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Dots
▪ 브랜드의 창립기념일 축하 이벤트는 단순한 기념행사를 넘어 또 하나의 브랜딩 및 마케팅 기회가 된다.
▪ 버거킹은 70주년 광고에서 본인들의 차별화 포인트와 광고업계의 문제점을 다뤘고, 마리끌레르코리아는 창간 30주년 프로젝트에서 자사의 크리에이티브 역량을 총집합해 나열했다. 이마트는 CM송을 다채롭게 활용해 30주년을 기념했고, KT는 아이폰 15주년 생일카페를 열어 타겟층인 Z세대를 훌륭히 겨냥했다. 레쉬코리아 역시 20주년 쇼케이스를 통해 브랜드의 핵심 가치를 이벤트에 잘 녹여냈다.
▪ 창립기념 이벤트에서 자사가 쌓아 온 과거의 레거시와 정체성을 잘 살린 브랜드일수록 소비자들에게 강력한 인상을 남겼다. 결국 자기 자신을 잘 아는 것이 훌륭한 브랜딩의 밑거름이다.
브랜드가 자신의 기념일을 축하할 때는 단순한 자축,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10년, 20년, 30년 지나온 시간을 단순히 기념하는 일을 넘어 또 하나의 브랜딩 기회로 삼아 새롭게 도약할 수 디딤돌이 된다. 자신들이 전하고 싶은 메시지나 가치를 소비자에게 전달할 수 있는 중요한 모멘텀이 되기도 하고 앞으로의 브랜드가 지향해 나갈 길을 제시하기도 한다. 기간은 중요치 않다. 이제 1주년이 된 신생 브랜드이건 70주년이 된, 오래도록 사랑받은 브랜드이건 생일을 기념하는 방식에서 우리는 브랜드가 어떻게 고유의 독창성과 정체성을 발휘하는지 엿볼 수 있다. Happy Birthday to Me! 자신의 생일을 자축하는 브랜드들의 기념법에서 브랜딩의 모범 사례를 살펴보고자 한다.
버거킹 70주년 광고: The Fire’s Still Burning
세계적인 패스트푸드 브랜드인 버거킹은 브랜드 론칭 70주년을 기념해 광고에 노인들을 전면에 내세웠다. 광고 사진의 내용은 이러하다. 주차장과 주문한 음식을 픽업하는 드라이브스루존(Drive-thru zone)에서 열정 가득한 키스를 나누는 두 노년 부부와 함께 사진 하단에는 이런 캐치프레이즈가 있다.
70 years later the fire’s still burning, 7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불꽃은 타오른다.
이는 두 가지 의미를 내포한다. 버거킹이 생긴 1954년 이래 70년간 불꽃에 직접 패티를 굽는 직화방식을 고수해온 버거킹의 브랜드 차별화 지점을 드러내며 늙어도 여전히 욕망의 불꽃을 활활 태우고 있는 노인들의 사랑을 담아내 미디어와 대중 광고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노년의 성적 욕망을 대중적으로 드러냈다.
이번 캠페인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를 맡은 세바스티안 빌헬름(Sebastian Wilhelm)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브랜드의 기념일 캠페인은 일반적으로 자축으로 그치는 경우가 많다. 우리는 자축을 넘어, 소비자에게 의미 있는 무언가를 전달하고 싶었다.” 그는 버거킹이 전하는 발칙한 메시지 – 광고에서 노인들의 이미지가 한 번도 성적 대상으로 그려진 적이 없다는 사실 – 이 이번 캠페인을 효과적으로 만들었다고 설명한다. 공동 크레이티브 디렉터를 맡은 막시 안셀모(Maxi Anselmo)도 이와 같이 덧붙였다. “광고 업계에서 노인은 종종 소외되거나 간과되는 경향이 있다. 우리는 노년의 활력과 욕망에 주목함으로써 (광고계) 내부의 노년에 대한 이러한 장벽을 깨고 시청자에게 욕망에는 연령 제한이 없다는 생각을 받아들이도록 초대하고 싶었다.”
미국 최대 은퇴자협회인 AARP(American Association of Retired Persons)에서 진행한 광고 속 노년 연구에 따르면 미국 성인 인구의 절반이 50세 이상이지만 대부분의 온라인 광고에서 50세 이상은 거의 등장하지 않으며 종종 광고 업계에서 무시되는 경우가 많다. 50세 이상이 표현되는 드문 경우에도, 그들은 일반적으로 지루하거나 시대에 뒤떨어지거나 그냥 멍청한 사람으로 잘못 묘사되거나 심지어 캐리커처로 표현된다. 버거킹의 이번 70주년 광고는 광고 업계와 미디어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노년에 대한 편견을 타파하며, 그간 존재하지만 재현되지 않았던 노년을 그려냈다는 점에서 호평을 받았다.
마리끌레르코리아 창간 30주년: #HMBD 프로젝트
2023년 창간 30주년을 맞이한 패션 잡지 마리끌레르코리아는 Happy Marie Birthday 캠페인을 진행했다. 다양한 층위에서 30주년 캠페인을 전개했는데, 일단 메시지 차원에서 누구나 자신의 탄생을 축하받을 권리가 있다는 정신 하에 여러 위험에 노출된 국내외 아동을 지키기 위한 기부 활동을 진행했다. 유니세프의 식수 위생 사업에 동참해 재난에 처한 해외 아동에게 식수 위생 키트와 비누를 전달했고 세이브더칠드런의 학대 피해 아동 정서 심리 지원 사업을 후원하며 국내의 학대 피해 아동이 가정의 울타리에서 안전할 수 있도록 돕는 전문적인 심리검사와 치료에 힘을 보탰다.
국내 최고의 패션 잡지 중 하나답게 마리끌레르코리아는 본인들의 크리에이티브 역량을 총집합해 이번 30주년을 자축했다. 뉴진스 하니, 레드벨벳 조이, 배우 송강 등 17인의 국내 셀러브리티와 구찌, 루이비통 등 16개의 패션과 뷰티 브랜드와 협업해 총 16개의 커버스토리를 하나하나 기획했다. 이렇게 16종의 마리끌레르코리아 2023년 3월호는 30년간 쌓아온 브랜드의 역량을 여실히 보여준다.
다종다양의 커버를 단순히 종이 잡지로만 발행하면 아쉬웠을 것이다. 마리끌레르코리아는 30주년을 기념하는 디지털 팝업 전시 <서른이란 마리야>를 열어 셀럽들의 커버 촬영 영상을 홀로그램으로 제작해 실감형 콘텐츠로 만들었다. 전시회는 성수동에 위치한 RSG 성수에서 2023년 3월 1일부터 12일까지 진행되었다. RSG 성수는 서울 내 바이크 라이더의 성지로 라이더들의 쉼터이자 카페, 라이딩 의류 및 소품 등을 판매하는 편집숍을 갖춘 복합 문화 공간으로 바이크 라이더의 서브 컬처를 상징하는 공간이기도 하다. 팝업 전시 방문객은 전시 공간 한쪽에 마련된 크로마키 존에서 셀럽들의 커버 홀로그램을 영상을 감상하며 직접 마리끌레르 커버의 주인공이 되는 경험을 할 수 있도록 기획되었다. 자신의 커버 영상과 사진을 개인 SNS에 공유하면 게시물 하나당 1천 원의 기부금이 튀르키예와 시리아의 지진 재난민에게 전달되게끔 기획된 이번 팝업 전시는, 의미와 재미 모두를 잡았다는 평가 속에 성황리에 종료되었다.
이마트 30주년 CM송 이벤트: 유튜버 sake L을 찾습니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대형 마트인 이마트는 1993년 1호점 창동점 개점 이후 2023년 창립 30주년을 맞이했다. Everyday low price MART의 약자인 이마트는 브랜드명에서 알 수 있듯 상시 최저가(EDLP, EveryDay Low Price)를 브랜드의 핵심 영업 전략으로 삼아 국내 유통업계 혁신을 이끌며 홈플러스, 롯데마트와 함께 대형마트 빅3로 자리매김했다. 30주년을 맞이해 이를 Everyday lovely place라는 캐치프레이즈로 바꿔 고객들이 쇼핑 외로도 다양한 엔터테인먼트를 즐길 수 있는 공간으로 이마트를 변모시키겠다는 의지를 표출했다.
대형마트가 고객에게 사랑스러운 공간이 되기 위해서 저렴한 가격에 물건을 판매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어릴 적 엄마, 아빠의 손을 잡고 혹은 동생과 카트를 누가 끌지 신경전을 벌이며 가족끼리 정답게 쇼핑하던 곳. 30주년이 내포한 숫자에서 알 수 있듯 이마트는 오랜 시간 가족이 함께한 일상의 공간으로, 그 시간만큼 개인들의 수많은 추억을 불러일으키는 공간으로서 사랑스러움의 가능성을 품고 있다. 이마트는 30주년 기념 이벤트에서 이 사랑스러움을 극대화하고자 했고, 브랜드의 정체성이라 할 수 있는 CM송을 활용해 재밌는 프로모션을 진행했다.
바로 과거 2000년부터 2007년까지 이마트 매장에서 들을 수 있었던 추억의 CM송인 이마트송을 다시금 매장 내에 선보였다. “난나 난나 난나, 해삐(happy) 해삐 해삐”라는 반복적이고 중독성 강한 가사가 특징인 이마트송은 매장을 찾은 고객들은 과거의 향수를 불러오며 레트로 감성을 자극했다. 더불어 가수 윤하, 적재, 예결밴드, 베하필하모닉과 콜라보해 각 아티스트의 특징을 살린 새로운 장르로 이마트송을 편곡하는 이벤트도 진행했다. 모던록, 재즈, 퓨전국악, 오케스트라 네 가지 버전으로 편곡된 이마트송은 이마트 매장은 물론 SNS와 지하철 전광판 등 다양한 플랫폼에서 공개되었다. 전 세대를 아우를 수 있는 다양한 장르 기반의 가수와 협업해 20대, 중장년층, 노년층까지 온 세대가 즐길 수 있는 음악으로 만들고자 했다는 점에서 특기할 만하다. 최훈학 이마트 마케팅담당 상무는 이마트가 30주년을 맞아, 고객들과 함께한 지난 30년간의 추억을 되새기고 생동감 넘치는 매장을 만들기 위해 다양한 아티스트들과 콜라보해 추억의 이마트송을 복원했다며 그 기획 의도를 밝혔다.
무엇보다 가장 큰 화제성을 모은 건 유튜버 sake L을 찾고자 한 이마트의 웃픈 고군분투기였다. sake L은 음악 유튜버로 2015년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 단 두 개의 영상만 올리고 활동을 멈췄다. 첫 번째 영상은 노동요라는 제목으로 2010년대 인기 K팝 댄스곡을 50분 동안 1.5배속으로 반복 재생하는 영상이었으며 두 번째 영상은 이마트라는 제목으로 이마트송을 5시간 동안 2배속으로 반복 재생하는 영상이다. 업로드 당시에는 크게 화제를 모으지 못했지만 묘한 중독성으로 입소문을 타며 각각 조회수 2700만, 1400만 회를 돌파했다. 영상을 접한 네티즌들은 “역사적인 편곡이다”, “노동요라는 말은 이 음악을 위해 생긴 말”, “5시간 동안 듣고 있어도 질리지 않는다” 등 열띤 반응을 보냈다. 그 뒤로 sake L은 더 이상 추가 영상을 올리지 않았고 그의 정체를 둘러싸고 여러 추측이 난무했다. 혹자는 그가 유명 작곡가이다 유명인이다 추측했지만 sake L은 별도의 영상을 올려 자신의 신상 캐지 말아 달라며 더 귀찮아지면 그냥 영상 내리겠다며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이마트 측에서는 자사의 CM송으로 유튜브에서 큰 화제를 모은 sake L을 찾아 협업 혹은 사례를 하고 싶은 건 당연할 터. 창립 30주년을 맞아 그를 찾는다며 몇 개월째 SNS에 공고를 올리며 기다렸지만 결국 유튜버로부터는 연락이 따로 오지 않았다고 한다. 그렇지만 이마트가 베일에 싸인 유튜버를 절박하게 찾는다는 소식 자체로 네티즌 사이에서 큰 화제를 모으며 이마트의 30주년이 부상하는 효과를 누리기도 했다. 이번 이마트 이벤트는 특히 Z세대 사이에서 일 잘했다는 평가를 받았는데 뉴트로를 제대로 겨냥했기 때문이다. 이마트가 익숙한 기성세대에게는 추억의 향수를 자극하는 CM송으로 오프라인 대형 마트가 익숙치 않은 Z세대에게 다가가고자 유튜버 sake L을 찾는 이벤트도 기획하며 전세대를 아우를 수 있는 다양한 이벤트를 펼쳤기 때문이다.
KT와 아이폰이 만난 지 15주년: 와이로운 생일카페
마치 연인이 그러하듯, 다른 브랜드와 처음 함께 한 기념일을 강조하는 재밌는 이벤트도 있다. 국내 통신사 KT는 2024년 아이폰 한국 출시 15주년을 맞아 Z세대 아이돌 팬덤 문화인 생일카페(생카)를 테마로 한 와이로운 생일카페 팝업을 선보였다. 생일카페는 주로 아이돌 팬들이 카페를 빌려 직접 꾸미고 축하하는 K팝 팬덤 문화로, Z세대 사이에서는 좋아하는 아이돌의 생카를 찾아다니며 이를 구경하고 인증샷을 찍어오는 활동이 하나의 문화로 자리잡았다. KT는 2009년 국내 최초로 아이폰을 도입한 것을 기념하며 아이폰 팬을 위한 생카 이벤트를 준비했다.
아이폰 팬을 위해 이런 이벤트를 기획한 건 알겠는데 왜 Z세대가 선호하는 생카였을까? 이는 1020세대는가 압도적으로 아이폰을 선호하기 때문이다. 관련 기사들 중 매일경제 보도 “안 쓰면 중세인? 아이폰에 열광하는 Z세대”를 보면 Z세대가 아이폰을 쓰는 이유는, 카메라 성능도 그렇거니와 다른 세대보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정보를 얻거나 생산하고 이를 이용해 타인과 교류하는 라이프스타일을 추구하기 때문이라고 언급하고 있다. 해외 Z세대에게도 아이폰은 압도적인 지지를 받는다. 일종의 피어 프레셔(peer pressure, 동조 압력)로 월스트리트저널 보도에 따르면 미국 고등학교에서 안드로이드폰을 쓰는 학생은 다른 학생에게 중세인이라고 놀림을 받는다고 한다. 한 미국의 20세 유명 크리에이터는 방송에서 안드로이드폰은 노인이나 부모님 세대만 소유할 수 있는 구식 기기라고 발언한 것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애플도 이 점을 인지하고 뉴진스와 협업해 아이폰으로 찍은 뮤직비디오 ETA를 제작 협력하는 등 Z세대를 집중 타깃하며 아이폰을 선호하는 Z세대의 마음을 단단히 굳히고자 노력하고 있다.
그렇기에 KT 또한 생일카페를 열어 아이폰에 높은 충성도를 갖고 있는 Z세대를 호명하고자 했다. 서울 서초구 잠원동에 위치한 스타벅스 서울웨이브센터점에서 양일간 진행된 이번 팝업에서 한강 전망을 즐길 수 있는 스타벅스 인기 매장에서 KT와 아이폰이 함께한 15년의 역사를 되돌아보는 전시와 포토존을 마련했다. 아이폰 3GS부터 각 시대를 대표하는 아이폰 모델들을 볼 수 있고 Z세대에게 큰 호응을 얻고 있는 걸그룹 아일릿이 직접 보내는 생일 축하 메시지도 들을 수 있는 이벤트도 진행했다. 생일 카페 입구에 마련된 와이로운 스티커 콜렉팅 미션지를 받아 밸런스 게임, 빈칸퀴즈이벤트, 생일축하메시지 남기기 등의 미션을 모두 수행한 참가자들에게 럭키드로우 쿠폰이 제공됐다. 아이폰 생일 축하 메시지 존으로 가는 길목에는 2009년 국내 아이폰 1호 사용자가 작성한 소감문, 최초의 아이폰을 공식 출시한 KT와 관련된 기사, KT와 애플의 아이폰 도입 협상 타결 등에 관련한 기념비적인 기사들이 전시됐다. KT 관계자는 Z세대와 소통할 수 있는 트랜디한 생일 카페 컨셉의 팝업 행사를 기획했다고 언급하며 이번 15주년 생일 카페를 통해 아이폰 마니아인 Z세대에 한 발짝 더 다가가고자 했다는 의도를 밝혔다. Z세대가 특히 열광하는 생일카페를 활용한 KT의 이런 전략은 큰 호응을 얻으며 화제를 모았다.
러쉬코리아 20주년 쇼케이스: 세상을 비트는 욕심쟁이 스무 살
동물실험을 하지 않는 친환경 재료를 사용해 모든 제품을 손으로 만드는 러쉬는 공정 거래와 인권 보호 등 브랜드의 가치를 뚜렷하게 드러내며 오랜 역사 동안 올바른 생산과 소비를 강조하고 있다. 러쉬는 영국의 프레시 핸드메이드 코스매틱 브랜드로 2002년에 처음으로 우리나라에 진출했다. 러쉬의 네 번째 해외 진출 국가로 설립된 러쉬코리아는 이를 이어받아 “우리는 화장품이 아닌 러쉬의 가치를 판매한다”는 철학으로 국내 사업을 펼쳐왔다. 러쉬코리아는 가치 소비라는 개념이 생소했던 2002년부터 이 개념을 우직하게 고수하며 오늘날 단일 브랜드로 1000억 원 매출을 달성하는 기업이 됐다. 세월이 흘러 2022년 20주년을 맞이한 러쉬코리아는 20주년을 기념하는 쇼케이스를 선보이며 한국에서 러쉬가 일궈낸, 그리고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일구어나갈 핵심 가치를 녹여냈다. 주제는 TWISTED TWENTY OF LUSH KOREA, 세상을 비트는 욕심쟁이 스무 살이라는 슬로건과 함께 지난 20년처럼 앞으로도 더 좋은 세상을 위해 선한 욕심쟁이가 되겠다는 러쉬코리아의 포부를 담았다.
20주년 쇼케이스는 러쉬코리아의 과거, 현재, 미래를 하나의 공간에 담아 브랜드를 체험할 수 있는 프로그램들로 구성했다. 성수동에 위치한 레이어57에서 진행된 이번 쇼케이스는 일종의 복합 문화 행사로 행사장 입구에서부터 방문객은 러쉬코리아 1호점 매장 외관과 간판을 재현한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화사한 노란색 색감의 러쉬코리아 1호점은 2002년 크리스마스 이브 때 명동에 오픈했는데, 지금의 검은색 외벽에 하얀색 러쉬 로고가 박힌 러쉬 매장과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입구 한편에는 <랄프를 구해줘> 운동 부스가 설치됐다. <랄프를 구해줘>는 화장품 실험실에서 테스터로 일하는 토끼 랄프의 삶을 다룬 단편 영화로, 랄프는 각종 화장품 실험으로 한쪽 눈이 멀고 한쪽 귀가 들리지 않지만 단지 자신은 자신의 일을 하고 있을 뿐이라고 말하는 캐릭터를 형상화했다. 이 영화에서 랄프는 엄마와 아빠는 물론 아들, 딸까지 모두 동물실험으로 목숨을 잃게 된다. 실험용 토끼의 아픔을 이야기하는 이 영화는 개봉 이후 세계적으로 #SAVERALPH 캠페인을 이끌어 내며 동물권 보호와 동물실험 반대의 움직임을 만들어냈다. 그 결과 멕시코를 북미 최초 화장품 동물실험 금지 국가로 만드는 데 기여했다.
러쉬는 1995년부터 설립된 이래로 자사 제품 개발에 동물실험을 일절 하지 않으며 동물실험을 하지 않는 회사로부터만 원재료를 구매하고 있다. 2007년 이후부터는 동물실험에 관여한 공급업체와도 원재료를 거래하지 않을 정도로 적극적인 동물실험 반대 가치를 브랜드의 중심 정책으로 삼고 있다. 이러한 러쉬의 FAT(Fighting Animal Testing) 정책은 이번 쇼케이스 속 랄프와 그의 집을 통해 여실히 확인할 수 있다. 러쉬코리아 관계자는 아주경제와 인터뷰에서 “브랜드 이념을 지키는 데 어려움은 늘 있었지만, 매 순간 극복하고 한 단계 성장해 가는 계기가 됐다면서 뭐든지 처음 접하는 메시지에 낯설어할 수 있지만, 동물과 환경, 인권 보호에 대한 이야기는 많은 사람이 공감할 수 있는 메시지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러쉬코리아가 궁극적으로 되고 싶은 회사는 성공한 회사가 아니라 좋은 회사라며 이를 위해 지속가능한 경영을 고집하고 다양한 분야에서 혁명을 일으키는 브랜드로 성장하겠다고 덧붙였다.
선한 혁명을 일으키고 싶어 하는 브랜드의 바람은 쇼케이스 프로그램 측면에서 다양한 아티스트와의 협업으로도 나타냈다. 러쉬 아트페어는 2022년을 첫 시작으로 매해 발달장애 예술가들과 함께 현시대의 중요한 환경 문제를 다뤄왔다. 제1회 러쉬 아트페어에서는 프로그램에 참여했던 발달장애 예술가들의 작품이 전시됐고, 김민경 아트 컬러리스트가 웰니스세상을 주제로 러쉬의 철학과 이념을 담은 아트 디자인 작품을 선보였다. 제2회는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는 슬로건으로 기후 위기로 인해 국내 자생 식물이 사라져가는 문제를 다뤘으며, 제3회는 <바다, 반드시 지켜야 한다>는 슬로건으로, 상승하는 해수면과 해양 생태계 보호 이슈를 다뤘다. 또한 코스메틱 브랜드라는 정체성을 살려 러쉬코리아에서만 볼 수 있는 향수 욕심쟁이를 최초 공개했다.
이 향수는 러쉬코리아 20주년을 기념하여 러쉬 공동 창립자이자 조향사인 마크 콘스탄틴(Mark Constantine)과 러쉬 퍼퓸 랩을 리드하는 엠마 빈센트(Emma Vincent)가 직접 조향했다. 우미령 러쉬코리아 대표는 러쉬코리아의 스무 살 생일 파티를 기념하는 쇼케이스에서, 보다 많은 사람들이 브랜드 이야기에 공감하고 행복한 시간이 됐길 바란다는 말과 함께, 앞으로도 러쉬코리아는 지속가능한 경영을 고집하며 더 좋은 세상을 위해 욕심 내는, 더 러쉬스러운 건강한 브랜드로 성장해 나가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이번 러쉬코리아의 20주년 행사는 브랜드가 꿋꿋이 지켜왔고 또 앞으로도 지켜나갈 가치가 응집된 훌륭한 쇼케이스라 할 수 있다.
앞서 브랜드가 자신의 생일을 기념하는 다양한 사례를 보며, 브랜드가 창립 기념일을 챙긴다는 건 단순히 자사가 오랜 시간 시장에서 살아남아 경쟁력을 갖췄다는 자축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버거킹은 다른 패스트푸드점과 비교되는 자사의 특장점을 어필하면서 노년의 사랑을 표현해 광고업계와 사회에 만연한 편견을 정면으로 다뤘다. 마리끌레르코리아는 30년간 쌓인 자사의 크리에이티브 역량을 총동원하며 그들이 가장 잘하는 장기를 살리려 했고, 그 결과 16종 커버스토리를 만들어 방문객이 직접 즐기고 이용할 수 있는 인터랙티브 콘텐츠를 개발해 온오프라인 양측에서 화제성을 남겼다.
이마트는 CM송을 활용해 다양한 음악 장르의 아티스트와 콜라보 함으로써 전 세대를 아우르고자 했으며 자사의 CM송으로 화제성 있는 콘텐츠를 만든 유튜버를 수소문하는 이벤트로 온라인 상에서의 화제를 만들었다. KT는 생일 카페를 기획해 역대 출시된 아이폰을 모아 전시하며 내부를 뉴트로 감성으로 꾸몄고, 이와 함께 아이폰에 특화된 Z세대를 명확히 겨냥했다. 마지막으로 러쉬코리아는 자사가 추구한 가치를 중심에 두고 행사를 기획하며 브랜드의 토대이자 정체성을 다시 한번 단단히 다졌다.
결국 브랜드가 자신의 생일을 축하한다는 건 과거만이 아닌 앞으로 브랜드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설정한다는 점에서 과거와 미래를 잇는 현재의 이정표 세우기라 할 수 있다. 특히 자사의 레거시를 훌륭히 살린 브랜드일수록 브랜딩의 효과가 크다는 점에서 우리는 다시금 오래된 명언을 새길 필요가 있다. ‘너 자신을 알라.’ 그것이야 말로 브랜딩의 기본이자 핵심 그 자체라 할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