학, 480x200 cmx(6), 제주도립미술관 Ⓒ 제주비엔날레
팅통창, 푸른 바다 여인들, 2022, 단채널 비디오, 10’, 삼성혈, 제주도립미술관 Ⓒ 제주비엔날레

(2) 면면 綿綿 : 하늘은 검고 땅은 누르며 – 역사와 문명, 인간을 넘어선 더 넓은 상상으로

 

두 번째 세부 주제 면면 綿綿 : 하늘은 검고 땅은 누르며는 자연과 인류의 오랜 시간 속에서 축적된 역사적 자연 공명의 순간을 포착한다. 강요배, 레이첼 로즈, 왕게치 무투, 이승수 작가는 땅이 품어온 생명으로부터 이어진 긴 시간의 역사를 작품을 통해 펼쳐놓았다. 역사와 문명은 인간의 것만이 아닌, 무수한 시간을 함께해 온 자연과 함께 생동하며 쌓아온 것들이다. 그 사실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순간,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은 더욱더 넓어진다.

 

민중미술 1세대 작가로 불리는 강요배 작가는 4.3항쟁을 겪었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제주의 아픈 역사를 작품에 꾸준히 담아왔다. 그와 동시에 제주에 거주하며 제주의 독특한 자연환경을 관찰하고, 그 자연의 모습에서 꿈틀대듯 생동하는 제주의 오랜 역사와 힘을 포착하는 작품을 선보여왔다. 강요배 작가가 제주비엔날레에서 선보이는 작품 <폭포 속으로>와 영상 작업 <그날>은 제주의 자연이 가진 장엄함과 역동성을 통해 오래된 제주 역사가 가진 근원적인 힘을 드러낸다.

 

미국의 작가 레이첼 로즈(Rachel Rose)는 인간이라는 존재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을 영상, 그림, 조각, 혼합 매체 등 다양한 형식으로 풀어나가는 작가다. 인간에 대한 고찰은 자연과 역사를 포함한 모든 것들의 다층적 상호 연결로 뻗어나간다. 이번 제주비엔날레에서는 긴 시간의 흐름 속에서 인류와 자연의 역사를 여러 방향에서 살펴볼 수 있는 작품을 선보인다. <인클로저>는 영국의 사회 변혁 운동인 *인클로저 운동을 배경으로, 그것이 가져온 자본주의 사회로의 변화와 그에 수반된 파국과 혼란이 일으킨 황폐함을 동시에 주목한다. 로즈 작가가 함께 선보인 <루프> 시리즈는 유리, 광물, 실리카를 이용해 암석이 모래가 되어 다시 유리가 되기까지 자연의 순환을 통해 서로 다른 재료들이 어떻게 변화하면서 연결되는지 살펴볼 수 있는 작품이다.

*인클로저 운동(Enclosure Movement): 19세기 유럽에서 개방경지나 공유지ㆍ황무지를 산울타리나 돌담으로 둘러놓고 사유지임을 명시했던 사회적 운동. 인구 증가에 따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 주도하에 이루어진 운동으로, 지주와 자본가에게는 부유함을 가져다주었지만, 농민은 더욱더 빈곤해지고 착취당하는 구조가 발생하게 되었다.

 

케냐 출신으로 뉴욕에서 활동하는 왕게치 무투(Wangechi Mutu) 작가는 아프리카와 서양의 관점을 탐구하고 융합하는 아프로퓨처리즘(Afrofuturism)의 대표적인 작가다. 아프리카 식민지의 역사와 그 흐름 속에서 억압받는 흑인 여성의 모습을 그 주변을 둘러싼 자연과 환경과의 관계로 풀어낸 콜라주와 드로잉 작품을 주로 선보여왔다. 이번 비엔날레에서 무투 작가가 선보이는 <바이러스> 시리즈는 코로나를 포함한 바이러스 모양의 조각을 통해 모든 생물이 겪는 파괴와 재생의 흐름을 포착한다. 또한 함께 전시된 <여성 표본 IX>은 인간과 함께 동물, 자연, 기계의 부분이 콜라주가 되어 하나의 여성상을 이루는 작품으로, 충돌하는 수많은 물질 속 여성이라는 존재를 다시금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이승수 작가는 제주도 바다에서 평생의 역사를 써온 해녀의 삶과 바다의 시간을 기록하는 작품을 선보였다. 특히 변하는 바다의 모습으로 환경 위기를 가장 최전선에서 체험하는 해녀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묵직한 메시지를 전한다. 제주비엔날레에서 선보이는 작품 <불을 피우는 자리>는 이승수 작가가 제주도 내 어촌계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며 수집한 해녀의 물옷과 오리발을 오브제로 활용해 제주어로 불을 피우는 자리인 불턱을 만든 작품이다. 불턱은 해녀들이 몸을 녹이며 입에서 입으로 전해 내려오는 오래된 지식과 서로를 돌보는 마음을 나누던 해녀 공동체 문화의 상징과 같은 장소다. 이처럼 오래 쌓인 역사는 인간의 삶을 넘어선 공동체의 역사, 더 나아가 그 주변 환경과 생물종 전체의 삶과 이야기로 이어진다.

강요배, 폭포 속으로, 2022, 캔버스에 아크릴릭, 668×386cm, 제주도립미술관 Ⓒ 제주비엔날레
레이첼 로즈, 인클로져, 2019, 비디오 스틸, 제주도립미술관 Ⓒ 제주비엔날레

(3) 유유 幽幽: 바람은 대나무 숲에서 거문고가 되고 – 새로운 감각으로 세계를 다시 경험하다

 

세번째 세부 주제인 유유 幽幽: 바람은 대나무 숲에서 거문고가 되고는 물질적 자연 공명의 세계에서 흘러나오는 반짝이는 예술적인 순간을 포착한다. 이 세계 전체를 감각하며 발을 땅에 딛고, 수많은 다른 존재와 연결되며 그 눈으로 세상을 다시 바라보는 경험은 그 자체로 하나의 시가 된다. 마치 대나무 숲을 지나는 바람이 거문고가 되어 음악을 연주하는 것처럼 말이다. 제니퍼 알로라와 기에르 칼자디아 작가는 그 연장선에서 공간을 새롭게 경험하며 우리가 지구 공동체에서 나아가야할 방향이 무엇인지 끊임없이 질문하는 작품을 선보인다.

 

제니퍼 알로라와 기에르 칼자디아 작가는 다양한 방법으로 문화와 역사를 탐구하고 사회 정치적인 목소리를 높여온 예술가이다. 이들이 이번 제주비엔날레에서 선보인 작품 <Graft(그래프트)>는 실제 꽃과 매우 유사한 꽃 모형 설치 작품으로, 인간이 자초한 기후 위기에 대한 경고를 담고 있다. 제주도립미술관 한쪽에 어지럽게 떨어져 있는 수많은 카리브해의 꽃은 지구 온난화로 발생한 허리케인으로 인해 망가진 수백만 그루의 나무를 상징한다. 흩뿌려진 사실적인 꽃 모형은 전시 공간을 낯설게 바꾸고, 새로운 감각과 시선으로 세계를 다시 바라보고 경험하게 한다. 그러한 경험은 그 자체로 우리에게 끊임없이 함께하는 삶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알로라&칼자디아, 그래프트, 2019, 재활용 폴리염화비닐, 각 연작마다 17,500개의 꽃, 가변 크기, 제주도립미술관 Ⓒ 제주비엔날레
강이연, 무한, 2022, 키네틱 프로젝션 설치, 4채널 음향, 240×150×239cm, 제주현대미술관 Ⓒ 제주비엔날레

(4) 미미黴黴: 우주의 별들은 줄지어 펼쳐져 있고 – 근원의 창조성과 연결되는 하나라는 감각

 

마지막 세부 주제 미미黴黴: 우주의 별들은 줄지어 펼쳐져 있고는 우주적 자연 공명의 메시지까지 나아간다. 수많은 경험과 깨달음 끝에 모든 존재가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는 감각은 생명 본연의 창조성을 품은 우주와 연결된다. 우주와 공명하는 경험은 지구 공동체가 되어 함께 살아갈 미래를 그려가는 길 위에 우리를 본격적으로 올려놓는다. 강이연, 김수자 작가는 끝없는 탐구와 성찰, 그리고 드넓은 상상의 세계를 펼쳐 보이며 모든 다양한 생명의 공존을 향한 목소리를 높인다.

 

예술과 기술을 결합한 영상 설치 작업과 프로젝션 맵핑을 주로 하는 강이연 작가는 이번 제주비엔날레에서 이분법적으로 구분 지어지는 세계에서 인간의 무모한 개발이 어떠한 파괴를 만들어내는지 보여주는 작품 <무한>을 선보인다. <무한>은 1880년부터 현재까지 150년간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 증가량을 반영한 키네틱 프로젝션 설치 작품으로, 2000년 이후의 시점인 후반부로 갈수록 이산화탄소 농도가 급격하게 증가하면서 영상이 점점 더 격해지는 특징이 있다. 인간은 혼자 무한한 인류의 확장이 가능하다고 믿지만, 결국 그런 이기적인 행보가 이 세계의 수많은 관계를 어떻게 망칠 수 있는지에 대한 위험성을 경고한 작품이다.

 

퍼포먼스, 비디오, 설치를 넘나들며 여성의 삶에 대한 성찰을 다양하게 선보이는 김수자 작가는 점점 더 넓은 세계를 상상하며 시각을 넘어선 철학적 탐구를 보여주는 작품을 만들어왔다. 이번 제주비엔날레에서 선보이는 작품 <호흡>은 건물의 경계를 특수한 반투명 필름으로 둘러싼, 자연광으로 시간에 따른 다채로운 빛을 공간에 전하는 작품이다. 매순간 변하며 일렁이는 빛은 공간이 숨을 쉬는 하나의 유기체처럼 보이게 만든다. 이러한 경험은 우리가 자연과 함께 공명하고 호흡하며 연결되는 특별한 순간을 창조한다.

 

이외에도 총 16개국 55명(팀)의 제주비엔날레 참여 작가들은 자연공동체, 전 지구적 공생, 생명 윤리, 예술 실천, 달의 호흡, 땅의 몸짓, 행성적 전환, 객체 공존, 생동하는 물질, 순환하는 우주 등 주제와 연결된 키워드를 담은 다양한 작품으로 분명한 메시지와 날카로운 질문을 던진다. 제주비엔날레의 전시는 상상할 수 있는 가장 넓은 공존의 세계로 나아갈 수 있도록 인도하는 지표가 되어준다. 또한 동시에 제주의 자연과 이야기와 어우러지며 우리에게 새로운 세상을 펼쳐 보인다. 전시 장소가 다양한 만큼 충분히 시간을 들여 곳곳을 둘러보고 작품을 품은 제주의 자연 속에서 사색에 잠긴다면, 제주비엔날레가 말하고자 하는 주제를 한층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전시장 밖으로 움직이는 비엔날레 프로그램, 하나의 생명체가 되다

제3회 제주비엔날레의 가장 큰 특징은 모든 생명이 공명하고 함께 호흡하는 행위에 주목하는 것이다. 전시 외에 진행되는 각종 프로그램 역시 올해 비엔날레의 주제인 움직이는 달, 다가서는 땅의 의미를 경험을 통해 받아들일 수 있도록 채워졌다. 다양한 시민참여형 프로그램과 상시 운영 프로그램이 비엔날레 기간 중 진행되고 있으며, 그 중 시민 참여 자체가 작품이 되어 작품으로 전시된 경우도 있다. 또한 국제 큐레이터 토크, 컨퍼런스, 시민 교양 강좌 등이 열려 비엔날레 주제 이해를 더 높이는 한편 이론과 실제, 실천에 대한 생각의 지평을 넓혀 볼 기회를 제공한다. 이처럼 모든 프로그램은 전시와 함께 마치 하나의 유기체처럼 이어지는 특별한 경험을 만들어낸다.

(1) 참여와 연결의 경험이 만드는 예술 – 홍이현숙, 최선, 리크닛 티라바닛 작가 프로젝트

 

제주비엔날레의 공식 프로그램은 아니지만, 참여 작가들의 시민 참여 프로젝트는 비엔날레를 찾은 관람객에게 잊지 못할 새로운 경험을 선사한다. 홍이현숙 작가의 <가파도의 날> 프로젝트와 최선 작가의 작품 <나비>를 제작하기 위한 시민 참여 프로젝트는 그 가치와 의미를 가득 담은 작품으로 탄생했다. 프로젝트를 통해 완성된 두 작가의 작품은 제주비엔날레 전시 기간 동안 만나볼 수 있다. 설 연휴 중 열릴 예정인 작가 프로젝트인 <리크릿 티라바닛: 예술은 끝났다!>는 아직 참여할 수 있으니 관심이 있다면 놓치지 말길 바란다.

 

인간을 넘어선 다양한 생물종과 교감하며 자아와 감각을 확장하는 홍이현숙 작가는 이번 제주비엔날레에서 <가파도로 온 것들>이라는 작품을 선보였다. 이 작품은 작가가 <가파도의 날> 프로젝트를 통해 시민들과 함께 가파도에서 직접 주운 쓰레기를 글라스 하우스에 전시한 것이다. 이때 전시장인 거대한 글라스 하우스는 그 쓰레기가 담기는 쓰레기통이 된다.

 

실제로 가파도를 걸으며 바다에 떠 있는 수많은 쓰레기를 줍는 경험은 그저 전시를 보는 것보다 훨씬 더 커다란 마음의 반향을 불러온다. 작가가 쓰레기 아래로 내려가 바닷속 생물에게 사바하를 불러주는 퍼포먼스는 해양쓰레기로 오염된 바다의 생명에게 위로와 사과를 건네고, 그들과 인간이 공생으로 향하는 길을 찾을 수 있길 바라는 간절한 마음을 전한다. 그러한 체험과 전시, 퍼포먼스는 그 모든 과정이 하나로 이어져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잇는 간절한 평화의 목소리가 된다.

 

최선 작가는 캔버스와 잉크를 들고 귀덕2리 어촌계 한수풀 해녀 학교, 온평·덕수·영평 초등학교, 표선 고등학교, 제주 4·3 트라우마 센터, 한림 어촌 마을 등에서 사람들을 만나 작품 <나비>를 만들었다. <나비>는 성별, 종교, 국경을 초월한 사람들의 숨결로 만들어진 나비를 전시한 작품으로, 2014년부터 최선 작가가 이어온 작업의 연장선에 있다. 참여자들은 캔버스 위에 잉크를 얹고 3번의 숨을 불어넣어 캔버스에 자신의 숨결이 담긴 파란 나비를 남겼다. 조금씩 다르면서도 엇비슷한 모든 이들의 숨이 남아있는 작품은 각자 고유성을 가진 존재들이 각자의 모습대로 서로 또 이어져 함께 날갯짓하는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작가 프로젝트 <리크릿 티라바닛: 예술은 끝났다!>는 관계를 중심으로 한 예술적 경험을 만드는 것에 집중하는 프로그램이다. 티라바닛 작가는 시민 참여를 중심으로 공동체 의식을 일깨우는 작품을 주로 선보여왔다. 이번에 티라바닛 작가가 선보일 프로젝트 역시 경험과 참여를 통해 관계를 확장할 기회를 만들어낼 예정이다. 프로그램은 대담과 퍼포먼스, 그리고 아티스트 토크로 총 3일간 진행되며, 대담과 토크는 사전 신청 후 참여 가능하지만 퍼포먼스는 모두에게 열려있다.

 

대담 <리크릿 티라바닛X강승철>은 두 예술가의 제주 옹기 협업 작업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를 담아낸 프로그램이다. 리크릿 티라바닛 작가가 제주 옹기토로 빚은 그릇을 강승철 도예가가 제주 전통 가마인 검은굴에서 구워 완성했다. 검은굴에서 탄생한 그릇은 그 독특한 축조 양식 덕분에 가마 안의 재가 붙어 검은색을 띤다. 전 세계를 돌며 활동하는 태국 출신의 작가가 제주도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예술가와 함께 제주의 전통 방식으로 만든 도기는 참여자들이 음식을 먹을 수 있는 그릇이 되어 또다른 이야기로 이어지고 있다.

 

티라바닛 작가가 선보이는 퍼포먼스 <예술은 끝났다! 우리와 함께 귤 백김치를 담그자>는 작가가 제주비엔날레에서 선보이는 작품 <무제: 검은 퇴비에 굴복하라>의 연장선에 있는 작품이다. 미생물과 연결되는 경험이기도 한 퇴비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체험하고 발효 음식인 막걸리와 김치, 간단한 먹거리를 즐기며 관계에 대해 즐거운 상상을 펼쳐볼 수 있는 자리가 열린다. 그뿐만 아니라 티라바닛 작가의 김장 퍼포먼스도 만나볼 수 있다. 생명 순환의 과정을 오감으로 느끼고 작가와 참여자가 함께 음식을 먹고 대화를 나누는 과정은 모든 것들과 연결되는 경험을 더욱더 특별하게 직조할 것이다.

 

이외에도 티라바닛 작가의 작품 세계를 더욱더 깊이 이해할 수 있는 아티스트 토크 <리크릿 티라바닛>이 열릴 예정이다. 리크릿 티라바닛 작가의 프로젝트에 대한 자세한 정보, 프로그램 신청과 관련한 내용은 제주비엔날레 공식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홍이현숙, 가파도로 온 것들, 2022, 해양쓰레기, 가변크기, 글라스하우스, 가파도 AiR Ⓒ 제주비엔날레
<가파도의 날> 프로젝트에 참여한 홍이현숙 작가와 참여자들 Ⓒ 제주비엔날레

(2) 제주비엔날레 시민 참여 프로그램, 진실한 공명의 경험을 만들다

 

<예술가와 함께 걷고 낭독하기>는 제3회 제주비엔날레의 첫 번째 프로그램으로, 비엔날레 개막 전 사전에 진행하고 촬영한 프로그램이다. 비엔날레 참여 작가와 제주도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작가를 포함한 다양한 분야의 예술가들, 제주 방언을 사용하는 할머니와 제주도민 어린이, 일반 시민이 모두 함께 참여해 그 시작을 알린 프로그램이라 그 의미가 더 깊다. 참여자들은 삼성혈과 가파도 AiR에서 자연과의 공생과 자연 질서 회복에 대한 자신의 목소리를 내며 함께 걷고 낭독하는 행위를 통해 움직이는 달, 다가서는 땅의 의미에 주파수를 맞춰보는 시간을 가졌다. 현장을 담은 영상은 <바람은 대나무 숲에서 거문고가 된다>라는 작품으로 제주도립미술관 기획전시실1 아카이브 공간에서 비엔날레 기간 중 만나볼 수 있다.

 

함께 걷고 낭독하면서 주제와 깊이 공명하는 프로그램은 사전에 진행되었을 뿐 아니라 어린이와 가족 참여형 워크숍으로 비엔날레 기간에도 열렸다. <예술가와 함께 낭독하고 그리기>는 큐레이터 서지형, 미술 작가 김건주, 가수 요조와 함께하는 낭독 워크숍, 참여 작가 황수연의 조각 작품 <똥파리>를 만드는 체험 활동, 참여 작가들의 작품을 그려보는 드로잉 워크숍 등 총 세 가지 세부 프로그램으로 이루어졌다. 함께 걷고 서로의 목소리를 통해 다시금 되새기는 자연과의 깊은 교감, 우리가 그동안 느끼지 못했던 가장 작은 시선으로 다시 세계를 바라보는 경험, 그리고 작품의 의미를 나의 손끝에서 다시 한번 좇아 느껴볼 수 있는 시간이 마련되었다.

 

이외에도 이번 제주비엔날레에서는 시민들이 참여할 수 있는 다양한 참여형 프로그램이 열렸다. <초자연 제주>는 5G XR 및 트윈 환경에서 인공지능 기술을 기반으로 한 미디어 아트를 VR로 체험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다. 기술을 통해 완성된 시공간을 초월한 물리법칙을 거스르는 초자연적 공간에서 제주의 자연을 색다른 시선과 감각으로 완전히 새롭게 경험할 수 있다.

 

어린이∙가족 참여형 워크숍 <비엔날레 Fly_똥파리>는 황수연 작가의 작품 <똥파리>를 직접 만들며 똥파리의 시선으로 다시 세계를 바라보고, 나아가 자연 공동체의 다양한 구성원들의 관점과 이들과의 공존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경험을 제공한다. 그 연장선에서 환경 오염을 최소화하기 위해 만드는 과정에서 나오는 쓰레기는 전부 작품에 사용된다. <비엔날레 Fly_똥파리> 워크숍은 제주도립미술관에서 비엔날레 기간 동안 매주 토요일에 열린다. 제주도립미술관 홈페이지에서 신청할 수 있으며, 현장 접수도 가능하다.

 

이뿐만 아니라 제3회 제주비엔날레에서는 올해의 주제 움직이는 달, 다가서는 땅을 더 구체적으로 확장하고 의견을 나눌 수 있는 각종 학술 프로그램이 열렸다. 국제 큐레이터 토크 <미래의 자연, 미래의 예술: 미래 자연과 예술은 어떻게 나아가야 하나?>와 서귀포 기후예술 컨퍼런스 <소멸의 시대, 예술의 역할>, 그리고 시민을 대상으로 총 4강으로 구성된 제주비엔날레 연계 시민 교양 강좌 등이 열려 비엔날레의 전시와 동시대의 담론, 장소와 관객과의 연결점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들을 펼쳤다. 국제 큐레이터 토크는 제주도립미술관 공식 유튜브에서 다시 볼 수 있다.

최선 작가의 작품 <나비>를 위해 숨을 불어넣어 나비를 만들어내는 제주 해녀들 Ⓒ 제주비엔날레
최선 작가의 작품 <나비>를 위해 숨을 불어넣어 나비를 만들어내는 참여자 Ⓒ 제주비엔날레

제3회 제주비엔날레는 우리가 하나의 거대한 공동체, 더 나아가 지구라는 거대한 생명체 하나라는 새로운 감각으로 함께 호흡하고 공명할 수 있는 유기적인 경험을 만들어낸다. 또한 모두가 참여할 수 있도록 축제의 문을 활짝 열고, 공동의 경험을 통해 함께 걸어갈 길을 상상하고 펼쳐가는 다양한 예술적 실천에 대한 목소리를 높인다.

 

아름다운 제주의 자연 속에서 이러한 총체적인 경험을 하고 싶다면 2월 12일 제주비엔날레가 막을 내리기 전에 꼭 방문하기를 권한다. 자세한 관람 안내 및 전시, 프로그램 관련 정보는 제주비엔날레 공식 홈페이지 및 SNS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번 제주비엔날레에서 펼쳐진 많은 상상이 움직이는 달, 다가서는 땅과 같이 계속 이어지는 지속가능한 실천과 단단한 연대로 오랫동안 우리의 곁에 남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