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

게임은 당연히 예술이다.

– 파올라 안토넬리(Paola Antonelli), MoMA 큐레이터

 

게임이 예술로 여겨지기 시작한 건 2012년 뉴욕현대미술관(MoMA)이 작품을 소장하면서부터다. MoMA의 큐레이터 파올라 안토넬리는 팩맨, 테트리스, 어나더 월드, 미스트, 심시티 2000, 비브-리본, 심즈 등 14점의 게임을 소장했다고 밝히며 작품을 전시회에 공개했다. 하지만 당시 비평가들은 비디오 게임이 예술에 속하지 않기 때문에 미술관에 전시할 수 없다고 반박했다. 예술 작품이 삶에 대한 상상력과 성찰을 담고 있는 데 반해, 게임은 플레이어와 프로그램 간의 상호작용 경험일 뿐 삶에 대한 성찰이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럼에도 MoMA의 이러한 결정은 사람들에게 게임 디자인에 대한 새로운 개념을 제안하며 예술의 범주를 넓히는 계기가 되었다. 게임은 기술 혁신을 심미적으로 표현하며, 문화적 관련성과 역사성을 담고 있다는 논리였다. MoMA는 게임 작품을 소장하는 데 있어 크게 두 가지 기준을 제시한다. 첫째는 훌륭한 인터랙티브 디자인을 보유했는가이고, 둘째는 사용자의 행동 패턴을 일으키는 요소가 뛰어난가이다. 즉, 디자인적으로 봤을 때 미학적 가치를 지니는지, 게임을 하는 사용자가 어떻게 이를 즐기는지가 중요 요소로 꼽힌다.

 

실제로 게임은 단순한 오락이 아니라, 사용자에게 의도적인 마찰과 혼란을 주고 스스로 해결책을 찾게 하는 방식으로 인간과 상호작용한다. 게임이 미술관에 전시될 수 있느냐에 대한 논쟁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지만, 그럼에도 더 많은 미술관이 게임을 하나의 예술 형식으로 인정하면서 게임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하룬 파로키, <시리어스 게임>, 2009. ⓒ Harun Farocki GbR
하룬 파로키, <평행 I-IV>, 2012-2014. ⓒ Harun Farocki Filmproduktion

예술하는 게임들

국립현대미술관도 예술적 표현 매체로서의 게임을 다루면서 《게임사회》라는 전시를 진행 중이다. 비디오 게임이 세상에 등장한 지 50년이 지난 오늘, 게임의 문법과 미학이 동시대 예술에 미친 영향을 짚어보려는 의도로 읽힌다. 전시는 크게 1부(예술게임, 게임예술), 2부(세계 너머의 세계), 3부(정체성 게임)로 구성되며, 전시의 동선을 따라가다 보면 게임이라는 매체가 어떻게 예술이 되는지 이해하게 된다.

 

먼저 전시의 1부에서는 아트게임(Artgame)의 개념을 소개하고 예술적 표현 매체로서의 게임을 다룬다. 뉴욕현대미술관이 게임을 소장하기로 결정했을 때 이러한 논의를 촉발한 작가들의 작품이 전시되어 있다. 이 섹션에서 주목해 살펴볼 만한 작가로는 하룬 파로키(Harun Farocki)가 있다. 파로키는 독일의 영화감독이자 미디어 아티스트로서, 현실과 가상 이미지의 관계를 탐구한 작품을 주로 제작한다. 디지털 게임에서 이미지가 어떻게 재현되는지, 서사는 어떤 방식으로 만들어지는지를 탐구한다.

 

전시 작품 중 파로키의 <시리어스 게임(Serious Game)>은 전쟁과 관련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시리어스 게임은 기능성 게임으로 번역된다. 기능성 게임이란, 오락만을 목적으로 하지 않고 체험이나 의도 전달과 같은 교육적인 목적을 지닌 게임을 뜻한다. 기능성 게임은 군사 훈련을 위해 시작되었는데, 가령 게임을 통해 모의 훈련을 하면서 미리 시뮬레이션을 해보는 식이다. 파로키는 <시리어스 게임>에서 이미지를 통해 전쟁 이전의 군사 훈련, 그리고 전쟁 이후의 트라우마 치료를 그려낸다. 이러한 훈련은 실제 훈련임에도 참여자들로 하여금 컴퓨터 게임 같다고 느끼게 만듦으로써 몰입을 유발한다.

 

<평행>은 <시리어스 게임>의 연장선상에서 가상과 현실의 관계에 대해 보다 직접적으로 질문을 던진 작품이다. 네 편으로 이루어진 <평행> 연작은 컴퓨터가 나온 지 얼마 안 된 초기 그래픽 이미지에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의 변화를 추적한다. 컴퓨터 게임 속 창조된 가상 세계가 얼마나 정교하게 변화되었는지를 병렬적으로 살펴볼 수 있다.

 

1부에서 소개된 또 다른 중요한 작가로는 코리 아칸젤(Cory Arcangel)이 있다. 아칸젤은 하늘색 화면에 흰 구름이 흘러가는 애니메이션 작업으로 잘 알려져 있다. 이 작가는 우리에게 익숙한 슈퍼 마리오 게임을 해킹하는 방식으로 아트게임을 만들었다. 아칸젤은 게임이 출시된 지 20년이 지난 2005년에 이 게임을 해킹한 뒤 이미지를 재조합해 <슈퍼 마리오 클라우드>(2002)라는 작품을 선보였다. 그는 하늘과 구름을 제외한 모든 장면을 제거한 뒤 작품을 제작했는데, 배경을 없애니 비디오 게임이라는 형식이 훨씬 더 강조되었다. 이처럼 아칸젤은 게임의 주요 요소를 제거함으로써 비디오게임 디자인의 미학과 시각적 단순성을 드러낸다.

 

슈퍼 마리오를 주제로 한 아칸젤의 작품은 <슈퍼 마리오 무비>(2005)로 이어진다. 그는 페이퍼 라드라는 예술가 집단과 협업해 애니메이션과 음악이 담긴 15분짜리 영상 작품을 제작했다. 첫 버전에서는 게임 이미지가 주가 되었다면, 이 작품에서는 기술 발전으로 인해 영화의 형식으로까지 나아갔다. 작가의 웹사이트에는 작업 영상과 소스 코드를 포함해 영상을 직접 만들어 볼 수 있는 방법이 공유되어 있다. 이처럼 작가는 비디오 게임 기기를 해킹하거나 소프트웨어를 새롭게 코딩하는 방식을 통해 기술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로렌스 렉, <노텔(서울 에디션)>, 2023. ⓒ Lawrence Lek

현실과 게임의 경계, 그 너머

《게임사회》 전시 2부에서는 게임 <심시티 2000>을 직접 플레이해 볼 수 있다. <심시티>는 도시를 확장하는 건축 시뮬레이션 게임이다. 이전까지의 게임은 누군가와 대결해 이기거나 최종적인 목표를 달성하는 서사를 지니고 있었다면, <심시티>는 일반적인 게임과 달리 도시를 건설하는 다소 단조로운 미션에도 불구하고 큰 인기를 끌었다. 참여자는 이 게임에서 스스로 목표를 설계하며, 자신만의 스토리를 연출할 수 있다.

 

2부의 주요 작품이자 전시의 포토 스팟은 로렌스 렉(Lawrence Lek)의 <노텔(서울 에디션)>이다. 이 작품은 장소 특정적 미술로서,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이라는 특정한 장소를 활용했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은 예전에 국군 서울지구 병원 부지로 사용되었는데, 작가는 게임이라는 형식을 활용해 이곳 복도를 병원 로비로 재구성했다.

 

작품 속 병원은 노텔 코퍼레이션이라는 가상의 회사가 운영하는 초특급 호텔 내에 자리하고 있다. 인공지능(AI) 기반의 진료 시스템인 노텔 케어를 도입한 미래의 병원이라는 콘셉트다. 이 병원과 호텔은 AI 기술에 의해 완전히 자동화돼 있다. 노동자가 맡았던 모든 일이 AI로 대체된 미래의 상황을 그린다. 관객은 이 작품에서 미니게임을 즐길 수 있다. 이 공간이 어떤 곳이며, 어떤 서비스를 제공하는지 알려주는 게임이다. 게임을 실행하면 CEO의 음성과 함께 노텔의 공간을 직접 둘러볼 수 있는데, AI로 대체된 노동과 호화로운 삶 사이의 미묘한 경계를 직접 체험할 수 있다.

 

다음으로 재키 코놀리(Jacky Connolly)는 어린 시절의 개인적인 트라우마와 소외감을 주제로 작업하는 작가다. 그는 게임 형식을 통해 현실을 벗어나고 싶어 하는 우리의 간절한 욕망을 묘사한다. 코놀리의 <지옥으로의 하강>은 다수의 스크린에 영상을 동시에 비춰 서사를 구성한다. 작가는 어린 시절부터 심시티나 마인크래프트 같은 게임을 자주 했다고 밝히는데, 이러한 게임 형식을 자전적 이야기와 결합해 사회적 메시지를 전달했다.

람 한, <튜토리얼: 내 쌍둥이를 언인스톨 하는 방법>, 2023. Ⓒ 직접 촬영
다니엘 브레이스웨이트 셜리, <젠장, 그 여자 때문에 산다>, 2021. Ⓒ 직접 촬영

게임과 사회의 역학 관계?

3부의 정체성 게임 섹션에서는 게임과 사회의 관계를 되짚는다. 공공영역에서 다룰 만한 의제들을 표현하는 작품이 많아서 예술적 실천으로서의 게임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 보게 만든다. 게임은 가상 속 사회이지만, 사실 게임과 사회는 서로 강력하게 동기화되고 있다. 게임이라는 사회를 통해 세계가 확장하는 것이다.

 

가령 람 한(Ram Han)의 <튜토리얼: 내 쌍둥이를 언인스톨 하는 방법>에서는 게임이라는 매체를 통해 공동체가 겪는 사회적인 경험과 갈등을 살펴볼 수 있다. 작품 속 주인공은 눈 기능에 오류가 생겨서 불편을 겪는 여학생으로, 이 여학생은 기업에서 진행하는 임상 실험의 피실험자로 참여하게 된다. VR 기기를 쓰면 일인칭 시점으로 이 여학생을 따라가 볼 수 있다. 개인적인 이야기와 게임적 설정 사이의 모호함을 드러내는 이 작품을 통해 전시 공간과 게임 공간 사이를 넘나들게 된다.

 

다음으로 다니엘 브레이스웨이트 셜리(Danielle Brathwaite-Shirley)의 <젠장, 그 여자 때문에 산다>는 서늘한 감정을 자아낸다. 관람객에게 게임기의 조이스틱처럼 활용하는 커다란 총을 주는데, 화면에서는 계속해서 “쏘라!” 라는 지시가 나타난다. 관람객 대부분이 처음엔 멈칫하지만, 한 번 총을 쏘기 시작하면 계속해서 목표물이 등장하기 때문에 멈추기 어렵다. 일방적인 총 쏘기 게임처럼 보이지만 다음 방으로 넘어가면 서늘한 장면이 기다리고 있다. 불과 몇 분 전까지 미친 듯이 총질하던 나의 모습이 흑백 모니터 속에 고스란히 담겨 있기 때문이다. 이 작품은 게임의 상호작용 형식을 통해 우리가 선택하는 행위들이 다른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를 고찰하게 만든다. 우리는 이 작품을 통해 공동체와 개인의 관계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된다.

 

미술관의 복도 공간인 서울박스에서는 김희천 작가의 신작 <커터 3>(2023)이 상영되고 있다. 이 작품도 앞서 소개한 로렌스 렉의 <노텔(서울 에디션)>처럼,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을 배경으로 하는 장소 특정적 설치 작품이다. 김희천은 현실과 가상의 경계에서 시공간과 신체의 문제를 주로 다룬다. 그는 미술관을 게임의 공간처럼 구현하여 작가와 관람객이 캐릭터처럼 게임 속 공간을 유영하도록 만들었다. 우리는 실시간으로 접속할 수 있는 디지털 세상이 현실과 가까워질 때 현실과 가상의 공간을 혼동하게 된다.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해 “실재하는 것은 무엇이고, 진짜 나는 누구인가?”를 물으며 인지되지 않을 정도로 기술과 현실이 뒤얽힌 세계를 그려낸다.

그동안 게임은 유희나 오락 측면에서 주로 논의되어 왔기 때문에 게임의 예술성에 대해서는 많이 언급되지 않았다. 미술관에서 게임을 전면에 내세운 전시가 개최되고 있음에도 여전히 게임을 예술 작품으로 볼 수 있는지에 대한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그러나 이제 예술 작품은 관조적인 대상에 머물지 않고, 참여와 체험할 수 있는 그 무엇으로 변화하고 있다. 게임을 전면에 내세운 작품이 아니더라도 게임적 요소가 결합된 작업은 미적 체험에 대한 진입 장벽을 낮춘다.

 

게임에서는, 우리가 참여하고자 하는 바로 그 종류의 실천적 활동을 스스로 조형한다. 우리는 목표, 능력, 세계를 골라잡는다.

– 티 응우옌, 『게임: 행위성의 예술』 中

 

이러한 맥락에서 게임 형식을 차용하는 동시대 예술 작품들은 기존 예술의 표현 형식을 확장하면서 새로운 의미를 창출한다. 특히 상호작용을 통해 이전에는 불가능한 방식으로 미적 경험을 확장하는 모습을 보인다. 시대가 변화함에 따라 예술적 관점 또한 바뀌게 되는 것처럼, 게임의 미학은 예술을 일상적 삶과 연결 짓는 실천으로서의 의미를 지닌다. 시공간의 제한 없이 관객과의 소통을 꾀하면서 일상적 삶을 표현하는 예술로서 기능하게 된다. 이로써 게임은 탈권위적이고 보다 민주적인 방식으로 우리의 미적 체험을 확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