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도쿄 아사쿠사(Asakusa)에는 ‘와이어드 호텔(Wired Hotel)’이 있다. 도심 한복판이 아닌, 번화가에서 살짝 떨어진 곳에 위치한 이 호텔은 스스로를 ‘로컬 커뮤니티 호텔(Local Community Hotel)’이라 부른다. 이곳에서는 아사쿠사 이웃들의 일상, 다시 말해 진짜 도쿄의 라이프스타일을 경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호텔은 외지인 혹은 관광객을 위한 공간에 가깝다. 지역에 실제로 머무르는 사람이 일상적으로 드나드는 곳은 아닌 탓이다. 그런데 어떤 이유로, 와이어드 호텔은 지역 사람들과 상인들이 그들의 ‘이웃’이며 그들의 라이프스타일을 체험할 수 있다고 자신 있게 말하는 걸까?
-와이어드 호텔의 독특한 디자인이나 어메니티는 모두 지역 장인과 협업한 결과물이다. 체크인을 위해 로비에 들어서면 아사쿠사 지역에서 활동하는 예술가들의 다양한 작품을 볼 수 있다. 로비를 일종의 쇼룸으로 사용하는 것이다. 호텔은 1마일 가이드북(1mile guidebook)을 통해 투숙객을 지역 상점으로 이끈다. 본국에서부터 들고 가는 가이드북에서는 찾기 어려운, 아사쿠사만의 정취가 가득한 곳으로 관광객을 유도하면서 도쿄 사람들의 일상을 엿볼 수 있도록 만들어준다. 그뿐만 아니라 동네 티컴퍼니의 차를 웰컴티로 제공하고, 도쿄 바이크(Tokyo Bike)와 협업해 손님에게 자전거를 대여해주는 등 호텔은 지역과 관광객을 연결해주는 매개체 역할을 한다.
플레이스캠프 제주
“Not Just a Hotel, It’s a Camp”
‘플레이스캠프 제주’ 홈페이지: https://www.playcegroup.com
지역 주민을 호텔로 끌어들인 이들은 한국에도 있다. 바로 제주 동쪽에 자리 잡은 ‘플레이스캠프 제주’. 사실 호텔이라는 수식어로 설명하는 건, 그들에게 실례일지도 모르겠다. 플레이스는 ‘Not a Just Hotel, It’s a Camp’를 표방하고 있기 때문이다.
“마음껏 웃고, 맛있게 먹고, 활기차게 걷고, 음악을 즐기며, 전혀 새로운 사람을 사귀는 공간. 그리고 온전히 당신 자신일 수 있는 곳”
– 플레이스캠프 제주 홈페이지에서 발췌
플레이스로의 진입 장벽은 높지 않다. 일반적인 호텔이 한 동의 건물 안에 모든 것을 넣는 폐쇄적인 방법을 선택했다면, 플레이스는 6개의 건물에 숙박 시설, 카페, 레스토랑, 편집숍 등의 F&B를 분산해 넣은 덕분이다. 유명 핫플레이스 ‘카페 도렐’이나 다이닝 라운지 ‘스피닝울프’ 등이 독립적으로 존재하기 때문에 관광객이 아닌 제주도민도 부담스럽지 않게 플레이스를 찾을 수 있다. 가게를 찾은 사람들에게 자연스럽게 플레이스라는 공간을 노출할 수도 있다.
투숙객이 아니더라도 누구나 신청할 수 있는 액티비티 프로그램도 진행한다. 감귤을 직접 따서 청을 만들거나 바닷가에 앉아서 하는 명상, 제주 슬로우 투어 등은 도민이라도 관심 가질 만한 주제일 것이다. 몇몇 프로그램은 도민에게 투숙객과 같은 할인 가격을 적용해 주기도 한다. 과감하게 비용을 사용할 수 있는 여행 중이 아니더라도 일상 속에서 플레이스의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게 부담을 덜어주는 셈이다.
플레이스가 위치한 제주도 성산읍 고성리와의 관계도 긴밀하게 유지하는 중이다. 객실에 비치되어 있던 소화기를 새로운 디자인으로 바꾸면서 생긴 279개의 여분을 지역 사회에 기증하는가하면, 관광지가 아닌 마을 구석구석을 둘러보고 싶은 투숙객에게 자전거를 대여한다. 이런 노력 덕분일까. 상대적으로 주목받지 못했던 성산읍 근처의 관광지는 요즘 새로운 제주 여행지로 떠오르며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다.
광장, 교류가 이루어지는 공간
그중에서도 가장 눈길이 가는 장소는 너른 광장. 평소에는 텅 빈 공간이지만, 날씨가 따뜻한 주말이 되면 사람들로 북적인다. 이곳은 때에 따라 젊은이들을 위한 축제의 공간이 되기도, 근처 동네 주민들과 관광객이 어우러져 함께 부대끼는 장터로 변하기도 한다.
1. FESTIVAL
“제주가 더 좋은 이유. 축제는 플레이스의 일상입니다.”
사실 수도권을 벗어나면, 맥주 축제나 EDM 페스티벌과 같은 젊은 세대의 축제를 접하기 어려워진다. 제주에도 다양한 문화행사가 생겨나고 있지만 대규모 페스티벌을 개최한다는 건 부담스러운 일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플레이스는 과감하게 제주도의 축제 문화를 만들어 나가는 중이다. 제주 최초의 맥주 페스티벌 ‘아일랜드 페스트 짠(2017)’을 시작으로 EDM 페스티벌 ‘아일랜드 페스트 밤(2017)’과 컬러 파티 ‘아일랜드 페스트 밤(2018)’을 개최했고 앞으로도 꾸준히 이어나갈 것이다.
[아일랜드 페스트 짠 2017 애프터 필름]
2. 골목시장
“다양한 골목시장을 이곳 제주에서 만나보세요.”
골목시장 인스타그램 : https://www.instagram.com/golmok_market/
그런가 하면 매주 토요일 오후에는 플리마켓 ‘골목시장’이 진행된다. 광장과 6개의 건물 사이로 난 골목 이곳저곳에 판매하는 아기자기한 소품을 보고 있으면 시간 가는 줄 모를 정도.
다양한 플레이어와의 협업이 이루어지기도 한다. 국내 최대 라이프스타일 마켓 ‘띵굴시장’과의 컬래버레이션을 진행해 제주에서 쉽게 만나기 어려운 셀러들을 참여시켰고, ‘싸바이마켓’과의 협업을 통해 수공예 아트 작품으로 유명한 치앙마이 마켓을 제주도에 재현하기도 했다.
그 외에도 버스킹, 북 콘서트, 짠 페스티벌과 함께 골목시장의 콘텐츠를 다양하게 만들어, 이미 참여했던 사람이라도 재방문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두었다. 날씨가 궂은 날에는 앞에서 소개한 스피닝울프에서 마켓을 열기도 한다. 골목시장과 관련한 공지는 골목시장 인스타그램에서 확인할 수 있다.
페스티벌과 플리마켓. 어쩌면 꽤나 익숙한 광경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플레이스가 특별하게 느껴진 건, 이 모든 것들을 도민 혹은 주민과 함께하려는 시도를 계속하고 있기 때문이다.
가장 인상 깊었던 건, 골목시장에서 파전을 팔고 있는 부녀회의 모습이었다. 보통 제주의 플리마켓이라 하면 젊은 20대 여성의 이미지를 떠올리게 된다. 그러나 고성리 부녀회를 셀러로 참여시키고, 어쩌면 기존의 플리마켓과 이미지의 결이 완전히 다를 수 있는 파전을 판매함으로써 근처 주민들에게 골목시장은 ‘동네잔치’와 같다는 이미지를 심어주었다. 아마 20대와 관광객 위주였던 플레이스 고객의 외연이 전 연령대의 동네 주민들까지로 넓어지는 기회가 아니었을까 싶다.
“기획 단계부터 공동의 커뮤니티와 액티비티가 이루어지는 광장을 만드는 것이 중요했다. 이에 6동의 건물이 광장을 둘러싸고 내려다보는 형태로 구성했다. 압도적이거나 튀는 건물보다는 심플한 무채색 톤의 건물로 존재감이 드러나지 않도록 했다. 이는 플레이스 캠프 제주의 다양한 콘텐츠를 통해 더욱 많은 사람들이 위화감 없이 방문하기를 바라는 의도이기도 했다. 편집숍과 F&B가 모여 있는 건물 사이를 일부러 골목길처럼 만들어 더욱 자연스럽게 교류가 이루어지도록 했다.”
– 플레이스캠프 제주 건축가 이영조의 월간 디자인 인터뷰에서 발췌
상생과 지속가능성
요즘 관광 업계의 키워드는 ‘로컬’이다. “여행은 살아보는 거야”를 외치는 에어비앤비는 여행자가 로컬라이프를 즐길 수 있는 다양한 방법들을 연구 중이며, 전 세계 부티끄 호텔은 로컬 아티스트와 문화를 공간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노력하는 중이다. 여행자들도 가이드북에서 추천하는 음식점이나 카페가 아니라 ‘현지인(로컬 피플)이 추천하는’ 곳들을 부러 찾아간다. 그야말로 로컬전성시대인 셈이다.
그러나 유행은 짧다. 어떤 방식으로 지역 사람들과 커뮤니케이션하는지에 따라 진정성이 판가름 날 것이다. 정말로 지역을 중요시할 때, 그래서 지역의 사람들과 상생하는 법을 연구할 때 다른 곳과의 차별점을 가질 수 있지 않을까. 그것이 공간이든, 서비스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