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

서울문화재단은 서울을 이루는 지역들이 각각의 지역문화 기반을 다질 수 있도록 <N개의 서울> 프로젝트를 지원하고 있습니다. 동네의 문화 자원을 발견하고, 연결하는 과정, 동네의 문제X이슈를 문화적으로 접근하는 시도, 동네를 바꾸는 움직임을 통해, 동네 곳곳에서 만드는 새로운 서울X문화를 기대합니다.


 

산업 혁신의 키워드로 급부상하고 있는 블록체인(Block Chain)시스템은 거래를 기록한 원장(거래를 계정별로 기록, 계산하는 장부)을 특정한 기관의 중앙 서버가 P2P(Peer-To-Peer) 네트워크에 분산하여 공동 기록・관리하는 기술이다. 쉽게 말해, 모두가 공유하는 거래 기록을 모든 관련 거래자가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는 기술을 말한다. 이는 중간 매개자가 없어 보다 투명하고 효율적인 거래가 가능하며, 과정이 블록으로 분산 저장되기 때문에 기존의 방식보다 안전하다. 이러한 장점 때문에 블록체인을 통한 다양한 거래가 온라인상에서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금융 거래, 에너지 거래에 이어 이제는 예술과 콘텐츠의 거래로 블록체인의 적용이 확대되는 추세다. 미술 시장 또한 블록체인을 활용한 새로운 시도를 계속하고 있다. 수 세기 동안 특정 소수가 지배해왔던 미술 시장은 지금까지도 그 조직이 폐쇄적이고 진입장벽이 높은 것이 현실이다. 이러한 구조 속의 불합리한 관습을 깨고, 침체되어 가는 미술 시장의 확대를 꾀하고자 새로운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다. 블록체인 시스템의 도입으로 미술품 거래 문화는 새로운 생태계로 나아갈 것이라는 전망이다.

 

지난 11월 1일부터 충무아트홀 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는 2019 <TAG PROJECT>, 3rd Art Generation은 이러한 흐름을 잇는 전시다. 이는 중구문화예술거버넌스의 공동기획 전시로, 중구의 젊은 예술가와 기획자가 모여 이뤄낸 결과물이다. 전시는 7개의 작품에 블록체인 시스템을 적용해 미술작품의 분할 판매를 보여주고, 기존 미술 소비의 전복을 가시화하는 내용으로 구성됐다. 또, 작품의 거래 내역을 공개함으로써 투명성을 모색하고, 분할 판매 방식으로 관람객이 원하는 만큼 가격을 매겨 작품의 소유권을 갖는 기회를 제공한다. 대중에게 평등한 미술품 거래 기회를 선사해 젊은 작가들과 함께 나아가겠다는 <TAG PROJECT>의 다섯 기획자를 만나보았다.

2019 <TAG PROJECT>, 3rd Art Generation
<2019 TAG Project>의 기획자들

Q. 자기소개와 이번 전시에서 맡은 일을 간략하게 소개 부탁한다.

김민영 이번 전시의 총괄 기획을 맡았다. 원래 학부와 석사 전공이 도예다. 레지던시 경험을 이어나가 작업 활동을 하려다가, 연이 닿아 전시 기획을 하게 되었다. 평소 기획, 학예 쪽 업무에 많은 관심을 두고 있어 즐겁게 일할 수 있었다. 이번이 두 번째 전시이다.

최소연 중구문화재단에서 뉴딜 활동가로 일하고 있다. 중구문화예술거버넌스 내 전시 워킹그룹에 두 번 모두 참여하며 작가 관리와 홍보 및 기획 전반의 일을 담당하고 있다.

서문수인 중구문화재단에서 뉴딜 활동가로 활동 중이다. 전시 워킹그룹이라는 좋은 기회가 생겨서 기획 일을 하고 있다.

문혜주 학부, 석사로 도예를 전공하고 현재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신당창작아케이드에 1년 있었고, 지금은 한성대 캠퍼스 타운에서 입주 작가로 일하고 있다. 기획 일과 작업을 병행하는 것은 처음이다. 지난 전시에는 작가로 참여했고, 이번에는 기획을 맡았다. 열심히 발로 뛰며 작가 모집을 했다.

김나래 중구문화재단 문화협력팀에서 젊은 거버넌스와 함께하는 사업을 지원하고 있다. 이번에는 전시 워킹그룹을 담당하게 되었고 이번 전시를 함께 기획했다.

 

Q. <TAG PROJECT> 전시가 신선하게 다가왔다. 기획 과정이 궁금하다.

김민영 사실 전시의 콘텐츠는 기획의 자문 격으로 참여해주신 선생님의 아이디어에서 시작되었다. 그분이 러프하게 진행하고자 했던 콘텐츠를 올 초에 지나가듯 이야기하셨다. 시스템 자체가 상용화되는데 보완할 점이 많았고, 특히 기성 작가들에게 환영받지 못했다. 그러다 새로운 전시 기획에 필요한 콘텐츠를 고민하던 중 이 프로그램이 생각났다. 블록체인을 가시화해서 미술 소비를 전해보자는 생각으로 기획했다.

 

Q. 블록체인이 기성작가에게 환영받지 못한 이유는 무엇인가?

김민영 통상적인 미술작품 판매는 현금 거래다. 이를 이용해 많은 재력가가 재산의 은폐 수단으로 미술작품을 거래해왔다. 이러한 흐름 안에서 잘 팔리는 몇 작가들은 수혜를 받고 있었다. 암암리에 가려진 미술시장 안에서, 한 작가의 작품을 지인들이 몇 백, 몇 천만 원씩 금액을 부풀려 사고판다. 그렇게 여러 사람을 거치면서 오백만 원짜리 작품이 몇 천만 원 대의 작품이 되어 터무니없이 높은 가격으로 시장에서 거래된다. 그런데 블록체인은 이 거래 과정이 모두 공개된다. 데이터를 분산해서 저장하기 때문에, 지난 데이터를 모두 볼 수 있다. 그렇기에 컬렉터의 수준이 보이는 것이다. 컬렉터가 지인인지 아닌지, 자연스럽게 시장 안에서 가격이 형성되는지 하는 것들 말이다. 이 투명성이 기성 작가들이 가장 겁내는 부분이다.

 

Q. 블록체인이 적용되면 적어도 시장 내 부조리는 해소되겠다. 그렇다면 이번 전시에서는 그것을 어떻게 보여주며, 어떠한 방식으로 방향성을 잡아나갔나?

김민영 먼저 젊은 작가들과 새로운 미술 시장을 여는 것을 목표로 했다. 더불어 미술작품의 분할 판매로 거래의 진입장벽을 낮추는데 기여하고자 했다. 관객에게 일정한 포인트를 나눠주고 자유롭게 작품의 지분을 구매할 수 있도록 했다. 거래가 이루어지면 누가, 이 작품을 얼마에 샀는지 그 정보가 모니터에 실시간으로 나타난다. 블록체인을 통해 거래의 과정을 모두에게 공개하는 것이다. 이때, 전시장 화면에는 구매 내역이 코드로 보인다. 이 거래는 퍼포먼스이기 때문에, 작품의 인기투표가 되거나 다른 구매자에게 영향이 미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장치다. 대신 이 코드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텍스트로 설명한다.

 

Q. 현장에서 느끼는 관람객의 반응은 어떤가?

문혜주 주변 또래의 신진 작가는 이 시스템이 신선하고 재미있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런데 일반 관객은 미술품 거래는 물론, 블록체인 개념 자체가 생소한 것 같다. 미술을 좋아하는 사람도 마찬가지다. 대중에게 아직 다가가기 힘든 부분이겠지만, 작가들은 시스템 자체에 큰 흥미를 보인다. 지금까지 해왔던 것과는 확실히 다른 방식이니까.

최소연 맞다. 일반 관객들이 처음에는 생소해한다. 그렇지만 차근차근 설명을 듣고 퍼포먼스에 참여하면 대부분 즐거워하시더라. IT 기술을 이용하며 관객이 직접 참여하는 전시가 드물어 좋아해주시는 것 같다. 왜 작품을 전체 대신 분할 판매하냐는 질문을 가장 많이 받는다.

서문수인 실물이 내 손에 떨어지지 않는데 이걸 왜 구매하는지, 이게 의미가 있냐고 의문을 제기하는 분들이 많다. 이에 대해서 기존과 다른 형태의 소비라는 의미가 있다고 말씀드린다. 물품을 직접 소유하는 소비가 아니라, 어떤 새로운 가치에 대한 소비, 그 시도 자체가 의미 있는 것이다.

문혜주 처음 이 전시를 기획할 때, 작품의 실물을 소유하지 않는 것에 대해 관객이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에 대해 많은 고민을 나눴다. 요즘 젊은 사람들은 가치 소비를 하며 돈을 쓰는 것 자체로 나라는 사람을 표현한다. 그렇기에 새로운 소비에 대한 니즈도 점점 커지고 있다. 이는 작가도 마찬가지다. 예전에는 그림을 그려 원화만 팔았다면, 요즘 작가는 그림으로 포스터나 휴대폰 케이스를 만들어 스스로 복제품을 판매한다. 이런 관점에서 우리는 주식처럼 진품의 소유권을 파는 것이다. 우리 같은 일반인들도 예술가의 스폰서가 될 수 있고, 적은 돈으로 작품의 지분을 구매할 수 있다는 새로운 소비의 욕망을 타깃으로 삼았다. 일반 대중을 미술시장으로 끌어들이는 것이 목표이다.

서문수인 소비 욕망! 전시 시스템이 특정 휴대폰 기종에서는 작동이 안된다. 퍼포먼스일 뿐인데도 꼭 작품을 사고 싶다며 작가 기기를 빌려서 경험하는 분들도 계시고, 실제로 작품을 구매한 듯한 반응을 보이기도 한다. 예술품 거래의 진입장벽을 낮추고 싶다는 목표가 있었는데, 즉각적인 반응이 있으니 신기했다.

김민영 공감한다. 포인트를 왜 이렇게 적게 주냐는 분도 있고, 분할 판매를 하는 퍼포먼스인데 오히려 전체 작품을 구매하고 싶다는 분이 정말 많았다. 심지어는 작가 연락처를 요청하고, 예술품 구매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묻는 관객까지 있었다. 가상이지만 작품을 구매하는 퍼포먼스가 실제 작품에 애정을 심어주는 것 같다. 시대의 흐름과 욕구가 우리 전시에 많은 공감을 더하고 있다.

박혜영, <Mount Hyjal>, 캔버스에 아크릴, 92×65cm
이재경, <촛불 몽상가의 고독>, 도자, 62×29×59cm

Q. 의미 있는 작업인 것 같다. 실제로 이 시스템이 미술시장에서 적용된 사례가 있나? 있다면 그것을 바라보는 여러분의 시선은 어떤가?

김민영 실제로 작년에 스위스에서 피카소(Picasso)의 작품을 160명이 지분을 산 사례가 있다. 굉장히 큰 회사라 지분 판매와 동시에 복제품을 언제든지 감상할 수 있는 기계까지 제공했다. 공신력 있는 피카소의 작품 덕에 시장가는 끝없이 올랐다. 어쨌든 160명이 지분을 사고팔며 가상의 화폐로써 이용한 사례가 있다. 올해 한화가 서울 옥션과 블록체인을 통해서 거대 작가의 작품의 분할 판매를 준비한다는 기사가 나기도 했다.

문혜주 국내에서도 단발적이지만 분할 판매의 사례가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이런 점을 미루어보았을 때, 블록체인과 분할 판매가 미술계의 새로운 흐름이 될 것 같다. 그 흐름이 계속 이어질지 사그라질지는 확언할 수 없지만 다양한 시도가 동시다발적이 일어나는 단계다. 도전할만한 가치가 있어 지속 가능한 콘텐츠로 이어나가고 싶다.

김민영 사실 혼란스럽기도 하다. 나는 미술을 사랑하는 사람인데, 이렇게 접근해도 될까 싶을 때도 있다. 분할 판매는 미술의 본질, 가치를 흐린다고 평가하는 이도 많기 때문이다. 개인적인 가치 판단이지만, 모든 예술은 x축, y축 사이에 다양한 것이 촘촘하게 채워져야 보기 좋은 양질의 것이 된다고 생각한다. 소비에 있어서도 1:1의 물질 거래뿐 아니라 이런 식의 새로운 소비가 있어야한다. 그에 파생하는 새로운 담론이 등장하고, 그것과 싸워서 또 다른 이야기와 소비로 이어져 또 다른 시장이 형성되지 않을까. 그런 관점에서 이런 시발점은 가치있다고 생각한다.

 

Q. 장단점이 있지만 이번 퍼포먼스를 발전시킬 가치와 가능성이 엿보인다. 이후의 계획은?

김나래 우선 재단에는 이런 프로토타입의 전시뿐 아니라, 실제 아트페어를 열어 예술작품을 판매하는 기회를 준비했다. 가상이지만 이번 전시를 통해 예술품 거래를 경험한 이들이 작품을 살 수 있지 않을까. 적은 자본이지만 누구나 작품을 구매하는 경험의 기회를 준다는 것 자체가 중요하다. 작품도 사본 사람이 사는 것이다. 지속적으로 발전할 수 있는 아트마켓으로 나아가고, 건강한 예술 소비문화를 형성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서문수인 이 전시를 프로젝트 형식으로 발전시키거나 새로운 공간에서 다시 전시하고 싶다. 홍보가 미약했고, 관람객이 적어 아쉬웠다. 충무아트 갤러리 방문객의 대다수가 공연을 보러 온 사람들이다. 하필 이번 전시 기간에 공연도 없다 보니 방문객이 적었다. 다른 곳에서 전시를 연다면 더 많은 사람에게 닿을 수 있을 것이다.

문혜주 이번 전시로 개설한 도메인을 유지시키고자 계획 중이다. 지금 이 전시 자체는 퍼포먼스라 가능성을 열어두고 새로운 발걸음을 보여주는데 집중하고 있다. 물론 이후 발전의 가능성도 열어뒀다. 상용화를 위한 오류가 해결되고 방향성이 명확해지면 그때는 진짜 기업의 자문이 필요할 것이다.

김민영 어떻게 보면 새로운 사업의 쇼케이스적인 부분도 읽을 수 있는 것 같다.

문혜주 이 시스템을 유지하려면 공익성을 띠어야 한다. 젊은 작가와 같이 성장할 연대, 지지, 1차적인 것에 가치를 두어야 한다. 지금도 다양한 공간에서 젊은 작가의 전시가 수십 개씩 열린다. 나만 해도 올해 전시를 5개나 했다. 사실 이건 모두 휘발된다. 미술관에 보관되지도, 누군가에게 팔리지도, 올해의 작가 상을 받지도 않고 다 사라진다. 그걸 누가 기억하고, 기록하고, 인증할 수 있을까. 결국 우리의 목표는 갈 곳 없는 모든 작가와 함께 가는 것이다. 우리가 작가를 다 같이 연대하고 지지하자. 우리가 기록하고 판매하자. 이 땅의 예술가들이 먹고 살 수 있도록 같이 나아갈 것이다. 공정한 시장에서 평등한 거래가 이루어지도록 만들고 싶다.

최소연 만약 그럴 수 있다면 대중에게 신진 작가를 알리고 소개하는 가장 가까운 매개체가 될 것이다. 전시장에서 작가를 만나는 건 한정적이지 않나. 작가와 대중을 보다 가깝게 이어주고 싶다.

 

Q. 이 전시를 통해서 느낀 바가 있는가. 목표를 이루고 문제가 해소 되었는가?

김민영 사실 전시 기획 현장에서 단체에 소속된 또래의 친구들은 자기 기획을 아무것도 할 수 없다. 헤드 디렉터 밑에서 보조만 하며 10년 후를 기다린다. 우리가 오롯이 기획한 것을 0부터 100까지, 완전히 가시화하는 기회가 주어짐에 감사하다. 게다가 나는 이 전시가 개인 작업과 다를 바 없다고 느꼈다. 그만큼 창작 욕구를 완전히 실현했다. 내 힘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기획한 것이 가장 큰 수확이다.

서문수인 뉴딜 일자리로 시작하면서 문화 기획을 하고 싶었다. 전시 기획을 경험하게 되어 만족스럽고, 모두가 평등한 위치에서 즐겁게 일을 해볼 수 있어 좋았다.

문혜주 많은 사람들이 이 전시에 젊은 기획자의 주체성이 있었다는 것에 대해 놀란다. 정말로 우리가 원하는 대로 방향을 잡고 큐레이팅 했다. 우리가 하고 싶은 것을 우리가 만드는 것이 가장 의미 있었다. 스스로의 힘으로 해냈기 때문에 만족도가 높다.

김나래 공기관에서 일할 기회를 얻는 것 자체가 힘들다. 짧은 기간이지만, 공기관에서 일하며 이렇게 좋은 전시를 기획할 수 있어 기쁘다. 준비하는 과정도 뜻깊었다. 앞으로 더 넓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는 경험을 쌓은 것 같아 감사하다.

최소연 기획팀의 팀워크가 좋아 항상 즐거운 분위기 속에서 일했다. 준비 과정이 힘들고 작은 규모로 진행했지만 즐겁게, 좋은 결과를 내어 만족스럽다. 개인적으로는 예술과 무관한 전공이라 전시 기획을 접한 첫 경험이었다. 이와 관련한 많은 업무를 배운 것 같아 의미가 크다. 소규모로 작업을 진행하다 보니 모두가 일의 프로세스를 인지하고 있어야지만 놓치는 부분이 없는 것도 배웠다. 내가 맡지 않았어도, 다른 이가 어떤 일을 어떻게 하고 이는지 알아야만 했다. 그렇게 전시 기획 분야의 전체적인 과정을 배워 나갔다. 감사한 경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