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돈을 발명한 유일무이의 존재다. 금융업의 원형은 곡식을 대출 받던 고대 시대로 거슬러 오른다. 그리스・로마 시대에는 예금과 환전이라는 금융 혁신을 맞이했다. 2020년을 바라보는 지금, 금융업은 고차원적인 삶을 원하는 인간의 욕망과 맞물려 보험, 투자, 증권, 은행 등 다양한 형태로 진화했다. 금융 서비스는 삶에 가장 밀접하게 엮인 자본의 장치다. 동시에, 세상에 던져진 인간이 충만한 인생을 살기 위해 이용하는 사회적 장치로 존재한다. 인간이 생각하는 충만한 인생은 무엇일까? 인간은 나만의 특별한 라이프스타일을 현재에 충실히 즐기며 자아를 기획하고, 이를 통해 삶의 기쁨을 얻는다. 이러한 욕망은 시간이 흐를수록 세밀해지고 있다. 이를 보장해 줄 금융 서비스의 선택 기준 역시 자연히 높아졌다. 금융은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는 선택권과 행동 범위에 직결되기 때문이다. 삶의 질과 맞닿은 서비스를 매개로 삼는 금융사는 고객의 이상적인 삶의 구축에 얼마나 깊은 관심과 이해도를 가졌는지 드러내야 한다. 그래야지만 고객의 신뢰를 얻고 시장에서 우위를 점한다.
이처럼 이용자의 삶 내부로 파고들어 본원적인 가치를 논하는 브랜딩의 중요성은 누구나 알고 있지만, 기업이 속한 카테고리의 틀을 부수기란 쉽지 않다. 이 숙제를 영리하게 풀어낸 모범 사례로 한화의 라이프플러스(LIFEPLUS) 브랜딩을 꼽을 수 있겠다. 라이프플러스는 흔히 금융사가 범하는 노골적인 실적 중심의 태도 대신, 세상을 보는 시각 자체를 전방위적으로 브랜딩하며 기업 자신을 넓게 정의했다. 또한, 고객이 더 잘 사는 삶을 기조 삼아 한화의 여러 금융 계열사를 하나의 공동 브랜드로 리뉴얼했다. 그 결과 세계 3대 디자인 어워드 중 하나인 레드닷 디자인 어워드(Red Dot Design Award)에서 브랜드&커뮤니케이션 디자인 분야의 본상을 수상하는 쾌거를 이루었다. 금융사의 브랜딩이 디자인 어워드의 상을 거머쥔 이유, 그리고 이 금융사가 제시한 더 잘 사는 삶은 도대체 무엇일까.
LIFEPLUS, Life Meets Life
라이프플러스는 한화생명, 한화손해보험, 한화투자증권, 한화자산운용, 한화저축은행을 한데 묶은 새로운 브랜드다. 브랜드 가치로는 재산・투자・자산관리의 금융(Financial), 영양・식단・운동의 건강(Physical), 명상・사고방식・스트레스 해소의 정신(Mental), 취미・여행・관계의 영감(Inspirational) 총 네 가지의 총체적 웰니스(Wellness)를 두었다. 고객 가치 중심의 라이프스타일 금융 서비스를 표방하며, 예측할 수 없는 먼 미래보다 현재의 삶을 즐기는 현대인의 라이프스타일 트렌드를 적극적으로 반영한다. 우리 주변의 거의 모든 콘텐츠를 가공해 7가지 요소로 보여주는 한화의 브랜딩을 살펴보자.
컨셉 공간: LIFEPLUS WALK
공간은 브랜드 철학을 가장 직접적으로 드러내는 선택지다. 라이프플러스의 컨셉 공간이자 체험 전시관인 라이프플러스 워크는 비일상적인 요소로 채워 삶의 균형과 가치를 표현한다. 삶을 다양한 핑크빛 꽃잎 형태로 표현한 리프 워크(leaf walk), 못말 작가의 글귀를 곳곳에 띄운 라이트 워크(light walk), 투명한 구름과 빛을 담은 클라우드 워크(cloud walk)로 나뉜 물리적 공간을 구성했다. 또한, 클라우드 워크만을 위해 조향 브랜드 프루스트(PROUST)가 만든 향기, 음악 디자이너 N designers가 리프 워크용으로 개발한 음악을 공간에 채워 무형의 자극을 전달한다. 여기에 공간과 시너지 효과를 내는 조향 워크숍, 못말 낭독회 같은 체험 프로그램을 추가해, 참가자가 자신의 삶을 능동적으로 생각하도록 유도한다.
금융 서비스: 보험과 연금저축계좌
라이프플러스의 금융 서비스는 통상적인 금융사에서 발견하기 힘든 스토리텔링과 감성적 측면이 눈에 띈다. 버킷리스트 저축보험은 하고 싶은 것도, 겪고 싶은 것도 많은 경험주의자가 버킷 리스트를 실현하는 데 필요한 비용 마련을 도와주는 보험 상품이다. 엔터테인먼트형 스포츠 레저 보험은 레저 활동 시작 10분 전에도 바로 가입할 수 있다. 레저 사고로 인한 상해를 보장해 아웃도어족에게 호응을 얻고 있다. 결혼, 여행, 입학, 해외 연수 등 인생의 중요한 순간을 소중하게 보내고 싶은 이를 위한 특별한순간 연금저축계좌도 있다. 목표 달성을 응원하는 격려금을 지급하는 등 특별한 삶의 궤를 함께 한다.
디지털 서비스: Bucket, ZUMO, STEPS
라이프스타일 콘텐츠를 디지털 세대가 흡수하기 쉬운 형태로 가공하는 실력도 범상치 않다. 버킷(Bucket)은 여행, 음식, 문화, 쇼핑, 스포츠, 뉴 스킬 등 다양한 카테고리의 버킷 리스트를 천여 가지 이상 제공하는 라이브러리 서비스다. iF 디자인 어워드의 커뮤니케이션 부분 디자인 본상, 웹 어워드 코리아 고객지원/서비스 부문 통합 대상을 받아 가치를 검증하기도 했다. 휴일을 어떻게 보낼지 고민을 덜어주는 국내 최초의 여가 큐레이션 서비스 주모(ZUMO)도 일상을 채워주는 소중한 가이드다. 2,400여 개 핫플레이스와 축제・공연・이벤트 등을 연령・지역・가구 유형별로 제공해 App Store의 2015년을 빛낸 최고작에 올랐다. 주식 투자 스타터 스텝스(STEPS)는 주식 시장 체크 포인트, 간편한 주식 주문 절차 등 손쉬운 가이드로 주식 서비스 앱 분야에서 입지를 다지고 있다.
컨퍼런스: Future Ways of [Living]
11월의 첫날 열리는 <Future Ways of [Living]>은 우리가 살아가는 도시에서의 생활 전반을 다루는 라이프스타일 컨퍼런스다. 건축가 유현준, 예술가 이광호, 야놀자 CEO 김종윤, 오브라 아키텍츠(Obra ArchitectsO) CEO 제니퍼 리, 루트 임팩트(Root Impact) CEO 허재형이 스피커로 등장한다. 도시 각계에서 두각을 드러내는 라이프스타일 리더의 목소리를 빌려 차세대 여가 문화 트렌드, 가구와 공간, 건축과 디자인, 지속 가능한 사회 문제 해결 방식 등 현대인들의 웰니스와 관련된 도시 콘텐츠를 이야기한다. 라이프플러스가 추구하는 미래형 도시 생활을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일종의 도시 지침서다.
페스티벌: Week & Festival
올해 처음으로 선보인 디자인 위크(Design Week)는 실험적인 국내 신진 미디어 아티스트 한 팀을 선정해 새로운 창작을 지원하고, 이들의 대규모 신작을 선보이는 예술 지원 프로젝트다. 라이프플러스의 브랜드 가치를 작품과 디자인 위크로 재해석해 전에 없던 예술 담론을 만들어내는 것이 목표. 올해는 로봇랩(Lovot Lab)이 자연계의 질서와 순환을 표현한 나선 구조의 미디어 인스톨레이션으로, 끊임없이 움직이고 성장하는 브랜드의 철학을 작품화했다. 또한, 그래피티 아티스트의 라이브 페인팅, 아티스트 톡 등을 더해 예술 공유의 자리를 마련했다. 뜨거웠던 지난여름에는 한강 잔디밭에 스크린을 설치하고, 9일간 9개의 영화를 띄운 시네마 위크(Cinema Week)를 열기도 했다. 영화평론가 이동진과 함께하는 국내 미개봉작 시사회, 배우 박정민의 시네마 토크, 불꽃 쇼와 싱어롱 이벤트, 여름 제철 식재료로 즐기는 소셜 다이닝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꾸렸다. 그뿐만 아니라 봄부터 겨울까지 계절 변화에 따라 결을 달리해 벚꽃 피크닉, 트로피컬 피크닉, 서울세계불꽃축제, 윈터원더랜드 등 사계절에 충실한 페스티벌을 기획했다.
키트: Wellness Kit
라이프플러스 브랜딩 중 시각적 요소의 대대적인 공사를 맡은 이는 바로 무인양품(MUJI)의 아트 디렉터 하라 켄야(はらけんや)다. 그는 100세 시대에 생동적인 삶의 형태를 고민하는 라이프플러스의 방향에 공감하여 브랜딩에 합류했다. 삶의 원형(Primary Shape of Life)이란 BI 콘셉트와 운동하는 생명의 본질을 중심으로 심벌, 로고 등 다양한 디자인을 전개했다. BI 리뉴얼을 기념하여 그가 준비한 선물은 균형 잡힌 삶을 도와줄, 작지만 의미 있는 웰니스 키트. 능동적인 시간 관리를 도울 시계, 새로운 에너지를 위한 잎차, 차분한 향기의 인센스 스틱, 삶의 영감을 기록할 펜과 노트를 그만의 감각으로 담았다.
라이프스타일 트렌드 보고서
라이프스타일 트렌드는 패션 못지않은 속도로 시시각각 변한다. 라이프플러스 사이트에서 연재 중인 라이프스타일 트렌드 보고서는 지금 이 순간 가장 잘 사는 법을 매달 한 가지의 주제로 이야기한다. 1인 가구, 워킹맘, 사회초년생, 은퇴준비자 등 다양한 가구 형태가 두루 읽을 수 있도록 다각화된 키워드와 장르를 다루는 것이 특징이다. 필(必) 환경, 힙스터의 운동법, 새로운 여행 방식, 삶을 바꾸는 디자인, 오픈 이노베이션 등 현대인의 삶에 플러스가 되는 정보를 라이프플러스만의 시선으로 읽기 좋게 다듬어 건넨다. 이중 구독 반응이 좋은 콘텐츠를 선별해 e북으로 제작할 예정이다.
LIFEPLUS라는 금융 브랜드를 체험하는 모든 이들이 삶의 질이란 무엇인가를 생각해보게 만드는 흥미로운 프로젝트가 될 것이라 생각했다.
하라 켄야, 무인양품 디렉터
금융업은 예측할 수 없는 무수한 변수, 무형성과 불확실성 등의 특징 때문에 기본적으로 신뢰성을 구축하기 쉽지 않다. 금융사는 어떤 포지셔닝으로 브랜딩해야 고객에게 신뢰를 얻을까. 그 답을 라이프플러스가 보여주고 있다. 단순히 당신의 돈을 늘려주겠노라며 재정적인 이익에 초점을 맞추지 않는다. 대신 당신이 삶을 보내는 방식 자체를 함께 고민한다. 말과 이미지에 국한된 광고에 힘을 싣기보다는, 거의 모든 형태의 브랜드 체험과 라이프스타일 콘텐츠를 고객이 가능한 한 편하게 누릴 수 있는 구조로 제공한다.
라이프플러스는 인간의 삶을 다각적인 관점으로 접근한다. 고객과 얼마나 손발이 잘 맞는 라이프 팀워크를 이루는지 보여주는 참 잘 된 브랜딩이다. 금융사뿐 아니라 모든 브랜드는 인간의 정신적인 차원, 그리고 현대인의 호기심을 고려해 새로운 경험의 가능성을 제시해야 한다. 후회 없이, 가치 있게 살 수 있는 삶의 방식을 일관된 브랜딩과 커뮤니케이션으로 전달한다면, 그 브랜드가 제공하는 서비스와 라이프 가이드의 질적인 면은 의심할 여지 없이 강력한 설득력을 가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