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

문화·예술·교육·사회 전반에 대한 아티스트의 생각을 들어보는 인터뷰 프로젝트 <젊은 예술, 생각을 디자인하다>. 작가의 태도, 가치관, 창의성, 소통, 감성이 반영되는 작업이나 작품활동 이야기, 작가 개인의 생각을 따라가 보며, 문화예술이 우리 삶과 인간에게 주는 긍정적인 효과와 강점을 알아보고, 한 사회 구성원으로서 아티스트와 함께 예술의 미래를 그려봅니다.


감윤경

예술기획자

 

“왜 어른이 되고 살면서 예술이 멀어져야 하나요 가까운 우리 일상에서 소비될 수 있는게 아닐까요?”라고 질문하며 달콤한 케이크로 사람들과 소통하는 예술기획자 감윤경.

수많은 흔들림도 있지만, 카페 문화와 예술 그리고 개인의 역할에 경계 없이 재밌는 일을 만드는 감윤경씨와의 인터뷰 지금 시작합니다.


 

PART 1. 아티스트를 소개합니다

 

 

Q. 작가님 소개 부탁합니다.

 

안녕하세요 예술을 작업한다기 보다 예술로 재미난 일을 만들고 있는 예술기획자 감윤경입니다. 제가 주로 하는 일은 우리가 생활 중 많은 시간을 카페에서 보내는데 카페문화에 어떻게 예술이 자연스럽게 스며들 지 고민하고, 우리가 카페에서 소비하는 커피와 케이크 중 케이크를 이용해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Q. 학창시절부터 이쪽 일에 관심이 많으셨나요?

 

고등학교까지 평범한 입시교육을 받던 이과생이었어요. 사실 모두가 그렇겠지만, 한국 입시가 암흑 같은 터널을 지나다가 대학교육으로 바뀌는 순간 밝아지는 느낌을 받잖아요. 저는 입시 중간에 고민 했을 때 미술을 하고 싶었고, 내가 사는 삶이 예술과 가까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길을 바꿨어요.

 

입시를 한 차례 실패하고 그 암흑이 정말 깜깜했는데 예대에 가는 순간 굉장히 환해졌죠. 예대에서 ‘예술은 삶의 모든 것을 허용한다’라고 생각했고, 게다가 제가 순수미술을 전공해서 시각적인 기억도 같이 있어요. 지금은 생각이 바뀌고 있지만(웃음) 그러한 인생의 마음가짐으로 20대를 보내고 나니 지금도 그 환함의 아우라가 잔상처럼 강렬하게 남아있어요.

 

Q. 대학 입시 중간에 진로를 완전히 바꾸는 게 쉬운 선택은 아니었을 것 같은데요.

 

어머니 아버지도 바쁘셔서 제 선택을 말리거나 반대하지는 않으셨어요. 사실 그 당시의 변화나 갈등 상황은 지금도 아직도 경험하고 있어서 힘든 것 같아요. 제가 요즘 드는 생각이 ‘마음을 다잡아야겠다’ 다짐을 하거든요. 근데 뭔가 다 잡으려고 하니까 힘든게 아닐까? 언어로 장난을 친 건데 흔들리는대로 흔들리고 망설여지는거 자체가 당연하게 아닐까요. 요즘 그런 생각도 들고, 힘든것 자체도 당연한거겠지 하고 받아들이고 있어요.

 

Q. 여행 혹은 일탈이라던지 흔들림 속에서 터득한 나만의 해결법이 있으신가요?

 

저는 여행을 많이 가서 더 흔들리게 된 것 같은데. 사실 흔들린다고 하는게 무엇이든 결과적으로 어떤 명확한 답이 없잖아요. 그래서 흔들리는것 같아요. 저는 그 흔들림 자체를 엄청 쿨하게 즐기지는 못하겠고 흔들리는대로 힘들어하고 그러다가 그걸 ‘어떻게 해소하지?’ 라고 생각했어요.

 

제가 방법을 찾아가는 것 중 하나가 그냥 하루를 여행처럼 멋있게 이러는게 아니라 그 하루를 달리 보려고 노력을 해요. 그리고 제가 아까 앞에 설명해 드렸듯이 카페문화를 굉장히 좋아하거든요. 카페문화를 좋아하고 작은 거에도 만족 해서 커피 한 잔 마시고 맛있는 케이크 하나 먹어도 저는 제 스트레스나 그런걸 해소할 수 있는 것 같아요. 완벽하지는 않겠지만.


PART 2. 아티스트의 프로젝트를 보다

 

 

Q. 예술을 접목해 진행한 프로젝트 소개부탁드려요.

 

제작년에<‘A Piece of Cake(어피스오브케이크)>라는 프로젝트를 했고, 작년에 ‘A Piece of Cake’를 통해서 만난 일본 작가님이랑 <찾자>라는 프로젝트를 진행했어요.

 

Q. 이 프로젝트들을 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학생 때 학교에서 사람들이 참여하는 프로젝트를 했던 게 있어요. 그때 일상에서 예술적 행위나 예술적 사고가 얼마나 멀어져 있는지를 경험 했고, 그 이후에 해외작가님이 한국에 프로덕션 하러 올때 조교로 일했었거든요. 그분들은 다 초청된 작가님들 이잖아요. 정말 멋있는 거에요. 이런 멋진 작업을 한국에서 한국적인 요소와 한국사람들과 함께 작업하는데 이거를 소비하는 사람이 너무 국한되어 있는게 아닌가? 조금 답답했어요.

 

이렇게 멋있는 데 예술을 전공하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작가의 의도가 그게 아닌데도 불구하고 낯선 어떤 게 되어버리는 게 안타까웠어요. 그걸 내가 할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해서 고민을 했던게 제가 워낙 말하는 것도 좋아하고 사람들도 좋아하니까 사람들이 참여하고 같이하는 작업으로 이어진 것 같아요.

 

Q. A Piece of Cake, 이름이 특이한데요. 어떤 작업이었나요?

 

제가 부산 출신이에요. 제 본가 어머니 아버지가 사시는 그 동네에 고등학교 때까지 살았는데요. 그 근처에 아트센터가 생겼고, 그 아트센터가 생긴 곳이 공장 지대였어요. 근데 그 공장지대 아트센터에서 지역주민 참여형으로 어떤 재미난 일을 할 수 있는지 공모가 나서 냈던 아이디어를 발전시킨 게 ‘A Piece of Cake’예요.

 

우리 일상에 예술이 너무 멀리 떨어져 있다고 생각했어요. 저는 예술을 전공했고 그래서 계속 예술을 접했지만 정말 오랜만에 만난 이과 친구들은 회사를 가고 진로선택을 저와 다른 방향으로 하면서 예술과 멀어져 있고, 제가 하는 이야기가 낯설게 느껴지더라고요. 저는 그 상황이 더 낯선 거예요.

 

우리가 어렸을 때는 그림을 그리는 행위나 창의적인 미술 활동이 굉장히 가까이 있는데 어른이 되면서 멀어져있는 모습을 보고, 떠오른 아이디어가 ‘왜 예술이 그림의 떡인가요? It’s a Piece of Cake!’. It’s a Piece of Cake!가 쉽다는 뜻이잖아요. ‘예술 그거 너무 어렵게 생각하지 말고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시작하는게 예술이야’ 라는 생각을 아트센터 공모작품에 접목해서 발전시켰어요.

 

Q. 공장지역 아트센터에서 시도했던 프로젝트는 어땠나요?

 

그래서 공장 지대에 생긴 아트센터 문턱을 어떻게 낮출 것인지에 대한 고민부터 굉장히 단순하게 ‘지역 주민들이랑 뭐하지?’, ‘같이 무언가 하자고 하는데 페이를 주는것도 아닌데’, ‘예술이라는 이름으로 뭘 하자는 것이 받아들이기 어려울 텐데’ 생각하면서 무작정 케이크를 가지고 공원으로 나갔어요. 아트센터 앞에 있는 공원에 점심시간 산책하러 오시는 공장 분들이 계시니까 단상 위에다가 케이크를 올려놓고, “제가 만든 케이크 조각이에요”, “케이크 경험해보시고 저와 한번 이야기해 볼까요?” 계속 말을 걸면서 친해지는 작업을 했어요.

Q. 예술 활동이 익숙하지 않은 사람에게 다가가기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

 

그냥 사람들이랑 케이크를 맛있게 먹어요. 처음에 주민분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하지 않았어요. 친해지는 과정이 ‘왜 예술이 살면서 멀어져야 하나요 가까운 우리 일상에서도 소비될 수 있는게 아닐까요?’라는 의미가 들어있거든요. 맛있게 먹는 케이크에 조금 더 예술적 행위를 넣는다던지 예술적 사고를 넣는 걸 하자 얘기하는 거죠.

 

친해지는 노력도 하면서, 동시에 소소하게 베이킹 수업도 하고 대화를 하면서 작은 이야기는 만들었어요. 근데 갈증이 생기더라고요. 왜냐면 그 공장 지대가 우리가 생각하는 문래동 작은 공장이 아니라 굉장히 스케일이 큰 그냥 제가 태어나서 이렇게 큰 공간을 처음 본, 정말 큰 2차 산업 공장 지대에요. 여기서 내가 소소하게 한두 명 공장 분들이랑 이야기 하는 것도 재미있겠지만, 나도 공장 스케일을 가져볼까 생각 한 거죠. 마침 공장마다 기업이니까 문화행사를 한다길래 사장님을 찾아갔어요.

 

그렇게 공장 스케일에 맞춰 문화행사를 하게 되었고, 문화행사에서 제가 했던 것도 케이크를 꾸미는 건데 제일 처음에는 30명씩 같이 꾸미면서 자기만의 이야기를 담았는데 여기에서도 한계가 있는 것 같아서 이거를 좀 더 재밌게 전달할 방법이 없을까 고민했어요.

 

놀이와 미술? 약간 예술적 놀이라는 형식으로 보완했는 데 어떻게 보면 엔터테이닝한 행사가 된 거죠. 당시 친해진 실무자들에게 제가 물어봤어요. 여러분이 정말 원하는 이야기를 담아보자. 저는 단기 레지던스 프로그램이고 재미있게 작업하기 위해서 여기 있는 거니까 정말 이걸 뭐하고 싶으냐 물어봤더니 단체미팅을 하고 싶대요. 그냥 삼삼오오 남녀가 모여서 그냥 놀자고 하시는 거에요.

 

맞아 맞아 예술이라고 얘기하는 것도 너무 거창하고 사실은 재미있자고 하는 거지! 저는 레지던스 작가고 프로젝트를 할 수있고 케이크라는 요소와 기획력이 있잖아. 기왕 하는 거 공장 스케일로 단체 미팅을 합시다 해서 공장에서 일하는 분들이 대부분 남자인데 20명 남성분들과 제가 부산 출신이잖아요 그 동네와 모든 부산에 있는 친구들 심지어 서울에 있는 친구까지 여성분들 15명을 일주일도 안 되는 시간에 다 섭외를 했어요.

 

그렇게 남자 20명과 여성 15명을 모아서 단체미팅을 한 거에요. 그때 모였던 사람들과 했던게 ‘무지개 타러갑니다’라고 뭔가 ‘무지개 공단 안에서 썸을 타보자’ 라는 의도를 가지고 재미난걸 한 거죠. 그냥 재미난 걸 하고 말면 미팅으로 끝나지만 저는 시각적으로 나타내고 싶었던 거에요. 그 나타내는 걸 참여했던 남성, 여성분들과 함께하고 싶었던 거죠.

 

그때 생각난게 우리가 남녀가 누군가와 그러니까 내일 당장 함께 있고 싶은 사람을 찾는다는 건 내일의 이야기이고, 내일이란 미래 잖아요. 미래를 담은 케이크를 만들어보면 어떨까 해서 남녀 분들을 모아 미래의 케이크를 만들어 보았어요.

Q. 일본 작가님과 함께한 <찾자>는 어떤 프로젝트였나요?

 

찾자는 조금 달라요 달콤한 무지개가 지역 주민들이나 사람과의 만남을 기본적으로 하잖아요. 서로 케이크 먹으면서 친해지고 같이 꾸미면서 뭘 꾸미고 싶은지 얘기하고 그런 단계를 거치면서 다양한 프로젝트로 이어져 다양한 사람들과 만나서 여러 가지 시도를 할 수 있었어요.

 

그렇게 일 년을 활동하니까 많은 이야기가 쌓이고, 아는 작가님이 일본에서 한국으로 레지던스를 하러 온 작가님을 소개해주신 거에요. 제가 기획자적인 성향이 있고 예술작업을 하니까 일본 작가랑 한 번 만나서 그 분이 하는 프로젝트 이야기 들어보지 않을래요? 해서 이어진 게 찾자 프로젝트에요.

 

그분의 작업은 어떤 지역에 가서 그 지역 사람들과 그 지역을 사진으로 담아요. 근데 사진을 30초에 한 장씩 찍는 거에요. 하루동안 나가서 30초에 한 장씩 찍은 사진을 3분 짜리 빠른 영상으로 만들어서 각자의 다른 시선을 경험하는 거죠. 그 일본 작가님이 일본에서 2011년부터 오랫동안 하셨다 보니 일본의 웬만한 전국을 돌고 한국에 와서 해보고 싶었을 때 저를 만난 거죠 그게 <찾자>로 이어졌어요. <찾자>는 그 미케도조라는 프로젝트를 한국에 맞춰서 변형을 한 거 였어요. 나름 열심히 살았죠.


PART 3. 나만의 이야기를 찾고, 그리다

 

 

Q. 나만의 이야기, 나만의 프로젝트를 이어가는 원동력

 

제가 예대를 가고 자유롭게 살았어요 석사고민 팽개치고 워킹홀리데이 가고 그걸 믿었어요. 내가 언젠가는 나만의 어떤것을 할 텐데 그걸 하려면 인생의 경험이 있어야 이야기가 있는 내공이 있는 사람이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으로 계속 나갔어요.

 

여행도 가고 사람도 만나고. 여행 갔을 때는 그냥 눈만 마주치면 말걸고 모든 걸 경험하려고 노력했는데 오히려 다른 친구들은 다 직장생활을 경험했잖아요. 근데 그걸 제가 제대로 안 해봤더라고요. 프로젝트로 길게는 해봤는데, 1년 프로젝트와 직장에 소속되는거랑 다르잖아요. 그래서 그게 하고 싶어서 사실 올해 직장을 다니고 있어요.

 

근데 저희 직장도 굉장히 자유로운 것같아서 이게 내가 원한 정도의 압박이 맞나 생각하긴 하는데. 인생에 경험이 있어야 내가 할 수 있는 이야기가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여행을 많이 했고, 이거는 ‘허용되지 않는 건가?’, ‘나는 그거를 깨뜨릴 수 있는 사람인가?’ 항상 고민하고 그런 것 같아요. 근데 결론은 좀 다른 것 같아요 반전일 수 있는데 그거를 꼭 해야만 좋은 작업인 건가? 너무 일탈이 아니고도 오히려 틀 안에 갇힌 경험도 좋은 작업으로 나올 수 있는 것 같아서 처음에 얘기했던 것처럼 마음이 흔들리고 있습니다.

 

Q. 혼자서 작업하는 건 어떠세요? 다양한 역할을 소화해야 되는데.

 

2015년부터 2016년까지 1년 반 정도는 도와주는 친구가 와서 같이 일하기도 했지만 사실 혼자였어요. 예술 기획인데도 혼자서 뭔가 해결하려고 하니까 너무 힘들더라고요. 내가 작가 카테고리에 들어가는지 기획 카테고리에 들어가는 건지 그걸 내가 카테고리화 시켜야 하는 것인지. 저 스스로 그런 경계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할 때가 있었어요.

 

제가 아트센터 작가공모 하기 전에 영국에서 인턴십을 했거든요. 그때 감독님이 소개해줬던 큐레이터가 부산에 와서 이 고민을 같이 나누었어요. 그분이 ‘너 혼자서 하는게 아니고 그런 경계를 만들지 말라 너가 뭐로 불리는건 중요한게 아니라 그냥 네가 재미있는걸 네가 믿고 있는 걸 계속하는게 중요하다. 그게 어떤 형태로 나올지 너무 고민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라고 얘기해 주시더라고요.

 

근데 한국에서는 예술가라면 전시를 해야 하고 뭔가 어떤 고정적인 형태로 그 틀 안에 들어가야 안정적인 작가생활을 하고 있다 혹은 기획자다 얘기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경계를 굳이 만들지 말고 꾸준히 하라고 하셔서 계속 했는 데 좀 한계를 느꼈어요.

 

그러면 한국 시스템을 역 이용해보자, 다양한 공모가 나잖아요. 작가공모만 본 게 아니라 큐레이터 공모도 보고 기획자 공모도 보고 그냥 다 봤어요. 내가 확보할 수 있는 예산과 확보할 수 있는 장소와 확보할 수 있는 이야기가 뭔지 봤고, 그래서 작년에 큐리에이터리얼 수업도 지원해서 듣고, 기획자 수업도 들었어요. 사실 협업 하는 문화가 갑자기 만들어질 순 없잖아요 그래서 작년에 제가 다양한 수업을 듣고 거기 있는 사람을 끌어내면 어떨까 하면서 프로젝트를 다양한 사람들과 하고 싶었던 고민을 그걸로 풀었어요.

 

Q. 그렇다면 요즘 가장 많이 하는 생각, 고민은 무엇인가요?

 

지금 제가 가장 관심 있는 아이디어, 키워드라고 하면 주민들 사람들 그리고 함께한다. 맛있는 케이크와 함께한다. 그것이 일상으로 들어오는데 조금 더 재미있었으면 좋겠다. 근데 그 재미가 좀 더 예술적 사고가 뭔지 고민하면서 재미를 좇았으면 좋겠다는 거에요. 그래서 제가 하는 <A Piece of Cake>는 감윤경만 작가여야만 하는건 아니에요. 제가 만들어온 판을 다른 작가들이 이용했을때 어떻게 될지 궁금하거든요. 그 생각을 더 발전시키기 위해서 협업 형태로 더 발전시키고 싶어요.

 

목표지점은 사람들이 카페에 가서 커피와 차 한 잔을 마시는데 조금 더 재미있는 사고가 테이블에서 이루어졌으면 좋겠거든요. 제가 호주에서 카페 바리스타로 일을 한 1년 정도 했었는데 그때 느낀게 거기는 이미 문화가 자연스럽게 카페에서 소비되고 일상화되어 있어요. 우리나라는 카페문화가 빠르게 들어오다 보니까 문화가 약간 데코레이션 처럼 카페에 붙어있는 느낌이에요 그래서 그거를 내가 매개자가 되서 어떻게 하면 그 적절한 지점을 찾을 수 있을지 저는 그걸 함께하고 싶은 사람들이라면 제가 어떤 카테고리 안에서 정의하지 않아도 함께하고 싶은 상황입니다.

 

근데 이미 그런 것들이 많이 이루어지고 있잖아요. 미술관에서 점심을 같이 작가랑 먹으면서 이야기를 한다 든지. 근데 그런 것들이 조금 더 디저트 산업과 카페에서 이루어졌으면 하는 거죠. 그게 저만 한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그저 카페문화가 좀 더 활발해지는데 제가 한 역할을 했으면 좋겠어요.

Q. 카테고리로 정의할 수 없는 위치에서 갈등하고 고민할 때 나만의 대처방법은 무엇인가요?

 

제가 운이 좋다고 생각하는 것 중 하나가 저보다 인생선배인 친구들에게 제 고민을 물어볼 수 있었어요. 인생에 증명할 것이 없는 연배인 분들을 일찍이 만난 것 같아요. 그분들을 보면서 그거에 대한 대처방법을 생각하는데, 한 번은 일본작가님과 이야기할 기회가 있었는데. 그때도 갈등하고 있었어요.

 

몇 년 전이니까 나는 도대체 뭐가 될 것인가 예대를 나왔는데 큐레이터가 되어야 하나요? 저는 어떻게 해야 하죠? 그 다음은 뭐가 되어야 하죠? 막 질문했는데. 그분이 대답이 ‘다해봐’ 이러시는 거에요. ‘하고 싶은게 있으면 하나씩 하면 되지’ 이러셨어요. 친구들이나 2~3년 선배님들한테 얘기했을 때는 실제적인 다음을 위한 전략을 알려줬을텐데 말이죠.

 

또 한 번은 짧은 시간 안에 80대 작가님들 인터뷰를 하면서 그들과 이야기할 시간을 가졌는데. 그분이 ‘네가 워낙에 이렇게 사람들이랑 이야기하는 것도 좋아하고 친화력도 있고 하니까 큐레이터도 하면 되겠네’ 하시기에 저는 작가도 하고 싶은데요 말씀드렸더니 ‘그럼 작가도 하면 되겠네’ 이렇게 대답 하시더라고요. 그분은 제가 말하는 것들이 지나간 고민이고 지나간 시간이잖아요.

 

아무렇지 않게 ‘네가 왜 그것을 자꾸 정의하려고 하니 그냥 네가 생각하는 것을 열심히 해’ 라고 힘이 빠질 정도로 쉽게 얘기를 해주시더라고요. 근데 이게 저의 대처 방법인 것 같아요. 저도 계속 흔들려요 진짜 무슨 요동치는 파도 위에 있는 나뭇조각 위에 있다는 느낌이 들 때가 많은데 그냥 재미있는 걸 하루하루 내가 할 수 있다 생각을 하고 그걸 원동력으로 살다 보면, 지나고 나면 나도 그들처럼 그렇게 아무것도 아니었던 과거로 보이겠지 하고 그렇게요.

 

그리고 나뭇조각위에서 멀미가 날 때마다 이메일을 시작해요. 저 또 흔들리고 있는데 요즘 이러고 있어요. 이렇게 보내면 다그쳐주시기도 하고 근데 제가 했던 작은거에 만족을 하니까 그렇게 연연할 필요가 없겠다 싶어요. 제가 스스로에 대한 기대치가 굉장히 높으면서도 굉장히 낮거든요. 예를 들어 요즘 거기 카페가 핫 하다던 데 거기 가서 커피 한 잔을 마시면서 성취감을 느껴요. 제 또 다른 대처방법은 작은 거에도 ‘그래 작은 것들이 쌓여서 이렇게 커지는 거지 한번에 크게 될 수 없지’ 라고 생각하는거지 않나 싶어요.

 

Q. 할 수 있는 것을 해볼 수 있는 기회가 정말 많은 것 같아요.

 

요즘은 워킹홀리데이 제도도 있고, 여행도 쉽게 갈 수 있고요. 이것저것 경험 하면서 생각하고 할 수 있는게 너무너무 많은 것같아요. 저는 오히려 한계에 계속 부딪혀서 정형화된 단계를 거치진 않았거든요. 무작정 무엇이든 움직였던 그것이 가장 큰 스스로를 위한 교육이었다고 생각을 해요, 요즘은 더군나나 인터넷이 너무 많이 발달 되어있고.

 

제가 일본 작가님과 일할 때도 번역기로 일했거든요. 통역 어플 이런게 있어요. 이제 핑계거리가 사라진거죠. 뭐든지 그냥 하면 될 것같아요. 매체나 공부할 거리도 많고, 여행도 쉽게 갈 수 있고, 틀 없이 그냥 무작정 뭐든지 하면 자기의 1인 미디어도 만들 수 있는 거니까.

 

근데 금전적으로 해결이 안 되면 정말 아무것도 할 수 없어서 저도 케이크 프로젝트를 좀 더 하고 싶은데 일단 먹고 사는게 보장이 안 되는 부분에서 부딪히는 거거든요. 상황을 탓하는 이야기일 수도 있지만 저도 그걸 되게 싸워오고 있는데 일단 두들겨볼 수 있는 곳이 많기 때문에 이건 저 스스로 한테도 얘기하는 건데 금전적인 것도 핑계이지 않을까 계속 핑계들에 부딪히고 있거든요. 그래서 일단 나가죠.

 

Q. 영국 인턴십도 그런 의미에서 다녀오셨던 건가요?

 

영국 인턴십도 한국에서 프로덕션 보조로 일하고 있을 때 다른 팀에 초청된 감독님이 계셨어요. 그 분 리서치한 내용을 봤는데 제가 너무 좋아하는 분야고 배우고 싶은 거에요. 감독님한테 실례가 되면 안 되니까 그 우리 한국팀 큐레이터 언니한테 제가 여기 너무 관심 있어서 일 시켜주면 안 되냐고 했었어요. 근데 이미 다 정해져있었기 때문에 그럼 제가 그분이 따로 서울투어를 할때 자원봉사 할게요 물어봤죠.

 

작가님이랑 서울 투어하면서 하루 동안 열심히 재밌게 놀고 조심스럽게 인턴십 공모 언제 나오나요? 저 할 수 있을것 같아요 여쭤봤죠. 그게 페이드 인턴십이었거든요. 월급을 주는 거였어요. 어렵겠다 생각했는데 그 감독님이 봤을 때 제가 열정적이잖아요. 그리고 젊은 친구가 자원봉사로 서울구경에 통역도 다하고 하니까 좋게 보셔서 그러면 우리 인턴쉽 날짜를 잡아볼까 바로 이렇게 하신 거에요. 제가 저만의 고정관념으로 나는 석사도 없고 일류대가 아니고 이런 고민이 엄청나게 많았는데 문을 두드렸더니 되더라고요.

 

요즘 웹사이트도 많아요. 준비해서 이메일 보내요. “나 이런 프로젝트를 하는데 나 이번에 멜버른에 가서 같이 할 수 있을까?” 이런 것도 물어보고 그거를 다 Yes 하는 게 아니에요. No도 많이 하거든요. 처음에는 너무 상처받았지만, 그 No가 잘못 돼서 No가 아니라 그냥 나의 상황이 너를 받아줄 수 없는 No라는 걸 알게 되니까 아 그러면 우리 다음 기회에 방안을 한번 마련해보자 그렇게 되죠. 컨택하는 게 처음에는 상처를 받았는데, 그냥 우리가 그저 합이 안 맞을 뿐이지 라고 생각하면서 그런 두려움이 없어진 것 같아요.


PART 4. 공식질문

“사회에서 예술의 모습, 예술가로서 나의 역할은?”

 

 

제가 요즘 하는 일이 아이들이랑 같이 하는 게 있어요. 예술교육은 아니지만 아이들을 볼 일이 많은데 아이들 자체가 창의적인거, 예술로 이어질 수 있는 요소를 많이 갖고 있음이 보여요. 예술이 사회에 꼭 필요하다는 것보다 우리는 이미 태어났을 때부터 시각적인 표현이나 이런 걸 어떻게 하는지 습득하고 있고 그게 당연한 우리의 언어라고 생각을 해요.

 

근데 시간이 지나고 이 예술언어를 잃게 되는 거죠. ‘이걸 어떻게 다시 사용할 수 있을까?’ 고민하고 있어요. 사람은 원래 그 언어를 사용하던 사람이니까 사회에 예술이 이래야 되고 그게 아니라 그냥 쓸 수 있는 걸 왜 안 쓰나요 그런 생각이에요.

 

사람들이 기본적으로 가진 그 언어를 얼마나 잘 쓰느냐에 따라 사회에서 예술가로 보여지느냐 아니냐인 것 같아요. 그 언어를 다양한 방법으로 쓴 걸 보여주는 사람이 예술가인 거죠. 저 예술가는 저렇게 이렇게 했네 이사람은 이렇게 표현했네 정도이지 그게 특별한 걸로 포장되는 건 아니지 않나 생각해요.

 

제 스스로 좋은 아티스트가 아직 되지 않았다는 생각을 갖고 있고 내가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 고민하는 단계예요. 그래도 스스로 예술, 시각적으로 보여지는거에 집중하겠다고 한 사람들은 조금 더 새로운 거를 이야기 해야죠. 새로운 거를 이야기하는 역할이 예술가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사회구성원 사이에서 조금 특이하게 보여지는 거지, 위에서 보면 우리 모두가 각자 다양한 색깔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