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
팬데믹의 장기화로 경제 전반이 어려워진 가운데 유통산업도 위기에 처했다. 사회적 거리 두기와 비대면 소비 확산으로 오프라인 유통사들은 직격탄을 맞았다. 사람들이 매장 방문을 꺼리면서 소비의 패턴이 급격하게 온라인으로 쏠린 것이다. 특히 몸집 키우기 경쟁에 나서며 유통시장을 주도했던 대형마트를 비롯한 백화점 등 대형 유통사는 내리막 세가 뚜렷하다.

 

지난해 창사 이래 처음으로 분기 영업적자를 경험한 이마트(E-MART Inc.)는 올 2분기 적자 전환이 예상된다. 롯데마트(Lotte Mart)는 올해 지점 16곳을 닫을 예정이며, 백화점 등을 포함한 계열사의 오프라인 매장 700여 개 중 200여 개 매장을 5년 이내에 정리한다고 발표했다. 대형마트가 재난지원금 사용처에서 제외되면서 이들의 시름이 더욱더 깊어질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전자상거래(e-commerce) 업체의 약진 속에서도 오프라인 업계가 모두 위기에 빠진 것은 아니다. 편의점(Convenience Store, CVS)만은 다른 양상을 보인다. 편의점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코로나 사태에서도 꿋꿋하게 오프라인에서 선전하고 있는 편의점만의 비결을 짚어본다.

 

 

유통업의 막내, 편의점 “형만한 아우 있다?”

먼저 최근 유통업의 매출 현황을 살펴보자. 산업자원부의 지난 7월 주요 유통업체 영업 동향 조사에 따르면 매출은 전년 동월 대비 4.4% 증가한 가운데 오프라인 유통업체의 매출은 2.1% 감소했지만, 온라인 업체는 13.4% 증가했다. 오프라인 유통업체 조사대상 중 백화점, 대형마트, 준대규모점포(Super Supermarket, SSM)는 모두 매출이 줄었지만, 유일하게 편의점은 3.7% 증가했다. 특히 GS25를 운영하는 지에스리테일(GS Retail Co., Ltd.)은 올 1분기 깜짝 놀랄만한 실적으로 예상을 깼다. 코로나의 영향으로 모두가 실적 악화에 신음하는 시기에 전년 대비 영업이익이 300% 이상 늘어난 것이다.

 

유통업의 막내라고 불리는 한국 편의점의 역사에 대해 알아보자. 우리나라에 편의점이 첫선을 보인 건 1982년이다. 서울 중구 약수시장 앞 롯데 세븐(Lotte Seven) 1호점이 한국 최초의 편의점이다. 당시는 24시간이 아니라 오전 7시부터 오후 11시까지만 영업했다고 한다. 이름 그대로 세븐일레븐(7-Eleven)의 영업시간이었다. 그 후 1989년 서울 송파구에 문을 연 세븐일레븐 올림픽선수촌 지점이 비로소 현재와 같은 24시간 영업을 맨 처음 시작했기 때문에 이곳이 사실상 대한민국 최초 편의점이란 주장도 있다.

 

세븐일레븐을 시작으로 로손(Lawson), 훼미리마트(FamilyMart), 미니스톱(MINISTOP), 에이엠피엠(ampm), 써클케이(Circle K) 등 외국계 편의점이 한국에 속속 진출했다. 국내 체인 LG25와 바이더웨이(buy the way) 등 토종 편의점도 잇따라 등장했다. 맞벌이 부부, 1인 가구 비중이 높아지며 편의점은 빠르게 성장했다. 2018년 조사 기준 전국 편의점 수는 4만 개를 넘었고, 시장 규모도 21조 원을 돌파했다. 편의점이 점점 늘어나 포화 상태가 되며 무한경쟁시대가 열렸다. 편의점 대형 3사인 CU, GS25, 세븐일레븐 외에 신세계의 이마트24, 기차역을 중심으로 한 코레일의 스토리웨이(Storyway) 등 후발주자가 시장에 뛰어들며 본격적인 아이템과 서비스 경쟁이 시작됐다.

 

편의점 업계는 변화하는 라이프스타일과 소비패턴에 재빠르게 대응했다. 우선 편의점의 취급 품목이 달라졌다. 초기 편의점은 깔끔하고 통일된 매장 인테리어, 수입 과자 등의 고급스러운 취급 품목을 차별점으로 삼았다. 당시 골목상권의 대표주자 구멍가게와는 다른 고급 슈퍼로 포지셔닝하기 위해서였다. 이어 공전의 히트 상품인 삼각김밥처럼 편의점에서만 구할 수 있는 킬러 아이템을 하나씩 만들어나가며 소비자를 공략했다. 외환위기, 월드컵, 올림픽 등 대형 스포츠 행사를 거치면서 소비자들의 편의에 맞춘 컵라면, 도시락, 커피 등을 발 빠르게 대표 상품으로 내놓았다. 그뿐만 아니라 유명 브랜드나 프랜차이즈, 셀럽 등과의 협업 특화 아이템을 개발하고, 여기에 자체브랜드(Private Brand, PB) 상품까지 더했다.

 

GS25의 틈새라면과 공화춘 짜장, CU의 백종원 도시락, 세븐일레븐의 일명 혜리도시락 등 가성비가 좋고 각 브랜드의 개성을 살린 상품이 편의점으로 사람들을 이끌었다. 최근에는 간편하게 즐길 수 있는 치킨, 어묵, 군고구마, 핫도그 등 반 조리된 간식도 인기를 얻고 있다. 세븐일레븐이 선보인 푸드드림 매장은 육수를 바로 부어 먹을 수 있는 국수와 우동을 판다. 이처럼 편의점은 단순히 간편식을 사는 곳이 아닌, 매장에 테이블을 갖추고 즉석식품을 파는 카페테리아로 점점 변해가고 있다.

편의점은 생활 서비스 백화점으로 변신 중

생활 서비스도 편의점 안으로 들어왔다. 무엇보다 편의점 서비스를 대중적으로 각인시킨 일등 공신은 택배와 금융 서비스다. 편의점 택배 서비스는 가까운 편의점에서 택배를 보낼 수 있다는 편리함과 비교적 저렴한 가격으로 주목받았다. 특히 편의점 택배는 2001년 당시 BGF리테일(CU), 지에스리테일, 바이더웨이(현재 세븐일레븐)가 공동 출자해 별도 법인을 만들 정도로 편의점 업계가 중점을 둔 생활 밀착 서비스였다. 현재는 편의점 택배 시장이 커지면서 대부분 분리 운영을 하고 있으며, 단순 배송이 아닌 복합적인 서비스 제공을 위한 노력이 이어지고 있다. GS25가 작년에 선보인 반값 택배 서비스는 편의점에서 직접 택배를 접수하고 찾아가는 방식으로 가격을 확 낮췄고, 일 년 만에 매출 500% 증가라는 성과를 달성하기도 했다.

 

1997년 GS25의 전신인 LG25와 훼미리마트(현재 CU)가 전기료 등 공공요금 납부 서비스를 도입한 것이 편의점 금융 서비스의 시작이었다. 2000년대 초부터 시작된 은행자동화업무기(ATM) 설치를 통해 편의점에 가면 새벽이든 휴일이든, 은행 업무 시간이 아니어도 언제든 돈을 찾을 수 있게 되었다. 이제는 ATM을 통해 편의점에서 체크카드 발급, 계좌 비밀번호 변경, 공과금 납부 같은 업무도 볼 수 있다. GS25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자체 편의점에서 ATM을 이용한 입출금 및 이체 거래 건수는 총 6,580만 건, 거래금액은 11조 원을 넘었다고 한다.

 

초기 소매점 역할만 했던 편의점의 서비스는 2000년 그 가짓수가 10개 이상으로 늘었고, 현재는 약 30여 개에 이른다. 집 근처, 학교와 직장 앞 등 생활 주변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편의점은 단순한 가게가 아닌 생활 플랫폼으로 변하고 있다. 편의점은 소비자의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좀 더 편리한 일상을 위한 다양한 서비스를 끊임없이 새로 론칭한다. 동네 배달 서비스, 원하는 점포에서 주문한 제품을 받을 수 있는 스마트오더(smart-order) 서비스, 심지어는 세탁 서비스도 제공하고 있다. GS25는 2017년부터 세탁소 네트워크 플랫폼인 리화이트(REWHITE)와 함께 편의점에 맡긴 세탁물을 지역 세탁소에 연결하는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CU는 세탁 스타트업 오드리세탁소와 협업해 같은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편의점은 공유경제의 오프라인 거점 역할도 한다. CU는 2016년부터 쏘카(SOCAR)와 함께 카셰어링(car-sharing)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GS25는 지난해 고고씽과 제휴해 전동킥보드 대여 서비스를 시작했다. 전동킥보드가 보도에 방치되는 문제 해결을 위해 점포에 주차 공간도 마련했다. CU는 킥고잉(Kickgoing)과 협업해 전동킥보드 대여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편의점을 보면 트렌드가 읽힌다

편의점은 최신 트렌드를 가장 빨리 읽는 유통업체다. 최근에는 천만 반려동물 가구 시대에 발맞춘 편의점 서비스가 등장했다. 지난해 말 GS25는 업계 최초로 반려동물 질병 체외 검사 키트를 판매했다. 또한 현대해상과 협업해 반려동물 보험 상품도 출시했다. CU도 최근 삼성화재와 협업하며 점포에 있는 택배기기를 통한 펫 보험 판매에 들어갔다. 이처럼 편의점은 소비자의 마음을 빠르게 파악하여 단순 반려동물의 사료, 간식을 판매하는 것 이상의 서비스를 제공한다.

 

편의점은 유통시장 패러다임의 변화도 놓치지 않았다. 바로 배달과 구독 서비스다. 2010년 최초로 배달 서비스를 도입한 CU는 최근 업계 최초 네이버 간편주문 서비스를 시작했다. 네이버에 접속해 CU 매장을 검색하면 반경 1.5km 이내 점포에서 260여 가지 상품을 주문할 수 있다. 소비자가 주문한 상품은 메쉬코리아(MESH KOREA)의 배달 서비스 부릉을 통해 배송된다. 지난해부터 배달 앱 요기요와 손잡고 전국 4천여 개 매장 상품을 배달하는 CU의 배달 서비스 매출은 분기별로 평균 25%씩 성장하고 있다. GS25도 배달 플랫폼 요기요, 부릉과 손잡고 배달 서비스를 확대하고 있다.

 

또한 편의점은 충성고객을 늘릴 수 있는 구독 서비스도 속속 선보이고 있다. GS25는 최근 공기청정기 등 렌털 상품과 꽃 구독, 차량 렌트, 홈케어 서비스를 판매한다고 밝혔다. GS25 점포에 있는 QR 코드나 인터넷 주소에 접속해 원하는 상품을 선택하고 해당 바코드를 점포 계산대에 제시하면, 한샘홈케어, SK매직, 꾸까, 카비 등 제휴 렌털∙구독 전문 업체들과 계약하는 방식이다.

 

이마트24는 업계 최초로 얼음 컵 정기권을 시범 판매하고 있다. 이마트24 모바일 앱을 통해 여름철 인기 품목인 얼음 컵을 1~2주 동안 매일 살 수 있는 정기구독 서비스다. 세븐일레븐은 스마트 무인점포를 새롭게 선보였다. 올해 7월, 서울 중구 수표동에 세븐일레븐 시그니처 DDR(Dual Data Revolution) 로드숍 1호점이 문을 열었다. 이 매장은 세븐일레븐의 인공지능결제로봇 브니(VENY)로 운영되는 무인 스마트 편의점이다. AI, 빅데이터, 생체인증 등 첨단 IT 신기술을 집약한 서비스로, 코로나-19로 인한 언택트 트렌드에 적합한 모델로 꼽힌다.

 

시그니처 DDR은 점포 입구에 설치된 이중 게이트에서 신원 확인과 안면 촬영을 거쳐야 매장에 들어갈 수 있다. 출입인증 단말기에서 신용카드, 엘포인트, 핸드페이 등 1차 인증을 하고, 스마트 폐쇄회로(CCTV)로 얼굴 이미지를 자동 촬영하는 방식이다. 쇼핑을 마친 후에도 스마트 CCTV가 이미지를 자동 촬영한다. 점포 바닥에는 54개의 다목적 전자인식 셀(Electronic Cell)이 부착됐다. 고객의 이동 동선과 상품 구매 이력을 실시간 빅데이터로 생성·저장한다. 무인경비시스템, 인공지능 셀프 계산대, 디지털 스마트 담배자판기 등의 기능도 선보인다.

GS25 반려동물 관련 서비스 Ⓒ GS25
AI 결제로봇 브니 셀프 계산대 Ⓒ 세븐일레븐코리아

오프라인 유통시장은 온라인 플랫폼의 시장 장악에 이어 코로나라는 거센 파도를 맞고 있다. 이런 대변혁의 시기를 편의점은 유연하게 헤쳐가고 있다. 단점을 장점으로, 핸디캡을 차별점으로 만든다. 가장 작은 몸집이지만, 그래서 트렌드 변화에 빠르게 대응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또한 코로나 시대에서 마주할 수밖에 없는 오프라인의 한계를 전국 구석구석 연결하는 신경망 같은 네트워크와 일상 밀착형 서비스로 극복하고 있다. 편의점이 브랜드와 온라인 업체의 매력적인 파트너로 성장하는 이유다. 편의점은 소비자와 가장 가까운 곳에서 신제품과 새로운 서비스의 테스트 베드(test bed) 역할을 해낸다. 오프라인 진출을 타진하는 온라인 업체들이 비교적 적은 투자로 마케팅 시험을 할 수 있다는 큰 장점이 있다.

 

코로나의 장기화와 경제 침체가 이어지는 상황에서도 편의점은 구독 서비스, 무인 매장, 드론 택배 등 신기술과 마케팅으로 비대면 악재에 슬기롭게 대응해나가고 있다. 편의점이 보여주는 혁신의 잰걸음이 소비자의 마음을 사로잡는 생활 서비스로 어떻게 연결될지 기대를 해봐도 좋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