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
요즘 공원만큼 각광받는 공간이 없다. 하이퍼로컬(hyperlocal·지역 밀착)의 부상과 함께, 내 집 앞 가장 가까운 공간에서 편안함과 여유를 누릴 수 있는 시설이 공원밖에 없다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공원의 위상이 달라졌다. 사전적 의미로 아주 좁은 지역의 특성에 맞춘이란 뜻의 하이퍼로컬은 기존의 로컬보다 더 좁은 동네 생활권을 뜻한다. 팬데믹 직후인 2020년 초부터 전 세계적 트렌드로 부상하기 시작했다.

 

코로나19로 일상화된 락다운은 개인의 주 활동 반경을 거주 지역으로 한정하게끔 했고, 긴급재난지원금은 지역 내 지정된 장소에서만 소비가 가능했다. 슬세권(슬리퍼+세권)이란 용어가 함의하는 것처럼 동네로 좁혀진 생활권 활동 범위에서 공원의 가치는 새롭게 인식되기 시작했다. 좀 더 먼 곳에 있는, 유명한 (필연적으로 사람들이 많이 몰려들 수밖에 없는) 공간들이 폐쇄됨에 따라 공원은 대안 공간이자 이동이 제한된 내가 누릴 수 있는 최후의 보루로 남겨졌다.

 

실제로 코로나 이후 판매와 오락 시설 이용은 19% 감소했지만 국내 도시공원 이용률은 전에 비해 51% 증가했다. 도시민의 여가 및 야외활동 장소가 공원으로 집중된 것이다. <국민여가활동조사>(문체부, 2021) 결과에 따르면 국민의 하루 평균 여가 시간은 주 평균 30.6시간이며, 그중 가장 많이 여가를 즐긴 공간은 아파트 내(집 주변) 공터(18.9%)로 나타났다. 집 주변의 공터를 이용한 사례가 가장 큰 폭으로 늘었으며 그다음으로 많이 이용한 곳도 생활권 공원으로 드러났다. 동네 단위의 근린공원이 우리에게 안전하고 건강한 도시 활동을 보장하는 최소의 단위이자 우리가 가장 많은 여가 시간을 보내는 공간으로서 자리매김한 셈이다.

 

아래 이미지 구글에서 국내 안드로이드 모바일 기기 이용자의 위치 데이터를 바탕으로 발간한 코로나19 이동 보고서 중 일부이다. 이 자료에서도 소매점·오락시설, 식품점·약국에 비해 공원의 수치가 51%가량 유의미하게 계속 증가함을 확인할 수 있다.

전세계 국가의 공원 이용 증가율 © 서울연구원

그렇다면 공원이 각광받는 시대에서 도시민은 어떤 모습으로 공원을 누리고 있을까? 다소 웃픈 광경일 수 있지만 팬데믹 이후 뉴욕 도미노 공원에서는 약 2.5m의 원을 그려 이동을 제한하는 식의 사회적 거리두기 공원을 시행한 바 있다. 공원 내 인간 주차장(human parking spots in the park)이란 별칭을 얻을 정도로 화제가 된, 도미노 공원에서 휴식을 취하는 사람들의 모습은 코로나 이후 코로나 시대에 공원을 이용했던 방법이라고 훗날 전시되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기이한 형태로, 상황에 적응해나가는 인간의 모습을 보여준다. 샌프란시스코 미션 지구의 돌로레스 공원 또한 원형을 이용해 이동을 제한하는 거리두기를 시행했었다.

 

반면 사회적 거리두기 시대 속 서울의 공원들은 조금은 눈치를 보는 입장이었다. 주요 한강공원에서 시민들이 삼삼오오 모여 방역 지침을 지키지 않는 모습, 음주·취식 자제라는 팻말이 무색하게 돗자리에 앉아 술을 마시는 모습, 상주 단속반이 없어 관리·단속이 이뤄지지 않는 모습 등을 지적하는 기사가 연이어 올라왔다.

 

사실 이는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발맞춰 공원이 어떻게 변화해야 하는지에 대한 논의와 상상력 부족이 촉발한 결과이기도 하다. 단순히 시민들의 만남을 제한하고, 구획된 공간으로 물리적 거리두기를 강화하기보다, 공원의 구조 자체를 전환하고 다른 방향을 상상해 보는 방법이 필요하다. 우리에게는 공원 내부의 디자인적, 심미적 변화가 필요하며 공원을 둘러싼 외부 공간(지역사회, 도시, 커뮤니티)의 특성을 적극 반영해 도시와 연속성을 지닌 동시에 차별성을 지니는 형태로 변화할 필요가 있다.

 

숲세권이란 신조어가 상징하듯 최근 들어 공원의 가치는 두드러지게 상승했다. 앞서 소개한 구글의 전 세계 코로나 전후 이동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공원 이용 증가율(51%)은 단연 세계 1위로, 그 어느 때보다 공원을 이용하는 국민의 수가 늘어난 것으로 집계된다. 이제 공원은 단순한 녹지공간을 넘어, 도시를 구성하고 대표하는 도시민의 쉼터이자 창조의 발상지로서 새로운 의미화의 국면을 맞는 중이다.

 

이 글에서는 그 상상력 확장에 참고가 될 만한, 다양한 세계 공원을 소개하고자 한다. 공원이 지역 커뮤니티의 고질적인 문제에 솔루션이 된 네덜란드의 바위트스호트 랜드 아트 파크와 한 작가의 철학을 그대로 껴안으며 전통적 공원에서 대지 예술 작품으로 재탄생한 영국의 크라윅 멀티버스, 문학에서 시작된 상상력을 확장해 섬 자체를 하나의 테마도시로 만든 미국의 낸터킷에 대해 알아보려고 한다.

‘공원 속 인간 주차장’이란 평을 들은 사회적 거리두기 시대의 뉴욕 브루클린 도미노 공원 © eyesmag
<국민여가활동조사> 결과 가장 많이 이용한 여가공간 © 문화체육관광부

대지 위의 푸른 소음 차단기: 네덜란드 바위트스호트 랜드 아트 파크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 위치한 스키폴(Schiphol) 공항은 네덜란드를 대표하는 공항이자 세계 10위 안에 드는 공항으로, 유럽 교통의 허브 역할을 한다. 그러나 스키폴의 화려한 이력 뒤에는 소음으로 피해를 받는 주민들이 있었다. 활주로가 6개나 되는 거대 공항이기에(참고로 인천국제공항은 활주로가 4개다.) 인근 도시 호프도르프(Hoofddorp) 주민들은 공항에서 비롯되는 각종 소음으로 인해 끊임없이 민원을 제기했다. 소음으로 인한 갈등은 갈수록 깊어지는 상황이었으며 소음은 종종 암스테르담 시내로까지 이어지기도 했다. (스키폴 공항은 암스테르담으로부터 불과 11km밖에 떨어져 있지 않다.)

 

이 주변의 프로젝트 디자인을 맡은 H+N+S 조경 건축그룹과 네덜란드 실용과학연구소(TNO)는 공원 조경을 이용해 공항 소음을 해결하려고 머리를 모았다. 이들은 연구 진행 도중, 인근 주민들의 제보로 토지에 쟁기질을 하면 공항 소음이 줄어든다는 사실을 듣게 되었다. 토지에 경사를 만들면 해당 경사면이 소음을 왜곡하고 분산함으로써 소음 전달을 방해하고 이를 통해 소음이 줄어든다는 원리였다.

 

이들은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공원의 조경을 디자인하기 시작했다. 먼저 넓은 공터를 중심으로 3m 높이의 제방을 놓았다. 이 제방은 공항의 소음을 분산하고 감소시켰다. 제방 사이에는 다양한 문화·체육 활동을 위해 활용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었다. 또한 가장 중심부에 위치한 마름모꼴의 길이 500m, 폭 100m인 부지를 비롯해, 제방 사이 곳곳에 공간을 형성했다.

 

이 공간들은 밀폐된 것 같으면서도 끊임없이 이어져 마치 미로와 같은 심상을 불러일으켰다. 소음을 감소시킨다는 본연의 기능 외에도 지역 주민에게 미적, 레크리에이션적 가치를 더할 뿐 아니라 내부에 피라미드형의 예술 작품을 배치해 결과적으로 실용성과 아름다움을 모두 잡은 사례가 되었다.

바위트스호트 랜드 아트 파크 전경 © worldlandscapearchitect
경사 지면으로 공항 소음이 분산되는 모습 © hnsland

정원은 그 자체로 우주의 축소판: 영국 크라윅 멀티버스

크라윅 멀티버스(Crawick Multiverse)는 국내 순천 호수정원을 설계한 인물로 유명한 미국의 조경 설계가이자 건축가, 찰스 젠크스(Charles Jencks)가 시도했던 생전 마지막 프로젝트이다. 평소 현대 과학적인 요소와 우주, 동양철학 등을 자연에 접목하기 좋아했던 그는 주로 스코틀랜드 부지를 배경으로 활동했다. 그가 만든 크라윅 멀티버스는 스코틀랜드 남서부 노천 탄광 지역을 아트랜드로 재탄생하기 위해 조성되었다. 멀티버스라는 이름답게 우주, 천문학 등 다양한 우주적 영감을 불러일으키는 구조물로 구성된 이 공간은 “우리는 정원을 거닐며 우주의 축소판을 경험한다”란 말을 남긴 찰스 젠크스의 작품 철학관을 그대로 드러낸다.

 

크라윅 멀티버스는 총 8개의 지형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탄광이었던 이 공간에 묻혀 있는 수천 개의 바위를 활용해 초원-산-협곡-사막 4가지 생태를 연결해 이를 은하계, 우주, 혜성으로 은유한 경로로 형성되어 있다. 멀티버스 한가운데에는 독특한 경기장 현상의 Sun Amphitheatre가 있다. 해당 공간은 최대 5,000명의 인원을 수용할 수 있으며, 음악 및 연극 공연, 지역 사회의 전통 행사, 전시회, 결혼식 등 다양한 용도로 사용된다.

 

사실 크라윅(Crawick)은 1980년대 스코틀랜드 남부 니스강(Nith) 상류를 따라 존재했던 탄광의 일부였다. 해당 토지를 소유한 부클루(Buccleuch) 공작은 이 버려진 6만 6천 평가량의 땅을 어떻게 하면 재생할 수 있을지, 어떻게 해야 지역 사회와 관광 명소로서 유의미한 공간으로 탈바꿈할 수 있을지 고민했다. 그는 2005년 5월, 100만 파운드(한화 약 15억 원)를 투자해 찰스 젠크스를 초청했다. 젠크스는 이 토지에 숨어 있는 수많은 잠재성을 포착하고 협곡 사이의 결을 따라가며 하나의 예술 작품으로서 공간을 재창조할 스케치를 그려냈다.

 

작업은 2012년부터 시작되었으며 1톤의 흙과 약 2,000개의 바위가 발굴돼 젠크스의 디자인과 융합된 크라윅 멀티버스만의 특이한 미감을 만들어낸다. 2015년 6월, 크라윅 멀티버스는 처음으로 대중에게 공개되었고 지금까지 2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방문한 것으로 집계되었다. 지역 사회 학생들의 생태적‧예술적 배움 장소이자 커뮤니티가 응집할 수 있는 모임 장소로서, 또한 전시‧공연‧스포츠가 벌어지는 창조의 장소로서 크라윅 멀티버스는 말 그대로 다변화된 기능과 형태로 지역 사회에 기여했고 꾸준히 새로운 관광객들을 끌어들이는 명소가 되었다. 크라윅 멀티버스의 사례는 한 작가의 세계관과 작품 철학이 버려진 땅에 어떤 방식으로 예술성과 심미적 감각을 불어넣는지를 확인하게 만든다.

찰스 젠크스가 설계한 순천만 정원 전경 © 중앙일보
크라윅 멀티버스 스케치 © 크라윅 멀티버스

쇠퇴해 가던 섬을 테마도시로 탈바꿈하다: 미국 낸터킷

우리에게 테마파크란 용어는 익숙해도 테마도시란 말은 생소하다. 테마파크의 어원은 1955년 미국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미국 캘리포니아 애너하임에서 처음 디즈니랜드를 오픈했을 때 총책임자였던 월트 디즈니(Walt Disney)는 디즈니랜드를 설명해달라는 요청에 “이것은 테마파크다”라고 말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지금까지 자주 사용하는 테마파크가 인류 최초로 언급된 순간이다.

 

디즈니랜드의 성격을 고려해 보면 테마파크는 놀이공원 등과 같은 상업 관광시설에 보다 더 가까운 것 같다. 그러나 보다 넓은 의미에서 특정 주제‧아이디어를 기반으로 연출된 (비상업적인) 공원까지 아우르는 개념으로 보는 시각도 존재한다. 이 글에서는 후자의 테마파크 개념을 빌려와 좀 더 지리적으로, 관계적으로 넓은 범위의 테마도시인 낸터킷을 소개하고자 한다.

 

낸터킷은 미국 매사추세츠주 남쪽에 있는 섬이다. 외딴곳이 으레 그렇듯 수많은 작가에게 영감과 신비의 원천이 되곤 했는데, 그중 우리에게 가장 친숙한 작품은 미국 작가 허먼 멜빌(Herman Melville)의 <모비딕(Mobydick)>일 것이다. 모비딕 외에도 공포 소설의 대가 에드가 앨런 포의 <낸터킷의 아서 고든 핌 이야기> 등도 낸터킷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한다.

 

낸터킷은 1940년대까지 세계에서 가장 붐비는 포경선 항구였다. 당연히 지역 경제도 포경 산업에 크게 의존했다. 소설 <모비딕>은 이러한 양키 포경 혹은 포경 러쉬라는 격동의 시대를 기록한 작품이다. 작중 고래에 미친 에이허브 선장은 평생을 염원하던 하얀 고래 모비딕을 쫓아다닌다. 소설에서나 실제로나 고래를 잡는다는 건 벼락부자가 된다는 의미였으며, 그 당시로서는 한방에 팔자가 피는 대역전극의 시작이기도 했다.

 

그러나 그토록 빛나던 시대도 끝이 있었다. 1925년 마지막 포경선이 뉴베드퍼드항으로 돌아온 것을 끝으로 캘리포니아를 중심으로 골드러시 붐이 일어났고 사람들은 돈을 좇아 금광으로 달려갔다. 낸터킷의 쇠퇴는 소설 못지않게 드라마틱 하다. 1846년 낸터킷 시내에서 원인을 알 수 없는 화재가 발생했고 화재는 고래기름통을 타고 부두 전체를 태웠다. 마치 향유 고래들의 복수처럼 부두는 수십 년간 절여진 고래기름으로 잿더미가 되고 말았다.

 

전설과도 같은 이야기가 켜켜이 쌓인 낸터킷이 다시 조명되기 시작한 건 지역의 흥망성쇠를 담았다고도 할 수 있는 <모비딕>을 하나의 테마이자 정체성으로서 다시금 껴안으면서부터이다. 낸터킷은 작가가 섬과 주변에 남겨 놓은 발자취들을 그러모아, 하나의 관광 플랫폼으로 재탄생시켰다. 과거 포경선 선원으로도 일한 경력이 있는 멜빌이 출항을 기다리며 다녔다는 뱃사람 교회(Seamen’s Bethel), 친한 작가 나다니엘 호손(Nathaniel Hawthorne)에게 보낸 편지 속 장소인 산카티 등대(Sankaty Head), 소설의 주요 모티프가 된 <에식스호 비극>의 주인공 폴라드 선장의 집 등 낸터킷은 <모비딕>과 작가를 따라다니며 하나하나 역사적‧문화적 가치를 지닌 도시로서 낸터킷의 가치를 재발굴했다.

 

쇠퇴하던 포경 도시가 세계적인 관광도시로 탈바꿈된 데는 지역사회의 세월 속에 녹아 있는 흔적들을 모비딕과 고래, 에식스호라는 거대한 테마들로 엮어냈기 때문이다. 멜리사 머피 낸터킷 문화 관광국장은 2016년 한국 방문 당시, 그 아래에 숨어 있는 간단한 대원칙을 다음과 같이 말했다.

 


“건축 유적과 역사의 숨결이 살아 있는 가옥의 내·외관을 보존하는 데 엄청난 노력을 들이고 아름다운 과거의 유산을 고스란히, 귀중하고 독보적인 가치로 보존해 낸터킷을 지역사회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특별한 지역으로 거듭나게 한다.”


 

흔히 테마를 앞에 붙인 공원이나 도시는 지나치게 관광화되어 있거나 상업화되어 있어 거부반응을 일으키는 경우들이 있다. 그렇지만 그 테마가 도시의 역사를 품은 채 보존하고 통합하려는 후대의 노력이 뒤따라 만들어진 결과물이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오늘도 낸터킷은 과거와 현재의 만남을 훌륭히 이어나가고 있다.

낸터킷 섬 © 한겨레
소설 모비딕의 배경임을 밝히는 ‘에식스호’ 선장 폴라드의 집에 붙어있는 푯말 © Smithsonian Magazine

가까운 미래를 상상하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도시공원

그렇다면 앞으로 우리가 살아갈 도시 속 테마 공원의 모습은 어떨까? 감염병과 함께 살아가는 현시대의 주소를 반추하게끔 만드는, 포스트 코로나 시대 속 도시공원의 미래를 상상해 보자. 2020년 서울시는 ‘포스트 코로나 시대 대비 건축 아이디어 공모전’을 열어 세계 각국의 건축가로부터 104개의 작품을 출품 받았다. 그중 대상 작품은 베트남 하노이 건축대학 재학생 팀(Hoang Nhat Anh, Tran Ba Anh, Trin Dang Huy)이 제출한 <The Invisible Facemask>이 수상했다.

 

<The Invisible Facemask>는 공원이라는 사회적 공공장소를 안전하게 향유할 수 있는 새로운 대안 공간을 제시한다. 산책로 당 한두 명 정도가 돌아다닐 수 있는 다양한 수직 교차로와 수직 길의 산책로가 놓였고, 접촉 감염을 막을 수 있도록 별도의 난간을 설치지 않았으며, 미로 같은 구조와 개인화된 포켓공간을 향유할 수 있도록 나무 등의 조경을 구성해 비대면 구조의 조경 공간을 제시했다.

 

팬데믹 시대에서 기존의 대규모 공원 녹지는 집적과 높은 이용밀도를 야기하므로 가급적 낮은 밀도와 이동성 기능을 수행하는 선형 공원의 가능성 또한 모색할 볼 필요가 있다. 도시의 대규모 인구가 몰리는 거점으로서의 공원이 아닌, 소규모 인원이 모였다 떠날 수 있는 자투리 공간으로서의 생활권 근린공원의 역할을 살펴볼 수도 있다.

 

주거지 주변의 남는 공간을 활용해 녹지 공간을 확보하는 스페인 바르셀로나의 Superblocks가 대표적인 예다. 블록들을 병합해 주민 차량을 제외한 다른 차량은 외곽으로 우회하게끔 만들고 대기 질 개선 및 공공 공간의 질과 양을 향상해 걷기 좋은 도시환경을 만들어 나가겠다는 계획이다.

 

건축물 자체에 공원의 요소를 끌어오는 방법도 있다. 이탈리아 건축가 스테파노 보에리(Stefano Boeri)의 보스크 베르티칼레(Bosco Verticale, 2014)에서 그 아이디어를 확인할 수 있다. 이탈리아어로 수직 숲을 의미하는 이 작품은 건축물에 어떻게 녹지를 더할 수 있는지를 풀어낸 프로토타입의 건물이다. 밀라노에 지어진 이 두 개의 타워는 각각 80m, 112m의 높이를 자랑하는데, 약 800그루의 나무가 심겨 있다고 한다. (참고로 1만 제곱미터 숲에는 평균 350여 그루의 나무가 있다고 하니, 이 아파트는 그 자체로 거대한 숲이라 부를 수 있다) 대형 화분과 키 큰 나무들이 충돌하지 않도록 3개 층 이상 곧게 자라도록 엇갈려 배치한 3m 깊이의 돌출형 발코니가 건물의 형태적 특징을 이룬다.

 

모든 나무에 공급되는 물은 중앙 집중형으로 관리된다. 보에리는 건축할 때부터 나무를 심기 위해 추가하는 콘크리트의 양과 나무가 상쇄하는 이산화탄소 양을 비교해 해당 건물이 친환경적인지를 면밀히 분석했다. 그는 이 작품을 두고 “시간에 흐름에 따라 이곳에서 거주하는 유기체들의 삶이 일부는 자연에 의해, 일부는 인간에 의해 조율되는 과정을 보여준다”라며 건물이 지닌 생태계적 특성을 언급한다. 코로나19로 재택근무와 락다운이 일상화된 삶 속에서, 가장 가까운 공간 집 안에서 누리는 자연의 환경은 어떠할지 그 상상력의 극한을 보여주는 작품이라 평할 만하다.

서울연구원은 지난 2020년 발간한 <감염병 시대, 도시 변화의 방향을 묻는다>에서 사회 가치 구조가 어떻게 변화할 것인지에 대한 질문을 던졌다. “거대하고 밀집된 도시가 아닌, 작은 도시(하이퍼로컬) 시대가 오면서 감염병 시대 속 공동체 가치는 약화될 것인가” 필연적으로 우리가 더 적게, 작게 만나야 하는 게 시대의 요구라면 우연한 대규모 만남이 종종 선사했던 불편함을 통해 확장되는 이화(異化)의 감각, 사고의 (반강제적인) 확장성 기회는 점차 줄어드는 게 자명한 현실이다. (여기에 알고리즘으로 촉발된 확증편향과 필터 버블은 이를 더욱 심화시킨다.)

 

필자는 이렇게 부정적인 질문을 세팅하고 던진다. 그렇다고 공원이 유일한 제일의 해결책이란 뜻이 아니다. 그저 작더라도, 또는 작기에 더 깊은 소통의 긍정성을 보여줄 수도 있는 최소한의 단위로서 공원의 가치를 조명하고자 했다. 그 내밀함은 개인의 교차하는 생각과 성찰적인 시각의 단초가 되어줄 수도 있고, 거대 도시에서는 간과되는 쉬운 동네라는 개념을 발견하게 만들 수도 있다.

 

Before Christ(기원전) / Anno Domini(주님의 해)를 지칭하던 시대를 지나 이제는 BC(Before Cororna) / AC(After Corona) 시대를 맞이했다. 인류가 결코 원치 않았던 감염병의 시대가 도래했지만, 피할 수는 없으니 함께 답을 찾아보자. 더 나은 사회적 삶을 위해 공원은 어떻게 기능할 수 있을가? 공원의 역할은 앞으로 어떻게 변모할 것인가? 이를 통해 동네-지역-도시는 점점 넓어지며 연결의 감각을 회복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