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

3 Dots

▪ 노르웨이 키스테포스(Kistefos)는 목재 펄프를 생산하던 공장 위에 세워진 예술 공간으로, 계절에 따라 문을 열고 닫으며 자연의 시간에 스스로를 맡긴다. 이곳에서 예술은 항상 작동하지 않고, 멈춤과 재개를 반복한다. 관람객은 ‘보러 가기’보다 ‘걷다 마주치며’ 작품을 경험한다. 

▪ 키스테포스를 상징하는 <더 트위스트> 반드시 통과해야 하는 다리이자 갤러리로, 이동 그 자체를 전시 경험이 되게 만든다. 내부에서 공간은 90도로 비틀리며 관람객의 방향 감각과 감상 방식을 흔들어, 키스테포스가 추구하는 ‘소비가 아닌 이동’의 예술 경험을 압축적으로 드러낸다.

▪ 스웨덴의 아티펠라그(Artipelag)는 숲과 바다 사이에 건축을 ‘얹듯이’ 놓으며, 자연의 리듬을 방해하지 않는 감상을 전제로 한다. 이곳으로 향하는 동선 자체가 도시의 속도를 지우는 장치이며, 야외 조각과 산책형 프로그램, 계절에 따라 달라지는 운영 역시 ‘관람’을 일종의 이용 경험으로 확장한다.

 


 

도시의 중심에서 벗어나 숲을 지나고, 물을 건너야만 도착할 수 있는 미술관이 있다. 바로 노르웨이의 키스테포스(Kistefos)와 스웨덴의 아티펠라그(Artipelag)다. 이들은 접근성을 최소화하는 대신 도착에 이르는 과정 자체를 하나의 감상 경험으로 설계한다. 키스테포스는 강을 건너야만, 아티펠라그는 숲과 바위를 통과해야만 비로소 열리는 공간이다.

 

키스테포스(Kistefos)는 노르웨이 예브나케르(Jevnaker)의 숲 깊숙한 곳, 란셀바 강(Randselva)이 흐르는 지점에 위치해 있다. 한때 이곳은 목재 펄프를 생산하던 산업 시설이었고, 오늘날에는 현대미술, 조각, 건축이 공존하는 복합 예술 공간으로 기능한다. 과거의 노동과 현재의 예술, 자연과 산업, 실내와 실외의 경계는 이곳에서 명확히 구분되지 않는다. 특히 계절에 따라 개관과 휴관을 반복하는 운영 방식은 키스테포스를 겨울잠 자는 미술관으로 만든다. 겨울이 되면 이곳은 문을 닫고, 자연의 시간 속으로 스스로를 되돌린다.

 

한편 아티펠라그(Artipelag)는 스톡홀름(Stockholm) 군도의 가장자리에 자리한 미술관으로, 바다와 숲이 맞닿는 풍경 속에 놓여 있다. 이곳은 개발되지 않은 자연환경을 전제로 설계되었다. 건축은 숲을 밀어내지 않고 그 지형을 따라 스며들듯 배치되었으며 전시 공간은 자연을 배경이 아닌 동등한 주체로 받아들인다. 아티펠라그에서 전시실을 이동하는 행위는 곧 숲과 바다 사이를 천천히 통과하는 경험이 된다. 키스테포스와 달리 연중 운영되지만 이곳 역시 계절에 따라 감상의 중심이 이동한다. 겨울에는 내부로, 여름에는 외부로 시선과 동선이 확장된다.

란셀바 강이 흐르는 곳에 위치한 키스테포스(Kistefos) Ⓒ KISTEFOS

멈춘 공장이 품은 시간, 산업 유산 위에 쌓인 예술

키스테포스(Kistefos)의 시작은 예술이 아니라 산업이었다. 1889년 안데르스 스베아스(Anders Sveaas)에 의해 설립된 키스테포스 트레슬리베리(Kistefos Træsliberi A/S)는 폭포의 수력을 이용해 목재 펄프를 생산하던 공장이었다. 이곳은 1955년까지 노르웨이 산업화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으며 값싼 종이를 생산하는 핵심 시설이었다. 흥미로운 점은 공장이 멈춘 이후에도 대부분의 기계와 설비가 그대로 남아 있었다는 점이다. 재가동을 염두에 둔 임대 계약 조건 덕분에 키스테포스의 펄프 공장은 버려진 공간이 아니라 잠들어 있던 공간으로 보존되었다. 오늘날 이 공장은 산업 유산으로서의 가치와 예술적 활용 가능성을 동시에 지닌 장소가 되었다.

 

키스테포스는 산업의 흔적 위에 예술을 덧씌우지 않는다. 오히려 그 흔적을 작동시키며 현재로 끌어온다. <Living Factory (살아있는 공장)> 프로젝트는 관람객이 실제 기계를 작동시키고, 나무가 강을 따라 공장으로 유입되어 펄프로 가공되는 과정을 체험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키스테포스는 과거를 전시하지 않는다. 과거를 작동시킨다. 이 위에 현대미술과 조각, 건축이 덧입혀진다. 중요한 것은 덮어씌우지 않는다는 점이다. 예술은 산업을 가리거나 미화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위에 조심스럽게 놓이며 긴장을 유지한다.

 

움직이지 않는 조각, 고정되지 않은 의미

키스테포스(Kistefos)의 조각 공원은 야외 전시라는 이름으로 설명되기 어렵다. 란셀바 강(Randselva River)을 따라 이어지는 숲과 언덕, 오래된 산업 구조물 사이에 배치된 50여 점의 조각은 하나의 명확한 동선을 제공하지만 그 동선은 결코 직선적이지 않다. 관람객은 작품을 보기 위해 이동하기보다 이동하는 과정에서 작품과 마주친다. 조각 공원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사이트 스페시픽(site-specific)’이라는 원칙이다. 많은 작품이 키스테포스라는 장소의 역사인 목재 산업, 물의 흐름, 에너지 생산, 인간 노동의 흔적을 참조한다.

 

클라스 올덴버그(Claes Oldenburg)와 쿠시에 판 브루겐(Coosje van Bruggen)의 <Tumbling Tacks>는 거대한 압정(tack)들이 마치 중력을 잃은 듯 숲속 경사면을 따라 굴러떨어지는 형상을 하고 있다. 이 작품은 키스테포스의 장소성과 직접적으로 연결된다. 한때 키스테포스는 목재 펄프를 생산하며 종이 산업의 원료를 공급하던 공장이었다. 즉, 이곳은 압정이 고정하던 종이가 태어나던 장소다. 종이를 붙이던 도구가 종이의 기원으로 돌아와 더 이상 아무것도 고정하지 못한 채 숲속에 흩어져 있는 모습은 생산과 소비의 순환이 끝난 이후의 상태를 암시한다. 예페 하인(Jeffe Hein)의 <Path of Silence>는 키스테포스의 사이트 스페시픽 개념을 시간성과 신체 경험의 차원에서 확장한다. 이 작품은 조각이라기보다 하나의 경로다. 일정한 간격으로 배치된 물줄기가 분사되며 관람객이 그 사이를 걷도록 설계되어 있다. 여름에는 아이들이 물줄기 사이를 뛰어다니며 작품과 놀고, 겨울에는 얼어붙은 선이 침묵 속에서 숲의 일부가 된다. 동일한 조각이지만 시간과 날씨에 따라 역할과 의미가 바뀐다. 이처럼 키스테포스에서 조각은 고정된 의미를 갖는 게 아니라 자연과 함께 멈추었다 다시 활성화된다.

Kistefos 박물관의 출발점인 펄프 생산 공장 키스테포스 트레슬리베리(Kistefos Træsliberi A/S) Ⓒ KISTEFOS
키스테포스라는 장소에서 작품의 의미가 더욱 확장되는 <Tumbling Tacks> Ⓒ Claes Oldenburg & Coosje van Bruggen, KISTEFOS

강 건너 시간을 비트는 공간

키스테포스를 상징하는 <더 트위스트(The Twist)>는 단순한 전시관이 아니다. 이 건축물은 갤러리이자 다리이며 하나의 거대한 조각이다. 관람객은 이 구조물을 통과하지 않고서는 조각 공원의 순환 동선을 완성할 수 없다. 즉, 더 트위스트는 선택 가능한 전시 공간이 아니라 반드시 지나야 하는 관문이다. 덴마크 건축 그룹 비아르케 잉겔스 그룹(BIG, Bjarke Ingels Group)이 설계한 이 건물은 란셀바 강(Randselva River)을 가로지르며 90도로 비틀린다. 외부에서 보면 직선적인 구조물이지만 내부에 들어서는 순간, 공간의 논리가 전복된다. 바닥이 벽이 되고, 벽이 천장이 되며, 관람객의 신체는 자연스럽게 방향 감각을 잃는다.

 

더 트위스트의 전시 경험은 항상 이동 중에 이루어진다. 한쪽 입구로 들어와 다른 쪽 출구로 나가며 관람객은 작품과 함께 강을 건넌다. 이때 전시는 정지된 상태로 감상되지 않으며 작품은 걸음의 속도, 시선의 방향, 빛의 유입에 따라 끊임없이 달라진다. 이는 키스테포스가 추구하는 예술 경험인 ‘머무르기보다는 통과하기, 소비하기보다는 이동하기’를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더 트위스트는 키스테포스의 산업 유산과도 깊게 연결된다. 과거 이 강은 목재와 에너지를 운반하던 통로였다. 오늘날 더 트위스트는 사람과 예술을 운반한다. 기능은 달라졌지만 흐름이라는 본질은 유지된다. 이 건축물은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는 다리이자 물리적 이동과 시간적 이동을 동시에 수행하는 구조물이다.

바닥이 벽이 되고 벽이 천장이 되는 공간, <더 트위스트(The Twist)> Ⓒ KISTEFOS
<The Twist>를 통과하는 예술 경험 Ⓒ KISTEFOS

불, 몸, 부패, 호흡: 키스테포스의 전시가 만드는 시간의 감각

키스테포스에서 최근 열린 전시들은 이 장소가 단순한 전시장이 아니라 하나의 시간 장치임을 보여준다. <Springbrett 2025: Ring of Fire>, 크리스티나 콸스(Christina Quarles)의 <Living in the Wake>, 캐슬린 라이언(Kathleen Ryan)의 <Has My Place Forgotten Me?>는 각기 다른 방식으로 키스테포스의 시간을 가시화한다. <Springbrett 2025: Ring of Fire>는 키스테포스의 실험 정신을 가장 직접적으로 드러내는 전시다. Springbrett 프로그램은 젊은 큐레이터에게 전권을 맡기는 방식으로 구성되며, 매번 불확실성과 위험을 전제로 한다. 이번 전시에서 ‘불(Fire)’은 자연 요소를 넘어 파괴와 생성, 위기와 재생, 에너지의 순환을 상징하는 개념으로 확장된다. 올라퍼 엘리아슨(Olafur Eliasson), 코락릿 아루난차이(Korakrit Arunanondchai), 로빈 로드(Robin Rhode) 등의 작품은 불을 직접적으로 재현하기보다 불이 남긴 흔적과 구조, 그리고 그 이후의 세계를 탐구한다. 산업 유산 위에 세워진 키스테포스라는 장소에서 이 전시는 무엇을 태우는가보다 무엇이 남는가를 묻는다.

 

크리스티나 콸스(Christina Quarles)의 개인전 <Living in the Wake>는 ‘몸’을 시간의 흔적으로 호출한다. 콸스의 회화 속 신체는 언제나 어떤 사건 이후에 놓여 있으며 안정된 형태를 거부한다. 이는 강이 흐른 뒤 남긴 지형, 공장이 멈춘 뒤 남겨진 구조물인 키스테포스와 겹쳐진다. 캐슬린 라이언(Kathleen Ryan)의 <Has My Place Forgotten Me?>는 부패와 물질의 시간을 전면에 내세운다. 썩어가는 과일, 곰팡이, 일상의 사물을 정교하게 재현한 조각들이 펄프 공장의 기계와 나란히 놓였다. 한때 자연을 가공해 상품으로 만들던 공간에서 이 조각들은 그 상품이 다시 자연으로 되돌아가는 과정을 시각화한다.

 

키스테포스(Kistefos)의 이벤트는 전시의 부속물이 아니다. 이는 이 장소가 어떻게 사용될 수 있는지를 실험하는 또 하나의 전시 형식이다. <Pop-up Concert in The Twist>는 그 대표적인 사례다. 강 위에 놓인 건축물이자 다리인 더 트위스트(The Twist)에서 열리는 즉흥 콘서트는 관람객의 동선을 교란한다. 전시를 보다가 음악을 만나고, 음악을 듣다가 다시 이동하게 되는 경험은 공간을 고정된 감상 대상으로 두지 않는다. 신지아나 라비니(Sinziana Ravini, 신지아나 라비니)와 제이미슨 웹스터(Jamieson Webster, 제이미슨 웹스터)의 대화 프로그램은 캐슬린 라이언(Kathleen Ryan, 캐슬린 라이언)의 조각을 둘러싼 철학적·심리학적 사유를 확장한다. <Family Day at Kistefos>는 이 미술관이 감상의 공간이 아니라 체류의 공간임을 분명히 한다. 아이들이 조각 공원에서 뛰노는 이 하루는, 예술이 특별한 날에만 소비되는 대상이 아니라 일상의 일부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Springbrett 2025: Ring of Fire> 프로그램 Ⓒ KISTEFOS
캐슬린 라이언(Kathleen Ryan)의 <Has My Place Forgotten Me?> Ⓒ Kathleen Ryan, KISTEFOS

숲과 바다 사이에 놓인 미술관

아티펠라그(Artipelag)는 키스테포스(Kistefos)와 달리 인간이 손대지 않은 자연, 그리고 그 자연을 어떻게 덜 침범하며 건축과 예술을 놓을 수 있느냐는 질문에서부터 출발한다. 스웨덴 스톡홀름(Stockholm) 군도의 배름도(Värmdö) 지역 끝자락에 있는 아티펠라그는 숲, 바위, 바다로 둘러싸인 풍경 속에 자리한다. 미술관으로 향하는 길은 도시적 동선을 지우고, 점차 자연의 속도로 관람객을 이끈다.

 

아티펠라그는 건축적으로도 풍경을 가리지 않는 것을 중요한 원칙으로 삼는다. 건물은 지형을 밀어내지 않고, 암반 위에 얹히듯 배치되었으며 대형 유리창은 전시실 내부와 외부 풍경을 끊임없이 연결한다. 이곳에서 관람객은 작품 앞에서 시선을 고정하기 어렵다. 바다의 수평선, 숲의 움직임, 빛의 변화가 항상 시야 안으로 침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시선의 분산은 집중의 실패가 아니라 아티펠라그가 의도한 감상 방식이다.

 

최근 아티펠라그에서 열린 <The Muses – Inspiring and Challenging Picasso>는 예술가의 천재성을 둘러싼 전통적 서사를 비판적으로 재구성한 전시였다. 파블로 피카소(Pablo Picasso)를 중심에 두되 그가 창작을 가능하게 했던 연인, 동료, 협력자, 경쟁자들을 ‘뮤즈(Muse)’라는 단일한 역할로 명명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 전시는 뮤즈라는 개념이 어떻게 예술사 속에서 여성의 주체성을 지워왔는지를 질문한다. 이 전시는 피카소의 작품을 단독으로 숭배하지 않는다. 대신 프랑수아즈 질로(Françoise Gilot), 도라 마르(Dora Maar), 마리-테레즈 발테르(Marie-Thérèse Walter) 등 그의 삶과 작업에 깊이 관여했던 인물들의 목소리를 나란히 늘어놓는다. 이를 통해 예술은 개인의 내면에서 탄생하는 것이 아니라 관계와 갈등, 긴장과 협업 속에서 형성된다는 점이 강조된다. 아티펠라그의 공간적 특성은 이 전시의 메시지를 더 확장한다. 천재적인 예술가 역시 환경과 관계 속에서 형성된 존재임을 이 공간은 말없이 증명한다.

스톡홀름 군도, 바다와 숲이 맞닿는 곳에 지어진 아티펠라그(Artipelag) Ⓒ ARTIPELAG
아티펠라그의 이벤트 중 하나인 Quiz Walk Ⓒ ARTIPELAG

걷는 속도로 다시 읽는 조각, 참여하는 예술

아티펠라그의 큰 특징 중 하나는 조각을 보는 대상이 아니라 만나는 존재로 배치한다는 점이다. <Sculpture in Nature>는 미술관 내부가 아닌 숲길, 초원, 해안선, 바위 지형을 따라 전개되는 야외 조각 전시다. 관람객은 작품을 보기 위해 멈춰 서기보다 작품과 함께 걷는다. 비와 눈, 햇빛과 그림자, 계절의 변화는 작품의 일부가 된다. 비게르트&베리스트롬(Bigert&Bergström)의  <Solar Egg>는 거대한 금빛 달걀 모양의 구조물로, 처음에는 사우나로 설계되었다. 금속으로 이루어진 반사면은 주변 숲과 바다 풍경을 끊임없이 반영하며, 인공과 자연의 경계를 겹치게 만든다.  <Boy>는 한 소년이 거대한 바위를 바라보고 있는 조각으로 아티펠라그의 자연 산책로에 설치되어 있다. 이 작품은 관람객이 도시를 떠나 숲길과 바닷가를 걸으며 접하는 순간을 시각적으로 나타낸다.

 

한편 아티펠라그의 이벤트는 관람 이후의 활동이 아니라 관람 방식 자체를 재구성한다. <Quiz Walk – Among Cliffs and Pine Forest>는 절벽과 소나무 숲 사이를 따라 이어지는 산책형 프로그램으로, 관람객은 약 15개의 질문을 따라 이동하며 미술관의 역사, 건축, 전시, 그리고 주변 자연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된다. 이 퀴즈는 정답을 맞히는 것이 목적이 아니다. 질문은 관람객의 시선을 특정 지점으로 유도하고, 평소 지나쳤을 풍경을 다시 보게 만든다. 돌 위의 표식, 나무 사이로 스며드는 빛, 바닷바람의 방향 같은 요소들이 질문과 결합되며 풍경은 하나의 텍스트가 된다. 관람객은 읽듯이 걷고, 걷듯이 사유한다.

 

아티펠라그는 연중 운영되지만 계절에 따라 장소와 밀도를 조절한다. 겨울에는 실내 전시, 소규모 워크숍, 아티스트 토크가 강화되며 머무는 시간이 강조된다. 여름에는 야외 조각, 산책, 콘서트와 퍼포먼스가 중심이 된다. 중요한 점은 이 모든 프로그램이 전시 감상과 명확히 구분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티펠라그는 관람객에게 모두 보지 않아도 괜찮다는 선택지를 제공한다.

거대한 금빛 달걀 모양의 구조물 <Solar Egg> Ⓒ Bigert&Bergström, ARTIPELAG
아티펠라그에 방문한 관람객을 시각적으로 표현한 <Boy> Ⓒ ARTIPELAG

예술이 놓이는 방식에 대하여

키스테포스(Kistefos)와 아티펠라그(Artipelag)는 같은 방향을 바라보지만 전혀 다른 속도로 걷는다. 키스테포스는 과거의 무게를 끌어안은 채 앞으로 나아간다. 멈춘 공장, 잠든 기계, 계절에 따라 닫히는 문은 모두 시간의 축적을 전제로 한다. 반면 아티펠라그는 현재의 감각을 확장하며 머문다. 숲과 바다, 빛과 바람은 언제나 열려 있으며, 관람객은 그 안에서 자신의 속도를 선택한다.

 

두 미술관 모두 예술을 자연과 분리하지 않는다. 하나는 강을 건너야 도착하고, 다른 하나는 숲을 지나야 열린다. 이 물리적 이동은 예술을 대하는 태도를 나타낸다. 또한 두 미술관 모두 예술을 인간의 편의에 맞추지 않는다. 계절을 거스르지 않고, 시간을 강요하지 않으며, 관람객에게 천천히 있을 수 있는 권리를 허락한다. 키스테포스의 겨울잠과 아티펠라그의 사계절 운영은 상반된 방식처럼 보이지만, 모두 예술을 소비가 아닌 경험으로 되돌리려는 선언과 같다. 강을 건너고 숲을 걷는 이 두 장소는 예술이 어디에 있어야 하는가가 아니라 어떤 리듬으로 존재해야 하는가를 묻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