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독립서점에 가 보면 예전과는 사뭇 다른 서점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예전의 서점은 그저 책을 팔기 위한 곳이라는 이미지가 강했다. 지금은 강연, 모임, 문학지도 등 다양한 볼거리와 풍성한 즐길 거리가 있고 문화를 경험할 수 있는 곳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 때문인지 최근 젊은 층의 독자들은 독서보다도 서점을 방문하는 행동 자체를 하나의 라이프스타일로 인식한다. 딱딱하고 지루한 이미지였던 서점이 어느새 정겹고 친숙한 문화로 자리 잡게 된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서점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대형 온 ∙ 오프라인 서점 중심의 유통구조 탓인지 폐업하는 서점의 숫자는 계속 늘어나고 있다. 지역에서 활동하는 작가는 지역출판사에 책을 내려고 해도 판매망이 없어 어려움을 겪는다. 혹 지역출판사가 책을 펴낸다 해도 동네서점과 도서관에서는 이 책을 찾아볼 수 없다. 즉, 시민들과 출판업계의 문화 의식이 바뀌지 않는 이상 동네서점이 살아남기 힘든 실정이다. 갈수록 대형 서점과 온라인 서점에 밀려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는 동네서점들은 이와 같은 문제를 극복하고 독자들을 만나기 위해 새롭게 나서고 있다. 출판사와 동네서점의 상생을 위한 일종의 이벤트, 독특한 콘셉트를 통해 독자들에게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창구를 마련하고 있다. 이번 글에서는 출판사와 동네서점의 상생 실천을 보여주는 예로, 요즘 가장 활발한 민음사와 문학동네의 사례를 살펴보고자 한다.
민음사 쏜살문고 X 동네서점 에디
민음사와 동네서점이 만나 쏜살 동네서점 에디션을 탄생시켰다. 이미 2017년에도 에디션을 출간한바 있는 출판사 민음사는 첫해에 이어 또 한 번 두 번째 에디션을 발간했다. 또한 이를 통해 전국에 흩어진 동네서점을 하나로 묶어주는 일종의 콘텐츠 네트워크를 구축하여 더 단단한 기반과 발전의 발판을 얻었다. 이 에디션은 인터넷에서는 살 수 없고 오직 동네 책방에서만 살 수 있다. 동네서점 한정판 작품으로 2017년에는 김승옥의 『무진기행』과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실격』이 선정되었으며, 두 번째 에디션으로는 한국 수필 문학의 정점인 피천득 수필 선집 『인연』과 김수영 50주년 기념 시집 『달나라의 장난』이 선정되었다.
『달나라의 장난』은 김수영 시인 50주기를 기념해 선보이는 시인의 첫 시집이자 생존 시 발간한 유일한 시집으로 복간본 발간의 의미가 남다른 작품이다.『인연』도 독자들이 가장 사랑하는 피천득 산문 32편을 선발한 선집이다. 이 뿐 아니다. 에디션은 책의 컬러, 재질, 그리고 편집까지 신경 써 독자들이 소장하고 싶은 마음이 들도록 했다. 문화경험, 라이프스타일에 대한 욕구가 중요한 요즘 독자들은 감각적인 디자인과 한정판이라는 희소성 또한 매력적으로 느꼈다. 이 때문에 신작도 아니고 가격이 상대적으로 저렴한 것도 아닌 동네서점의 한정판이, 요즘 책을 읽기보다 책을 사는 특유의 독서문화를 형성한 독자들에게 빠른 속도로 전파되고 있다.
문학동네 X 동네서점 컬렉션
문학동네에서도 동네서점 투표로 선정된 소설 작품집 시리즈를 발간했다. 문학동네는 동네서점 60곳으로부터 은희경 작가와 김영하 작가의 작품 중 좋아하는 작품을 4편씩 추천받아 동네서점 베스트 컬렉션으로 선정하고 단행본으로 출간했다. 기획, 출판, 유통까지 출판사와 동네서점의 합동작품인 셈이다. 동네서점의 작품 선정 취지를 살려, 책 말미에 참여 서점 60곳의 주소와 연락처도 수록했다. 동네서점에서만 파는 소설작품집은 출간되자마자 독자들에게 뜨거운 반응을 얻었다. 판매처에서도 책을 비닐로 포장한 상태로 판매하여 책을 사서 포장을 뜯기 전까지는 내용을 전혀 알 수 없도록 했는데, 이는 독자들의 궁금증을 고조시키기며 더욱 책에 대한 흥미를 높였다.
동네서점의 무기는 개성이다. 저가 공세와 대대적 마케팅, 저자의 명성 등으로 대결하는 기존 출판계에 맞서 독립서점 에디션을 소량으로 찍어내고, 독자가 동네서점을 찾아가고 싶도록 유도한 독자적 생존전략은 소비자들로부터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이번 베스트 컬렉션 외에도 리미티드 에디션으로 인기가 높은 책은 김영하 작가의 『여행의 이유』다. 이 책은 이미 지난 4월 기존 책과 구분하여 5,000부 한정으로 동네서점 특별 에디션으로 발간된 바 있는데, 이번에도 표지 디자인을 기존 책과 차별화하고 수량을 줄여 독자들은 이 예쁜 책을 수집하기 위해서라도 동네서점에 직접 방문했다.
동네서점과 대형출판사가 함께 협업하여 만든 에디션의 성공 요인은 여러가지가 있다. 그 중에서도 독자 입장에서는 해당 책을 구매하기 위해 동네서점이라는 물리적인 공간을 찾아가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을 수 있지만, 반대로 책을 쉽게 구할 수 없다는 희소성과 신작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고전이나 문학집을 새롭게 읽을 수 있는 경험을 가장 큰 이유로 들 수 있겠다. 에디션의 기획과 성공이라는 이벤트는 다양한 테마와 젊은 감각을 내세운 동네서점을 다시 살리는 동시에 책에 취향과 개성을 부여하는 독자층을 모으고 2030 젊은 세대를 미래의 문학 주 타깃으로 늘리는 데에도 기여하였다.
독특한 컨셉의 동네서점들
최근 위기를 맞고 있는 작은 서점들은 그 위기가 무색하게 들릴 만큼 굳건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동네서점은 출판계에 없어서는 안 되는 부분이다. 이제 동네서점은 단순히 독립 출판물만 판매하는 곳에서 나아가 시민을 초청해서 낭독회, 독서 모임 등 행사를 여는 복합문화장소로 주목받고 있다. 각자의 취향에 맞는 독자와 소비자들이 늘어나면서 최근 2~3년 동안 동네서점의 수는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 대형출판사만큼 대형자본이나 인프라가 형성되어 있지는 않지만, 동네서점은 주인의 개성과 취향대로 책을 선택하고 실내장식을 꾸며 각기 다른 분위기를 가진다. 독자들 또한 자신의 취향에 맞는 서점을 찾아가고 있다.
그동안 기획이나 마케팅 측면 모두 새롭게 신선한 시도를 해왔던 출판사 입장에서도 무엇보다 독자들과 직접 만나는 동네서점과 협업하는 것 자체가 색다른 의미가 있을 것이다. 동네서점을 살리자는 말은 많았지만 실제 출판업계에서 이러한 움직임이 적었다는 점에서 이러한 협업은 여러모로 분위기를 환기할 수 있는 시도가 아닐까 생각된다. 이제는 독서가 자기계발의 방법만을 의미하지 않게 되었다. 기존 서점에서 찾을 수 없는 인생 책을 작은 동네서점에서 발견하는 재미, 독서로 취향을 공유하는 문화 등이 출판업계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고 있는 만큼, 대형출판사와 동네서점의 상생 문화가 잠깐의 유행처럼 지나가는 것이 아니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