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

서울문화재단은 서울을 이루는 지역들이 각각의 지역문화 기반을 다질 수 있도록 <N개의 서울> 프로젝트를 지원하고 있습니다. 동네의 문화 자원을 발견하고, 연결하는 과정, 동네의 문제X이슈를 문화적으로 접근하는 시도, 동네를 바꾸는 움직임을 통해, 동네 곳곳에서 만드는 새로운 서울X문화를 기대합니다.


 

복태와 한군이라는 팀이 있다. 마치 명콤비 같은 이름의 이들은 10년간 음악으로 서로와 세 아이를 키우느라 고된 길을 걸어온 예술가 부부다. 항상 노래하고 기타 치는 공연만 했었지, 자신들의 삶을 읊은 적은 없었다. 마포문화재단의 지역문화 네트워크 프로그램인 <아트 스티치>는 이 부부가 살아온 10년의 이야기를 무대 위에 올리기 위해 이들을 찾았다. <아트 스티치>는 마포구에서 활동하는 예술가와 지역 내 문화주체들이 모여 다양한 이야기를 서로 나누는 네트워킹 파티다. <아트 스티치>의 첫 주자로 나선 복태와 한군은 지난 10월 26일, 마포문화재단의 스튜디오 II에서 부부예술가로 10년 버티기 토크 콘서트를 열었다.

 

복태와 한군은 상투적인 인사 대신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라는 곡으로 토크 콘서트의 문을 열었다. 3곡의 공연과 99장의 프레젠테이션 파일까지 준비해온 부부는 1시간 동안 쉴 새 없이 유쾌한 토크 콘서트를 진행했다. 기타 대신 프레젠테이션 포인터를 쥐고, 노래 가사 대신 10년 살이를 수다 떨듯 말하는 두 사람의 모습에서 어색함은 찾을 수 없었다. 아트 스티치를 통해 살아온 시간을 되돌아볼 수 있었다는 이들은 도대체 언제부터 음악을 했을까. 예술가 부부로서 과연 무사히 살아온 것일까. 관객과 함께 바닥에 앉아 그들의 10년 살이를 들어봤다.

아트 스티치
인사 대신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부르며 토크 콘서트를 연 복태(우)와 한군(좌)

복태, 음악하다

복태(본명: 박선영)는 20대에 겪은 이별의 아픔을 극복하고자 잡은 기타 하나로 음악인의 삶을 시작했다. 슬퍼서 기타줄을 뜯던 것이 작곡으로 이어졌고, 이별 이야기로만 스무 곡을 만들어냈다. 직접 만든 곡을 들은 친구들의 반응도 제법 좋았다. 마침 자신의 전공인 연극이란 세계에 실망한 참에, 기타 연주와 작곡이 그녀에게 주는 기쁨은 너무나 컸다. 전문적으로 배우질 않아 연주 실력은 아마추어 정도에 그쳤고, 먹고살기 위해서는 다른 직업과 병행해야만 했다. 그렇게 대안학교에서 문화를 가르치는 선생으로 생활하며 아이들과 함께 네팔, 아프리카 등 음악이 있는 여행을 떠났었다.

 

한군도 음악하다

한군(본명: 한겨레)의 음악인 생활도 집에 있던 낡은 기타에서 시작됐다. 어느 날 갑자기 호기심이 들어 줄이 온통 뜬 낡은 기타를 부여잡고 책을 보며 코드 독학을 시작했다. 부모님의 권유로 입학한 대안 고등학교에서 밴드 생활을 하며 기타와 로큰롤에 심취하기도 했다. 졸업 후 무작정 상경한 한군은 청소년 직업센터인 하자센터에서 일하며 니트족, 은둔형 외톨이들의 삶의 중력을 음악으로 찾아주는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음악으로 발산만 하던 한군은 음악으로 누군가를 돕는다는 기쁨을 새롭게 알게 된다.

결혼식 준비 과정에서 생긴 좌충우돌 에피소드를 사진과 함께 들을 수 있었다

복태와 한군으로 묶인 콤비

그러던 어느 날, 두 사람은 같은 친구의 생일잔치에 각각 공연을 하러 가게 된다. 마침 한군은 기타를 두고 왔고, 복태가 기타를 빌려주며 그렇게 인연을 맺었다. 복태의 기타를 치며 한군이 불렀던 비틀즈(Beatles)의 <Across The Universe>는 복태가 한군에게 “같이 음악 할래요?”라고 제안하게 만든 단초였다. 그렇게 복태와 한군이 탄생했다. 연애에 온 열정을 쏟느라 공연도 뒷전이었던, 하지만 너무나 행복했던 이들은 우연히 속초로 떠난 여행에서 첫째를 가진다. 양가의 극심한 반대를 무릅쓰고 결혼을 강행한 기발한 뮤지션 부부는 무료 선상 프러포즈, 누드 웨딩 촬영, 소셜 펀딩 결혼식, 개신교와 천주교의 신앙이 공존했던 결혼식까지 좌충우돌 결혼 과정을 거친다. 우여곡절 속에 첫째가 태어나면서 두 사람은 드디어 육아의 세계, 예술가 부모의 세계에 입성한다.

 

인간극장에 등장한 아이 있는 비정규직 예술가 부부

음악으로만 먹고 살 수 없던 둘은 공연과 수업을 병행했다. 다양한 대안학교에서 삶에 희망이 없고 소외받던 아이들을 대상으로 소리 체험, 요리 수업, 그림 그리기 등 그들만의 방식으로 문화예술 수업을 선보였다. 음악을 매개로 타인에게 꿈과 희망을 주던, 주변 사람을 치유하던 시기였다. 그러다 누군가의 제보로 두 사람은 8살 차이의 비정규직 부부가 행복하게 아이를 키우는 인생을 주제로 인간극장에 출연하게 된다. 얼굴을 알아보는 이도, 공연 의뢰도 늘었다. 공연의 급을 따질 법도 한데, 둘은 금액과 네임밸류에 신경 쓰지 않고 할 수 있는 일을 닥치는 대로 했다. 제 몸 하나 건사하기 힘든 예술가 부부가 아이까지 키운다는 것은 생존 경쟁에 버금가는 일이었다.

 

본업이 육아고 취미가 음악일까

늘 육아 환경에 노출되면서 할 수 있는 음악의 장르, 스타일도 폭이 좁아졌다. 아이들이 깰세라 새벽에만 작은 볼륨으로 작업을 하다 보니, 만들고 보면 언제나 잔잔한 음악이었다. 한군도 소리가 큰 기타 연주를 포기하고 이어폰으로 음악만 들은 지 제법 되었다. 임신과 육아의 반복으로 앨범 작업에 진전이 없자 복태와 한군을 음악가로서 증명할 수 있는지, 정체성에 혼란을 겪기도 했다. 본업이 육아요, 취미가 음악일까. 마침 공연도 줄어들어 양육수당, 파견 예술인 등 각종 정부 지원 사업을 동아줄 잡듯 발악하며 살았다. 말 그대로 음악 대신 모든 것으로 인생을 메꾸는 대안적 삶이었다. 없는 살림으로 치열하게 살았지만, 삶의 틈을 위해 가족 여행만큼은 꼭 떠났다. 치앙마이에서 배워온 바느질로 죽음의 바느질 클럽이라는 워크숍을 열다가 공연을 놓친 적도 있고, 인도에서 영감을 얻은 보이스 요가도 한창 작업 중이다. 휴식으로 떠난 여행조차 결국엔 일의 연장선 상이 되어버리는 두 사람의 삶은 촘촘한 밀도가 느껴진다.

음악뿐 아니라 다양한 워크숍을 기획하고 진행했다. 7시간 동안 바느질만 배우는 <죽음의 바느질 클럽>
가정에 지친 엄마를 위한 소리 워크숍 <M-OM-MY SOUND>

나다움을 지키며 산다

복태는 삶이 가진 선율 자체가 곧 음악이며, 우리의 삶은 늘 음악과 함께 한다고 했다. 음악으로 자신과 주변 사람을 돌보겠다 주장하는 그녀의 꿈은 나다움을 지키기다. 수많은 인디 뮤지션들 속에서 살아남으려면 대체 불가능한 나다움을 키워야 한다. 나이기 때문에 나를 부를 수밖에 없도록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꿈을 잃으면 얼굴에서도 빛을 잃는다. 복태는 빛나는 얼굴을 아이에게 보여주고 싶어서라도 계속해서 하고 싶은 걸 하겠다고 다짐한다. 행여 그게 음악이 아니게 되더라도 주저 없이 다른 일을 할 것이며, 그것이야말로 복태로서 살아가는 방법이다. 토크 콘서트의 끝에 다다라 복태와 한군이 부른 곡 <마음>에는 마음 깊이 전하는 위로와 따스한 빛이 있었다.

 

슬픔이 찾아와도 기쁨이 찾아와도 아무렇지 않게 흘려보낼 수 있는 그런 마음. 그들에게도 아픔은 있고 그들에게도 사랑은 있는 그 마음 헤아릴 줄 아는 그런 마음. 누군가 외로워할 때 누군가 눈물 흘릴 때 그 마음 그 눈물 위로할 마음 마음 마음 너의 마음 나의 마음. 우리의 마음 서로의 마음 마음. 누군가 외로워할 때 누군가 눈물 흘릴 때 그 마음 그 눈물 위로할 마음

– 마음, 복태와 한군

 

복태와 한군은 오늘도 8살, 7살, 3살의 세 동반자와 울고 웃으며 어떻게든 살아간다. 복태는 예술가의 인생을 피라미드라 표현했다. 어디서든 최선을 다하면 누군가 그걸 보고 명함을 건넨다. 그것이 또 이어져 가늘고 기다란 계주처럼 살아간다는 것이다. 목성, 토성처럼 이름 있는 행성같이 살아가는 스타에 비하면 자신들의 삶은 우주를 떠도는 수많은 파편 같지만, 어쨌든 추락하지 않고 우주에 떠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함을 느낀다고 한다.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언제까지 버틸지 모르겠지만 한 번 버텨볼 테니, 다같이 도망치지 말고 끝까지 버티자는 복태의 목소리에 단단함이 느껴졌다. 마지막 노래인 <맞이할 시간>을 부르며 토크 콘서트를 끝낸 두 사람을 무대 뒤에서 만나보았다.

2019년의 가족 여행으로 인도를 다녀온 복태와 한군의 다섯 가족

Q. 첫인사 대신 음악으로 복태와 한군을 소개했다. 토크 콘서트에서 들려줄 세 곡을 고른 기준은 무엇인가?

복태 처음 부른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는 우리가 늘 인트로로 쓰는 곡이다. 윤동주 시인의 <소년>이라는 시를 차용해 만들었다. ‘이제 공연이 시작돼요, 예술의 문이 열려요’라며 예술의 영감을 불어넣는 노래이기도 하다.

한군 가을 하늘의 무드를 가져올 수 있는 노래라고 생각했다. 음악의 느낌을 불러일으키고, 불러 모으는 거다.

복태 두 번째 곡인 <마음>은 내가 첫째를 낳고 마음이 지쳐있을 때 나를 위로하고 싶어 쓴 노래다. 서로의 마음을 돌보고 싶어 제목도 마음인 노래를 선곡했다. 마지막 <맞이할 시간>은 지지의 노래다. 계획해도 계획대로 되지 않는 인생이 두렵지 않나. 앞으로 우리에게 다가올 시간을 인생의 동료와 함께 잘 살아가면 좋겠다는 응원을 담았다.

한군 앞으로 좋은 일을 맞이할지, 나쁜 일을 맞이할지 모르겠지만 그마저도 다 맞이할 각오를 하고 살자는 노래다.

 

Q. <아트 스티치>의 첫 주자로 어떻게 등장하게 되었나?

복태 아트 스티치를 기획한 마포문화재단의 유병주는 2010년 두리반에서 만난 뒤로 서로를 지지해온 오랜 인연이다. 10년간 음악으로 먹고산 이야기를 동료 예술가에게 들려주면 큰 힘이 될 거라며 아트 스티치도 먼저 제안해줬다. 우리에게도 너무 좋은 정리의 시간이 될 것 같아 참여했다. 사실 많은 이들이 예술로 잘 된 케이스만 보고 시작하지 않나. 그러다 안되면 크게 좌절하고, 포기하고. 우리는 그리 유명하지 않아도 이렇게 살아가는 사람이 있음을 보여주고 싶었다. 이름을 날리거나 공연 하나에 2천만 원짜리를 뛰지 않아도, 티끌 모아 태산처럼 50만 원짜리 공연 10개로 500만 원을 벌며 다음 달을 사는 삶을 들려주고 싶었다.

한군 그 친구가 불러주는 곳이라면 무엇이든 의미가 있을 거란 신뢰가 있다. 그가 초대하는 공연과 행사는 무조건 함께 해 힘을 보탰다. 마침 내년 10주년을 어떻게 맞이할지 고민하던 참에, 이런 자리를 먼저 제안해줘 정말 반가웠다. 무엇보다 우리가 줄 수 있는 것, 공유할 수 있는 것을 나누며 노래하고 싶다. 한두 사람이라도 좋았다고 피드백을 준다면 그게 이런 자리까지 올 수 있는 가장 큰 원동력이기도 하다. 우리가 정말로 필요한 곳을 찾아 우리가 나눌 수 있을 만큼의 음악적 에너지를 전달하고 싶다.

 

Q. 두 사람은 세 아이의 삶을 책임진 예술가 부부다. 아이를 키우면서 부모도 사람답게 살기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사회적 장치가 있다면?

복태 예술가가 아니어도 모든 부모에게 다 적용되는 것 같다. 아이를 키우면 연습이나 여가의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하지만, 제일 좋은 건 모든 맞벌이 부부의 아이가 8살이 되기 전까지 돈을 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군 육아의 질이 향상될 뿐 아니라 부부의 숨통이 트인다. 질 높고 저렴한 돌봄 센터도 더 많아져야 한다.

복태 사회와 사람도 더 자유로워졌으면 좋겠다. 사람들이 공연장에 왜 아이를 데려오지 않냐고 자꾸 묻는데, 일터에 아이를 데려가면 눈치가 보인다. 공연 도중 아이들 때문에 흐름이 끊기면 우리가 프로답지 못하다는 책망을 들을까 봐. 가족 축제 공연장인데도, 관객들이 무의식적으로 (일터에 아이를 데려오는 것에 대한) 부정적인 에너지를 보낸다. 그에 비해 다른 나라의 공연장은 굉장히 자유롭다. 그런 사회적 의식의 변화도 있으면 좋겠다.

한군 프로답지 못하다는 시각들. 실제로 그런 피드백을 받은 적도 있다.

 

Q. 마포의 더 많은 예술가가 활발하게 활동하기 위해서 어떤 네트워크가 필요할까?

복태 사실 우리는 일하고 아이를 보느라 네트워크를 맺을 시간이 없다. 물론 아이 없는 이모, 삼촌 예술가들이 넉넉한 마음과 그들의 예술 재능으로 같이 아이를 돌보는 네트워크를 생각했다. 근데 그건 너무 기대하는 거라 아예 마음을 품지 않는다. 주변의 젊은 예술가 친구들이 종종 고마운 품을 내주어 아이를 봐준다. 아이들도 재미있는 이모들이 왔다 가면 너무 그리워한다.

한군 예술인 언니 오빠야들이랑 아이들이 같이 재미있게 노는 네트워크가 있으면 좋을 것 같다.

 

Q. 내년 10주년은 나를 중심으로 어떻게 보내고 싶은지?

복태 지금은 숨이 턱까지 차오를 정도로 일하고 있다. 남들에겐 우리가 자유로운 영혼처럼 보일지 몰라도 우리는 10시, 2시, 4시에 회의하며 일한다. 내겐 부담감이 없는 것만으로도 쉬는 거다. 내년 6개월은 무조건 쉬고 아이들과 함께 여행을 떠나고 싶다. 서울에 있으면 나를 일에 몰아넣지만, 여행은 일의 중력에 벗어나 혼자 있을 수 있다. 그런 나를 말리려면 여행지에 나를 던져 일을 못 하게 막아야 한다. 어쨌든 내년에 6개월간 돈 걱정 없이, 일이 들어와도 거절하기가 나의 큰 목표다.

한군 단호하게. 더 큰 뭔가를 생각하면서.

복태 일로써의 노동을 잠시 멈춰야 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가 있다. 10주년을 맞아 복태와 한군 정규 1집을 드디어 작업하려 한다. 이것 외에 한군이 가진 또다른 목표는 인도 음악을 공부하는 거다.

한군 나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그때까지 쌓아뒀던 스킬로 십 년간 가르치기만 하며 살아왔다. 그러다 보니 내가 누굴 가르치는 것도 재미없고 한계가 느껴져 뭔가를 배워야겠단 생각을 많이 한다. 음악 공부에 대한 생각이 크게 있고, 그 큰 갈래 중 하나가 인도 음악이다. 난 공부를 해야 될 것 같다. 끝이 없다. 새로운 시즌을 맞이해야 한다.

 

Q. 한 시간이 너무 적어 미처 말하지 못했던, 하지만 꼭 하고 싶었던 말이 있다면?

복태 10년 예술가로 버틴 이야기를 하느라 육아 이야기를 못했다. 그게 핵심이다. 결혼하고 애를 낳고서도 전과 똑같은 삶을 사는 남자 예술가는 많지만, 여자 예술가는 커리어가 단절된다. 같은 음악가였는데 여자는 집에서 애를 보고, 남편은 인디 뮤지션으로 승승장구한다. 같이 그만두던가, 같이 승승장구해야 하는데. 당연한 의무를 피곤한 기색으로 해서도 안되고, 함께 육아해야 한다. 3대가 아이를 키운다는 말도 맞다. 할머니, 삼촌, 이웃들이 품앗이로 봐주고 지금도 이웃들 덕분에 먹고산다. 우리가 버틴 게 아니라 주변이 우릴 도운 거다. 우린 그 대가로 그들의 아이를 부르고, 반찬을 싸다 나른다. 결국 우리는 선물 공동체, 나눔 공동체로 살아간다. 어쨌든 예술가들이 너무 외롭게 있지 않나. 친구를 만들어야 한다. 아트 스티치도의 이번 기획도 사실 그거였다, 동료를 만드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