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홍대입구역을 지나치는데 문 열 준비에 한창인 공유오피스 위워크(We-Work)가 눈에 띄었다. 곧 개점을 앞두고 있다는 안내문을 보는 순간 내가 최초로 접한 공유공간이었던 성수의 한 공유오피스가 떠올랐다. 높은 지리적 접근성과 저렴한 이용료, 눈을 돌리면 사방에 온통 보였던 콘센트, 장시간 앉아 있어도 힘들지 않았던 좌석, 업무에 몰두하는 주변 분위기에 따라서 저절로 집중하게 되면서도 숨 막히지 않던 묘한 개방성 등.. 우연히 SNS를 보고 큰 기대 없이 찾아간 것에 비해 꽤 큰 만족감을 느꼈던 공간이었다. 당시 한창 성장세라고 하던 공유오피스의 추세를 만끽하는 기분이기도 했다.
2015년만 해도 단 2개에 불과했던 서울의 공유오피스는 2018년 하반기에 190여 개로 늘어났다. 사무실뿐 아니라 주택, 주방, 상점 등 여러 형태의 공유공간이 이전에 없던 새로운 형태로 등장하면서 현대 사회와 부동산 시장에 크고 작은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작은 신생기업들이 만든 거대한 공유공간 트렌드, 오늘은 이 혁신적인 공유공간 시장에 뛰어든 대표 기업들의 공유공간 사례를 살펴보려 한다.
캠프형 공유오피스
플레이스 캠프 성수(Playce Camp Seongsu)
서울의 대표적인 산업 근원지이자 최근 사람들의 관심이 쏠리고 있는 을지로와 성수. 특히 성수는 지하철 2호선이 지나가는 편리한 교통과 저렴한 임대료, 서울숲과 카페 거리 등 매력적인 요소가 많아 청년 기업가와 스타트업, 프리랜서, 크리에이터가 모이고 있으며 이 때문에 소셜벤처 밸리로 성장하고 있다. 성수역에서 3분만 걸으면 나타나는 플레이스 캠프 성수(Playce Camp Seongsu, 이하 플캠 성수)도 성수 밸리의 활기에 힘을 보태는 신생 공유오피스 중 하나다.
플캠 성수는 2017년에 캠프형 호텔이자 복합문화숙박공간으로 화제를 일으켰던 플레이스 캠프 제주(이하 플캠 제주)의 서울 버전이다. 플캠 제주를 컨설팅했던 브랜딩 컴퍼니 퍼셉션(Perception)이 직접 투자해 운영하는 공간으로 플캠 제주가 가졌던 숙박 공간을 제외하고 업무 공간을 넣어 캠프형 오피스로서 플캠만의 아이덴티티를 확장했다. 이곳이 위치한 11층 규모의 빌딩에는 성수를 찾는 이들의 취향과 라이프스타일을 겨냥한 펍, 식당, 카페, 피트니스뿐만 아니라 우란문화재단과 같은 문화예술공간도 있다.
일반적인 사무실에서는 탕비실, 프린터 및 팩스기기 그리고 휴식 공간이 대개 구석에 위치한다. 반면 플캠 성수는 업무에 집중할 수 있도록 만든 집중실, 공유 주방, 휴대전화 부스, 회의실, 전시 공간이 있는 서비스 스테이션을 모든 층의 중심에 배치했다. 호텔을 기획했던 감각을 살려 입주자들이 언제든 편하게 쉴 수 있도록 라운지에 소파를 놓고 다락방에는 빈백을 가득 두었다. 핫 데스크, 독립 오피스, 소 ∙ 중 ∙ 대형 규모의 회의실과 각종 공구를 구비한 공작실 등의 업무 공간 옆에는 캠핑장의 풀밭처럼 잔디 카펫을 넓게 깔아 둔 플레이 그라운드가 있다. 이곳은 요가, 명상, 강연, 영화 상영, 프레젠테이션 등이 열리는 커뮤니케이션 장소로 활용되며, 공간의 모토대로 ‘영양가 넘치는 공간’을 만드는 것에 일조하고 있다.
일과 삶을 완벽히 분리하는 것보다 일하면서 놀고, 놀면서 일하는 게 요즘 어른이 일하는 방식 아닐까 싶다. 플레이스 캠프 성수는 공간과 콘텐츠를 제공하면서, 좋아하고 의미 있는 일을 지속할 힘을 길러주고자 한다.
– 최소현, 플레이스 캠프 성수 대표
일을 잘하려면 잘 먹고 건강한 것이 필수. 지하에 위치한 스탭밀 제주는 맛집 평가서 블루리본을 받은 모던 한식당으로, 플캠 제주에서 팔던 메뉴를 거의 반값에 제공한다. 호텔 수준의 피트니스도 플캠 성수 회원이라면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카페인 공급은 1층의 스페셜티 커피 전문점 도렐에서 해결하고, 늦은 밤에 간절해지는 술 한 잔 생각은 루프탑의 다이닝 라운지 스피닝 울프 성수에서 회원에게 하루 한 병 무료로 제공하는 브랜드 맥주로 달랠 수 있다. 이 모든 것을 누릴 수 있는 멤버십은 고정석(50만 원), 평일 정규 고정석(30만 원), 평일 저녁 고정석(20만 원), 주말 고정석(15만 원), 비지정 좌석인 핫 데스크(30만 원)로 비교적 선택의 폭이 넓다.
알찬 공간 구성만큼 콘텐츠 기획도 야무지다. 명상 스타트업 마보의 명상 클래스, 요가 문화 단체 요가 웨이브의 요가 클래스와 컬러테라피, 브랜드 소셜 살롱 Be my B의 브랜딩 전문 과정 워크숍, 출판사 북 스톤의 북토크 및 교류 프로그램, 스피닝 울프 성수의 DJ 클래스, 칵테일 클래스, 테라리움 만들기 등의 커뮤니티형 콘텐츠는 업무를 끝낸 뒤 갈 곳이 막막한 회원에게 정보 습득과 정서적 교감의 기회를 제공한다. 건물 아래층에 위치한 ‘우란문화재단’의 문화 공간에서 상설 운영하는 전시와 공연을 보며 업무로 지친 몸과 마음에 여유를 불어넣을 수도 있다.
플캠 성수는 몰두하며 일하는 동시에 몰두하며 쉬는 것이 모두 가능한 이색적인 업무 공간이다. 게다가 잘 먹고 건강하게 지내면서 각종 커뮤니티 활동에서 창조적 영감을 받아 자기 일을 지속할 수 있는 새로운 추진력을 얻을 수도 있다. 마치 연료를 채워주는 주유소처럼 사람들의 심신에 필요한 에너지를 채워주어, 팽팽한 업무 부담과 정서적 여유 사이의 균형을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들은 이곳에 자연스럽게 모여 공간의 가치를 공유하기 시작했다. 도시에서 생활하는 현대인에게 꼭 필요한 지속가능한 인간적 삶의 힌트가 바로 이곳 플캠 성수에 있다.
호텔형 공유주택
테이블(t’able)
부동산 개발사 SK D&D의 공유주택 테이블(t’able)은 제법 눈여겨볼 만하다. 사업 주체는 SK D&D지만 실질적인 기획과 브랜딩을 맡은 주체는 플캠 제주와 성수를 기획했던 퍼셉션이기 때문이다. 퍼셉션의 기획과 B.A.T의 마케팅 커뮤니케이션, 최중호 스튜디오의 공간 디자인으로 단장한 테이블은 질적인 커뮤니티형 콘텐츠와 호텔급 컨시어지 서비스를 내세우며 강남에 문을 열었다. 테이블의 공간 테마는 프리미엄과 큐레이션이다. 공용부는 게스트를 초대할 수 있는 라운지, 업무 및 미팅 공간인 핫 데스크, 카페테리아 겸 바(bar)로 구성되어 있다. 이 외에도 맥주 잡지 트랜스포터의 맥주 큐레이션이 있는 수제 맥주 바, 식품과 생필품이 구비된 편의점형 미니 마켓도 있어 입주자들은 문밖을 나설 필요가 없다. 라운지 한쪽에 놓인 붉은 책장은 최인아 책방의 최인아 대표가 직접 선별한 책과 잡지로 가득하고, 요가와 명상 강좌가 열리는 클래스룸은 교감의 에너지로 언제나 활기차다.
넓이, 효율성, 분리, 합리, 동선으로 구분된 5가지 종류의 개인 주거 공간은 전문 경비업체 연계와 긴급 출동 서비스로 보안을 강화했다. 테이블의 주요 강점인 라이프 큐레이팅 서비스는 조식과 음료 제공, 월 2회 호텔 수준의 전문 룸 클리닝, 세탁 수거 및 배달, 택배 수령 대행, 공구 대여 및 수리, 상비약 제공, 빔프로젝터 대여, OA 서비스 등을 제공해 시간이 부족하던 고소득 전문직 종사자에게 큰 호응을 얻고 있다. 월세는 보증금 1천만 원에 140~155만 원 사이로 저렴하진 않지만, 충분히 값어치 있는 공간과 서비스로 오픈 이후 입주율도 꾸준히 오르고 있다.
뭐든 완벽하게 세팅하면 사람들이 참여할 여지가 없으니, 일부는 이용자들이 자발적으로 만들어갈 수 있도록 열어두자
사실 테이블의 입주민은 전략적인 분석을 통해 선택된 사람들이다. 입주 공고를 내기 전, 퍼셉션은 입주민 대상층인 밀레니얼 세대를 6가지 라이프스타일로 그룹화한 뒤 영화 대본에 버금가는 예상 거주 시나리오를 세웠다. 그리고 DJ부터 금융업 종사자 등 다양한 그룹 대표 중 교류 시너지를 낼 만한 인물을 조기 입주자, 즉 세터(setter)로 선정했다. 이들은 먼저 살아보고 뭉쳐보며 테이블의 분위기를 이끌고 삶과 공간에 관한 생각을 쏟아냈다. 이 중 완벽한 시스템보다는 입주자가 참여할 수 있는 여지를 두어야 한다던 의견은 지금의 테이블이 나아가는 방향에 큰 영향을 미치기도 했다.
테이블의 커뮤니티 콘텐츠는 브랜드 소셜 살롱 비 마이 비(Be My B)의 손을 거쳤다. 유명 브랜드 연사의 브랜딩 클래스, 작가와 함께하는 북 토크, 전 세계 인플루언서와 지식을 탐구하는 미니 콘퍼런스 등 질적인 정보 습득에 집중하는 구성이다. 가령 매거진 B의 전 편집장이 브랜드 관점에서 보는 미디어와 라이프스타일, 셀프 브랜딩을 말하고, 핑크퐁을 만든 스마트스터디의 이사가 키즈 콘텐츠를 논해 마치 마스터 클래스를 연상케 한다. 심신이 지친 입주민을 위해서는 요가, 명상, 심리 상담으로 힐링 살롱을 운영하는 테이블 가족 퀘렌시아를 마련했다. 이외에도 입주민이 직접 기획하고 진행하는 버킷 리스트 프로그램, 입주민 네트워킹 파티, 정기 반상회를 열어 테이블 공동체의 연대를 단단하게 만든다. 테이블은 마치 1인 가구의 삶이 어디까지 질적으로 나아질 수 있는지 보여주는 공유 주택인 듯 하다.
복합문화형 공유타운
유니언타운(Uniontown)
도시재생으로 공유공간을 만드는 유니언 플레이스(Union place)는 코람코자산운용과 함께 오래된 당산동 동화빌딩을 매입했다. 한때 외국인 노동자와 직업훈련생의 교육 공간으로 쓰였던 빌딩은 이들의 손을 거쳐 청년들을 위한 복합문화생활 공유공간이자 도심 속의 새로운 마을인 유니언타운으로 재탄생했다. 아래층은 청년층을 대상으로 한 생활, 교육, 리테일 콘텐츠로 구성했다. 지하에 위치한 피트니스 업핏은 DJ 러닝타임, 요가, 필라테스, 댄스 등 그룹 프로그램으로 타운 거주자들의 건강과 교류를 책임진다. 유니언타운의 출입문인 1층의 베이커리 카페 설리번은 바쁜 일상 속 여유를 누리는 지역의 쉼터로, 2층의 영어 회화 카페 조이랜드는 튜터링과 어학 콘텐츠 및 커뮤니티를 제공하는 커뮤니티 라운지로 활약하고 있다.
유니언타운의 중간층은 청년 사업가를 위한 업무 콘텐츠로 배치했다. 3층의 공유주방 넥스트키친은 입점형 개별 주방과 대여형 공유 주방을 갖추고 F&B 창업을 꿈꾸는 청년을 인큐베이팅하는 곳이다. 입점형 개별 주방 이용자에게는 분야별 전문가의 푸드 컨설팅, 브랜딩, 마케팅 솔루션 같은 멘토링 서비스를 지원한다. 4, 5층의 공유오피스 유니언워크는 입주민이 주방, 라운지, 회의실, 루프탑을 자유롭게 쓰도록 계획한 업무 공간이다. 6~8층은 공유주택인 업플로하우스, 9층에는 한강이 보이는 루프탑 라운지 유니언 마루가 있다. 공용 주방, 커뮤니티 룸, 영화 감상실, 여성 전용 파우더룸이 있는 업플로하우스에 입주하면 피트니스 무료 이용과 더불어 유니언타운의 모든 콘텐츠를 할인 받을 수 있는 혜택이 제공된다. 모든 층의 콘텐츠를 유니언 플레이스의 직영 브랜드로 채워 멤버십 가격을 합리적인 수준으로 낮춘 차별화가 눈에 띈다.
유니언타운은 한마디로 먹고사는 동시에 일하고, 운동하고, 공부하는 것이 모두 가능한 열린 공간이자 원스톱 라이프스타일 공유공간이다. 열악한 주거 환경과 불안정한 재정에 내몰렸던 청년과 스타트업들은 이곳에 모여 편안한 주거 환경 안에서 다양한 자기 계발 콘텐츠를 누릴 수 있다. 또한, 비슷한 진로 고민을 겪는 청년들이 취향과 의식의 공동체에서 연대감을 느끼며 미래의 방향성을 함께 고민할 수 있다. 이처럼 청년들의 교류의 공간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유니언타운은 공유 가치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준다. 본격적인 유니언타운 개장과 함께 공유라이프 매거진인 <유니언타운>을 7월부터 발행하고 있으니, 이들이 생각하는 공유공간의 방향성을 훑어봐도 좋겠다.
과거에는 전통적인 형태의 가족과 동료 관계가 주요 교류 상대였다면 현대에는 1인 가구, 1인 사업가 등 새로운 형태의 사회구성원이 등장하면서 현대인의 고독감은 한층 강해졌다. 미국의 정신건강재단이 작성한 외로운 사회(Lonely Society) 보고서는 18~34세의 청년층이 중장년층보다 외로움, 절망감, 심리적 고통을 강하게 느낀다고 발표했다. 한국에서도 2011년 이후 SNS에 외롭다는 단어의 게시글이 5배 이상 증가했고, 사람과 대화하는 인공지능 서비스가 잇달아 출시되고 있다. 교류를 향한 욕구는 전 세계적인 갈망이다.
새로운 사람과의 접촉, 인간적인 교류가 가능한 공유공간은 사회의 외로움을 덜어줄 열쇠로 주목받고 있다. 공유공간은 개인주의가 만연하던 사회에서 타인에 대한 긍정적인 관심을 만들어내고, 함께 살아가는 사회에서 꼭 필요한 예절에 대한 중요성을 확산시키며, 어쩌면 공유공간에서만 학습 가능한 새로운 사회화 개념을 형성할지도 모른다. 위워크는 이용자의 70% 이상이 다른 이용자와 비즈니스를 했다는 내부 조사 결과와 함께, 비즈니스는 단순 계약과 거래 외에도 동호회 활동 같은 모든 형태의 교류를 아우른다고 강조했다. 타인과 접촉하며 만드는 건강한 교류가 외로움을 덜어주고 즐거운 업무, 즐거운 하루를 만들어준다는 그들의 철학엔 반박의 여지가 없다.
공유공간으로 어떤 공동체를 만들 수 있을까?
오늘 살펴본 기업형 공유공간들은 각 분야의 전문가와 규모의 자본을 활용해 체계적인 표적화와 공간 기획으로 실패 확률이 적은 공동체를 모을 수 있는 라이프스타일 서비스를 결합했고, 그 결과 높은 질의 교류가 가능한 공유공간을 만들어냈다. 다른 기업들 역시 색다른 경쟁력을 내세운 공유공간을 앞다투어 만들고 있다. 코오롱은 최소화한 개인 공간과 최대화한 공용부를 내세운 공동체 중심형 공유주택 커먼라이프 역삼 트리하우스로 강남권의 전문직 밀레니얼 세대를 공략한다, 한화생명의 공유오피스인 드림플러스는 디지털 콘텐츠 제작 스튜디오와 스타트업 육성 프로그램을 제공해 창업 생태계를 선도하겠다는 의지를 비치고 있다.
공유공간의 폭발적인 성장세에 편승하는 기업이 늘어날수록 도시의 문화도 점진적으로 변할 것이다. 그 변화가 긍정적일지, 혹은 부정적일지는 공유공간의 공급자와 설계자가 사람과 공동체, 교류에 대한 이해도를 얼마나 가졌는지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공간은 사람과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요소다. 공유공간을 통해 어떤 형태의 질적인 공동체를 만들 수 있을지에 대한 깊은 고민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