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FT 미술시장이 급속도로 성장하고 있다. 반짝 유행에 그칠 것이라는 우려와 달리 여전히 시장의 높은 기대감을 반영하는 중이다. 디지털 이미지를 사고파는 NFT 미술이 예술로 인정받을 수 있느냐는 논란은 여전하다. 그러나 어떤 대상이 그저 사물로만 남을지, 예술 작품이 될지 결정하는 것은 단순히 눈에 보이는 가치가 아니다. 미술비평가 아서 단토(Arthur Danto, 1924~2013)의 말처럼, 어떤 의미가 작가의 손에 의해 구현된다면 그것은 곧 예술 작품이 된다. NFT 미술 작품들은 구현된 의미를 지니고 있기에 현실과 가상의 경계를 넘나들며 미술시장을 재편하고 있다.
NFT 미술에 구현된 의미는 바로 원본성이다. 대체 불가능한 토큰이라는 의미의 NFT(Non-Fungible Token)는 원본성을 그 특징으로 한다. 지난 3월, 얼굴 없는 화가 뱅크시(Banksy)가 <멍청이(Morons)>라는 그림을 NFT로 변환해 경매로 낙찰한 뒤 진짜 그림을 불태운 것만 봐도 NFT가 얼마나 원본성과 관련이 깊은지 알 수 있다. 이러한 원본성을 보증해 주는 곳이 바로 NFT 거래 플랫폼이다.
2017년 12월, 미국에서 설립된 오픈씨(OpenSea)만 해도 그렇다. 창업 당시 이들이 해결하고자 했던 문제는 디지털 아이템 거래에서 상호 간의 신뢰를 담보하는 것이었다. 게임 아이템 같은 디지털 자산을 거래할 때 필연적으로 쌍방 간 정보 격차나 불신임 문제가 생기는데, 오픈씨는 이들을 위한 거래 플랫폼을 만들며 호평을 받은 것이다.
오픈씨는 이제 세계 최대의 NFT 거래 플랫폼으로 성장했다. 특히 지난 8월 한 달에만 약 30억 달러어치의 NFT 상품 거래를 성사시키며 최고 거래량을 달성한 바 있다. 오픈씨에서는 NFT 미술 작품을 포함해 200개 이상의 카테고리를 제공하고 있으며, 400만 개 이상의 디지털 아이템이 상장되어 있다. 콘텐츠 창작자라면 누구나 가스비(수수료)를 지불하고 NFT를 발행할 수 있다.
오픈씨가 모두에게 열려있는 플랫폼을 지향하는 반면 슈퍼레어(SuperRare)는 심사를 통과한 예술가들만 사이트에서 NFT를 발행할 수 있도록 만든 플랫폼이다. 진입이 까다로운 만큼 큐레이션이 잘 되어 있고, 승인을 받은 작품들은 고가에 판매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슈퍼레어는 삼성전자의 투자 전문 자회사인 삼성넥스트가 투자에 참여해 주목을 받았으며, 최고로 희귀하다는 이름에 걸맞게 향후 가치 상승을 노려볼 만한 작품들도 다수 상장되어 있다.
가수 그라임스(Grimes)가 20분 만에 디지털 회화 10점을 65억 원에 판매한 니프티 게이트웨이(Nifty Gateway)도 대표적인 NFT 거래 플랫폼이다. 이곳에서는 미술, 음악 등 지적 자산을 NFT 형태로 판매하는데, 니프티 팀 내부에서 선별한 작품들이 주를 이룬다. 굳이 비교하자면, 모두에게 열려 있는 오픈씨와 깐깐한 심사를 거치는 슈퍼레어의 중간 형태다.
플랫폼 내에서 작품을 부르는 명칭이 니프티(Nifty)이며, 작품을 판매하는 것은 드롭(Drop)이라 부른다. 구매 방식은 블라인드 입찰 뒤 낙찰되기를 기다리는 온라인 사일런트 옥션(Online Silent Auction), 짧은 시간 동안 한 작품의 복사본을 무제한으로 판매하는 오픈 에디션(Open Edition), 추첨이나 복권 형식의 드로잉(Drawing), 가격 옵션을 선택할 수 있는 글로벌 오퍼(Global Offer) 등이 있다.
기존 작가들에게 초청을 받아야만 판매 가능한 파운데이션(Foundation)이라는 플랫폼도 있다. 데이터 분석 업체 댑레이더(DappRadar)가 추산한 NFT 마켓 순위 10위 안에 랭크되어 있는 플랫폼이다. 오디오 기반의 소셜미디어 클럽하우스(Clubhouse)가 폐쇄적인 방식의 초청 기능을 사용했던 것처럼, 파운데이션 또한 50명의 작가를 시작으로 각 작가에게 2번의 초대 권한을 부여하는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다. 이 플랫폼은 작가들에게 새로운 형태의 커뮤니티를 제공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으며, 커뮤니티 주도의 큐레이션이 이루어지고 있어 작품 시세가 안정적이며 판매도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디지털 아트 작품 판매뿐 아니라 감상 환경을 최적화한 페럴 파일(Feral File) 또한 주목할 만하다. 페럴 파일은 미술관이나 갤러리처럼 일정 기간 동안 기획 전시를 선보이는데, 작업을 감상하면서 NFT로 구매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다른 플랫폼이 판매 자체에 집중하고 있다면, 페럴 파일은 웹사이트에 최적화된 감상 환경을 제공한다는 점이 차별화되어 있다. <소셜 코드(Social Codes)>라는 기획 전시에 출품된 작품들은 컴퓨터 프로그래밍을 활용한 제너러티브 아트(Generative Art)의 특성을 보이는데, 구매자의 반응에 따라 작품의 모습이 달라진다는 점에서 NFT와 잘 어우러진다고 볼 수 있다.
국내에서도 NFT 미술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며 NFT 작품을 거래할 수 있는 플랫폼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국내에서 가장 규모가 큰 아트 거래소로는 클립 드롭스(Klip Drops)를 꼽을 수 있다. 카카오의 자회사 그라운드X가 운영하는 클립 드롭스는 하루에 단 한 명의 크리에이터 작품만 구매 가능이라는 문구를 내걸고 작가 1인의 단일 에디션 경매를 진행한다. 미스터미상이라는 크리에이터의 작품 999건이 27분 만에 판매 완료되면서 많은 주목을 받은 바 있다.
아트페어의 형식을 차용해 새로운 시장을 개척한 모델들도 있다. 지난 9월 메타버스에서 개최된 넥스트 아트페어는 120팀의 작가들이 출품한 1,500여 개의 NFT 작품을 클레이튼 기반으로 발행 및 판매했다. 또한 공정한 예술 유통 구조를 만들기 위한 목적으로 판매 수익 모두를 작가들이 가져갈 수 있도록 했다. 미국의 작가들을 유럽에 소개하고 있는 큐브 아트 페어(Cube Art Fair)의 경우, 지난 6월 뉴욕 타임스퀘어의 광고판을 활용해 NFT 예술 작품을 전시하고 판매하는 행사를 진행하기도 했다.
미술사에 큰 영향을 미쳤던 다양한 기술들을 떠올려봤을 때, NFT가 캐즘(chasm)에 대한 우려를 낳는 것도 사실이다. 캐즘은 새로운 기술이 등장한 이후, 처음에는 빠르게 성장하는 것처럼 보이다 더 발전하지 못하고 정체되는 것을 뜻한다. 그럼에도 NFT 미술시장에서 디지털 아트 작가들이 더 많은 기회를 얻을 수 있을 것으로 보는 견해가 우세하다.
앞으로 NFT 미술시장에는 더욱더 다양한 플랫폼이 나타날 것이며, 보다 색다른 방식으로 작품의 의미를 구현해 낼 것으로 예상된다. 마르셀 뒤샹(Marcel Duchamp, 1887~ 1968)의 <샘(Fountain)>이 변기가 아닌 작품이 되었던 것은 시대적 맥락에서 기존의 질서를 비판하며 새로운 의미를 담았기 때문이다. NTF 미술도 마찬가지다. 그 자체로 이전과 다른 새로운 세계를 창조한다면 충분히 미학적 가치를 얻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