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

독일의 사회학자 페르디난트 퇴니스(Ferdinand Tönnies)는 그의 저서 『공동사회와 이익사회』에서 사회구성원 간 결합 의지를 기준으로 공동사회(Gemeinschaft)와 이익사회(Gesellschaft)를 구분했다. 공동사회는 결합 그 자체를 결과로 여기며 주로 친족, 혈연, 가족 등 가까운 사이에서 형성되는 관계를 의미한다. 이때 공동사회의 유대 관계는 주관적인 축에 속하며 공통적인 가치와 관습 등으로 유지된다.

 

반면 이익사회는 결합을 상위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 간주하며 기업, 군대, 정당 등 구성원 간 일정 거리가 있는 관계들로 구성된다. 유대관계보다는 이해관계에 가까우며 합리적인 원칙과 절차에 입각한 규율로 유지된다. 알다시피 대부분의 사회는 공동사회가 지배적이었던 과거에서 이익사회가 주를 이루는 현재의 형태로 점차 변화해 왔다.

 

도시 공간도 별반 다르지 않다. 구성원의 결속을 위해 세워진 교회나 협동 농장 같은 시설들은 시간이 지나며 점차 쇠퇴했고, 그 대신 합리적인 절차와 이익을 창출하기 위한 조직들이 급속도로 확산됐다. 이러한 변화는 자본주의 사회 속에서 여전히 현재 진행 중이다. 퇴니스의 고향인 독일도 예외는 아니다. 그러나 독일에는 아직도 공동사회를 오롯이 경험할 수 있는 특별한 공간이 있다. 바로 커뮤니티 정원(community garden)이다.

 

1800년대부터 시작된 커뮤니티 정원의 역사는 클라인가르텐(kleingarten)이라고도 불리는 초기의 할당 정원(allotment garden)에서 개방성과 공공성을 강조하는 형태로 점차 변화해 왔다. 특히 21세기 이후 재생을 목적으로 낙후공간에 공공 정원을 조성해 공동체 간 상호작용을 강화하며, 기존의 정원과 큰 차이가 생겼다.

이익사회 속 공동사회, 커뮤니티 정원 © allrecipes
모리츠 슈레버의 모습 © DW Made for minds

클라인가르텐(kleingarten)의 역사

1800년대 초 독일에서 도시화가 시작되자 지역 정부를 포함한 공장 주인, 토지 소유인, 기부 단체 등은 도시 빈민들의 식량 문제를 해결하려는 목적으로 경작용 토지를 할당하기 시작했다. 빈민들은 빈민들을 위한 정원이란 뜻의 할당 정원, 아멘가르텐(Armengarten)에서 농작물을 재배하며 식량과 휴식 공간을 확보했다. 이러한 할당 정원의 형태는 점차 독일 전역으로 확장되어 1826년에는 19개의 도시에서 아멘가르텐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러나 독일식 할당 정원이 본격적으로 확산된 것은 1800년대 중후반, 라이프치히 출신의 의사 모리츠 슈레버(Moritz Schreber)가 도시 청년들에게 실외 활동의 이점을 강조하면서부터였다. 그는 실외 활동 장소로서 놀이터를 세울 것을 주장했고, 이를 계기로 그의 이름을 딴 슈레버가르텐(Schrebergarten)이 탄생했다. 그러나 이름과 달리 슈레버가르텐의 공식적인 정원 형태는 슈레버가 직접 개발한 것이 아니었다.

 

슈레버가 사망한 지 3년 후인 1864년, 라이프치히의 학교 교장 선생님이었던 에른스트 하우스차일드(Ernst Hauschild)는 할당 정원의 초기 형태를 조성했다. 그는 공장 노동자의 자녀들이 실외공간에서 놀 수 있도록 토지를 임대해 놀이터를 설치했고, 부모와 자녀들로 구성된 모임을 조직했다. 놀이터에서 아이들이 놀 동안 부모들은 정원을 가꾸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 정원의 역할이 확장되며 본래 기능이 전도되기 시작했다. 세계 1차 대전 즈음의 정원들은 모두 슈레버가르텐의 형태를 띠었다. 독일 정부가 임대료를 일정 수준으로 유지하는 정책을 발의하며 슈레버가르텐을 보호하려 했다. 그러다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겪으며 식량 안보의 중요성이 확대되자, 이 정원들도 다른 나라의 할당 정원처럼 식량 자원을 생산하는 작은 기지로서 활약했다. 정원을 가꾸기 위한 도구를 보관했던 작은 창고는 전쟁 중 임시 거처로 사용되기도 했다.

 

전쟁이 끝난 후, 정원은 필수적인 식량 생산지로서의 기능을 잃는 대신 여가와 휴식을 제공하는 공간으로 재탄생했다. 1983년에는 할당 정원들을 보존하기 위한 국가적 법안(Bundeskleingartengesetz)이 발의되었다. 낮은 임대료와 토지 이용 방안 등 정원 운영에 필요한 여러 가지 공식적인 기준들이 이때 마련되었다.

 

오늘날 슈레버가르텐은 클라인가르텐(kleingarten)이라고 불리며, 사람들이 주로 살지 않는 공항이나 철로, 베를린 장벽 터 주변 등에 조직되어 있다. 과거 정원을 임대해 관리하던 사람들은 대부분 60대 이상의 중장년층들이었지만, 최근에는 청년층도 점차 가담하고 있는 상태다.

초기 슈레버가르텐의 모습 © SchreberMeister Logo Design on Behance
오늘날 클라인가르텐의 모습 © Capital

새로운 커뮤니티 정원의 등장

1990년대에 들어서며 독일에는 전통적인 클라인가르텐과는 구분되는 새로운 형태의 도시 커뮤니티 정원(urban community garden)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초기의 커뮤니티 정원은 정치 난민과 이민자들의 사회적 적응을 돕고 연대감을 증진하고자 했다. 1998년 독일 괴팅겐(Gottingen)에서 처음으로 정원 연합이 만들어졌으며, 그 덕에 독일 정착 이민자들은 본국에서 가꾸던 정원을 다시 운영할 수 있었다. 현재는 이민자들 외에도 각계각층의 시민들이 커뮤니티 정원 조성에 적극 참여하고 있으며, 그 형태도 매우 다양해지고 있다.

 

그러나 새롭게 들어선 커뮤니티 정원들은 본질적으로 클라인가르텐과 차이가 있다. 오랜 역사가 바탕이 된 클라인가르텐은 1910년대부터 원활한 운영을 위한 법적 장치들을 갖춘 상태였다. 토지이용 준비 계획에도 국가가 관여하여 안정적으로 운영되는 편이었다. 그러나 새로운 커뮤니티 정원들은 클라인가르텐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운영 시스템이 불안정한 축에 속했다.

 

실제로 도시 정원들은 이를 뒷받침해 줄 행정적인 장치가 미흡한 상태인데다, 혹 지원을 받는다고 하더라도 임시적인 조치 정도만 받을 수 있다. 대다수가 대규모 프로젝트 형식으로 운영됨에도 지원 수준은 클라인가르텐에 비해 적은 편이다. 또한 프로젝트가 실질적으로 도시 재생에 기여한 바에 비해 과소평가를 당할 가능성도 높다.

 

그렇다고 해서 도시 정원에 부정적인 면만 있는 것은 아니다. 도시 정원은 긍정적인 측면에서 공동체 기능을 재활성화하는 데 크게 기여한다. 또한 단순한 여가의 차원을 넘어 사회 문제를 인식하고, 공동체적인 학습 기회를 도모하며, 지식을 생산하려는 목적도 있다.

 

윈클러(Winkler, Bastian) 외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2017년 기준, 클라인가르텐 같은 전통 정원을 제외한 도시 정원의 수는 657개에 이르며, 대부분 2010년과 2014년 사이에 급격하게 증가했다. 대부분의 프로젝트는 11명에서 20명 사이의 참여자들로 구성되어 있으며 정원 조성의 주요 요인은 사회적 상호작용, 문화적 교류, 자연과 소통, 그리고 지속가능한 삶의 영위다. 조사 결과, 사회적 공동체를 최우선으로 삼은 참여자의 수가 압도적으로 많았다.

 

또 특기할 만한 점은 정원 운영자들의 연령대다. 대부분의 운영자가 50대를 넘어가는 클라인가르텐과 달리 도시 정원 운영자들은 대부분 1980년부터 1989년생들로, 젊은 층이 상당수를 차지한다. 90년대생들의 비중도 일정 부분을 차지하는 것을 볼 때, 공동체 정원의 패러다임이 젊은 층을 중심으로 변화되는 흐름을 볼 수 있다.

클라인가르텐(좌)과 새로운 도시 정원(우)의 모습 © ResearchGate

빈 공간을 초록으로 물들이다

베를린은 독일의 수도이자 도시 정원의 핵심이 되는 중요한 지역이다. 베를린 도시 정원의 역사는 1997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훔볼트(Humboldt) 대학교의 비공식 단체인 소규모 농업(AG Kleinstlandwirtschaft)을 중심으로, 커뮤니티 정원에 대한 본격적인 담론이 제기되었다. 이후 1992년, 지속가능한 발전을 목적으로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채택된 의제21이 1997년 후반 베를린에서 본격적으로 이행되면서부터 커뮤니티 정원 프로젝트들이 정부의 지원을 받게 되었다.

 

공주의 정원

역사학자 로버트 쇼(Robert Shaw)와 영상 제작자 마르코 클로젠(Marco Clausen)은 잡초와 풀이 무성했던 베를린 크로이츠베르그(Kreuzberg)에 위치한 모리플라츠(Moriplatz)라는 이름의 공터를 대규모 커뮤니티 정원으로 탈바꿈시켰다. 이들은 쿠바의 수도 아바나(Havana)에서 많은 도시 거주자들이 자발적으로 정원을 가꾸는 모습을 본 후, 도시 정원시스템이 어떻게 운영이 되는지 호기심을 갖게 되었다.

 

이후 한 차례 더 쿠바에 방문했을 때, 두 사람은 베를린이란 도시에도 정원을 가져다 놓을 수 있을지 본격적으로 고민하기 시작했다. 2009년, 이들은 베를린의 모리플라츠라는 공터를 임대하고 자신들이 계획하는 바를 홍보했다. 그러자 이 프로젝트에 150명의 동네 자원봉사자들이 모였고, 오랫동안 방치된 약 2톤의 쓰레기를 처리하며 녹지로 재정비할 수 있었다.

 

완성된 정원의 이름은 공주 정원이란 뜻의 프린쩨씨넨가르텐(Prinzessinnengarten)으로, 이 곳에선 각종 작물과 관상식물이 재배되었다. 그러나 자연적인 토양에서 자라는 정원 식물들과 달리 이들은 쌀자루나 플라스틱 박스와 같은 재활용 용기 속에서 자랐다. 언뜻 봤을 때 불안정해 보이는 정원 환경 속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프린쩨씨넨가르텐은 처음부터 임대 기간이 정해져 있었고, 언제든지 사유화가 가능했다. 즉 예상치 못한 이동에 대비할 수 있도록 설계된 것이다.

 

지금까지도 정원을 운영하는 사람 중 그 누구도 땅을 소유하지 않았으며, 자발적인 노력을 통해 공간을 유지하고 있다. 운영자들은 식당에 재료를 공급하거나 농작물을 판매하는 행위 외에도 사회적, 교육적, 경제적 활동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노마디슈 그륀(Normadisch Grun)이라는 비정부기구를 설치해 각종 휴식 공간을 설치하였고, 워크숍이나 문화 행사 등을 개최하고 있다.

천국의 침대

베를린의 베딩(Wedding) 지역에 위치한 뮬러스트라세(Mullerstrasse) 거리에는 작은 쇼핑센터가 있다. 어느 날 이 쇼핑센터의 주차장이 공터가 되자 2012년 지역 예술가들과 상점 운영자들은 회의를 통해 이곳을 다른 방식으로 활용하기로 했다. 그러던 중 한 그래픽 예술가가 옥상 정원으로 전환할 것을 제안했고, 정원 운영 경험이 있는 30명 정도의 사람들이 계획을 실행하려고 모였다.

 

같은 해 라움스타아키텍텐(Raumstar architekten)이라는 건축사무소가 이 프로젝트에 합류했다.  프린쩨씨넨가르텐과 협력해 옥상정원을 건설한 경험이 있던 이들은 재활용 물품을 이용해 옥상에 녹지를 조성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 공간은 최종 단계에서 화재 법안으로 인해 이용 허가를 부여받지 못했다. 대신 관할 구역인 미테 구(Borough of Mitte)가 지정한 장소인 루허플라츠스트라세(Ruheplatzstrasse)에 정원이 들어서게 되었다.

 

천국의 침대라는 뜻의 힘멜비트(Himmelbeet)는 이렇게 탄생했다. 2013년, 대중들에게 완전히 개방된 이후 현재 약 300명 이상의 운영자들이 활동하고 있다. 재배 공간 외에도 정원 카페, 공유 주방과 오븐, 무대와 영화 시설, 아이들을 위한 놀이 시설 등 다양한 공간들이 자리 잡고 있으며, 친환경 소재로 지어진 카페는 최소한의 폐기물 발생을 원칙으로 삼는다. 힘멜비트 공동체 일원들은 주변의 다른 식당들이 폐기물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가이드북을 작성해 배포하기도 했다.

 

또한 힘멜비트에는 식물만 있지 않다. 수분을 통해 식물들이 성장하는 데 필수적인 벌들도 함께 관리되고 있다. 이렇듯 힘멜비트의 규모가 다양한 방면으로 확장되면서 사회적으로 소외됐던 장애인, 이민자, 난민들이 합류할 수 있게 되었으며, 이들을 포용하고 화합을 도모하는 워크숍이나 프로젝트들도 함께 늘어나고 있다.

공유지 사무소

2008년, 베를린의 유서 깊은 템펠호프(Tempelhof) 공항이 문을 닫았다. 대신 철거된 자리에는 공원이 세워졌고 지역 주민과 학생들, 그리고 훔볼트 대학교의 AG Kleinstlandwirtschaft를 중심으로 한 연속적인 시위 끝에 마침내 2010년, 시민들에게 개방되었다.

 

공원 개방과 더불어 베를린은 임시 프로젝트 진행을 희망하는 이들을 모집했다. 그 결과 2010년, 13명의 발기인과 함께 개척자 프로젝트(pioneer project)로서 알멘데 콘토르 (Allmende Kontor)라는 프로젝트가 최종 승인되었다. 2011년 첫 파종이 시작되었고, 2014년에 정식으로 비영리단체가 설립되었다. 현재 초창기 멤버인 13명의 설립자는 운영자문위원으로 정원 관리 및 감독직을 맡고 있으며 약 5000제곱미터 규모의 정원에는 280개의 화단이 놓여 있다. 지금은 900명 이상의 사람들이 운영진으로 참여하고 있다.

 

정원의 이름은 공유지를 뜻하는 알멘데(Allmende)와 사무소를 뜻하는 콘토르(Kontor)를 결합해, 도시 정원의 조정 기구로서 기능한다는 의미로 지어졌다. 알멘데 콘토르는 프린쩨씨넨가르텐과 마찬가지로 재활용 물품들을 화단으로 사용하고 있는데, 공원의 성격이 임시적이기도 하지만 오랫동안 공항으로 쓰이면서 토양이 상당히 오염된 탓이다.

 

이곳에서는 친환경 농산물 육성 및 재배 외에도 화단 건설 방법이나 참여적 도시 계획 구성 요소 등 다양한 주제를 바탕으로 한 워크숍과 세미나가 주기적으로 열린다. 여타 정원과 달리 이곳에는 베를린 시와의 계약조건으로 인해 재배지 이외에 상업시설은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참여자끼리 연구 모임을 조직하거나, 소규모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등 공공성이 짙은 지식 교류 및 상호작용 활동들이 다양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커뮤니티 정원은 구부러질지언정, 부러지지 않는다

커뮤니티 정원은 베를린을 포함한 독일 전역을 초록빛으로 물들였다. 그러나 이들은 여전히 불안정한 상황 속에 놓여 있다. 토양으로부터 떨어진 이동식 화단에서 자라는 식물들은 커뮤니티 정원의 불안정성을 드러낸다.

 

2021년 10월부터 힘멜비트는 현 위치에서 운영할 수 없게 되어 그렌즈스트라세 (Grenzstrasse)와 가르텐스트라세(Gartenstrasse) 사이로 이전하도록 계획되어 있다. 아무도 토지를 소유할 수 없으며, 어떠한 이유이든 관할 구역이 해당 활동이 적합하지 않다고 결론을 내리면 운영자들은 무조건 정원을 이전해야 한다.

 

이처럼 정원을 포기하지 않고 유지하기 위해서는 참여자들의 지속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그러나 상업성이 아닌 공공의 성격으로 인해 대부분의 정원 책임자들은 보수 없이 일하고 있으며, 무보수 봉사는 결과적으로 지속적인 참여에 대한 동기 부여 저하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힘멜비트의 장소 선정 과정 © Himmelbeet community garden
알멘데 콘토르의 모습 © Allmende Kontor

그럼에도 이 대안적 움직임은 계속되는 중이다. 힘멜비트조차 이전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지만, 활동가들의 협력 아래 정원은 계속 유지되고 있다. 다양한 배경의 사람들이 편견과 차별 없이 함께 정원을 가꾸며 형성된 유대감은 쉽게 사라지지 않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견고한 안전장치의 부재는 오히려 창의적인 공동체 정원 운영 방식을 형성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기도 했다. 도시 정원의 가장 큰 맹점이 가장 명백한 정체성인 유연성과 독창성, 포용성을 강화한 셈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러한 형태의 특성을 유지하면서도 더 많은 지속성을 확보할 수 있을까? 그 해답은 바로 대외적인 협력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데 있다. 담당 시청이나 구청은 도시 정원이 주는 다채로운 혜택을 명확히 인지해야 하고, 운영자들은 관리자들이 이를 기억할 수 있도록 끊임없이 소통해야 한다. 동시에 정원을 금전적으로 지원할 수 있는 연결망을 확장해 재정적인 문제를 최소화해야 한다.

 

한국에도 독일처럼 공동체 정원이 조금씩 확산되고 있다. 그러나 독일만큼 그 역사가 길지 않아 조직화되어 있지 않은 상태다. 커뮤니티 정원은 단기간의 급격한 발달로 인해 약화되어 있던 연대 의식과 사회적 단합을 재활성화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러나 일방적으로 독일의 모델을 도입하기보다는 독일의 사례에서 발생한 여러 가지 쟁점들을 면밀히 확인하고, 한국의 사정도 함께 고려해야 할 필요가 있다. 도시 공동체 정원이 더욱 진화된 형태로 우리 곁에 남아 있기를 바라며 글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