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EN ROOM 2nd: Creative Juice
After-article | Session 6
롱블랙 김종원
식스티세컨즈 김한정
까맣게 내려앉은 어둠 사이로 수백 개의 불빛이 눈부신 홍대의 밤. 오픈룸의 마지막 세션은 콘텐츠와 브랜딩을 주제로 진행됐다. 먼저 롱블랙의 김종원 부대표는 유료 콘텐츠 구독 서비스 론칭 경험을, 식스티세컨즈 김한정 브랜드 디렉터는 오프라인의 공간 브랜딩을 바탕으로 세션을 꾸렸다. 다양한 사람과 생각을 나누며 새로운 관점을 경험하는 오픈룸의 Creative Juice라는 컨셉 아래, 또 어떤 연결과 사고의 확장성이 이루어질지 기대되었다.
롱블랙
하루 하나, 24시간이 지나면 사라지는 롱블랙이 탄생한 이유
1503호의 호스트로 참여한 롱블랙의 김종원 부대표는 24시간이 지나면 사라지는 컨셉으로 유료 콘텐츠 구독 서비스를 론칭한 경험을 공유했다. 그는 DBR과 HBR에서 디지털 사업을 담당했고, 리디북스와 중앙일보 등에서 유료 콘텐츠 사업을 론칭 및 운영한 경험이 있다. 공동창업한 임미진 대표는 중앙일보 기자 출신으로, 콘텐츠 제작 전문가로 소개했다. 김종원 부대표는 “성장하고 싶은 사람들이 인사이트를 얻고 열정을 발견해서 즐겁게 일할 수 있도록 돕자는 취지에서 회사를 설립했다”라고 말했다.
롱블랙은 매일 하나의 노트를 발행하고 24시간이 지나면 사라지는 독특한 컨셉의 구독 모델이다. 김종원 롱블랙 부대표는 엔터테인먼트 시장이 빠르게 성장하는 데 비해 지식 콘텐츠 시장은 계속 정체돼 있다고 분석했다. 그 이유에 대해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이 잘 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영상 콘텐츠뿐만 아니라 웹툰·웹소설 같은 것들도 스마트폰 포맷에 맞게 많이 변화가 됐는데, 지식 콘텐츠는 여전히 종이책 위주로 소비가 된다는 것이다. 그는 신규 고객이 유입되지 않으면 시장은 진화하지 못한다고 봤기 때문에 다른 방식의 시도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영상 콘텐츠가 대세라지만, 사실 영상 콘텐츠는 비효율적이다. 18~20분가량의 콘텐츠를 텍스트로 요약하면 중요한 내용은 얼마 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시청 후 머릿속에 잘 남지 않는 것도 문제다. 때문에 그는 텍스트 콘텐츠, 그 중에서도 지식 콘텐츠가 경쟁력이 있다고 판단했다고 한다. 24시간이 지나면 더 이상 읽을 수 없는 롱블랙의 컨셉에 대해서는 내부 반대도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다양한 뉴스레터 속에서 피로감이 높아지고, 좋은 콘텐츠라 할지라도 읽을 여력이 없어지는 상황에서 강제성을 부여할 필요성을 느꼈다고 전했다. 그는 “언제 어디서나 읽을 수 있는 텍스트는 더 이상 읽지 않아도 된다는 말과 같다”라면서 “하루가 지나면 못 보게 하는 기획을 처음부터 했었다”라고 설명했다.
우리는 콘텐츠 생산에만 신경을 쓰는데, 사실 디자인이 좋지 않으면 그 안에 좋은 글이 있어도 읽지 않아요. 감각적인 디자인이 중요한 이유죠.
– 김종원
또한 김종원 부대표는 디자인을 강조하며, 무작정 좋은 글을 쓰면 많이 읽을 거라는 레거시 미디어의 판단을 지적했다. 사실 디자인이 좋지 않으면 그 안에 어떤 탁월한 글이 있어도 읽히기 쉽지 않다. 즉 디자인이 콘텐츠보다 비중이 높으면 높았지, 그보다 낮지는 않다는 것이다. 롱블랙은 출판사 열린책들에서 오랜 경력을 쌓은 석윤이 디자이너가 웹사이트 디자인 및 비주얼을 담당했다.
롱블랙은 슬랙을 이용해 커뮤니티를 구축했는데, 이어진 네트워킹 시간에서 이에 대한 게스트들의 질문이 이어졌다. 김종원 부대표는 “슬랙은 대중적으로 많이 쓰는 커뮤니케이션 툴은 아니라 고민은 있었지만 초기의 코어 구독자는 슬랙을 사용할 것이라고 판단했다”라면서 “카카오 오픈 채팅과 비교해 카테고리 구분을 할 수 있고 아카이빙이 된다는 것이 장점”이라고 덧붙였다. 슬랙 커뮤니티 안에서는 오타에 대한 지적을 비롯해 콘텐츠에 대한 평가가 이루어져 스트레스 요인이 될 때도 있지만, 고객의 목소리를 직접 듣는다는 측면에서 굉장히 유용하다고 언급했다
롱블랙은 현재 라이프스타일 기반의 콘텐츠를 생산하고 있는데, 앞으로는 카테고리를 늘리고 영상과 오디오, 출판, 해외 수출까지 사업 영역을 확대할 계획이다. 김종원 부대표는 “롱블랙이라는 서비스를 통해 습관이 형성되면 평소에 읽기 어려운 것들도 읽어볼 수 있지 않을까 한다”라면서 “콘텐츠를 쌓아 나가면서 다양한 것들을 실험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식스티세컨즈
좋은 잠, 좋은 쉼을 만드는 식스티세컨즈의 브랜딩 스토리
같은 시간, 맞은 편인 1504호에서는 식스티세컨즈의 김한정 브랜드 디렉터가 호스트로 나섰다. 공간에는 싱그러운 풀내음이 풍겼는데, 호스트가 게스트들을 위해 미리 준비한 향이라고. 이윽고 하나둘씩 자리를 채운 게스트들은 향긋함을 물씬 느끼며 공간 마케팅과 브랜딩에 대한 그의 이야기를 기다렸다.
‘60초 안에 잠들고 60초 더 머물고 싶은 잠자리’. 그들의 슬로건으로 미뤄보아 알 수 있듯 식스티세컨즈는 좋은 잠과 쉼을 위한 도구를 만들고 소개하는 브랜드다. 용산과 강남에는 각각 라운지, 도산으로 불리는 쇼룸도 운영 중이다. 브랜드 전반에는 김한정 디렉터의 손길이 묻어있는데, 그가 설계한 쇼룸은 고객을 만족시키는 훌륭한 마케팅 사례로 손꼽힌다고. 보통 침구를 판매하는 브랜드의 쇼룸이라고 할 때 몇 가지 이미지가 떠오른다. 다닥다닥 붙어있는 침대와 쨍한 할로겐램프, 프로모션이 붙어있는 가격표와 이름을 들어도 도통 외울 수 없는 매트리스처럼 말이다. 더 나아가 침대 끄트머리만을 살짝 걸터앉거나 손으로 몇번 눌러보고 말 정도의 분위기도 물론이다.
공간을 설계할 때는 사용자들에게 어떤 경험을 줄 것인가를 중심에 두어야 해요. 그 경험을 통해 사용자들이 당신의 브랜드를 기억하기 때문이죠.
– 김한정
반면 식스티세컨즈의 쇼룸은 낮은 조도의 간접 조명을 사용해 분위기가 아늑하다. 가격표나 프로모션 같은 장치를 제거해 고객이 정보에 휘둘리지 않고 선택할 수 있도록 설계했다. 또한 현장 매니저에게도 판매 실적을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고객의 선택을 돕는 내비게이터로 활약하도록 지시했다고. 김한정 디렉터는 “쇼룸이라는 공간에 사용자들이 어떤 기대를 하고 올 것인지를 잊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고객은 인터넷만으로 알기 어려운 부분을 파악하기 위해 쇼룸에 방문한다. 따라서 쇼룸에서의 경험은 고객이 내리는 모든 선택의 기준이 될 수 있다. 공간 마케팅에서 사용자를 배려하는 디테일이 필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쇼룸의 완성도를 높인 김한정 디렉터는 그다음으로 브랜드의 정체성을 정립했다. 종합 가구 회사의 상품 개발팀에서 오랫동안 근무했던 그는 좋은 물건을 만드는 데 자신 있었다. 따라서 정직한 가격, 좋은 소재, 단순한 유통구조와 쉽고 정확한 정보를 키워드로 삼았고 비즈니스의 코어인 제품력 또한 많은 소비자에게 인정받았다. 이후 김한정 디렉터는 식스티세컨즈를 애용하는 소비자들을 탐구하며 한 가지 유의미한 과정을 발견했다고. 브랜드 이해가 높은 얼리 어답터들이 식스티세컨즈를 경험하고, 누적된 경험을 주변에 알려 함께 즐거움을 누린다는 것이다. 일련의 과정을 지켜본 그는 좋은 제품을 만드는 브랜드에서 나아가, 더 많은 이가 좋은 잠을 경험하도록 돕는 브랜드가 되기로 다짐했다.
저마다 휴식의 풍경을 만들고 즐기는 것이 좋은 쉼이라고 정의했을 때 식스티세컨즈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고민한 결과, 김한정 디렉터는 “다양한 수면 습관을 이해하고 가장 적합한 제품을 제안하며, 깊은 수면을 돕는 것이 우리의 아이덴티티가 됐다”고 말했다. 브랜드의 정체성을 강화하기 위해 잠과 쉼을 도와줄 도구를 소개하는 서브 브랜드 노트앤레스트(Note & Rest)도 등장했다. 노트와 레스트는 각각 음악 기호로서 음표와 쉼표를 뜻하는데, 두 개가 적절해야 좋은 리듬이 나오듯 일상도 좋은 흐름으로 만들어가자는 상징을 담았다고.
여러 과정과 시도를 겪어낸 식스티세컨즈는 마침내 가장 그들다운 정체성을 구축할 수 있었다. 잠과 쉼이라는 일상 전반에 영향을 미치는, 한편으로 다분히 추상적인 개념에 대해 김한정 디렉터가 쌓아 올린 촘촘히 해석은 브랜딩과 마케팅에서의 큰 힌트가 될 것이다. 그의 밀도 높은 풀이 방식 덕분에 식스티세컨즈만의 색채는 더욱 뚜렷해질 수 있었기 때문이다.
롱블랙의 김종원 부대표와 식스티세컨즈의 김한정 디렉터를 마지막으로, 이틀간 진행됐던 프럼에이의 오픈룸은 마무리가 됐다. 그동안 우리는 마주 보는 것에 목말랐다. 어디선가 전해 들은 또는 고정된 글자로 출력되어있는 인사이트가 아닌, 대면의 공간에서 생생한 의견을 나누길 바랐다. 프럼에이의 오픈룸은 우리의 갈증을 해소하고 서로 다른 분야가 부딪혀 만들어내는 영감을 목격하기 위해 마련되었다. 열두 팀의 호스트는 기꺼이 자신이 얻은 경험을 나누었고, 관심 분야에 따라 방문을 두드린 게스트들은 연신 새로운 네트워킹을 만들며 깊이 있는 대화를 이끌었다. 이틀의 시간은 쏜살같이 지나버렸지만, 우리가 함께 마주 보고 한껏 머금은 크리에이티브 쥬스는 여전히 마음속에 남아 상큼하고 신선한 내음을 풍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