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 don’t have plan B because there is no planet B”
– 반기문 전 UN사무총장, 2016년 –
세계 곳곳에서 이상기후가 나타나고 있다. 미국 서부 지역에서는 허리케인 발생 횟수가 빈번해졌고, 호주에서는 극심한 가뭄과 폭염으로 대형 화재가 일어났으며, 우리나라에서는 이상고온으로 인한 열대 스콜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지구온난화는 더이상 먼 미래의 이야기가 아니다. 온몸으로 체감할 수 있을 만큼 현실 가까이 다가왔다.
2015년, 유엔은 기후변화에 대비한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함을 강조하며 지속가능발전목표, SDGs(Sustainable Development Goals)를 제시하였다. 2030년까지 달성하는 것이 목표인 SDGs에는 환경뿐 아니라 균형 있는 발전과 성별, 지역, 인종 및 국가에 따른 차별과 고통이 없는 세상을 만들기 위한 17가지 항목이 포함되었다.
IPCC(Intergovernmental Panel on Climate Change, 기후변화에 대한 정부간 협의체)는 지구의 온도가 1.5도 이상 올라갈 경우, 인류가 지금과 같은 생활을 지속하기 어렵다고 경고했다. 또한 WMO(World Meteorological Organization, 유엔기상기구)도 지난 200년 사이 지구의 온도가 이미 1.3도가량 올라갔으며, 앞으로 0.2도밖에 남지 않았다고 경고했다. 이제 기후변화에 대한 적극적인 태도를 보여 주어야 할 때이다.
필환경 시대, 브랜드의 중심이 되어버린 ‘지속가능성’
필환경(Green Survival) 시대가 대두되면서, 대기업부터 공공기관까지 모두 ESG(Environment, Social & Governance Issues) 경영에 주목하고 있다. 기업 ESG 경영에 대한 기사가 하루에도 수십 개씩 쏟아져 나온다. 페이퍼리스로 기업 운영방식을 전환하고, 각종 사회활동에 참여하는 등 적극적인 변화를 추구하는 기업들이 늘고 있다. 기업의 ESG 활동이 소비자의 제품 구매에까지 큰 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이다. 가치 소비를 중시하는 구매자들은 브랜드의 ESG 경영 방식에 관심을 기울인다. 따라서 기업들은 장기적인 측면에서 환경오염 물질 대신 대체재를 찾고, 지속가능하고 합리적인 방식으로 브랜드를 운영할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
기후 위기 시대, 더 나은 세상을 위한 정신으로 무장한 다수의 브랜드들이 ‘행동’하고 있다. 대기업의 비즈니스와는 다른 관점에서 그들만의 ‘지속가능성’ 목표를 설정하고 실천하고 있다. 대부분의 기업이 유엔이 발표한 지속가능발전목표 중 ‘환경’에만 주목하고 있을 때, 몇몇 브랜드는 초기 설립부터 지속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제품의 원재료뿐 아니라 생산 과정 등 복합적인 부분에서 해결책을 제시하고자 노력해 왔다.
환경을 위한 지속가능성은 이제 당연히 지켜야만 하는 가치로 자리 잡았다. 국내 몇몇 브랜드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소비자의 가치소비에 주목했다. 소비 이후 제품의 폐기 과정까지도 고려해 제품을 생산했다. 최대한 자연에 피해가 가지 않도록.
그리고 또 다른 브랜드들은 함께 살아가는 사회를 실현하고자 했다. 이들은 소외 계층을 위해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하고 그들이 꿈을 이룰 수 있도록 후원하기도 했다. 최대한 모든 사람이 행복할 수 있도록. 이처럼 곳곳에서 지속가능한 삶을 위한 브랜드들이 생겨나고 있으며, 적극적인 활동을 통해 세상을 바꾸고 있다. 이 중, 눈에 띄는 국내 브랜드 몇 가지를 소개하려고 한다.
자연과 공존하는 세상을 꿈꾸다
#1 국내 최초 제로웨이스트 라이프스타일 플랫폼, 더피커
더피커는 제로웨이스트를 자원 순환의 개념으로 해석했다. 과도한 편의주의에서 쓰레기의 원인을 찾고 불필요한 포장을 제거함으로써 구매 단계부터 폐기물을 줄였다. 이를 위해 생활용품이나 가공되지 않은 곡물, 공정무역제품 등을 포장 없이 판매하고 있다.
그러나 더피커는 단순히 플라스틱의 대체 용품만 파는 제로웨이스트 샵이 아니다. 자원 순환과 지속가능한 소비문화 전파를 위해 쓰레기 없이 식재료 구입하는 방법, 일상 속 지속가능한 필환경 방식 등을 공유하고 제안한다.
또한 더피커는 판매 제품 선정 시, 생애주기를 살핀다. 생산 단계에서 폐기물을 비롯해 물, 탄소 발생량 등을 면밀하게 파악하고, 유통과정에서 포장을 최소화했는지 등을 확인한다. 제품 생산과 판매 과정에서 모두 최대한 쓰레기가 나오지 않도록, 자원 순환이 원활히 이루어질 수 있도록 운영하고 있다. 이외에도 택배 상자, 유리병, 종이봉투 등을 기부받아 온라인 배송 시 활용하기도 하며, 자원이 건강하게 순환될 수 있도록 소비문화 회복에 힘쓴다.
#2 생분해성 폐기물로 만드는 바이오 플라스틱, 위캔드랩
친환경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단어, 업사이클. 위캔드랩은 친환경 소재를 기반으로, 제품이 버려진 이후의 상황도 통제할 수 있는 지속가능 디자인을 추구한다. 위캔드랩은 해양생태계 문제에 대해 고민하던 중 썩지 않는 플라스틱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잘 썩는 플라스틱 대체재를 개발하게 되었다. 생분해 가능한 재료를 찾다 보니 음식물을 활용한 바이오 플라스틱을 개발하게 되었고, 유통기한이 지난 우유, 상처로 인해 상품성을 잃은 농작물 등 천연 재료로 생활소품 및 액세서리, 조명 등을 만들었다.
이처럼 위캔드랩은 제품의 라이프 사이클을 고려해 버려진 후에도 환경에 피해를 주지 않는 데 집중한다. 재료에 대해 연구하고, 지속가능성에 대해 고민한다. 오리알 노른자를 활용한 뮤닛 시리즈와 우유를 기반으로 한 리코타 시리즈가 그 구체적인 예이다. 현재는 꽃을 재료로 한 제품을 생산하는 다음 프로젝트를 기획 중에 있다.
#3 소재부터 가공법까지 모두 지속 가능 실현, 오픈플랜
오픈플랜은 제품 제작 전 과정에서 지속가능한 패션을 추구한다. 중국으로 수출된 플라스틱 쓰레기들의 슬픈 현실로 인해, 환경문제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었다는 오픈플랜은 인간을 지구에 들렀다 가는 여행자로 표현하며, 지구는 보호해야 하는 존재이자 우리가 잠시 빌려 쓰는 것임을 전한다.
오픈플랜은 플라스틱 프리, 비건, 건강한 사회, 연대 이 네 가지 가치를 중요하게 여긴다. 한해 원단 폐기물은 약 7만 2000톤에 달한다. 오픈플랜은 이를 활용해 제품의 15% 정도를 사용되지 못한 재고 원단을 이용하여 제작한다. 또한 폴리에스테린, 나일론 등의 합성섬유 대신 자연섬유, GOTS인증을 받은 유기농 면의 비율을 높이려 노력하며, 염색 시 발생하는 폐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천연 염색 제품을 제작한다. 라벨을 리넨으로 만들거나 가격표를 면과 실로 제작하여 플라스틱 제로를 실현한다.
원재료들은 공급처에서 공정 거래로 생산될 뿐만 아니라 제품을 각 지역에서 제작하여 지역경제 순환에 이바지한다. 또한 판매 시 택배 박스 1개마다 환경보호 기금을 적립하여 추후 환경보호를 위한 나무 심기 비용으로 활용된다. 이처럼 오픈플랜은 지속가능성을 추구하기 위해다방면으로 노력 중이다.
모든 사람이 행복한 세상을 꿈꾸다
#1 버려지는 캔버스를 업사이클하다, 얼킨
얼킨은 회화 작업 후, 아티스트들이 버리는 캔버스들을 수거해 하나밖에 없는 업사이클링 제품을 만들었다. 가방, 카드 지갑, 컵 슬리브 등 버려질 캔버스들이 의류 및 잡화로 새롭게 탄생했다. 그러나 여기서 그치지 않고 신진 작가의 쓸모 없어진 습작을 수거한 뒤 새로운 캔버스로 교환해 주고, 마케팅 비용 대신 수익의 일부로 전시를 개최하는 등 아티스트를 후원함으로써 지속가능 경영을 실천하고 있다.
한 해 동안 버려지는 예술가의 습작은 수천 개가 넘는다고 한다. 그냥 버려질 경우, 어마어마한 양의 쓰레기가 될 작품들이 업사이클링 과정을 거쳐 예술가를 후원하는 동시에 환경도 살리는 일석이조의 제품이 되었다. 이와 같이 얼킨은 패션의 미래를 생각하고, 재능 순환 플랫폼을 구축하여 지속가능성을 실현한다.
#2 할머니들이 손수 만드는 특별한 브랜드, 마르코로호
사회문제 ‘노인빈곤율과 노인자살률’을 해결하기 위해 설립된 브랜드 마르코로호. 할머니들의 경험과 감각을 바탕으로, 실로 매듭을 엮어 반지, 팔지 등의 액세서리 제품을 만들어 판매한다. 마르코로호는 할머니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하고, 활발한 사회 활동 및 경제적 자립을 돕는다. 또한 다양한 문화체험과 교육을 통해 더 행복한 일상을 살아갈 수 있도록 지원한다.
마르코로호는 단순한 일자리 창출을 넘어 나이 드는 것이 서글프지 않은, 할머니들이 존중받는 행복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 동시에 제품 구매만으로도 사회적 가치 소비를 할 수 있도록 기부 문화를 활성화한다. 제품 구매 시, 소비자는 제품의 색깔과 사이즈를 통해 결식아동, 위기 동물 구호 지원, 독거노인, 장애아동 등 기부처를 선택할 수 있으며, 제품 금액의 일부가 해당 기관에 기부된다.
개인의 실천보다 더 확실한 브랜드의 지속가능성 추구
어린 시절 학교에서 환경보호와 지속가능성에 대해 배웠던 게 엊그제 같다. 그때는 먼 미래의 일로만 생각했었는데, 어느덧 지구온난화와 세계 곳곳의 사회 문제들이 눈 앞에 펼쳐지기 시작했다. 이제는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지구를 만들기 위해 우리 사회가 마음을 모아 노력해야 할 때이다. 학자들은 지구 온도가 0.2도만 올라가도 상황은 급속도로 악화될 것이며 지구를 지킬 수 없다고 말한다.
개인이 일상에서 지속가능성을 위해 노력할 수 있는 일들은 생각보다 적지 않다. 텀블러 사용에서부터 시중에 나와 있는 비건 제품 구매, 제로웨이스트 샵을 이용해 집에서 가져온 용기에 제품을 담아오는 일 등 작은 실천으로 변화의 시작을 꿈꿀 수 있다. 그러나 아무리 개인이 노력한다고 해도, 일상에서 접하는 제품들이 브랜드 차원에서 지속가능성을 위해 노력하지 않는다면 큰 변화를 일으키기가 어렵다. 소비자 개인의 생활 속 실천이 지속가능성을 추구하는 브랜드의 노력과 만날 때 더 큰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다.
더피커와 같은 제로웨이스트 샵이 더 많아져서 접근성이 높아진다면 더 많은 소비자가 제로웨이스트를 실천하게 될 것이다. 위캔드랩과 오픈플랜처럼 환경을 생각한 브랜드들이 많아진다면 원료를 따져보고 지속가능성 여부를 파악해야 하는 소비자의 수고로움을 덜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얼킨과 마르코로호와 같이 예술가 및 소외 계층과 함께 살아가는 사회를 만드는 브랜드들이 늘어난다면 우리가 추구하는 지속가능성의 방향이 어디까지 확장될 수 있을지 함께 고민하게 될 것이다.
앞으로도 보여주기식 ESG 경영이 아닌, 지구 환경과 공동의 유익에 실질적으로 도움이 될 만한 지속가능을 추구하는 브랜드들이 더 많이 늘어났으면 한다. 개인의 실천이 건강한 미래를 꿈꾸는 기업의 노력과 만났을 때, 우리가 추구하는 진정한 의미에서의 지속가능성이 실현될 것을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