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EN ROOM 2nd: Creative Juice
After-article | Session 4
EBS 딩동댕대학교 이슬예나
마음스튜디오 이달우
각종 플랫폼을 통해 쏟아지는 인사이트를 바라보다가 문득 질문이 떠오른다. 매력적인 콘텐츠는 어떻게 탄생하는 걸까? 나도 한번 만들어볼 수 있을까? 풍요로운 콘텐츠의 시대이니 보고 듣고 즐길 것은 배부를 정도로 주어지지만, 스스로 시도하기에는 작은 힌트조차 주어지지 않아 갈증이 느껴진다. 오픈룸의 두 번째 날, 매력적인 콘텐츠와 디자인에 대한 갈증을 해결해줄 두 연사가 첫 세션에 초대되었다. 바로 EBS <자이언트 펭TV>와 <딩동댕 대학교>를 연출한 이슬예나 PD, 디자인 브랜드 마음스튜디오를 운영하는 이달우 대표다.
EBS 딩동댕대학교
어른도 A/S가 필요하니까, 딩동댕
이슬예나 피디는 그야말로 EBS의 넥스트 레벨을 보여준 피디다. 그간 EBS에는 공익성이 요구되었다. 그들이 가진 선한 이미지는 정체성이었지만 동시에 갑갑한 단점이기도 했다. 일관된 콘텐츠 구성에선 신선함을 찾기 힘들었고, 그저 어린아이들만의 전유물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 가운데서 이슬예나 피디는 뽀로로를 이기기 위해 찾아온 자이언트 펭귄을 섭외하고, 사회생활에 몸과 마음이 지친 어른이들을 <딩동댕 대학교>로 이끌었다. 처음엔 EBS가 어떻게 된 건 아닐까 의심하며 봤다면, 이제는 자연스레 그들의 매력에 스며들었다.
어떻게 이런 콘텐츠를 기획했냐는 물음을 정말 많이 받았는데, 저는 그냥 사랑받는 콘텐츠를 만들고 싶었어요. 사람들이 좋아하는 콘텐츠에서 위로든 감동이든, 작은 무언가를 얻길 바랐고요.
– 이슬예나
기획 의도를 묻는 말에 이슬예나 피디는 “방송국의 수가 증가하고 다양한 디지털 플랫폼도 등장했다. 그와 동시에 내가 지금까지 만들었던 콘텐츠가 과연 사랑받고 있는지 확신이 들지 않았다”라며 사회를 이끄는 2030 세대가 자발적으로 찾아보고 사랑을 주는 콘텐츠를 기획하고 싶었다고 답했다. 더 나아가 ‘Think Beyond ____’를 강조한 그는 새로운 콘텐츠를 위해 자신이 뛰어넘은 네 가지의 벽을 소개했다.
이슬예나 피디가 가장 먼저 마주한 벽은 미디어(Media)다. 그에게 공영방송이란 단지 선한 영향력을 소유한 것만이 아니라 공중이 봐주는 방송을 의미했다. 정해진 시간에 맞춰 텔레비전 앞에 앉기보다 언제 어디서나 웹 콘텐츠를 즐기는 대중의 성향을 파악한 이슬예나 피디는 TV라는 플랫폼에서 과감히 벗어나 유튜브로 향했다. 자신의 제작물을 보고 즐겨줄 더 많은 타겟을 노리기 위함이었다.
연이어 그가 뛰어넘은 벽은 바로 콘텐츠(Contents). 이슬예나 피디는 유튜브가 텔레비전을 누르고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로 제작자와 출연자의 경계가 모호함을 꼽았다. 아무리 화려한 것이라고 진짜가 아니면 소용없다. 현재는 잡다한 구성보다 캐릭터가 중심인 콘텐츠, 캐릭터의 퍼스널리티가 돋보이는 콘텐츠를 만들어야 사랑받는 시대임을 강조하기도 했다. 즉 시공간의 투자가 막대한 텔레비전의 한계에서 벗어났다면 캐릭터만의 퍼스널리티를 콘텐츠에 덧입혀야 한다는 것. 그의 말처럼, 가식 없이 자연스러운 반응을 보여주는 캐릭터들은 대중과 끈끈한 애정 관계를 형성했다.
이슬예나 피디는 기대감(Expectation)이라는 벽도 언급했다. EBS에 기대되는 이미지를 벗고자 의외성을 무기로 선택한 것이다. EBS 사장의 이름을 부르며 경고하는 ‘펭수’와 매운맛 부리로 가감 없는 독설을 내뿜는 ‘붱철’, 나긋한 목소리로 거친 말을 하는 ‘낄희 선생님’까지. 당연히 착한 행동만 할 것이라는 기대를 뛰어넘은 특별한 캐릭터는 무수한 콘텐츠들 사이에서 대중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때로는 그들의 말이 명언이 되고 위로와 웃음 버튼까지 되어줬다. 다만 이슬예나 피디는 “무조건 튀어야 의외성이 된다는 의미는 아니다. 늘 본질에 발을 딛고 새롭게 하는 의외성을 추구해야 한다”라며, 어른이들을 위로하고 응원하고 싶다는 프로그램의 본질에서 벗어나지 않은 선에서 자유도를 높혔다고 설명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매력적인 콘텐츠와 캐릭터를 기획하기 위해선 메이커(Maker)의 벽을 뛰어넘어야 한다고도 말했다. 이슬예나 피디는 “어떤 콘텐츠든 연출자 한 명이 전부를 만들 수는 없다. 모든 것을 자신의 손 아래 두고 통제하려 든다면, 콘텐츠는 경직되고 지루해진다”고 강조했다. 이는 대중에게도 적용된다. 방송을 본 후 마땅히 느껴야 할 감정이 무엇이라며 제시하는 것보다, 스스로 답을 찾을 수 있도록 판을 벌이는 것이 더 좋은 기획일 테니까. 이슬예나 피디는 “지금까지 나눈 어떤 말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실행하는 것’이다. 일단은 제작에 뛰어들고 부딪히면서 많은 것을 깨달아가길 바란다”라며 이야기를 마무리했다.
마음스튜디오
따뜻하다 못해 손이 덜덜 떨리는 디자인이 있을까? 여기 있다
한편, 부드럽고 아늑한 분위기의 1504호에서는 디자인 브랜드 마음스튜디오의 이달우 대표가 호스트로서 대화를 이끌었다. 마음스튜디오는 공간, 그래픽, 상품, 제품 등의 프로젝트에 사랑과 평화를 전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디자인 그룹이다. 2012년 ‘딸기 키즈 뮤지엄’ 프로젝트를 맡으며 본격적으로 공간 디자인을 시작했으며, 지금은 그래픽을 기반으로 제품 및 공간 디자인을 진행하고 있다.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디자인을 주로 해요. 아이들이 좋아하는 디자인은 모두가 좋아할 것이라는 믿음이 있거든요.
– 이달우
이달우 대표는 아이들이 좋아할 디자인을 어른의 공간에도 불어넣는다. 어린 아이의 마음을 사로잡는 디자인이라면 어른의 마음도 움직일 것이라는 확신이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마음스튜디오 내부에서 진행한 프로젝트는 아이들이 중심이 된 공간이 주를 이루지만, 그동안 디자인해온 외부 공간을 보면 남녀노소 누구나 머물고 싶은 공간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달우 대표는 “아이들이 보는 레벨이 있고 어른들이 보는 레벨이 있다”라면서 “두 관점을 서로 충족시켜주면 좋겠다는 마음에서 디자인을 적용하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문소아과’라는 병원 디자인이 그 예다. 마음스튜디오는 아이들이 아프지 않고 병원에 덜 오면 좋겠다는 소아과 선생님의 마음을 담아 공간을 꾸몄다고 한다. 진료 공간에 TV를 없애고 대기 공간을 분리해 어른과 아이 모두가 만족하는 디자인을 진행한 것이다. 또, 벽에 사람과 장기 모형을 붙여 엄마가 아이에게 설명해줄 수 있도록 하고, 의사 선생님의 가운에도 장기 모형을 붙여 아이들이 아픈 곳을 눌러볼 수 있도록 만들었다. 덕분에 의사와 부모와 아이가 서로 소통하는 공간이 됐다.
그는 서울어린이대공원에서 진행한 ‘파하하 세상에서 가장 큰 놀이터’ 프로젝트도 소개했다. 그는 한정된 예산 안에서 온 가족이 즐겁게 놀 수 있는 공간을 만들기 위해 ‘끈’을 소재로 삼았다고 말했다. 그는 “어린 시절 의자와 의자 사이에 끈을 연결해 재미있게 논 기억이 있었는데, 나무와 가드 사이를 끈으로 연결해 아이들이 스스로 놀 수 있도록 만들었다”라고 설명했다. 여러 방문객 중 끈으로 치마를 만들었던 가족이 있는데, 그 모습을 본 아이들이 자신의 것도 만들어달라며 친근하게 다가갔다고. 서로 다른 가족들이 소통하는 모습이 무척 인상깊었다고 전했다.
이러한 작업들은 아이가 그린 그림을 가방으로 만들어주는 프로젝트로 이어졌다. 어린이를 위한 공간을 만들면 멋진 가방을 많이 메고 오는데, 아이들이 그린 그림으로 가방을 만들면 그 어떤 명품보다 가치가 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서였다고 한다. 자수 프린트 등 손이 이 가는 작업이라 현재는 잠정적으로 중단한 상태지만 의미 있는 프로젝트라며 소개했다.
이달우 대표는 마음스튜디오의 작업에 ‘색깔’이 많이 들어간다는 이미지가 있는데, 2년 전부터는 컬러감을 줄이게 됐다고 한다. 공간의 주인공은 아이들이어야 한다는 생각에서다. 그는 “공간에서는 아이들이 콘텐츠가 되어야 하고, 아이들이 누구보다 더 잘 보여야 한다”라면서 “공간은 형태만 지닌 상태로 그릇이 되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이달우 대표는 “조금 뻔한 이야기이지만 진심을 다해서 작업을 하고 있다”라면서 “진심으로 하는 것들은 결국 경험으로 나온다고 믿는다”라며 세션을 마무리했다.
두 호스트가 진행한 세션이 끝난 후, 라이즈 오토그래프 컬렉션 20층에 위치한 펜트하우스에서는 호스트를 포함해 다양한 분야의 창작자들이 모였다. 디자인과 콘텐츠 기획의 힌트가 필요한 사람은 디자이너나 영상 제작자뿐만이 아니다. 마케팅이나 홍보, 브랜드 운영과IT 개발 등 모든 분야에는 인사이트가 스며들어있고 또 그걸 만드는 창작자들이 존재한다. 각자가 부딪히며 배운 힌트를 나누며 목마름을 해소한 그들이 앞으로 세상에 어떤 콘텐츠를 내보일지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