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Dots
▪ 디지털의 영향으로 사라지는 듯했던 브랜드 매거진 붐이 다시 일고 있다. 웹진뿐 아니라 지류 매거진을 발행하는 브랜드도 늘고 있는 상황에서 점차 많은 브랜드가 인문학과 잡지 감성을 적극 활용하고 있다.
▪ 기존의 미디어 커머스 방식이 제품이나 서비스 판매에 목적을 뒀다면 매거진을 중심으로 한 콘텐츠 브랜딩은 당장의 구매 대신 충성도 높은 잠재 고객을 확보하는 데 목적이 있다.
▪ 콘텐츠 브랜딩의 핵심은 꾸준히 발행하는 지속성이다. 1895년 시작된 존 디어사의 《더 퍼로우》처럼 지속가능한 매거진으로 자리 잡기 위해서는 장기적으로 이어갈 수 있는 서사를 바탕으로 이를 꾸준히 뒷받침할 리소스와 내부 의지를 확보하는 일이 중요하다.
한때는 사라질 것처럼 보였다. 사람들은 더 이상 잡지를 사지 않았고 브랜드는 인스타그램이나 유튜브 채널처럼 빠르게 전환되는 미디어에만 주목했다. 하지만 지금, 브랜드 매거진은 조용히 그리고 분명하게 귀환 중이다. 지면이든 웹이든 매거진이라는 형식은 브랜드에게 단지 상품을 알리는 수단을 넘어 하나의 태도와 세계관을 드러내는 도구가 되었다. 특히 인문학적 주제나 일상을 깊이 있게 다루는 매거진들은 단기적인 마케팅을 넘어 장기적인 신뢰와 충성도를 이끄는 콘텐츠 브랜딩 전략으로 주목받고 있다.
이 흐름의 신호탄을 쏘아 올린 것은 럭셔리 업계였다. 코로나19가 한창이던 2021년, 보테가 베네타는 돌연 브랜드의 공식 SNS 계정들을 삭제했다. 락다운의 영향으로 온라인 마케팅의 중요성이 그 어느 때보다 강조되던 시기, 주요한 커뮤니케이션 수단을 스스로 없앤 것이다. 그렇게 디지털 세계에서 자취를 감추는 듯했던 보테가 베네타는 얼마 뒤 디지털 매거진 《ISSUE》를 창간했다. 이후 SNS 보이콧의 주인공이었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다니엘 리(Daniel Lee)는 사임했지만 브랜드의 슬로우 마케팅 전략은 되려 더 강화되었다. 뉴스레터와 온라인 웹사이트를 통해 누구나 볼 수 있었던 웹진 대신 오직 오프라인 쇼룸에서만 볼 수 있는 무료 종이 매거진(Fanzine)을 발행하기 시작한 것이다.
한정 부수로 발행되는 팬진에는 해당 컬렉션이 완성되기까지의 과정이 감도 높은 화보 이미지와 에디토리얼 콘텐츠로 담겨 있다. 아주 제한된 수량만 인쇄되기 때문에 매거진을 확보하려는 고객들의 “오픈런” 현상이 매 시즌 반복된다. 비슷한 흐름은 다른 럭셔리 브랜드들에서도 이어진다. 로에베는 같은 해 자체 매거진 《로에베 이슈(LOEWE ISSUE)》를 창간했고, 생 로랑은 파리 매장 한 곳을 아예 서점으로 개조해 팬진과 희귀 서적들을 큐레이션해 판매하기 시작했다.
이처럼 하이엔드 브랜드들이 앞다투어 자체 매거진을 내는 이유는 명확하다. 바로 브랜드의 헤리티지(Brand Heritage)를 구축하고 확장하기 위해서다. 브랜드 헤리티지는 단순한 과거의 자산이 아니라 브랜드가 왜 존재하는지를 설명하는 철학적 정체성이다. 그리고 그 정체성은 말과 이미지, 시간의 결을 담아내는 매체를 통해 가장 강하게 드러난다. 잡지와 책은 브랜드가 전하고자 하는 가치를 천천히, 그러나 깊이 있게 기록할 수 있는 가장 서사적인 도구다. 특히 AI 콘텐츠가 쏟아지고 디지털 정보가 소비되자마자 잊히는 시대에, 인쇄물의 물성과 축적된 서사는 오히려 브랜드의 정체성을 증명하는 중요한 증거가 된다.
지금은 필요를 채우기 위해서가 아니라 심리적인 만족을 위해 소비하는 시대다. 사람들은 제품 자체보다 그 뒤에 담긴 철학과 세계관에 매력을 느끼고, 그 이야기에 공감할 때 비로소 지갑을 연다. 이때 매거진이라는 형식은 브랜드가 자신을 서사화할 수 있는 가장 진정성 있는 매개가 된다. 즉 브랜드 매거진은 단순한 마케팅 수단이 아니라 브랜드가 왜 존재하는가를 스스로 증명해 보이는 하나의 태도인 셈이다.
스스로 책이 되는 브랜드들
재밌는 사실은 브랜드 헤리티지라는 개념이 더 이상 럭셔리 브랜드들만의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이제는 스타트업부터 콘텐츠 플랫폼, 생활용품 브랜드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의 브랜드가 자신만의 철학과 언어를 담은 매거진을 만들고 있다. 제품을 “팔기 위한” 홍보물이 아니라 브랜드가 살아온 시간과 지향하는 가치를 “읽게 만드는” 미디어로서의 매거진을.
이러한 변화는 브랜드가 단순히 상품을 공급하는 주체를 넘어 하나의 콘텐츠 생산자이자 미디어로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브랜드가 자신만의 시선으로 세상을 해석하고 그것을 꾸준히 기록하고 발행하는 흐름, 그리고 이야기를 스스로 발행하는 브랜드의 움직임은 이제 선택이 아닌 필수 전략이 되었다. 실제로 국내에서도 이 같은 흐름이 점점 뚜렷해지고 있다. 브랜드가 자사의 정체성을 서사화하고 그것을 매거진이라는 형태로 축적해 가는 움직임은 콘텐츠 브랜딩을 고민하는 기업들 사이에서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는 중이다.
x 배달의민족 – 매거진 《F》
배달의민족은 브랜드 철학을 담은 미디어 실험의 일환으로, 2018년 매거진 《B》와 협업해 푸드 다큐멘터리 매거진 《F》를 창간했다. 이 매거진은 매 호마다 하나의 식재료를 선정해 그 식재료가 세계 각지에서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조명하는 방식으로 구성된다. 식문화에 대한 깊이 있는 탐구와 감도 높은 비주얼은 《F》를 단순한 푸드 매거진이 아닌, 음식이라는 렌즈로 세계를 들여다보는 문화 인문지로 자리매김하게 했다.
배달의민족은 왜 식재료를 주제로 한 인문 잡지를 만들었을까? 《F》는 배달의민족이 단지 음식 배달 서비스가 아닌, 음식에 대한 존중과 문화적 이해를 바탕으로 하는 브랜드임을 드러내는 도구다. 식재료가 어떻게 생산되고 소비되는지를 탐구하는 콘텐츠는 브랜드가 지향하는 “음식에 대한 애정”과 “깊이 있는 연결”이라는 가치를 말없이 설득한다.
《F》는 현재까지 30호가 발행되었고 글로벌 독자를 대상으로 한 영문판도 운영 중이다. 이는 곧 브랜드 매거진이 단발적인 마케팅 콘텐츠를 넘어 장기적으로 브랜드의 자산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다. 배달의민족은 《F》를 통해 단순히 브랜드 이미지를 구축할 뿐만 아니라 스스로를 “음식 문화의 큐레이터”라고 지칭하며 자리매김했다.
x 블랭크코퍼레이션 – 《툴즈(TOOLS)》
라이프스타일 콘텐츠를 통해 브랜드와 제품을 연결하는 데 탁월한 감각을 보여온 블랭크코퍼레이션은 2021년, 자사 첫 브랜드 매거진 《툴즈(TOOLS)》를 선보였다. 이 매거진은 이름 그대로 우리 삶의 도구들에 주목하며 매호 하나의 일상적 오브제를 테마로 삼아 그 도구의 역사, 철학, 디자인, 사용자의 이야기를 깊이 있게 풀어낸다. 창간호의 주제는 비누였고, 이후에는 숟가락, 거울 등 사소하지만 삶을 구성하는 도구들이 주인공이 되었다.
《툴즈》는 블랭크코퍼레이션의 제품과 직접 연결되지 않으면서도, 브랜드가 지향하는 삶의 방식과 미적 감각을 오롯이 담아낸다. 제품 중심의 콘텐츠가 아닌, 세계관 중심의 콘텐츠를 만드는 전략을 선택한 것이다. 이는 브랜드가 단순히 물건을 판매하는 회사가 아니라 “삶의 감도”를 큐레이션하는 미디어라는 선언과도 같다.
또한 《툴즈》는 오프라인 서점 및 편집숍을 통해 독립 매거진처럼 유통되며 일반 독자뿐 아니라 브랜드 관계자, 크리에이터들에게도 꾸준한 관심을 받아 왔다. 라이프스타일 브랜드가 잡지라는 형태로 자신의 철학을 구축했다는 점에서 《툴즈》는 브랜드 미디어의 또 다른 가능성을 보여주는 유의미한 사례다.
x 토스 – 《토스 피드》 & 《더 머니북》
토스를 운영하는 비바리퍼블리카는 브랜드 블로그 “토스피드(Toss Feed)”를 통해 재미있고 유용한 금융 콘텐츠를 지속적으로 제작해 왔다. 여기서 파생된 대표적인 산물이 바로 《더 머니북(THE MONEY BOOK)》이다. 《더 머니북》은 “잘 살아갈 우리를 위한 금융생활 안내서”라는 부제를 달고 자산 관리부터 세금, 보험, 투자까지 일상 속 금융에 대한 실용적이고도 쉽게 읽히는 콘텐츠를 엮은 책이다.
토스는 복잡하고 딱딱한 금융 지식을 콘텐츠로 쉽게 풀어내며 브랜드의 접근성을 높였고 금융 문맹 탈출을 돕는다는 철학을 매거진(브랜드 블로그)이라는 형식으로 구체화했다. 특히 사용자 질문 100개에 대한 답변을 중심으로 구성된 《더 머니북》은 콘텐츠 큐레이션의 정수라 할 수 있다. 이 책은 단순한 사용 설명서가 아니라 토스가 어떤 방식으로 금융을 바라보고 해석하는지를 드러내는 일종의 관점서다.
《더 머니북》은 토스 자체 플랫폼뿐만 아니라 교보문고, 알라딘 등 대형 서점을 통해 판매되었고 출간 직후 수많은 독자와 미디어의 관심을 받으며 브랜드의 신뢰도를 상승시켰다. 콘텐츠가 브랜드를 말하게 하고 책이 곧 브랜드가 되는 지금의 흐름 속에서, 토스는 금융 브랜드로서는 드물게 “읽히는 브랜드”로 자리 잡았다.
해외 사례로 살펴보는 브랜드 매거진의 효용성
럭셔리 브랜드들이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고는 하지만 사실 브랜드 매거진을 활용하는 마케팅 전략은 훨씬 오래전부터 그 효용성이 검증된 바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무려 120년 넘게 연재되고 있는 미국의 농업 전문 잡지 《더 퍼로우(The Furrow)》다.
x 존 디어사 – 《더 퍼로우》
버몬트주의 대장장이이자 트랙터 회사 대표였던 존 디어(John Deere)는 1895년, 농민들에게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정보를 제공하고자 이 매거진을 창간했다. 《더 퍼로우》는 단순히 존 디어사의 농기계를 홍보하는 수단이 아니었다. 그보다 농업 경영, 새로운 농기계 기술, 경작 방법, 토양 관리 등 농민들의 삶에 실질적 가치를 더할 수 있는 전문 콘텐츠를 꾸준히 제공했다. “어떻게 농사를 더 잘 지을 것인가”를 중심에 둔 이 브랜드 매거진은 농민들의 신뢰를 얻으며 빠르게 퍼져나갔다.
《더 퍼로우》가 주목받는 이유는 그저 오래됐다는 사실에 있지 않다. 이 잡지는 초창기부터 “제품을 직접적으로 홍보하지 않고 콘텐츠로 신뢰를 구축하는 전략”을 택했다는 점에서 선구적이었다. 농업 기술이 빠르게 발전하는 시대 변화에 발맞추어 최신 트렌드와 실질적 지식을 제공하며 존 디어 브랜드를 농업 커뮤니티 속 동반자로 자리 잡게 했다. 이로써 브랜드는 단순한 판매자가 아닌, 농민들의 성장을 지원하는 지식 파트너로 인식되었고 이는 이후 12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존 디어가 세계적인 농기계 브랜드로 성장하는 데 결정적인 밑거름이 되었다.
현재 《더 퍼로우》는 전 세계 수백만 명의 독자를 확보하고 있으며 인쇄본뿐 아니라 디지털 매거진 형태로도 발행되고 있다. 변하는 미디어 환경 속에서도 흔들림 없이 이어지고 있는 이 브랜드 매거진은 콘텐츠를 통한 신뢰 구축과 관계 형성이 장기적인 브랜드 자산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살아 있는 증거로 평가받는다.
x 레드불 – 《더 레드 불레틴》
스포츠, 음악, 문화 분야에서 독보적인 포지션을 구축한 레드불은 《더 레드 불레틴(The Red Bulletin)》이라는 자체 매거진을 통해 브랜드 세계관을 확장하고 있다. 2005년 오스트리아 포뮬러 1 대회를 계기로 창간된 이 매거진은 레드불이 후원하는 스포츠 이벤트와 모험, 혁신적인 인물들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한 라이프스타일 콘텐츠를 담아낸다. 초기에는 레드불이 직접 관여하는 스포츠 행사가 중심이었지만 점차 젊은 세대가 열광하는 음악, 패션, 예술 분야로 콘텐츠 스펙트럼을 넓혀 나갔다.
《더 레드 불레틴》은 단순히 브랜드의 활동을 소개하는 차원을 넘어 독자들에게 “레드불이 지향하는 삶의 방식”을 체험하게 하는 데 집중한다. 모험심, 도전, 한계 돌파, 창조성 같은 키워드를 중심으로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풀어내면서 읽는 이로 하여금 “레드불을 마시는 것”이 아니라 “레드불이 상징하는 세계를 사는 것”을 상상하게 만든다. 매거진은 제품을 직접적으로 다루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결과적으로 브랜드의 핵심 이미지를 강력하게 각인시킨다.
현재 《더 레드 불레틴》은 영어, 독일어, 스페인어 등 다양한 언어로 번역되어 매월 140만 부 이상 발행되고 있다. 디지털 에디션과 지역별 맞춤형 인쇄본을 함께 운영하면서 각 지역 문화에 맞게 콘텐츠를 현지화하는 전략도 병행하고 있다. 이러한 글로벌 확장 전략은 레드불이 단순한 에너지 음료 브랜드를 벗어나 “도전하는 삶의 대명사”로 자리 잡게 만든 핵심 동력 중 하나로 평가받는다.


성공적인 콘텐츠 브랜딩을 위한 관건, 지속성
이처럼 브랜드 매거진의 가치는 그 자체로 분명해 보이지만 현실을 들여다보면 결코 녹록지 않다. 초기에는 큰 관심을 모았던 매거진들이 정작 몇 호 만에 폐간되거나 단발성 캠페인으로 소비되는 경우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매거진을 발행하는 것보다 더 어려운 일은 그것을 “지속할 이유”를 확보하는 일이다.
x 직방 – 《디렉토리 매거진》
부동산 플랫폼 직방이 2019년에 선보인 《디렉토리 매거진》은 주거를 단순한 거래 대상으로 다루던 기존 부동산 업계의 커뮤니케이션 방식에서 벗어나려는 시도였다. “삶의 공간”을 키워드로 삼아 밀레니얼 세대의 다양한 라이프스타일과 도시 문화를 조명한 이 매거진은 직방이라는 브랜드가 단순한 부동산 정보 제공자가 아닌, “공간에 대한 관점을 제안하는 브랜드”임을 드러내고자 했다. 그래서 창간 당시 감도 높은 디자인과 진정성 있는 콘텐츠로 주목받으며 브랜드 매거진 시장에서 신선한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꾸준한 발행을 이어가기에는 운영상 현실적인 제약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매거진 기획과 제작에 상당한 시간과 전문성이 요구되었고 브랜드 내부에서도 이를 장기적으로 운영하기 위한 자원과 조직적 동력을 유지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을 가능성이 있다. 특히 부동산 플랫폼이라는 본업 특성상, 매거진을 통한 장기적 브랜드 구축보다 당장의 비즈니스 성과가 더 중시되는 구조적 환경도 무시할 수 없었을 것이다. 결국 《디렉토리 매거진》은 2021년 12호를 끝으로 발행이 중단되었다.
이 사례는 브랜드 매거진을 지속가능한 자산으로 축적하기 위해 필요한 조건을 명확히 보여준다. 단순히 좋은 콘텐츠를 만들어내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콘텐츠를 장기적으로 이어갈 수 있는 명확한 존재 이유와 이를 뒷받침할 안정적인 리소스 배분, 그리고 조직 내부의 일관된 지지가 필요하다. 직방의 사례는 브랜드 매거진이 그 자체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브랜드의 여러 이해 당사자가 시간을 들여 함께 쌓아 올려야 하는 서사라는 점을 조용히 일러주고 있다.
x 바른생각 – 《POETRY》
콘돔 브랜드 바른생각은 지난해 초 브랜드 리뉴얼의 차원에서 보다 감성적이고 일상적인 언어로 소비자와 소통하고자 《POETRY》 매거진을 선보였다. 《POETRY》는 “사랑의 순간들로의 여행”이라는 주제 아래 다양한 커플들의 인터뷰와 에세이, 감도 높은 화보를 담아 사랑과 관계에 대한 섬세한 시선을 담아냈다. 제품을 직접 홍보하기보다는, “건강하고 솔직한 사랑”이라는 브랜드 철학을 문화적으로 풀어내려는 시도가 돋보였다.
특히 《POETRY》는 기존 콘돔 브랜드가 취해왔던 직설적이고 기능 중심적인 커뮤니케이션에서 벗어나 사랑과 관계라는 주제를 문학적이고 예술적인 방식으로 풀어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었다. 제품을 사용하는 상황을 노골적으로 묘사하기보다 사람들이 사랑을 통해 경험하는 감정과 순간들을 조명함으로써 브랜드에 대한 인식 자체를 부드럽고 긍정적으로 전환하는 데 주력했다.
하지만 《POETRY》 매거진 역시 1호 발행 이후 후속 호 소식이 들리지 않았다. 감성적 접근과 완성도 높은 콘텐츠에도 불구하고 매거진을 지속할 내부 동력과 전략적 명분이 충분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이 사례는 매거진이 브랜드 이미지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더라도 장기적인 콘텐츠 전략과 리소스 배분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결국 일회성 프로젝트로 소모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디렉토리 매거진》과 《POETRY》 모두 매거진이 단순히 참신한 기획만으로는 생명력을 가질 수 없음을 알려준다. 매거진을 통해 장기적으로 이어갈 수 있는 서사를 바탕으로 이를 꾸준히 뒷받침할 리소스와 내부 의지를 확보할 때라야 비로소 매거진은 진정한 브랜드 자산이 될 수 있다. 콘텐츠의 지속성은 곧 브랜드가 자신만의 이야기를 얼마나 진정성 있게, 그리고 오래도록 써 내려갈 수 있는지를 가늠하는 척도가 된다.
결국 브랜드 매거진을 지속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왜 이 매거진을 만들어야 하는가”에 대한 명확한 답이다. 단발적인 주목을 넘어 콘텐츠를 통해 브랜드 정체성을 얼마나 일관성 있게 축적할 수 있는지, 그리고 내부적으로 이를 장기적으로 지원할 의지와 구조가 갖추어져 있는지가 관건이다.
브랜드 매거진의 진짜 가치는 시작이 아니라 지속에 있다. 아무리 매력적인 매거진이라 해도 단발성으로 끝난다면 브랜드의 서사로 쌓이지 못한다. 결국 콘텐츠 브랜딩의 성패는 콘텐츠 자체의 완성도보다 그것을 얼마나 일관성 있게, 오래도록 이어갈 수 있는지에 달린 것이다. 그러한 측면에서 브랜드가 스스로에게 던져야 할 질문은 단순하다. “우리는 이 이야기를 계속해서 써 내려갈 수 있는가?” 그 질문에 망설임 없이 “예”라고 답할 수 있을 때, 브랜드 매거진은 단순한 홍보물을 넘어 브랜드를 살아 있게 만드는 하나의 얼굴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