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Dots
▪ 스위스 태생의 초현실주의 화가 H.R. 기거는 영화 에이리언 속 우주 괴물 에이리언을 만들어내며 일약 세계적인 예술가로 떠오른다. 감독 리들리 스콧은 기거의 예술은 우리의 정신 속으로 파고들어 우리의 가장 깊은 원초적 본능과 두려움을 건드린다고 평했다.
▪ 기거는 생물체의 신체와 기계가 결합한 바이오메카닉을 자신의 예술 세계의 키워드로 삼았고 이를 통해 전쟁, 원자 폭탄, 인류의 폭력성에 대한 두려움을 사이키델릭하면서 그로테스크한 그림으로 그려냈다.
▪ 그가 보여준 이 독특한 세계는 후대의 수많은 예술가와 대중문화에 영향을 미치며 기거레스크(Gigeresque)란 용어를 만들어낸다. 기거는 죽기 전 자신이 만든 작품들을 모아 스위스 쿠어와 그뤼에르 마을에 기거바를 만든다. 이곳은 지금도 방문할 수 있다.
영화 <에이리언>과 <듄>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우선 둘 다 세계적인 SF영화다. 그리고 두 작품 모두 한스 루돌프 루어디 기거(Hans Rudolf “Ruedi” Giger, 1940~2014)가 비주얼을 디자인했다. 기거가 참여한 영화 <듄>은 2021년 개봉한 영화(티모시 샬라메·젠데이아 주연)가 아니다. 1974년 컬트영화의 대가로 불린 칠레 출신의 알레한드로 조도로프스키(Alejandro Jodorowsky) 감독이 기획한 <듄>이다. 조도로프스키가 구상한 영화의 길이는 무려 16시간 분량에 달했다. 주연은 살바도르 달리(Salvador Dalí, 그 유명한 초현실주의 화가가 맞다)와 <시민 케인>의 오손 웰스(Orson Welles), 음악은 영국 밴드 핑크 플로이드(Pink Floyd)가 맡는 등 그야말로 초호화 캐스팅이었다. 이 전통을 이어받아 2020년에 공개된 <듄> 1편 예고편에는 핑크 플로이드의 노래 <eclipse>가 편곡 버전으로 들어갔다.
기거는 달리의 추천으로 <듄>에 참여하게 되었다. 평소 기거를 눈여겨보던 살바도르 달리는 감독 조도로프스키에게 그의 작업을 소개했다. 기거는 영화 속 악당 하코넨 남작이 사는 성과 행성 디자인을 맡았다. 조로도프스키는 하코넨 남작을 표현하기 위해 어딘가 병든 것만 같은 기괴한 예술(sick art)을 요청했다. 그리고 기거는 유감없이 자신의 병적인 예술 세계를 표현했다. 하코넨 성을 기거는 다음과 같이 묘사한다. “하코넨 성의 머리는 거대한 요새로 성을 육지와 공중의 공격으로부터 보호한다. 머리의 앞부분은 기계로 조작해 낮출 수 있으며, 죽음과 파괴를 뿜어내는 요새화된 두개골을 드러낸다.”
하지만 영화는 실현되지 못한 채 제작이 무산된다. 흔하지 않은 16시간이라는 러닝타임에서 추측할 수 있듯, 대중성과는 거리가 먼 영화의 실험 정신과 뜻을 같이하는 투자자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후 1980년대 <에이리언>의 감독이기도 한 리들리 스콧(Ridley Scott)이 이 영화 연출을 맡았지만 중도 하차했다. 1984년에는 컬트 대가 데이비드 린치(David Lynch)가 연출을 맡은 영화 <듄>이 처음으로 세상에 공개되었지만 팬과 평단으로부터 호불호가 크게 갈렸다. 하지만 덕분에 혜성처럼 등장한 기거의 그로테스크하면서 독특한 예술 세계는 할리우드 영화계에 널리 알려졌다.
H.R. 기거의 등장: 듄과 에이리언
<듄> 제작이 무산된 후, 1977년 기거는 자신의 그림 컬렉션을 담은 네크로노미콘(Necronomicon)이란 화집을 발간했다. 네크로노미콘이라는 제목은 미국 SF 소설가 하워드 러브크래프트(Howard Lovecraft)의 동명 소설에서 따왔다. 기거는 자신의 꿈, 프란츠 카프카, 프로이트 심리학, 소설가 러브크래프트에 등에 영감을 받는다고 공공연히 밝힐 만큼 그 영향을 많이 받았다. 네크로노미콘은 크툴루 신화에 등장하는 가상의 마법서다. 그 어원은 nekros(사체), nomos(법), eikon(이미지)를 합친, 죽은 자의 법률에 대한 이미지다. 제목에서 유추할 수 있듯 기거의 화집에는 죽음이 메인 키워드다. 기거는 중세 회화를 현대적으로 재구성해 인간의 신체와 기계가 병적으로 결합한 기괴한 이미지를 만들어냈다.
그 화집엔 그 유명한 <Necronom IV>이란 작품이 실렸다. <에이리언>의 감독 리들리 스콧은 그림을 보자마자 바로 작품 속 우주 괴물의 모습이 바로 이러해야 함을 깨달았다고 한다. 당시 스콧은 20세기 폭스와 계약을 마친 뒤, 그 사무실 책상 위에 놓여있던 네크로노미콘 화집의 사본을 보고 기거에 대한 확신을 가졌다고 한다. 에이리언의 시나리오 작가인 댄 오배넌(Daniel O’Bannon) 역시 기거를 눈여겨봤다. 사실 그는 기거와 함께 1974년 <듄> 프로젝트에 참여했었다. 제작은 엎어졌지만 기거의 그로테스크한 디자인은 계속해서 뇌리에 남았다. 그것을 바탕으로 <에이리언>의 시나리오를 쓴 오배넌은 감독에게 기거를 미술 감독으로 추천했다. 기거가 에이리언과 함께하는 건 운명과도 같았다.
다시금 할리우드 영화 제작에 참여하게 된 기거는 <에이리언>의 아트워크와 컨셉 디자인을 맡았다. 스콧은 그에게 초안 세 점을 천 달러에 주문했다. 고소공포증이 있어 비행기 타기를 두려워하던 기거를 직접 찾아가 설득한 스콧은 그를 영국 스튜디오로 데려오는 데 성공했다. 기거는 런던 근처의 셰퍼턴 필름 스튜디오에서 11개월간 철통 보안 속 에이리언의 비주얼을 완성했다. 기거는 댄 오배넌이 쓴 시나리오를 기반으로 기이한 외계 생명체를 그려냈다. 성기를 연상케 하는 긴 두개골과 거대한 곤충과 같은 눈, 얼굴을 뒤덮은 날카로운 이빨, 몸통에 그대로 드러난 갈비뼈와 파충류 꼬리 모양 등, 코즈믹 호러를 상징하는 우주 괴물 제노모프가 그렇게 탄생했다.
<에일리언>은 개봉하자마자 엄청난 흥행에 성공했고, SF 호러영화의 전환점이자 가장 성공한 작품이 되었다. 리들리 스콧은 “기거의 예술은 우리의 정신 속으로 파고들어 우리의 가장 깊은 원초적 본능과 두려움을 건드린다”라고 평했다. 기거는 영화의 강력한 비주얼을 완성한 공을 인정받아 1980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시각 효과상을 수상했다. 기거는 1960년대 후반부터 각종 록밴드 앨범 커버를 디자인하고 살바도르 달리와 교류하며 명성을 쌓았지만, 영화의 흥행으로 세계적 명성을 가진, 폭발적인 팬을 거느린 예술가로 떠올랐다.
기거의 바이오메카닉
기거의 작품을 단순히 시나리오를 영상으로 구현하는 시네마 비주얼라이징이란 틀에만 갇혀 생각하면 그의 작품 세계가 지닌 뚜렷한 개성을 간과하게 된다. 기거는 어렸을 때부터 초현실주의 작가 살바도르 달리(Salvador Dalí)와 지옥의 화가 히에로니무스 보스(Hieronymus Bosch)의 작품을 보며 꿈과 환상을 드나드는 악몽 같은 공포에 매료되었다. 그는 이를 자신이 경험한 세계 2차 대전의 잔혹성과 결합하고자 했다. 기거가 창작한 작품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바이오메카닉이다. 바이오메카닉 아트(Biomechanical art)는 초현실주의 예술 스타일의 하나로 기계와 생물체의 융합을 보여준다. 주로 근육, 핏줄, 뼈 등 인간 혹은 생물체의 육체를 그대로 노출하며 기계적 요소인 금속, 피스톤, 기어 등을 결합해 매우 사실적으로 표현한다.
기거는 “기계는 섹시하다. 하지만 그건 자동차 생산업체가 소비자에게 전하고 싶은 방식의 섹시함과는 거리가 멀다”라고 말했다. 기거는 인간과 기계의 혼합체로 환상적이면서 어둡고 사이키델릭한 이미지를 만들어냈다. 기거는 과거의 악마들에게서 영감을 받아 미래의 신화를 일깨웠고, 시대의 집단적인 두려움과 환상을 표현했다. 특히 원자 폭탄에 대한 두려움, 오염과 자원 낭비의 두려움, 우리 신체가 생존을 위해 기계에 의존할 것이란 다소 디스토피아적인 두려움이 모두 그가 시달렸던 다양한 두려움이다.
기거의 몇 가지 대표작을 살펴보면 첫 번째로 <Atomic Children(1968)>을 들 수 있다. 그의 친구에 따르면, 기거는 이 작품을 그릴 당시 핵전쟁에 대한 두려움이 몹시 컸다. 실제로 1962년 쿠바 미사일 위기로 그 두려움은 절정에 달했다. 그 심리를 반영한 작품 속 아이들은 핵전쟁의 영향으로 방사선에 피폭된 기형의 모습을 하고 있다. 기거는 투명 종이에 검은 잉크를 뿌린 뒤 면도날로 긁어내는 기법을 써 작품을 완성했다.
그의 또 다른 작품인 <Birth Machine(1967)>은 자궁을 피스톨 체임버로 표현한 작품이다. 태어날 아기들이 마치 총알처럼 카트리지에 장착되어 있다. 이는 인구 과잉 문제를 다루고 있다. 기거는 평소 인류의 끝없는 욕심과 증식, 그리고 서로를 향한 전쟁과 폭력이 지구의 멸망을 불러올 거로 생각했다. 총알처럼 장전된 아기들의 손에는 마찬가지로 피스톨이 쥐어져 있다.
기거는 순수 회화뿐만 아니라 당대의 수많은 록밴드와 협업해 앨범 커버를 디자인했다. 대표작으로는 영국의 프로그레시브 록밴드인 에머슨 레이크 앤 파머의 네 번째 스튜디오 음반 <Brain Salad Surgery>의 앨범 커버가 있다. 프로그레시브 록의 랜드 마크로도 널리 알려진 이 앨범은 기거의 가장 유명한 작품 중 하나가 됐다. 커버에 등장하는 두개골에 갇혀 생명력을 잃은 채 박제된 여자의 얼굴은 죽음의 공포를 일깨운다.
두려움과 공포의 해독제, 기거의 예술
인간의 신체와 두개골에 대한 기거의 관심은 유년 시절에서 비롯됐다. 1940년 스위스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로 알려진 쿠어의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난 그는 장난감 차를 갖고 노는 또래와 달리 어렸을 때부터 트럭에 해골을 싣고 다녔다. 그것은 약사였던 아버지의 소장품이었다. 기거는 8살 때 박물관에서 이집트 미라와 석관을 봤던 일을 두고 “내 생애 가장 강렬한 경험 중 하나였다”라고 회고했다. 기거는 어렸을 때 여느 다른 초현실주의 작가들처럼 유독 반복되는 악몽과 이상한 꿈에 시달렸다. 두려움을 해소하고자 그는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기거의 친구 안드레아스 히르쉬는 기거가 쿠어에 있는 집의 물리적 환경 때문에 불안을 느끼는 때도 있었다고 밝혔다. 어두운 골목으로 통하는 열린 창문, 오래된 건물의 지하실 등 집은 그에게 안식처가 아닌 두려움 그 자체였다. 전쟁의 공포 역시 기거를 장악했다. 제2차 세계 대전 시기 독일과 가까운 스위스에서 자라며 언제든지 폭격당할 수 있다는 두려움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그 감정은 기거의 작품에서 어둠의 원천으로 기능했다. 다양한 공포와 불안에 시달리며 성장한 기거는 스스로 옷을 고를 수 있는 나이가 되자 늘 검은색 옷만 입었고 산책은 해가 진 뒤에야 나갔다.
어렸을 때부터 수많은 그림을 그려냈던 기거는 자연스럽게 예술가가 되길 원했다. 하지만 그의 아버지는 예술은 돈이 되지 않는다며 반대했다. 결국 기거는 취리히의 응용 예술 학교에서 건축과 산업 디자인을 공부했고 졸업 후 인테리어 디자이너의 길을 가기 시작했다. 그러나 기거는 곧 아버지의 뜻을 거스르고 예술가가 되었다. 기거는 몇 번의 전시회를 성공적으로 개최했고 1970년대 초반 유럽 예술계에서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여담이지만 기거의 시작이 꼭 좋지는 않았던 듯하다. 다소 기괴하고 징그럽기까지 한 그의 그림에 거부감을 지닌 사람들은 갤러리에 걸린 그의 그림을 향해 침을 뱉으며 거부감을 표출하기도 했다. 그 당시 갤러리 주인은 기거의 작품을 전시하는 동안 아침에 출근해 제일 먼저 한 일이 바로 행인들이 창문에 뱉은 침을 닦는 일이었다고 회고했다.
기거는 초기에 주로 잉크와 오일을 사용했다. 하지만 나중에는 에어브러시 기법을 통해 흑백 위주의 단색으로 구성된 섬세한 작품을 주로 그렸다. 에어브러시 기법은 압축 공기로 페인트를 미세하게 분무해 부드럽게 혼합된 색상을 표현할 수 있다. 이러한 기법은 기거의 작품에 낯선 연기가 자욱한 몽환적인 느낌을 만들어낸다. 자신의 두려움을 인간과 기계가 결합한 형태의 바이오메카닉으로 표현한 기거는 달리와 친분을 맺은 뒤 서서히 예술가로서 인정을 받기 시작했다.
그러나 기거가 꼭 예술가로서 승승장구한 것만은 아니었다. <에이리언>의 세계적인 성공 후 기거는 할리우드의 여러 제작사로부터 러브콜을 받았다. 하지만 유럽 예술계는 오히려 미국 할리우드에서 성공한 그를 속물적이라며 전시 공간 제공을 거부하기도 했다. 기거는 할리우드에서 컨셉 디자이너로 활동하며 호러 판타지 <폴터가이스트>의 속편, 에로틱 SF 스릴러 <스피시즈> 제작에 참여했다. 하지만 기거는 <에이리언>을 제외하고 영화 속 작업물이 그리 만족스럽지는 않았다고 나중에 밝혔다.
결국 기거의 관심은 순수 회화나 영화가 아닌, 제3의 길로 향했다. 한때 인테리어 디자이너였던 경력을 살려 아예 자신의 작품으로만 가득 채워진 공간을 만들기로 한 것이었다. 1992년, 기거는 고향 쿠어와 스위스 그뤼에르에 있는 생제르맹 성을 샀다. 그리고 그곳에 기거 바(Giger Bars)를 열었다. 기거바는 자궁과 같은 아치형 천장에 이를 가로지르는 척추뼈 같은 아치로 뒤덮여 있다. 그래서 그곳에 들어서면 마치 고래의 뱃속에 들어온 것만 같은 감각을 느낄 수 있다. 이는 구약성경 중 신의 명을 어기고 도망가다 고래한테 잡아먹힌 뒤, 새롭게 부활한 요나의 이야기를 떠올리게 한다. 기거바의 테이블과 카운터에는 <듄>을 위해 디자인한 검은색 알루미늄 왕좌인 하코넨 의자가 놓여있다. 기거는 이곳에서 말년을 보낼 정도로 자신이 만들어낸 독창적인 세계를 무척이나 사랑했다. 스위스 그뤼에르 마을에 있는 기거 바는 현재도 방문할 수 있다.
2014년 기거는 집 계단에서 넘어져 병원에 실려 갔다 사망했다. 향년 74세. 사고 직전까지 그는 리들리 스콧과 의기투합해 <에이리언>의 프리퀄인 <프로메테우스>의 영화 디자인에 간접적으로 참여하며 활발히 활동을 이어 나갔다. 영화의 공식 디자이너는 아니었지만 기거는 영화 제작 전 리들리 스콧에게 컨셉 아트 스케치 30점을 제공했다. <프로메테우스>에 등장하는 엔지니어들의 우주비행사 복과 헤드룸 디자인은 그 영향을 받았다. 헤드룸 디자인을 맡았던 아트 디렉터 스티븐 메싱은 기거의 작품을 오마주하고자 헤드룸 입구 벽에 새겨진 외계인 조각을 그의 스타일로 재현했다.
기거는 단순히 후대의 SF 혹은 크리처 영화에만 영향을 미친 게 아니다. 그는 게임 전반과 대중문화에도 뚜렷한 영향을 남겼다. 가장 유명한 건 2000년대 초 전 세계를 강타한 게임 스타크래프트(특히 저그 종족의 이미지), 그 외에도 코즈믹 호러를 비주얼로 생생하게 구현한 게임 스콘, 레이디 가가의 여섯 번째 앨범 크로마티카 커버가 있다. 비평가 프랑크 리날리는 기거의 작품을 원형으로 한 다양한 변형 작품이자 영향을 받은 작품을 기거와 그로테스크를 결합해 기거레스크(Gigeresque)라 칭했다.
기거의 레거시는 그렇게 계속 이어져 오고 있다. 최근 <에일리언> 시리즈의 일곱 번째 영화 <에이리언 : 로물루스>가 개봉했다. 영화 곳곳의 디자인에서 기거를 향한 오마주를 엿볼 수 있다. 티모시 샬라메 주연의 <듄>에서도 기거가 영화 제작 초기에 꿈꿨던 상상력들을 발견할 수 있다. 기거의 상상력은 그렇게 계속해서 오늘날 우리의 마음속 깊은 공포에 가닿고 있다. 기거는 자신의 작품을 좋아하는 이들이 있다면 이들은 “진정으로 창의적이거나 혹은 미쳤다”라며 농담을 던지곤 했다. 하지만 그의 작품에 매혹당하는 건 미쳐서가 아닌 우리 모두 내면의 괴물과 같은 공포를 안고 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만약 내면의 괴물성이 진정으로 타자였다면 우리는 이를 무서워할 뿐, 결코 하나의 작품이자 미학으로서 매혹당하지 않았을 것이다.
기거는 자신의 심연을 응시한 예술가였다. 우리는 그의 세계에서 유영하며 다시금 각자의 공포와 불안에 침잠한다. 자신의 깊은 공포를 응시하면, 우리는 도리어 여기에 매혹되는 미학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게 바로 기거의 예술 세계가 지닌 가장 아름다운 아이러니가 아닐까 싶다. 2014년 그가 사망하고 난 뒤 스콧은 그를 두고 “진정한 예술가이자 기괴하고 독창적인 천재다. 그리고 정말 멋진 남자”라고 회고했다. 또 어떤 기거레스크의 영향을 받은 예술가가 등장해 우리의 상상력을 기괴하면서도 독창적인 미지의 세계로 이끌어줄지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