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

문화·예술·교육·사회 전반에 대한 아티스트의 생각을 들어보는 인터뷰 프로젝트 <젊은 예술, 생각을 디자인하다>. 작가의 태도, 가치관, 창의성, 소통, 감성이 반영되는 작업이나 작품활동 이야기, 작가 개인의 생각을 따라가 보며, 문화예술이 우리 삶과 인간에게 주는 긍정적인 효과와 강점을 알아보고, 한 사회 구성원으로서 아티스트와 함께 예술의 미래를 그려봅니다.


 

이수정

문화기획자

 

아티스트에게 설 수 있는 무대를 만들어주고, 대중에게는 더욱 다양한 음악을 접할 수 있도록 음악 시장을 넓혀가는 이가 있다. 서울대학교에서 국악을 전공했고, 현재 홍대의 대표 음악페스티벌인 ‘잔다리 페스타’의 사무국장, ‘DMZ 피스트레인 뮤직 페스티벌’의 기획실장으로 활동하고 있는 이수정 기획자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시대의 흐름을 읽어내며 음악을 넘어 문화기획자로서의 역할을 감당하고 있는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본다.


 

PART 1. 아티스트를 소개합니다

 

 

Q.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이수정 입니다. 저는 페스티벌에서 프로젝트 매니지먼트를 맡고 있습니다. 국제 라이브 음악 쇼케이스 페스티벌 ‘잔다리 페스타’에서 사무국장을 맡고 있고, ‘DMZ 피스트레인 뮤직페스티벌’에서 기획실장과 아티스트 매니지먼트를 같이 운영하고 있습니다.

 

Q. 지금은 매니지먼트를 운영하면서 페스티벌 연출도 하고 계시는데, 학창시절에는 국악을 전공 하셨다고요?

 

제가 초등학교 때 건강이 안 좋았어요. 몸이 자주 아파서 어머니께서 걱정을 많이 하셨어요. 그때 어머니께서 예술을 좋아하셨는데, 저한테 취미로 음악을 해보지 않겠냐고 권유하셨죠. 그때 국악을 시작하게 됐어요. 제가 몸이 약하니까 또래 친구들처럼 오랜 시간 앉아서 공부하고 늦은 시간까지 학원에 다니는 게 체력적으로 힘들 것 같다고 생각하셨다고 해요. 그래서 국악을 시작하게 되었는데 전공으로까지 이어졌죠.

 

예술고등학교에 진학했고, 대학에서도 국악을 전공하게 되었어요. 그런데 제가 생각했던 아티스트의 기준이 높았던 건지 실력이 부족했던 건지, 저 자신이 아티스트로서의 기준에 미치지 못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그래서 다른 일을 시작하게 되었죠.

Q. 평소 관심을 가졌던 다른 분야가 있었나요?

 

어렸을 때부터 음악을 해서 그런지 국악을 그만뒀을 때는 음악이 너무 하기 싫었어요. 그런데, 참 재밌는 건 다른 분야에 관심이 가도 국악을 베이스로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국악을 전공해서 그런지 몰라도 문화 정체성이라는 것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어요.

 

‘국악이 무엇인가?’, ‘한국에서 하는 음악이라서 국악인가?’, ‘한국 음악은 무엇인가?’ 이런 고민을 많이 했어요. 정체성에 대한 고민이었죠. 그러던 중에 외국인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는 일을 하다가 스페인에서 석사 과정을 하게 됐어요.

 

그때 동아시아 안의 한국학으로 석사 학위를 받았죠. 말하자면 국학으로서의 한국이 아니라, 지역학으로서의 한국문화를 공부하게 된 것이죠. 공부를 마치고 한국에 돌아와서 국제교류에 관한 일을 시작하게 됐어요. 그러면서 지금 하는 외국과 한국을 잇는 국제교류 프로젝트를 진행하게 되었죠.

Q. 동아시아학을 공부하겠다는 건 미리 계획했던 건가요?

 

음악을 그만두고 나서 한국어로 전공을 바꿔서 공부했어요. 그래도 갈증이 생기더라고요. 당시에는 한국에서, 제도권 안에서 공부를 하고 직업을 가지고 이어간다는 게 내키지 않았던 것 같아요. 그러던 중에 우연한 기회로 콜롬비아에 가서 지내게 됐는데, 그때 통역 일을 하게 되었고, 그것을 중심으로 국제 교류 일을 접하게 됐어요.

 

한국 공공기관에서 저한테 같이 일을 해보자고 제안을 하셔서 저를 채용하겠다고 했는데 한국에 있는 본사에서는 스페인어 학위가 없다는 이유로 채용을 못 하게 한 거죠. 그때 화가 났어요. 그래서 두 가지를 잡아야겠다고 결심했어요. 내가 하고 싶은 한국과 관련된 전공을 하면서 스페인어도 같이 할 수 있는 걸 찾아야겠다고 결심하고 동아시아학을 전공하게 되었어요.

 

Q. 유학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왔을 때는 어땠나요?

 

외국에서 동아시아학을 공부했고, 국제교류 관련 일을 했지만, 한국에 오니까 저를 바라보는 시선이 ‘외국에서 공부하다가 온 음악하던 애’였어요. 회사에 취직을 하는 것도 제 성향에는 맞지 않는 것 같아서 고민했죠. 그런데 당시에 제 주변에서 음악을 하던 친구들이 국제교류와 관련해서 도움을 줄 사람을 찾고 있더라고요. 그게 참 재미있는 접점이었어요. 제가 유학을 가기 전 공연할 때는 외국에 공연을 가더라도 대사관이나 현지에 있는 한국인을 대상으로 공연을 하는 게 대부분이었어요.

 

그런데 제가 떠나 있던 10년 정도 사이에 공연의 흐름에도 많은 변화가 온 거죠. 세계 시장이 많이 넓어졌지만, 그것을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이 부족했던 상황이었는데 마침 제가 공부를 마치고 돌아와서 활동을 할 수 있었어요. 서로 필요한 시기가 맞았던 거죠. 친구들, 선후배들과 같이 일을 시작하게 되었고 그것을 계기로 아티스트 매니지먼트 일도 시작하게 되었어요.

 

Q. 전공이었던 국악과 현재 하고 있는 매니지먼트와 국제교류의 접점을 어디에서 발견하셨는지 궁금합니다.

 

정부 기관에서 하는 지원 사업들도 국제 교류와 관련한 지원 사업이 많아졌어요. 동시에 예술경영지원센터에서 하는 국제교류 전문 인력 양성과정이라는 게 생겼는데, 저는 스페인어를 할 수 있었기 때문에 스페인에 있는 한국문화원에서 국제교류 전문 인력으로 1년 동안 파견 근무를 갔었던 게 실질적인 커리어의 시작이 되었어요.

 

이전에는 저를 단순히 국제 행사에 도움을 주는 사람 정도로 인식을 하셨는데 스페인에서 1년을 지나고 온 후에는 완벽한 직업인으로 봐주셨죠. 그러다보니까 자신감이 생겼고 이런 분야에 대한 전문 인력이라고 저를 소개할 수 있게 되었어요.

 

Q. 음악을 했을 때는 주인공이었는데, 국제교류 행사를 진행하거나 매니지먼트 일은 주인공을 빛나게 해주는 역할이잖아요. 역할이 바뀐 부분에 대해서는 혼란이 없었나요?

 

사람들이 그런 질문을 많이 하더라고요. 그런데 저는 기분이 너무 좋아요. 저만 잘 되는 것이 아니라 제 옆에 있는 아티스트, 진짜 예술을 잘하는 사람을 앞에 세워서 빛나게 해주는 일이 참 가치 있다고 생각해요. 그들을 빛나게 해준다고 해서 제가 작아지는 것은 절대 아니거든요. 저도 제 직업에 새로운 부분을 개척해나가고 있는 것이고, 이전에 한국에 없었던 직업인데 그것을 제가 감당하고 있다는 것 또한 너무 뿌듯하고 좋아요.

 

그리고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고 어떤 기회와 아티스트를 연결해 주었을 때 서로가 만족하는 모습을 보면 이 일을 하길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저는 조력자가 되는 게 좋아요. 어떤 한 사람의 가치를 발견하고 좋은 결과물로 이어질 수 있도록 하는 역할을 했을 때 가장 기분이 좋거든요. 그게 가장 가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고요.

 

Q. 반대로 사람을 연결해 주고 설득시키는 과정에서 따라오는 어려움은 없나요?

 

저는 필요에 의해서 투입된 경우이기 때문에 그런 부분은 없었어요. 왜냐하면 예를 들어서 해외에서 초청을 받아서 온 아티스트가 있는데, 그런 아티스트를 아무런 준비 과정 없이 그냥 무대에 올릴 수는 없잖아요. 그때 매니지먼트가 필요한데, 그 관리를 제가 해 주고 동시에 새로운 페스티벌에 아티스트를 소개할 수도 있으니까 그런 부분에서 오는 어려움은 없었던 것 같아요.

 

Q. 페스티벌과 매니지먼트 두 가지 일을 하면서 느끼는 차이점은 무엇인가요?

 

매니지먼트는 아티스트와의 친밀도가 강해요. 마음속으로 연애하는 기분이라고 표현해야 할까요? 그래서 매니지먼트를 하던 아티스트와 나중에 일을 함께하지 않게 되었을 때 오는 상실감이 있어요. 아티스트와 함께 일을 할 때는 친밀도가 강하고 내가 이 아티스트의 일부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하거든요.

 

아티스트의 작업을 완벽히 이해하고 있어야 하고, 완벽히 하나가 되어야 하는 반면에 페스티벌은 조금 더 큰 그림으로 보게 되죠. 제 위치가 조금 더 큰 그림으로 그려지기 때문에 ‘내가 정말 큰 일을 해냈구나’라는 마음이 조금 더 크게 다가오는 것 같아요. 하지만 뮤지션들이나 아티스트와 친밀하게 지낸다든가 스태프와 관계를 깊게 맺는다든가 하는 부분은 조금 포기해야 하는 일들이 있죠. 이해관계가 너무 많이 섞여 있기 때문에 업무적으로만 대해야 하는 경우가 있어요.


PART 2. 작품 활동을 엿보다

 

 

Q. 국제 라이브 음악 쇼케이스 페스티벌인 ‘잔다리 페스타’이야기를 해볼게요. 우선, ‘잔다리 페스타’에 대한 소개를 부탁드려요.

 

대부분의 사람이 ‘잔다리 페스타’가 무엇인지 잘 몰라요. 잠깐 설명부터 드리면, ‘인디 음악 박람회’라고 생각하시면 돼요. 공연이 부스처럼 모든 대중한테 열려있으면, 이 공연을 통해서 자기의 음악을 팔고 싶은 전 세계 뮤지션들이 와서 공연을 펼치죠. 그러면 바이어 개념의 해외 페스티벌 오거나이저나 기획자들이나 그 부분을 연결해 주는 사람들이 와서 비즈니스를 연결하는 거죠. 국제교류의 중심이 되는 활동이기도 해요.

Q. ‘잔다리 페스타’는 어떤 계기로 시작하게 되셨나요?

 

제가 스페인에 있는 한국문화원에서 일할 때 ‘필 사운드’라는 큰 페스티벌이 있었어요. 거기에 신인을 소개하는 프로그램에 한국 뮤지션 세 팀을 데리고 갔어요. 직접 기회를 마련해서 데려갔는데 현장에 가서 부딪혀 보니까 단순히 뮤지션을 데리고 가는 것으로는 시장으로부터 주목을 못 받겠더라고요. 이렇게 표현하면 좀 그렇지만, 내가 보여주고 싶은 것만 가지고 가서는 대중들이 보고 싶은 것은 못 보여줄 수 있어요.

 

그런 생각을 하게 된 계기로 ‘잔다리 페스타’ 대표님을 데리고 갔죠. 초청을 했어요. 왜냐하면 이분은 한국 시장을 소개해 줄 수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스페인으로 모시고 와서 행사를 함께 했죠. 그 이후에 한국에 왔을 때 우리가 같이 뜻하는 바가 잘 맞았다는 느낌이 들었는지 저한테 제안을 하셨어요. 그렇게 해서 시작이 된 거예요.

 

Q. ‘잔다리 페스타’를 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이나 뿌듯했던 경험을 소개해 주세요.

 

사실 매 순간이 뿌듯해요. ‘잔다리 페스타’는 라인업으로 보는 페스티벌이 아니기 때문에 사람도 적게 와요. 포장을 열어보기 전까지는 사람들이 어떤 아티스트를 좋아할지 모르는 거죠. 그런데 진짜 기분 좋은 순간은 저희가 100명 이상의 아티스트를 소개하고 난 이후에 바이어들이라고 델리게이트들한테 메시지가 오기 시작해요. ‘잔다리 페스타’에서 본 아티스트들이 너무 좋았기 때문에 이 아티스트를 자기 페스티벌에 가서 소개를 하고 싶다는 메시지죠. 메시지에 이어서 실질적으로 그렇게 완성되는 결과물을 보면 진짜 기분이 좋아요.

 

저희가 직접 데리고 나가기도 하고요. 예를 들어서 지금 몽골 울란바토르에서 열리는 ‘플레이타임 뮤직페스티벌’이라고 있어요. 울란바토르라고 하면 사람들이 초원에서 말을 타고 그런 장면만 떠올리지만, 그 페스티벌이 전 세계 뮤지션들이 모이는 굉장히 유명한 페스티벌이에요.

 

그 페스티벌에 한국 뮤지션 두 팀 그리고, 아시안 뮤지션이 약 네 팀 정도가 참여해요. ‘잔다리 페스타’에 같이 왔던 뮤지션들 약 7팀이 그 페스티벌의 라인업으로 섰어요. 물론 몽골에서 열리는 ‘플레이타임 뮤직페스티벌’의 디렉터가 ‘잔다리 페스타’에 와서 그 팀들을 다 뽑아서 간 거고요. 그럴 때 기분이 너무 좋아요. 그게 바로 ‘잔다리 페스타’를 하는 이유이기도 하고요.

 

Q. ‘잔다리 페스타’를 단순히 음악 페스티벌로 생각하는 분들도 많을 텐데, ‘잔다리 페스타’만의 차별화된 취지는 무엇인가요?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 뮤지션들이 비아시아 음악 시장에 진출해서 활동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거예요. 반대로 비아시아권 뮤지션들이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에 와서 활동을 할 수 있는 해외 진출의 플랫폼이 되고 싶은 거죠. ‘잔다리 페스타’는 외국에서는 꽤 알려져 있어요. 외국 시장 안에서는 많이 알려진 음악 페스티벌이고 아시아에서는 유일하게 독립 음악페스티벌로 많은 해외 음악 관계자들이 모이는 페스티벌이에요.

 

처음부터 그렇게 만들어진 건 아니고 2010년에 홍대 지역 인디뮤지션의 자생을 도모하고자 생긴, 홍대에서 하는 타운형 페스티벌이 있었어요. 홍대 페스티벌로 시작을 했다가 약간 방향을 틀었기 때문에 사람들이 약간 헷갈리시는 것 같아요. 그런데 앞으로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잔다리 페스타’는 사람들이 와서 지금까지 우리가 몰랐던 새로운 뮤지션들을 발견하는 곳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PART 3. 시대의 흐름을 읽어내는 즐거움

 

 

Q. 요즘 국내외적으로 눈여겨 보고 계시는 페스티벌은 무엇인가요?

 

가장 유명한 건 ‘사우스 바이 사우스웨스트’라고 텍사스 오스틴에서 열리는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쇼케이스 페스티벌이에요. 그곳은 음악뿐 아니라 영화, 테크놀로지 분야까지 다 아우르고 있어요. 그 페스티벌이 오스틴이라는 도시에 끼친 경제적인 파급 효과도 커요. 페스티벌에 참가하기 위해서 몇백 명, 몇천 명의 아티스트들이 전 세계에서 모여서 열심히 참여하니까 가장 큰 사례죠.

 

그 다음에는 영국의 브라이튼에서 열리는 ‘브라이튼 페스티벌’이 있어요. 그것도 쇼케이스 페스티벌인데 거기에 가면 영국의 모든 음악 관계자가 모여서 이제 며칠 동안 공연도 보고 정보도 교환하는 네트워킹을 해요.

 

Q. 국내에도 쇼케이스가 많이 생기고 있는데 이 부분에 대해서는 어떤 견해를 가지고 계신가요?

 

한국에서도 점점 쇼케이스라는 포맷을 활용해 행사를 여는 경우가 많아요. 문제는 그 행사들이 진정한 성과를, 이 행사의 목적은 반드시 향후 이것을 통한 플랫폼을 만들겠다든지, 향후 국제교류를 만들어내야 해요. 그런데 많은 행사가 뮤지션을 공짜로 세우는 단순한 행사 정도로 이용하려고 하는 경우들이 적지 않게 있어요. 아니면 정부에서 그냥 돈 들여서 진행하는 행사에 잠시 세운다든지요. 그런 부분을 볼 때면 굉장히 아쉽죠.

 

Q. 최근 매니지먼트를 하고 있는 팀이 있나요?

 

지금은 페스티벌에 집중하고 있어요. 저는 페스티벌과 매니지먼트를 동시에 하는 게 좋은 게, 매니지먼트는 페스티벌에서 뽑아내야 하는 사람들이고 페스티벌은 매니지먼트를 통해서 엮어야 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두 가지 양면을 알 수 있어서 굉장히 좋았거든요.

 

현재는 페스티벌에 매진하고 있고, 공연예술팀 중 다원 예술 쪽에 ‘박박이’라는 팀이 있어요. 그 팀과도 벌써 2년 정도 넘게 해외 매니지먼트와 신작 프로젝트들을 하고 있고요. 뮤지션들로부터 제안이 들어오는데 고민을 하고 있어요. 왜냐하면 저는 매니지먼트를 하는 사람이지만 첫 번째는 제가 가장 좋아하고 제가 이 사람의 예술을 가장 잘 이해하고 타인한테 설득시킬 수 있는 콘텐츠여야 하기에 아직 고민하는 중이에요.

 

Q. 페스티벌과 매니지먼트 두 가지의 일을 하면서 힘든 점도 있을 텐데, 어떻게 극복하시는지 궁금합니다.

 

페스티벌과 매니지먼트는 일 자체가 셀러와 바이어를 동시에 하는 거예요. 동전의 양면 같은 거죠. 저는 그래서 좋아요. 시너지가 나는 일이지 둘이 충돌하는 일은 아니었어요. 왜냐하면 매니지먼트 일을 하게 되면서 아티스트 상황을 이해하게 되고 페스티벌 일을 하면서 매니지먼트의 상황을 이해를 할 수 있기 때문에 오히려 두 분야를 다 아는 것은 저한테 훨씬 더 플러스가 되는 일이죠.

 

Q. 최근 피스트레인을 <DMZ 피스트레인 뮤직 페스티벌>을 진행하셨는데, 어떤 계기로 시작하게 되셨나요?

 

<DMZ 피스트레인 뮤직 페스티벌>은 상업적인 페스티벌과는 조금 거리가 있어요. 최근 세계적으로 페스티벌 같은 라이브 공연을 돈벌이 수단으로 하는 행사들이 많아졌어요. 하지만 어떤 라인업으로 진행했을 때 관객들이 많이 왔고, 그로 인해 수익이 얼마만큼 창출되었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고 생각해요. 그 이전에 왜 이 페스티벌을 진행해야 하는지에 대한 목적이 뚜렷하게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평화를 주제로 한 페스티벌이 중요하다고 생각했고 페스티벌을 통해 사회에 메시지를 던져야 한다고 생각을 했어요. 저희가 <DMZ 피스트레인 뮤직 페스티벌>을 기획하려고 했을 때는 남북 관계가 안 좋았을 때였어요. 남북뿐만 아니라, 북미 관계도 좋지 않을 때라서 지금이야말로 우리가 평화를 외치면서 진정한 페스티벌의 목적성을 보여줘야 한다고 마음을 모으고 시작하게 되었어요.

 

Q. 페스티벌의 결과는 어땠는지 궁금합니다.

 

저희 페스티벌 때문은 아니지만, 남북 관계가 조금씩 화해모드로 오게 되었어요. 시기적으로도 잘 맞았던 것 같아요. 저희가 남북 관계가 계속 좋지 않은 상황이었다면 페스티벌을 고수하기 힘들었을 거예요.

 

Q. 내년 <DMZ 피스트레인 뮤직 페스티벌>에서 보여주고 싶은 부분은 무엇인가요?

 

아이들이 즐길 수 있는 프로그램이나 공간 구성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는 욕심이 있어요. 해외 페스티벌들을 가보면 록 페스티벌임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을 위한 음악 기획 공간이 따로 있는 경우가 굉장히 많거든요.


PART 4. 작품 활동을 꿈꾸는 후배들에게

 

 

Q. 현장에 있기 때문에 ‘음악이 주는 힘’을 가장 많이 느끼실 것 같아요.

 

저는 모든 예술은 무의식중에 받는 자극을 통해서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이러한 자극이 쌓이면 그게 제 안에 체화되면서 정체성이 된다고 생각을 하거든요. 모든 예술이 그렇겠만 음악도 그 수단 중 하나라고 생각해요. 음악이기 때문에 힘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미술도 마찬가지고 모든 예술이 다 같은 힘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해요. 우리는 느끼지 못할 수도 있지만, 머리로 생각할 수 없는 자극을 통해 쌓이는 정체성이 결국 문화가 되는 거겠죠.

 

Q. 예술이 사회에 필요한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가장 자연스러우면서 구체화할 수 있는 도구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예술은 무의식중에 그 사람을 잠식하고, 그것을 통해서 누군가의 정체성에 영향을 끼치고, 그런 정체성을 가진 사람들이 모이면 문화 사회를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해요.

 

Q. 예술 교육에 대해서도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을 것 같은데요?

 

저는 다양성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다양한 예술 경험을 하게 만들어주는 것이죠. 음악의 경우에도 메이저부터 마이너까지 다양한 체험을 할 수 있도록 계속해서 무의식의 자극을 주는 것이요. 최대한 많은 것을 경험할 수 있도록 다양한 기회를 주는 것이 예술 교육에 있어서 놓치지 말아야 하는 부분이라고 생각해요.

Q. 후배들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도 많으실 것 같아요.

 

예술을 전공 하는 친구 중 대부분이 아티스트를 꿈꾸더라고요. 냉정하게 들릴 수 있지만 저는 그 꿈을 빨리 버리라고 이야기하고 싶어요. 음악을 잘 한다고 칭찬을 듣고 아티스트가 될 거라고 생각했지만, 결과적으로 잘 성장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요.

 

시간이 지나고 보니까 아티스트는 혼자만 잘한다고 될 수 있는 게 아니더라고요. 정말 좋은 조력자를 만나야 하는 것도 굉장히 중요해요. 그렇게 되기까지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 하고 어떤 때에는 그게 끝이 보이지 않는 기다림의 연속이 되기도 해요. 그런데도 이 길을 가고 싶다는 생각이 확고하다면, 어떤 아이디어를 가지고 기획하고, 어떻게 공연을 연출할지에 대해 많이 공부하고 경험해볼 수 있으면 좋겠어요.

 


PART 5. 공식질문

“한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아티스트의 역할은?”

 

 

Q. 지금 하는 일이 기획자님에게 어떤 의미를 주나요?

 

연애하는 것 같아요. 연애라는 건 목적이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잖아요. 그런데 함께 하면 기분이 좋고요. 물론, 실망하는 순간도 많고 힘든 순간도 많지만 그 기분조차 좋아요. 연애를 하면 모든 감정이 소중하잖아요.

 

나에게 그런 감정을 주는 일을 하고 있다는 게 가장 행복해요. 제가 이런 기분을 느낄 수 있게 해주는 일이기 때문에 꾸준히 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먹고 살기 위해, 돈을 벌기 위해 그냥 기계처럼 하는 게 아니라서 감사해요.

 

Q. 한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어떤 모습을 보이고 싶으세요?

 

앞서 말씀드렸던 것처럼 조력자가 되고 싶어요. 음악사회를 구성하는, 혹은 이 사회를 구성하는 구성원으로서 앞서가려고 하기보다 뒤에 서서 도와주는 조력자의 역할을 잘 감당할 수 있도록 하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