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

전 세계인이 모여 각자의 철학과 감각을 뽐내는 코스모폴리탄의 도시 뉴욕은 수많은 영화와 드라마, 소설 속 배경으로 등장한다. 영어 공부를 계획하는 사람들에게 아직도 인기가 높아 넷플릭스에서 상위 재생목록을 차지하는 드라마 <프렌즈(Friends)>도 뉴욕에 사는 젊은이들의 이야기다. 오프닝 영상부터 복잡하고 활기찬 뉴욕 거리를 잘 드러낸 드라마이자 영화 <섹스 앤드 더 시티(Sex and the City)>는 지금도 뉴욕 곳곳의 주요 촬영지에 섹스 앤드 더 시티 관광버스가 다닐 정도로 뉴욕 관광의 가이드라 불린다. 극의 주인공 캐리는 뉴욕의 온갖 세련되고 멋진 장소는 다 돌아다니는데 2008년 개봉한 영화 <섹스 앤드 더 시티>에서 미스터빅과의 결혼식 장소로 뉴욕공공도서관(New York Public Library)을 선택한다.

 

전 세계의 여느 관광객과 마찬가지로 한국 여행객들도 두 마리 사자가 입구를 지키는 고풍스러운 뉴욕공공도서관 건물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는 것을 뉴욕 여행의 필수 코스로 삼는다. 하지만 많은 사람은 5번가에 위치한 이 상징적인 건물 하나만 뉴욕공공도서관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뉴욕공공도서관은 브루클린과 퀸스 지역을 제외한 뉴욕 주 내 3개의 중앙도서관, 85개의 분관 도서관, 4개의 리서치 도서관을 통칭하여 부르는 이름이다. 뉴욕공공도서관은 100년이 넘는 역사만큼 다양한 이야기를 담고 있는데, 2004년 출간된 스가야 아키코의 『미래를 만드는 도서관(지식여행)』을 통해서도 자세한 내용을 알 수 있다. 이 책은 지금까지도 도서관 관련 포럼이나 세미나에서 주요하게 언급되는 도서이자, 국내 도서관 운동에도 큰 영향을 미친 책이다. 이 책에서는 미래를 만드는 도서관이 바로 뉴욕공공도서관이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뉴욕공공도서관의 어떠한 활동들이 이곳을 미래 도서관이 본받아야 할 표본으로 만드는 것일까?

라이브 프로그램(LIVE from the NYPL)

뉴욕공공도서관의 중앙 및 분관 곳곳에서는 항상 작가와의 만남을 비롯한 끊임없는 강연이 열린다. 라이브(LIVE from the NYPL)는 대표 프로그램으로, 지난 2005년 사람들에게 두 마리 사자상이 있는 곳으로 더 많이 알려진 42번가 스티븐 A. 슈워츠만 건물(Stephen A. Schwarzman Building)에서 시작되었다. 이는 뉴욕공공도서관 주최로 이뤄지는 대담 및 공연 시리즈로 소설가 움베르토 에코(Umberto Eco), 언어학자이자 철학자 노암 촘스키(Avram Noam Chomsky), 유명 래퍼 제이-지(Jay-Z), 저술가 록산 게이(Roxane Gay) 등 평소에 쉽게 접할 수 없는 저명한 인사들이 자리하여 문학, 예술, 팝 문화, 철학, 음악 등 폭넓은 주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 라이브 행사 현장에 참여하려면 입장료를 내야 하지만, 온라인 실시간 중계 및 유튜브 영상을 통해서도 지난 강연을 무료로 만나볼 수 있다.

팟캐스트(Podcast)

뉴욕공공도서관은 2종류의 팟캐스트를 운영한다. 라이브러리 토크(Library Talks)는 매주 일요일 업데이트 되는 라이브 토크 팟캐스트이다. 뉴욕공공도서관의 라이브 이벤트 프로그래머인 이던 플럭스 클록(Aidan Flax-Clark)이 진행한다. 이 팟캐스트에서는 청자들이 좋아하는 다양한 분야의 작가들을 초청해 이야기를 나눈다. 그뿐만 아니라 현재 사회에서 이슈가 되는 주요 쟁점들을 연속으로 다루기도 한다. 2019년 6월에는 뉴욕 프라이드 행진(NYC Pride March)과 스톤월(Stonewall) 항쟁 50주년을 축하하는 방송을 진행했다.

 

라이브러리언 이즈 인(Librarian Is In)은 책, 문화 그리고 읽을거리에 관한 팟캐스트이다. 매주 진행자인 그웬 글레이져(Gwen Glazer)와 프랭크 콜렐리우스(Frank Collerius)가 읽고 있는 책, 대중문화와 문학의 시대정신, 도서관의 세계에 관해 토론하고 특별 손님을 초청하기도 한다. 그웬은 독자 서비스 부서의 추천 사서이며 프랭크는 제퍼슨 시장 도서관(Jefferson Market Library)의 관리자로 일하고 있으며, 이들은 이 팟캐스트를 통해 책의 세계에 대한 그들만의 독특한 시각과 유머, 열정 그리고 지식을 제공한다.

 

우리나라 도서관은 아직 각 사서의 역량과 역할이 크게 드러날 수 없는 구조이다. 하지만 미국의 사서는 로스쿨을 졸업한 변호사와 마찬가지로 석사과정을 마쳐야만 그 자격을 얻을 수 있는 고도의 전문직이다. 그 때문에 사서라고 하면 특정 주제에 대해 전문 지식을 지닌 주제 사서로서의 역할이 강조되며, 도서관 이용자 역시 필요한 자료를 찾을 때 제일 먼저 도서관의 사서와 함께 의논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긴다. 현직 사서가 진행하는 팟캐스트가 뉴욕공공도서관의 주요 콘텐츠라는 점은 도서관이 사서의 위치를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하는지를 짐작하게 한다.

 

뉴욕공공도서관이 운영하는 팟캐스트가 특별한 점은 바로 방송에서 더 나아가 참고 서비스와 더불어 방송에서 언급한 자료를 제공한다는 것이다. 라이브러리언 이즈 인은 각 방송에서 나눴던 이야기 주제와 그와 관련된 기사, 이미지 및 기타 자료, 방송에서 언급했던 추천 도서 링크 등을 꼼꼼히 기록해 두고, 매 에피소드마다 참고자료를 업데이트 한다. 그렇기 때문에 청취자들은 뉴욕공공도서관 홈페이지의 해당 팟캐스트 페이지에서 팟캐스트를 들으면서 궁금했던 자료를 바로 찾아볼 수 있다. 라이브러리 토크는 기록하는 것에서 더 나아가 전체 방송 스크립트를 제공한다. 30여 분의 방송 원고를 기록하기가 쉽지 않은 일이지만 이를 제공함으로써 청각이 불편한 사람들도 방송 내용을 접할 수 있도록 한다.

 

컬쳐 패스(Culture Pass)

뉴욕공공도서관은 뉴욕에 거주하거나, 공부하고 또는 일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든 무료로 도서관 이용증을 발급받아 도서관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다. 그뿐만 아니라 도서관 이용증을 소지한 사람이라면 또 다른 특별한 혜택을 누릴 수 있다. 이 이용증을 컬쳐 패스라고 부른다. 뉴욕공공도서관 및 퀸스와 브루클린 도서관 이용증을 가진 사람은 누구나 미국자연사박물관, 브루클린 식물원, 뉴욕현대미술관 PS1 등 약 50여 곳의 뉴욕의 주요 문화기관을 무료로 입장할 수 있는 컬쳐 패스를 발급받을 수 있다. 도서관 이용증이 뉴욕 곳곳의 문화를 체험할 수 있게 하는 마법의 열쇠로 변신하는 것이다.

애프터 파티(The Library After Hours)

어느 금요일 밤, 도서관이 힙스터로 가득 찬 멋진 파티장이 된다. 음악과 스낵, 음료는 물론 흥겨운 EDM 등의 음악과 평소에는 접할 수 없는 도서관 특별 소장품을 볼 수 있는 기회도 제공하는 이 이벤트는 매번 다른 키워드를 가지고 진행된다. 2017년의 할로윈 이벤트에서는 유명 TV쇼 <프로젝트 런웨이>의 팀 건이 코스튬 경연의 심사위원으로 활약했다. 이렇듯 도서관을 멋진 파티장으로 이용하는 다양한 행사는 평소 책이나 강연에 관심이 없던 사람들도 자연스럽게 도서관을 방문하도록 이끄는 경로가 된다.

 

성인을 위한 교육 프로그램(Education Program for Adults)

이제 국내 도서관에서도 아이들을 위한 읽기 향상 교육, 문화예술 교육프로그램, 양육자를 위한 교육 프로그램 등을 쉽고 다양하게 만나볼 수 있다. 그러나 아직까지 새로운 직업을 위한 정보나 교육프로그램을 찾을 때 도서관을 떠올리기는 쉽지 않다. 뉴욕공공도서관은 이민자들을 위한 ESL(English as a Second Language) 프로그램뿐만 아니라 컴퓨터 및 기타 디지털 기기 활용 교육, 직업 교육 및 상담 등 성인 이용자들에게 필요한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을 갖추고 있다. 여러 분관도서관에서 이력서 검토, 가상 인터뷰 등의 강의와 워크숍이 수시로 열리며. 특히 매디슨 거리에 위치한 과학, 산업, 비즈니스도서관(Science, Industry and Business Library, SIBL)은 리서치도서관으로서 스타트업 및 소상공인, 구직자 등에게 보다 전문적인 경제경영 데이터를 제공한다. 또한 특허 및 상표, 인구조사, 무역 통계수치 등의 정부 자료, 그리고 의회 및 법률정보 등을 갖추고 있다.

 

또한, 테크 커넥트(Tech Connect)라는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다. 이는 기술교육 및 컴퓨터 교육에 대해 많은 사람이 이전보다 더 관심을 두게 되었기 때문에 생긴 것이다. 모든 연령의 사람들은 이 프로그램을 통해 컴퓨터와 과학기술을 어떻게 사용하면 되는지 자신의 기술을 어떻게 발전시키면 되는지 배울 수 있다. 그리고 자신의 경력을 계발하고, 시야를 넓혀 가족과 친구들 사이의 더 큰 연결고리를 만들 수도 있다. 테크 커넥트는 브롱스, 맨하탄, 스테이튼 아일랜드에 위치한 80개 이상의 분관에서 진행되며, 80개가 넘는 기술 수업을 모두 무료로 제공한다. 수업에서는 컴퓨터, 태블릿, 인터넷 기본 사항, 마이크로 오피스, 화상 채팅, 온라인으로 직업을 찾는 방법 등을 배운다. 또한 열린 연구소를 통해 일대일 맞춤형 컨설팅도 제공한다. 수업은 기술에 대한 이해도가 낮은 이용자부터 높은 사람까지 모두 참여할 수 있으며, 대부분의 수업은 뉴욕공공도서관 분관에서 진행하는데, 이 중 일부는 스페인어와 중국어로도 들을 수 있다. 직접 수업에 참여하지 않아도 유튜브 채널에서 강좌를 보고 도움을 받을 수도 있다.

The Library After Hours Ⓒ NYPL
Tech Connect Ⓒ NYPL

도서관은 책을 빌리거나 조사를 하기 위한 장소라고 생각했던 나는, 도서관에 이보다 훨씬 중요한 역할이 있다는 것을 뉴욕공공도서관을 통해 배웠다. 도서관은 과거 인류의 위대한 업적을 소중히 전달하고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기 위한 소재를 제공한다. 의욕과 아이디 그리고 호기심 넘치는 시민을 풍부한 소장 자료에 빠져들게 하고, 개인의 능력을 최대한으로 끌어내기 위해 아낌없이 원조를 제공한다. 그것이 머지않아 사회를 활성화한다고 믿으며······.

시민의 활동 기반을 형성하는 기초적인 시설을 인프라라고 부른다면, 도서관이야말로 지금의 사회에 있어 무엇보다 필요한 인프라가 아닐까? 시민을 위한 지적 인프라.

– 스가야 아키코, 『미래를 만드는 도서관(2004, 지식여행)』

 

뉴욕공공도서관은 전 세계에 도서관 관계자들에 도서관의 본래의 의미를 실천으로 보여줌과 동시에 미래 도서관의 청사진을 끊임없이 제시한다. 인스타 노블즈(Insta Novels)에서는 인스타그램을 이용하여 디지털 소설을 제공하고, 낙소스 뮤직 라이브러리(Naxos Music Library)를 통해서는 무료 음악 스트리밍 서비스를 제공한다. 또한 앞서 소개한 컬쳐 패스 등 시대의 요구에 발맞춘 다양한 콘텐츠를 제공하고 있다.

 

뉴욕공공도서관 측은 지난 2017년, 2020년 재개장을 목표로 개보수 중인 미드 맨하탄 도서관(Mid-Manhattan Library)에 이어 뉴욕공공도서관의 아이콘인 스티븐 A. 슈워츠만 빌딩도 재단장 하겠다고 밝혔다. 이러한 재단장을 통해 뉴욕공공도서관은 지금까지 창고로 사용한 공간들이 이용자를 위한 자료 조사, 전시, 교육프로그램 등의 장소로 확대해 이용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로써 건물 내 공용공간을 현재의 2배 이상으로 늘리겠다는 계획이다.

이는 도서관이 기존의 자료를 보관하고 제공하는 도서관에서 나아가 더욱 많은 이들이 모이고, 만나고, 소통하는 공간으로 변해가야 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디지털의 발전으로 굳이 서로 직접 만나지 않아도 안부를 묻고 정보를 나누며 의사 결정을 위한 회의도 진행할 수 있지만, 콘텐츠를 쌓아두기 위한 공간이 아닌 만남의 장소, 교육의 장소로서의 도서관을 보다 적극적으로 넓혀가는 모습에서 미래의 도서관의 모습, 그리고 가까운 미래에 더욱 중요한 가치를 미리 엿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