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

프로이트는 자신의 저서 [문명 속의 불만]에서 “유대인은 각자 자기가 사는 문명에 크게 기여했다”는 말을 남긴다. 유대인은 그들이 흩어져 사는 각각의 나라에서 차별당하고 박해당하는 과정을 통해 각 나라의 결속력을 강화했다는 것이다. 이는 단순히 내부의 결속을 위해 외부의 적을 설정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라는 사실과 등치가 아니다. 프로이트의 지적은 타자와 자신이 다른 이유를 설명하는 용어 또는 이론 자체가 허구적이며 사후 구성적으로 이루어진다는 사실과 관련된다. 조금의 비약이 허용된다면 우리는 MZ에 대해서도 프로이트와 비슷한 결론에 도달할 수 있다.

 

1982년부터 1996년 사이에 태어난 밀레니얼 세대를 뜻하는 M과 1997년부터 태어난 세대를 뜻하는 Z세대를 묶은 MZ세대는 20-30대를 언급하는 기사에 거의 필수적으로 등장하게 되었다. 기업의 각종 광고, 신제품 출시 등을 홍보하기 위한 기사 제목은 “MZ를 잡아라”의 변형과 다름없다. 그뿐만 아니라 각종 커뮤니티에서 MZ 신입사원의 만행 등의 타이틀을 달고 올라오는 무수히 많은 글은 SNL의 MZ 오피스라는 콘텐츠로 실물화되었다.

기업의 전유물로서의 MZ세대

MZ세대의 당사자들은 때로는 자조하며, 때로는 유쾌하게 MZ에 대한 관심을 즐기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요즘 애들은 버릇이 없다”는 기성세대의 말을 보기 좋게 포장하기 위해 새로운 세대를 새로운 용어로 정의하는 현상이야 이미 오래된 일이지만, MZ세대는 단순히 그것만으로 환원될 수는 없어 보인다. MZ는 단순히 세대 구분을 위한 용어가 아니기 때문이다.

 

2018년 말에 출간된 [90년생이 온다]를 기점으로 MZ세대에 대한 관심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이 책에서 말하는 소비층과 노동자로서 90년대생의 특징은 현재 MZ세대에 대한 인식(워라밸을 중시하고 정치적으로 올바른 제품에 대한 소비를 요구한다)과 다르지 않다. 2000년대 초반에 태어난 세대까지 확장해 주요 경제 활동 인구로 호명된 MZ세대를 사로잡으려는 기업들은 분주해 보인다. 이즈음에서 당혹스러운 건 MZ세대를 호명하는 방식이 지독하게도 기업 중심적이라는 것이다.

 

오늘날 한국에서 에어팟을 꽂아야 능률이 올라가는 직원을 대표적인 MZ세대 노동자로 인식하는 것은 조금 당황스러운 감이 있다.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컨베이어 벨트에 끼여 돌아가신 고 김용균 노동자 또한 MZ세대에 속한다. 그러나 인터넷상에서 MZ를 호명하는 방식은 소위 무개념 신입사원, 또는 인스타그램에 열광하며 FLEX 소비하는 젊은 층을 가리킨다. 전자든 후자든 그것이 세대론으로 환원될 수 있는지 또한 문제지만, 우리의 논의는 MZ가 과연 세대론으로서 기능하고 있는지에 초점을 맞추고 싶다. 기업들이 목 놓아 부르는 MZ세대에서 탈선한 MZ를 호명하는 일이 절실하다.

MZ, 그들 안의 계급적 세대론

우선 MZ세대는 단순히 20~30대를 지칭하기 위한 세대론이 아니다라는 논지에서부터 출발하고 싶다. 여러 기업이 MZ세대를 소비 대상으로만 다루는 것은 기업 입장에서 지극히 합리적이고 당연한 방식이다. 그러나 이러한 여론이 정책 결정 과정 또는 20~30대에 대한 사회적 인식으로 자리 잡는 것은 엄연히 다른 말이다.

 

가령 MZ세대는 FLEX 문화를 즐긴다는 편견에 대해 생각해 보자. 20~30대 사이에서 사치품이라 일컬어지는 제품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것을 MZ세대는 FLEX문화를 즐긴다로 무조건 받아들이는 방식에는 두 가지의 맹점이 있다. 먼저 생각해 볼 것은 MZ세대의 FLEX 문화를 단순히 MZ세대의 허영심 때문이라고 결론지을 수 있는가 하는 문제이다. 혹시 자차/자가/가족으로 대표되는 어른의 세계에 진입하기 요원한 현실 속에서, 가장 쉽고 간편하게 어른의 세계를 맛보고 싶은 이들의 수요를 기성세대가 반성 없이 조롱하는 것은 아닐까? 이처럼 MZ는 복잡하고, 정치적이고, 계급적인 문제를 표백하는 마술 같은 용어처럼, 정치적인 사안을 정치화하지 않기 위한 수단으로 소비될 가능성이 높다.

 

또 다른 문제는 사치품을 구매하지 않는 MZ와 관련된다. 이는 특정 세대를 일반화하지 말라는 표준적인 대응 방식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다. 기업에서 소비층으로 MZ세대를 호명할 때, 사치품을 구매하지 않는 20-30대는 언제나 제외된다는 사실에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단 뜻이다.

 

지난 2월에 개봉한 영화 <다음 소희>는 특성화 고등학교 졸업을 앞두고 현장실습을 나간 소희의 이야기를 다룬다.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바로 취업한 소희는 Z 세대에 속하지만, 흔히 말하는 MZ세대는 아니다. 소희는 오마카세를 즐기지도, 호캉스를 떠나지도 않는 비-소비층의 노동자다. 소희를 비롯한 비-소비층에 속하는 MZ세대는 그저 나이 어린 노동자에 불과하다. 안정적인 생산 업무 층에 진입하지 못한 어린 노동자들은 사회에서 구분한 자기 또래의 세대로부터도 소외될 우려가 있다. 결론적으로 MZ라는 용어는 세대론을 통해 계급론을 소거하려는 열망이 담긴, (역설적으로) 가장 계급적인 세대론이라는 기묘한 지위를 점하고 있다.

영화 <다음 소희> 스틸컷 Ⓒ 네이버 뉴스
애플과 나이키의 성소수자 프라이드 에디션 Ⓒ Apple

오늘도 일하는 MZ

한편 MZ세대의 노동자성에 관한 예민한 이야기도 다룰 필요가 있어 보인다. 일명 MZ 노조라고 불리는 새로고침 노동자협의회의 관계자 인터뷰에 따르면 이들은 노조 활동을 힙하게를 캐치프레이즈로 삼고 있는 듯 보인다. 이들은 MZ세대가 노동조합에 대해 반감을 품는다는 것이 기존의 노동조합의 폭력적인 행태라고 분석한다.

 

그런데 일부 MZ세대가 노동조합에 대한 반감을 지닌 것은 불법적이고 폭력적인 시위 때문이 아니라 MZ세대 자체가 태어날 때부터 디지털 문화와 신자유주의를 체화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MZ세대에게 능력을 분배하는 것만큼 공정한 일은 없다. 귀족노조라는 얼핏 모순적인 단어가 20~30대에 의해 전유되고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는 듯 보인다. 자본주의의 매력은 능력주의라는 열차 안에 탑승할 수 있을 것이라는 환상에 있다. 결코 한 걸음 떨어져 바라볼 수 없도록 달리는 열차와 탑승객을 일치시키는 마술 같은 환상이 자본주의의 한 축을 구성한다.

 

MZ세대는 태어날 때부터 인터넷과 함께한 최초의 세대다. 게다가 현시대는 이러한 세대가 경제, 사회, 문화의 주요 활동 인구로 진입한 최초의 시대이다. 삶의 실제보다 드라마 속의 부유층 주인공을 더 많이 보고 자란 세대에게 어떻게 현실적인 노동자의 삶을 마주하라고 일방적으로 요구할 수 있을까? 이 물음표는 요구할 수 없을 것이라는 비유적 표현으로도, 혹은 진짜로 방법을 묻는 의문문으로도 읽힐 듯싶다. 여기에  대해 논하기 위해서는 MZ세대의 착한 소비라고 칭해졌던 PC 주의를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기업이 요즘 지속가능성, 에코프렌들리, 무해함 등을 마케팅 핵심 키워드로 삼는 현상은 MZ세대에게서 출발했다. 기업이 내세우는 가치를 고려하며 소비하겠다는 MZ세대의 PC주의에 대한 양극화된 반응은 지루할 만큼 반복적이다. PC주의에 부정적인 사람은 차별주의자로, PC주의에 긍정적인 사람은 지루한 훈계를 늘어놓는 훈장으로 설정하는 구도에 대해 한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그러나 그보다 더 유의해 볼 문제는 Political Correctness에는 정체성만 포함될 수 있을 뿐 노동 계급에 관한 것들은 포함될 수 없다는 사실이다. PC주의에 충실히 호응하고 있는 디즈니, 애플, 나이키 기타 등의 기업에서 내건 무지개와 페미니즘적 가치는 퀴어-여성에 대한 차별을 금지할 것을 강력하게 요구한다. 이처럼 기업들은 당연하고도 훌륭한 가치를 내세우고 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어딘가에 자리한 이들 기업의 공장에서는 많은 미성년자가 노동 착취의 경계에서 시름하고 있다. 그런데도 듣기 좋은 이야기만 재생산하는 기업들에 대한 긍정적인 이미지는 노동자 계급과 관련된 이야기를 소거시키며, MZ세대의 정치적으로 올바른 소비는 유령처럼 기업들 주위를 떠돈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MZ에 속하지만 흔히 말하는 MZ세대는 아닌 노동자들에 대한 관심을 둘리가 만무하다. MZ세대에 대한 조롱과 사회적 편견에는 세대 자체를 일반화시킨다는 표준적인 비판보다 더 복잡한 맥락이 숨어 있다. MZ세대에 대한 조롱과 사회적 편견은 정치적/계급적 담론을 소거한다. 도입부 프로이트의 이야기를 다시 떠올려 본다면 MZ세대에 대한 편견은 실제로 MZ세대가 그러하다는 이유가 아닌, 편견을 반복적으로 생산하며 얻게 된 정치적 효과를 위해 사후적으로 구성된 이유에 불과하다.

우리는 이쯤에서 MZ세대가 탁월하게 수행하고 전유하는 자조적 농담에 대한 힘을 발견할 수 있다. 자기 자신을 부정적인 가치와 일치시키며 웃음을 발생시키는 MZ세대의 자조적 농담은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많이 사용되는 코드다. 다른 세대가 사용하는 MZ세대라는 용어가 정치적 맥락이 표백된 채 기업 중심적으로 존재한다는 사실은 때때로 이러한 자조적 농담의 구조를 통해 밝혀진다.

 

MZ세대의 FLEX 문화에 대해 다루는 기사에 아래 자신은 MZ세대에서 탈락했다는 자조적인 댓글, 또는 4월 중순경에 커뮤니티에서 유행했던 거지방은 MZ가 단순한 세대론이 아니라 탈락 또는 탑승할 수 있는 계급적인 세대론임을 직접적으로 보여 준다. 복잡한 정치적 담론을 유머로 구출하는 지극히 디지털 네이티브적인 방식으로 우리는 다시 MZ세대의 정치적 담론을 복원시킬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