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이효리가 다시 방송 활동을 시작했다. 동시에 그가 새긴 타투의 의미가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화제가 되었다. 그의 왼팔에 새겨진 타투는 생명평화결사 연대의 로고다. 우주의 모든 존재가 다 연결되어 의지하며 살아간다는 의미다. 오른팔에 새겨진 Walk lightly in the spring, Mother earth is pregnant(봄에는 사뿐히 걸어라, 어머니 같은 지구가 임신 중이니)라는 인디언 속담에서 그의 자연주의적 세계관을 엿볼 수 있다. 이효리는 오래전부터 동물보호에 앞장서고 자연 속에서 살기 위해 제주로 이주하는 등 동물∙자연과 함께하는 삶을 실천해왔다.
원헬스(One Health)란?
자연과 인간을 하나로 보는 생태학적 관점은 흔히 불교 같은 종교나 환경운동의 영역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인간, 동물, 자연의 건강이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는 원헬스 개념은 의학 영역에서 출발했다. 1885년, 독일 의사 루돌프 피르호(Rudolph Virchow)는 처음으로 인수공통감염병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동물과 인간 의학 사이의 관계를 최초로 주목한 사례다. 1984년 수의학자 캘빈 슈바베(Calvine Schwabe)는 원메디슨(One Medicine)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며 인간과 동물의 의약품 통합을 주장했다. 이 용어는 2000년대에 인간의 건강은 동물·자연과 상호작용한다는 원헬스 개념으로 발전한다. 원헬스라는 용어는 2004년 미국의 야생동물보존협회(Wildlife Conservation Society)가 발표한 맨해튼 원칙(Manhattan Principles)에서 처음으로 등장했다.
지금 원헬스가 주목받는 이유, 신종 바이러스의 습격
최근 전 지구적으로 유행한 전염병으로 원헬스가 주목받고 있다.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인 사스(SARS: Severe Acute Respiratory Syndrome)와 중동호흡기증후군인 메르스(MERS: Middle East Respiratory Syndrome),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인 코비드19(COVID-19) 모두 원조 숙주로 박쥐가 지목되면서 인수공통감염병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높아졌다. 인간의 감염병과 동물의 감염병은 일반적으로 인간과 동물 사이에 전염되지 않는다. 하지만 인간과 동물이 밀접하게 접촉하며 생성된 바이러스가 그 둘 사이에 상호 전파되는 경우가 발생한다. 이것이 바로 인수공통감염병이다. 인간은 이 새로운 바이러스에 대항할 면역체계가 없다. 그래서 인수공통감염병은 인간에게 치명적이다.
그렇다면 왜 최근 유행한 바이러스는 모두 박쥐에서 시작되었을까? 전문가들은 박쥐를 바이러스의 저수지라 부른다. 박쥐는 바이러스가 서식하고 널리 퍼지는 데 매우 좋은 숙주의 조건을 갖췄기 때문이다.
1. 종 다양성
지구상의 포유류는 약 5,000종이 있는데, 그중 박쥐가 1,200여 종에 달한다. 바이러스는 완전히 다른 종으로 전염되기가 쉽지 않은데, 박쥐는 수많은 유사 종이 있어 비교적 상호 전염이 용이하다.
2. 밀집 서식
박쥐는 비좁은 동굴에서 서로 다른 종들끼리 밀집해 서식하는 경우가 흔하다. 이러한 환경에서 바이러스가 변이를 일으키며 쉽게 숙주를 옮기기 좋은 환경이 만들어진다.
3. 긴 수명
소형 포유류는 신진대사가 활발해 수명이 짧은 것이 보통이지만, 박쥐의 수명은 길게는 50년까지 간다. 그래서 오랫동안 감염과 재감염을 수없이 일으킬 수 있다.
4. 낮은 체온
박쥐는 다른 포유류에 비해 체온이 낮아 바이러스가 오래 머물 수 있다. 박쥐는 동면을 취하며 다소 낮은 체온을 유지하는데, 저체온 상태에서는 면역체계가 활성화되지 않아 바이러스가 오랫동안 생존할 수 있다.
5. 긴 이동 거리
박쥐는 날 수 있는 유일한 포유류다. 무려 2,000km를 이동하는 종도 있을 만큼 비행능력을 활용해 활발히 이동하고, 넓은 지역에 분포한다. 그 과정에서 바이러스를 퍼뜨리기 쉽다.
6. 먹이 전염
열대지방에 서식하는 과일박쥐는 특히 번식기에 엄청난 양의 과일을 먹는데, 소화하지 못한 과일을 토해내는 경우가 종종 있다. 벌목으로 파괴된 숲에서 먹이가 부족한 경우 다른 야생동물이 이것을 섭취해 박쥐의 바이러스가 전염될 수도 있다. 이 사례는 코로나 사태로 재조명받은 영화 <컨테이젼(Contagion, 2011)>에서 등장하기도 했다.
동물의 바이러스가 인간에게 전염된 역사
역사적으로 인류에게 인수공통감염병이 퍼지게 된 계기는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농경의 시작, 다른 하나는 대도시의 탄생이다. 인류는 농경과 함께 가축 사육을 시작했다. 인간과 동물의 밀접한 접촉이 이루어지는 환경에서 가축 바이러스가 변이를 일으켰고, 인간에게도 전염되었다. 재레드 다이아몬드(Jared Mason Diamond) 교수는 『총, 균, 쇠』에서 유럽인들은 다양한 가축 사육 과정에서 전염병을 겪으며 면역력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8만의 잉카제국 군대가 고작 168명에 불과한 스페인 피사로의 군대에 몰살당한 이유는 유럽에서 넘어온 전염병 때문이었다. 당시 아메리카 대륙에는 가축으로 길들일 수 있는 동물이 라마와 알파카뿐이라 다른 전염병에 대한 면역력이 없었다. 사실상 스페인 군대가 가져온 새로운 전염병이 잉카제국을 무너뜨린 것이다.
인간이 인수공통감염병에 노출된 두 번째 계기는 대도시의 탄생이다. 물론 로마 시대와 중세의 대도시에서도 전염병이 유행했다. 그러나 인구밀도와 교통수단의 발달 측면에서 현대 대도시에서의 파급력이 훨씬 크다. 코로나 19의 사례에서 알 수 있듯, 바이러스는 단 며칠 만에 국경을 넘어 인구가 밀집한 대도시에 속수무책으로 퍼진다. 대도시는 바이러스가 퍼지기 쉬운 환경이자 바이러스 자체가 생성되기 쉬운 환경이기도 하다. 빠른 도시화로 야생동물의 서식지가 파괴되며 그만큼 야생동물의 영역이 인간의 주거지와 가까워지고 있다. 박쥐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서식지를 잃은 박쥐가 농장 근처까지 접근했다가 가축에게 바이러스를 옮기고, 그것이 인간에게 전염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대도시에 효율적인 고기 공급을 하기 위해 탄생한 공장식 축산도 바이러스 발생의 원인으로 지목된다. 물론 의학∙수의학적 관점에서는 오히려 공장식 축산이 바이러스 전파를 막는데 더 효과적이라고 한다. 철저한 방역으로 바이러스를 통제하고, 전염병이 돌 경우 빠른 살처분으로 확산을 차단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완벽한 방역과 위생관리가 쉽지는 않다. 오히려 오염된 공장식 축산 환경에서는 바이러스가 발생할 확률이 훨씬 높다. 또한 바이러스를 막기 위해 동물에게 투여하는 엄청난 양의 항생제는 결국 내성을 가진 더 강력한 바이러스를 만들 수도 있다.
이제는 예방이다, 일상에서 실천할 수 있는 원헬스
생태계 파괴로 인한 야생동물의 인간 거주지 이동 → 가축과 접촉 → 공장식 축산으로 바이러스 증폭 → 인간에게 전염 → 대도시, 세계화로 바이러스 확산
위는 신종 바이러스가 전파되는 기본 경로다. 이 과정을 보면 결국 인간과 동물, 환경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이 모두의 건강을 지키는 것이 바이러스를 예방하는 근본적인 해결책이다. 최근 원헬스의 가치를 생활 속에서 실천하는 운동이 밀레니얼 세대에게 상당한 관심을 끌고 있다.
20~30대를 타깃으로 시사∙상식을 전하는 인기 팟캐스트 듣다보면 똑똑해지는 라이프(듣똑라)에서 진행하는 원헬스 프로젝트(One-Health Project)가 그중 하나다. 이 프로젝트는 실천 리스트를 공유하고, 매주 미션을 공개하며 구독자들의 참여를 독려한다. 미션은 텀블러 가지고 다니기, 에코백으로 장보기, 한 끼 채식하기 등 일상에서도 충분히 실천할 수 있는 것들이다.
물론 이런 생활 속 원헬스 실천으로 당장 퍼지고 있는 바이러스를 막을 수는 없다. 하지만 원헬스 실천은 바이러스 확산의 가장 뿌리 깊은 원인인 생태계 파괴를 막으려는 의미 있는 시도다. 이러한 개인의 작은 실천을 통해 원헬스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의 전환이 일어날 것이다.
많은 전문가들은 코로나 이후 우리의 삶이 완전히 달라지리라 전망한다. 상당수의 변화는 팬데믹 이후 닥쳐올 장기불황이 직접적인 변수다. 원헬스의 가치에 주목할 수 있게 된 건 불행 중 다행이다. 그동안 인간과 자연이 하나라는 사상은 마치 현실과 동떨어진 어려운 철학인 것처럼 여겨졌다. 바이러스에 의한 고통은 현재 진행형이지만, 우리 모두 인간, 동물, 자연을 하나로 생각하는 원헬스의 가치를 피부로 느끼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