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 오다이바에 위치한 팀랩 전시관은 관객을 압도하는 대규모의 미디어아트 작품, 미디어아트가 결합된 거대한 정원, 끝없는 거울의 방 안의 다채로운 수만 개의 전등 등 화려한 광경으로 가득했다. 팀랩(teamLab)을 처음 알게 된 계기는 도쿄 올림픽 홍보 동영상 때문이었다. 그들의 작품을 보고 감탄했던 것도 잠시, 팀랩이 자연과 생명이라는 주제로 ⟪teamLab: Life⟫라는 전시를 동대문디자인플라자(이하 DDP)에서 연다는 소식을 듣고는 뛸 듯이 기뻤다. 팀랩을 알기 이전에도 미디어아트의 가능성에 대해 줄곧 상상해왔었다.
소설 『찰리 본(Charlie Bone)』 시리즈에서 주인공 찰리 본은, 사진이나 그림을 보면 그 안의 세계로 들어가 그림 속 구성물들과 상호작용을 할 수 있는 능력을 지녔다. 소설 속의 초능력으로만 묘사되었던 시각 매체를 초월하는 세계의 경험은, 기술의 비약적인 발전을 통해 현실 속에서 물리적으로 구현될 수 있는 수준으로 올라섰다. 몰입형 미디어아트 전시관인 빛의 벙커가 대표적인 예시다. 하지만 팀랩의 전시는 시각 매체를 재현하는 방식에 기반을 둔 것이 아닌, 완전히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고 그 세계와의 상호작용을 중시한다는 점에서 차이점이 있다. 이제 찰리 본의 초능력은 가상 속 개인이 가진 특별한 힘에서 더욱 확장되었으며, 현실 속 누구나 할 수 있는 경험으로 탈바꿈했다는 것을 이 전시는 증명하고 있다.
팀랩은 누구인가
전시에 관해 설명하기 전, 팀랩은 과연 누구이고 어떤 일을 하는지 알아보자. 팀랩은 우선 일본을 본거지로 2001년에 처음 만들어진 국제적인 아트 콜렉티브로서, 예술과 기술, 과학과 자연의 영역들을 연결하고 종합하는 것을 주요 테마로 삼고 있다. 여기서 핵심은 바로 다학제적 접근(Interdisciplinary approach)이며, 예술가뿐만 아니라 건축가, 과학자, 수학자, 엔지니어, 등 다양한 주체가 함께 소속되어 활동하고 있다. 현대의 예술가는 우리에게 작품을 통해 질문을 던진다. 팀랩도 마찬가지로 관객들에게 인간 본연의 몸에 대해서, 인간과 자연의 관계에 대해서, 시간에 대한 다양한 질문들을 던지고 있다.
팀랩이 초창기부터 추구한 기술과 예술의 만남은 미래지향적으로 보이면서도, 예술의 근원에 가깝다는 점에서 본질적이기도 하다. 기술을 뜻하는 영어 단어 technology의 기원인 그리스어 techne는 본래 예술을 의미하였다. 예술을 뜻하는 영어단어 art의 기원인 로마어 ars의 그리스어 해석 역시 techne였다. 구체적으로 techne는 창의적인 표현, 그리고 규율에 기반한 숙련된 기술 모두를 뜻했다. 즉, 예술가들과 기술인들에 대한 엄격한 구분이 없었던 것이다. 팀랩은 한때 하나였지만, 수 천 년간 분리되었던 기술과 예술의 개념을 다학제적 접근을 통해 다시 합치고 있다. 구성원들은 전문 분야의 특성과는 상관없이 모두가 창의적인 표현이 구현될 수 있도록 노력하는 동시에, 구현하고자 하는 예술세계의 시스템이 원활히 운영될 수 있도록 기술적 측면에도 힘쓰고 있는 셈이다.
주제를 탐미하다
⟪teamLab: Life⟫는 총 10점의 예술작품을 전시하고 있고, 이 중 8점은 인터랙티브 작품이다. 각 작품이 구성된 형식은 다르지만, 한 가지 공통된 주제가 이 작품들을 관통하고 연결하고 있다. 바로 생명의 아름다움이다.
자연이 주는 축복과 위협도, 또 문명이 가져오는 혜택과 위기도, 모든 것은 끊임없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어딘가의 절대적인 악의가 있는 것이 아니지만 그저 순응하기에는 지나치게 가혹하기도 합니다. 이러한 관계나 감정은 간단히 이해되거나 정의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어떠한 상황에 놓여도 우리는 반드시 살아갈 것입니다. 생명은 아름답습니다.
팀랩이 관람객들에게 주는 메시지다. 흔히 생명은 무언가 태어나거나, 창조되는 등 긍정적인 차원에서 바라보는 경우가 많다. 나무가 우거진 무성한 숲, 싹트는 식물들, 숲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동물들이 바로 그 예시다. 하지만 팀랩에서 말하는 것은 위의 것뿐만이 아니다. 생명체의 목숨이 다하여 소멸되는 과정 또한 작품에 포함했다. 때로는 자연의 순리가 가혹할 수는 있지만, 각 작품은 생명이 소멸되는 것마저 또 다른 생명의 탄생에 필수적인 과정이기에 아름답다고 표현하는 것인 듯하다.
⟪teamLab: Life⟫에서 구현된 세계는 마치 일본 애니메이션 영화 원령공주의 사슴 신을 연상하게 한다. 사슴 신은 원령공주의 배경이 되는 숲의 신이자, 자연 그 자체를 상징한다. 작중 말과 감정표현을 하는 다른 동물들과는 다르게, 사슴 신은 그 어떠한 것도 하지 않는다. 또한, 생명을 주는 동시에 거두기도 한다. 이 외에도 불사・극도의 중립성 등 다양한 특징들이 있지만, 이 모두가 바로 자연 자체를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자연에는 선악이 없으며, 인간 역시 자연의 영향력 안에 있다는 점이다. 팀랩의 작품에서도 마찬가지로 자연의 순환은 끊임없이 흘러가며, 관객 역시 세계가 작동하는 데 빠질 수 없는 존재들이다.
공간을 경험하다
팀랩은 그들이 구현한 세계를 초주관 공간(Ultrasubjective Space)라고 정의한다. 쉽게 말해, 디지털 기술을 활용하여 만들어진 가상의 세계인 것이다. 초주관 공간에서는 공간이 입체화되었다가 평면화되기도 하고, 형체들이 뒤섞였다가 해체되는 등 실제 자연계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것들이 기술을 통해 가능해진다. 또한, 인터랙티브 작품의 경우 이미 기록된 영상을 재생하는 것이 아닌 관람자의 행동에 따라 반응하는 컴퓨터 알고리즘에 따라 작동되어 매 순간 다른 광경이 펼쳐지는 장관을 볼 수 있다.
⟪teamLab: Life⟫에서 주제를 대표하는 가장 핵심적인 대상은 바로 식물이다. 식물들은 시간에 따라 피고 지는 것을 반복하며, 따라서 시간이라는 요소 역시 함께 수반된다. 전시에서 처음 마주하게 되는 작품인 <생명은 생명의 힘으로 살아있다>에서부터 사계절에 따라 달라지는 꽃과 나무의 모습을 볼 수 있게 된다. <증식하는 무수한 생명>과 <꽃과 사람, 제어할 수 없지만 함께 살다>라는 작품 역시 1년이라는 시간 프레임에 맞게 각 달을 상징하는 꽃들이 등장하며, 인터랙티브 작품인 만큼 관객들의 터치에 지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위의 두 작품이 연도만을 기준으로 둔다면, <영원한 지금 연속되는 생과 사, 제어할 수 없지만 함께 살아간다>라는 작품은 하루라는 시간 프레임을 추가하여 낮과 밤에 따라 달라지는 꽃들의 모습까지 담아냈다.
식물과 더불어 동물은 전시의 또 다른 상징적인 대상이며, 움직임이라는 장치가 추가된 채로 세계에 존재한다. 실제 세계와는 달리, 대부분의 동물은 여기서 꽃으로 이루어져 있는 모습이다. <꽃과 함께 살아가는 동물들 II>이라는 작품이 바로 그 예시다. 위의 작품들과 마찬가지로 관객이 작품을 만지면, 동물은 죽고 꽃은 주변으로 퍼지며 해체된다. <꿈틀대는 골짜기의 꽃과 함께 살아가는 생물들>에서도 꽃의 형상을 한 동물들이 나타나지만, 이들은 생태계의 논리에 따라 다른 동물들을 잡고 잡아 먹힌다. <경계를 초월한 나비 떼, 경계 너머 태어나는 생명>은 다양한 동물들을 다루는 위의 작품들과는 다르게 나비만을 다룬다. 나비들은 전시장 밖의 사람들에 의해 태어나고, 전시장 안으로 들어와 관람객들에 의해 죽는다.
식물과 동물들보다 덜 화려해 보일 수 있지만, 그 자체로 관객을 압도하는 자연물 역시 전시의 큰 부분이다. 폭포, 물, 땅 등은 관객과의 상호작용에 따라 모습이 변하지만, 동식물과는 달리 소멸하지 않는다는 것이 가장 큰 특징이다. <Black Waves: 거대한 몰입>에서 디지털 화면의 선들은 한데 모여 물결을 만들고, 곧 파도를 형성한다. 파도는 강력한 움직임을 보이며 관객들을 몰입하게 만들며, 점점 관객과 대상의 거리는 사라지게 된다. 위의 작품이 동적인 물의 움직임을 구현한다면, <물 입자의 우주>는 잔잔하고 느린 물의 움직임을 표현한다. 또한 관람객들의 움직임에 따라 그 자리의 물줄기가 갈라지는 다채로운 장면을 연출하기도 한다. <고동치는 대지>는 반대로 땅의 움직임을 구현하고 있으며, 대지가 주는 안정감을 보이기보다는 관람객의 움직임과 함께 진동하는 생명력을 보여주고 있다.
결국 ⟪teamLab: Life⟫에서 시사하는 바는 인간과 동물, 식물, 자연물은 모두 연결되어 있고, 어느 하나도 독립되지 않고 서로 끊임없이 영향을 주고받는다는 것이다. 실제 세계에서 화려한 꽃과 나무들은 시간 혹은 인간으로 인해 시들지만, 곧 다시 생명력을 발휘하기에 팀랩에서도 동일하게 표현된다고 본다. 이들과 달리 스스로 영양분을 생산하지 못하는 동물들은 움직이며 다른 동물들을 잡아먹고, 또한 인간에 의해 죽임을 당하기도 한다. 식물들과는 조금 다르게 살아가지만 생명을 다했을 때 해체되는 것은 같기에, 어쩌면 팀랩의 세계에서 둘이 함께 어우러져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자연물은 삶과 죽음이 없지만 모든 생명을 감싸고 그들의 활동에 따라 반응한다. 순환보다는 공명(resonation)의 방식으로 표현되었을 것으로 생각한다. 전시를 보면서 인간과 자연에 대한 다양한 생각들을 할 수 있었고, 앞으로도 다양한 세계를 구현하며 우리에게 다채로운 관점을 제시하는 팀랩의 활동을 기대하며 글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