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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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성황리에 마무리된 노먼 포스터(Norman Foster)의 전시는 1960년대부터 현재까지 500여 건 이상 진행된 노먼 포스터의 핵심적인 활동 궤적을 보여주었다.

▪ 포스터의 건축은 시대에 따라 기술력에 의한 건축을 강조한 초기 하이테크, 공간의 공공성을 고려하는 사회적 측면 형성기, 자연과의 공생을 위해 에너지 효율을 극대화한 경제적 측면 형성기, 친환경적인 접근으로 지속 가능한 건축 확립기로 나누어 볼 수 있다.

▪ 최첨단 테크에 의존한 노먼 포스터 건축이 지향하는 정점에는 늘 다양한 생명체와 함께 공생하는 인류가 있다.

 


 

미래의 건축은 어떤 모습일까? 영국을 기반으로 세계 전역에서 활동 중인 건축계의 거장, 노먼 포스터(Norman Foster, 1935-)의 건축 여정에서 그 힌트를 얻을 수 있다. 최근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 본관에서 진행된 《미래긍정: 노먼 포스터, 포스터 + 파트너스》는 노먼 포스터와 그의 자회사 “포스터 + 파트너스(Foster + Partners)”가 공동 기획한 전시로, 1960년대부터 현재까지 500여 건 이상의 프로젝트를 진행한 노먼 포스터의 핵심적인 활동 궤적을 보여주었다. 건축 전시 특성상 대부분이 모형과 사진으로 제시되었으며, 거장 건축가의 비전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게 기획된 모양새였다.

《미래긍정: 노먼 포스터, 포스터 + 파트너스》 전시 포스터 ⓒ 서울시립미술관
"팀 4"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Anthony Hunt, Frank Peacock, Maurice Phillips, Norman Foster, Su Brumwell, Richard Rogers, Wendy Cheesman and Sally Appleby ⓒ 위키피디아

꿈을 짓는 대담한 발걸음

노먼 포스터는 1935년 영국 맨체스터의 노동자 계층 가정에서 태어났다. 16살에 학교를 그만두고 시청에서 사무원으로 일하다 영국 공군에서 2년 동안 복무한 것을 계기로 장학금을 받아 맨체스터 대학교의 건축학과에 입학하게 된다.

 

건축학과에서 능력을 발휘한 그는 연구 장학금을 받아 예일대학교에서 석사 과정을 밟는데, 이 시절 미국에서의 경험은 그의 커리어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 특히 예일대학교에서 동료 건축가 리처드 로저스(Richard Rogers)를 만난 것이 계기가 되었는데, 이들은 영국으로 돌아와 웬디 치즈먼(Wendy Cheesman)과 수 로저스(Su Rogers)와 함께 “팀 4(Team 4)”라는 건축사무소를 열고 당시의 첨단 기술에 기반한 혁신적인 프로젝트들을 다수 선보인다. 이중 웬디 치즈먼(1937-1989)은 훗날 포스터의 배우자가 되는 인물이기도 하다.

 

“팀 4”가 선보인 대표적인 건축물은 <릴라이언스 컨트롤스>(1967)로, 미국식 강철 박스 공장 빌딩이었다. 이들은 미국의 용접된 강철 구조물의 가벼움과 단순함에 매료되어 이 건물을 디자인했다. 이 공장은 “오픈 플랜(Open Plan)”으로 지어졌는데, 오픈 플랜이란 공간을 벽이나 칸막이로 막지 않고 스크린이나 가구 등의 요소들로 구분하여 넓고 자유롭게 이용하는 방식을 뜻한다. 이때 사용된 오픈 플랜 방식은 향후 포스터의 건축이 지향할 방향을 미리 보여주는 것이기도 했다.

 

“팀 4”는 약 4년 간의 팀 활동을 끝으로 1967년 결별하고, 포스터는 치즈먼과 결혼해 “포스터 연합(Foster Associates)”을 설립한다. 이 연합이 바로 오늘날 2천 명이 넘는 국제적 규모의 건축 스튜디오로 성장한 “포스터 + 파트너스 (Foster + Partners)”의 전신이다. 이들은 경량 소재와 새로운 기술을 가지고 영국 전역에서 싹트기 시작한 새로운 산업체들의 시설을 만드는 산업 건축가로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포스터의 건축은 시대에 따라 기술력에 의한 건축을 강조한 초기 하이테크, 공간의 공공성을 고려하는 사회적 측면 형성기, 자연과의 공생을 위해 에너지 효율을 극대화한 경제적 측면 형성기, 건축의 친환경적 접근으로 지속 가능한 건축 확립기로 변화해 왔다.

Reliance Controls ⓒ Foster + Partners
홍콩 상하이 은행(HSBC), 1979-1985 ⓒ Foster + Partners

노먼 포스터 건축을 이해하는 키워드 4가지

이번 전시 역시 포스터 작업 일대기의 이러한 변화 양상을 반영하여 총 5개의 섹션으로 이루어졌다. ① 지속가능성에 대한 사유, ② 현재로 연결되고 확장되는 과거, ③ 보다 나은 삶을 위한 기술, ④ 공공을 위한 장소 만들기, ⑤ 미래건축이다. 이러한 전시 카테고리에 기반해 포스터의 건축 세계를 이해하기 위한 키워드를 꼽는다면 하이테크 건축, 공공성, 지속가능성, 미래건축이 있다.

 

자연을 담은 첨단 기술, 하이테크 건축

하이테크 건축은 산업혁명 이후 급격히 발달한 과학기술을 건축에 적극적으로 활용한 건축 양식을 뜻한다. 하이테크 건축의 근거지는 영국이며, 노먼 포스터 역시 이를 대표하는 건축가 중 하나다. 하이테크의 정의는 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계속해서 변화하지만, 초기부터 신기술을 구사한 포스터는 현재까지도 최첨단 기술을 사용하는 것으로 알려져 하이테크 건축가로서 호평을 받고 있다.

 

포스터의 건축은 기존의 주변 건물에 테크놀로지의 조형성을 결합한 형태로 나타난다. 다른 건축가들의 하이테크 건축물이 다소 차갑고 낯선 느낌을 주는 데 반해, 포스터의 하이테크 건축에는 보다 생태학적인 감성이 드러난다. 건축 디자인의 표현에 생명체의 형태나 생명 종의 진화와 관련한 생물학적 내용을 담아내기 때문이다.

 

하이테크 건축의 일반적인 특성은 가변성, 이동성, 공업화, 시스템화, 경량성, 투명성, 기계미학 등으로 요약된다. 포스터는 여기에 생물학의 세포조직에서 보이는 이미지를 결합해 자신만의 독특한 형태를 창조해 낸다. 그의 대표적인 건축물 중 하나인 홍콩 상하이 은행은 신재료와 기술을 활용했으면서도 인체 골격에서 영감을 받아 생물학적 골격미를 연상시킨다.

 

홍콩 상하이 은행은 기술집약적 건축물로서 설비를 시스템화하는 공업 제조 방식을 도입하였고, 자재 하중을 최소화하도록 계획되었다. 모듈러 디자인의 개념을 적용하여 다른 설비와의 연계가 용이하게 만든 것도 특징이다. 또한 중앙에 아트리움을 설치하여 시각적 개방감과 쾌적한 공간을 확보하였으며, 자연 채광을 유입함으로써 에너지 효율을 높이고 있다.

 

포스터는 하이테크 기술을 건축에 적용하여 디자인을 전개해 나간다. 특히 건축물의 외관에 집중해 투명하고 매끈한 외관의 건물을 디자인하며, 주변 환경과 상호작용하는 형태를 추구한다. 그렇기에 그의 건축적 특징은 단일 구조의 형식이 아닌 다양한 구조의 형식을 결합했다는 데 있다. 선의 반복적 구성으로 균형미를 지니고 있는데, 명료한 선과 뚜렷한 개별 윤곽선의 강조로 선형성이 나타난다.

 

포스터가 만든 세인즈버리 센터는 사선의 유리구조가 돋보이는 건축물이다. 주변 공간과의 관계를 고려해 공간 일부를 지면 아래에 조성해 채광을 용이하게 만들었다. 홍콩 상하이 은행과 마찬가지로 모듈 시스템 구조를 통해 구조 경량화를 가능하게 했다는 특징이 있다.

 

애플의 창립자인 스티브 잡스와 함께 설계한 <애플 파크> 또한 최첨단 기술이 응축되어 있는 건축물이다. 71헥타르 규모의 부지에 실리콘밸리 중심부에 위치한 이 건물은 1만 2천여 명의 직원을 수용할 수 있게 설계되었다. 캘리포니아 경관을 재현한 녹지에 설립된 대형 원형 건물은 다양한 분야의 전문 인력이 한 지붕 아래에서 소통할 수 있기를 희망한 스티브 잡스의 요청 사항을 반영한 결과다.

 

우주선 형태의 원형 외관과 중앙의 녹색 공원이 어우러져 기술과 자연이 하나된 모습이 인상적이다. 건물 외관 전면은 하이테크 건축의 주요 요소인 유리로 구성해 자연광이 건축물 안으로 들어오게 했고, 인간의 호흡기를 닮은 센서식 개폐 시설을 이용해 자연 환기 시스템을 구축했다. 내부 전력은 태양광 패널을 이용해 100% 재생 에너지로 가동하고, 필요한 용수 또한 재활용 물을 활용해 지속 가능성을 높인 건축물이다.

세인즈버리 센터(Sainsbury Centre), 1977 ⓒ Foster + Partners
Apple Park, Cupertino, 2018 ⓒ Foster + Partners

모두를 향한 빛과 땅, 공공성

노먼 포스터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는 단연 “공항”이다. 포스터 + 파트너스의 사명은 복잡하게 얽힌 사회, 경제, 환경 문제를 하나의 통합 과제로 아우르는 것인데, 공항은 그 자체로 하나의 도시를 상징하는 만큼 이러한 목표를 보여주는 데 적합한 건축으로 보인다.

 

그중 런던 스탠스테드 공항은 공항에 대한 인식 자체를 탈바꿈한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환한 빛이 쏟아져 들어오는 가벼운 우산 형태의 구조물이 인상적인데, 이는 자연 채광 유입을 통해 에너지 효율성을 확보하려는 목적 때문이다. 이전의 공항 터미널은 기계 설비 일체를 지붕에 들여놓아 건물 구조가 묵직했으나 런던 스탠스테드 공항은 각종 설비 시설을 탑승동 바닥에 묻어버림으로써 공항의 새로운 모델을 제시했다.

 

포스터 + 파트너스가 설계한 또 다른 공항 중 하나인 홍콩 첵랍콕 공항은 바다를 메운 간척지 위에 들어섰다. 대규모 매립 프로그램을 통해 100미터 높이의 산봉우리를 해발 7미터로 낮추고, 섬을 원래 면적의 4배만큼 확장해 그 위에 공항을 세웠다. 그 덕에 도착하거나 출발할 때 경로를 쉽게 파악할 수 있고 한쪽은 육지, 다른 한쪽은 바다를 기준으로 비행기를 볼 수 있어 방향 설정이 비교적 간단한 편이다. 또한 신개념 대량 수송 레일을 통해 공항과 도심을 직접 연결해 시내까지 약 20분 정도면 도착할 수 있다.

 

공항 외에도 역사를 지닌 건축 공간을 탈바꿈해 커뮤니케이션이 활발하게 이루어지는 현재의 공간으로 변화시킨 사례 역시 많다. 대표적으로 2003년 완공된 런던의 트라팔가 광장을 들 수 있는데, 런던의 국립미술관 앞 차도를 보행자를 위한 광장으로 변모시킴으로써 런던의 기념비적 공간을 세계인의 공공장소로 재생시켰다.

 

이처럼 버려지거나 상실되었던 공간을 재생시킴으로써 공공장소를 조성하는 일은 도시 구조에 일관성을 부여하고 도시의 정체성을 강화한다. 이는 단일 건물의 디자인을 넘어 도시 삶의 전반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게 된다.

런던 스탠스테드 공항(London Stansted Airport), 1981~1989 ⓒ Foster + Partners
트라팔가 광장(Trafalgar Square) ⓒ Foster + Partners

두고두고 오래오래, 지속가능성

건축에서의 지속가능성이란 지구 환경과 건축 산업 모두가 지속 가능한 개발을 추구하는 것으로, 에너지 효율을 최대화하고 기존 자원을 재활용해 환경 공해를 최소화하는 기술을 도입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건축의 전 과정에서 환경 피해를 최소화한다는 의미다. 포스터는 기존 건물 재활용이나 재생 가능 에너지 사용, 건축 구조나 형태를 통한 공간 에너지의 효율성 극대화 측면에서 지속가능성에 대한 사유를 실천 중이다.

 

런던 시청을 들여다보면 남쪽과 북쪽의 일조량 차이를 해결하기 위해 기울어진 듯한 형태로 설계해 에너지 효율성을 높인 모습이 나타난다. 또한 지하수를 이용해 내부 공기를 냉각한 후 화장실에서 재활용하는 등 다양한 친환경적 노력이 들어갔다.

 

여기 더해 포스터는 기존의 건물을 재생해 건축하는 방식을 선호한다. 오랜 역사를 가진 건축물에 현대적 해석을 더하는 것인데, 이를 레트로핏(retrofic) 접근이라고 부른다. 건축물을 확장하고 개조하는 행위는 더 넓은 맥락에 반응하는 문화적인 공간을 만드는 일인 동시에 역사의 생명력을 이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연장하는 일이기도 하다.

 

현재 진행 중인 빌바오 미술관 개조 프로젝트의 경우, 건축물의 역사를 보존하고 부각시키는 차원에서 1945년 당시 건물 입구 위치를 되살려 미술관의 정면이 다시 도시 쪽으로 향하게 만드는 방식을 진행 중이다. 기존의 건축물에 이어 1970년대 추가 확장된 공간을 모두 잇는 방식으로 지붕형 구조를 제안한다. 자연 채광 유입, 원활한 공기 순환, 저탄소 강철 사용 등의 방식으로 효율적인 에너지 절약 또한 목표하고 있다. 이러한 방식은 역사와 현재를 교차하면서 하나의 장소를 재창조하는 것으로도 읽을 수 있다.

런던 시청(London City Hall) ⓒ Foster + Partners
드론공항, 2016 ⓒ 서울시립미술관

지구 밖 어떤 행성의 삶, 미래건축

건축에 대한 노먼 포스터와 포스터 + 파트너스의 시점은 이미 현재가 아닌 미래에 닿아있다. 지구 밖 행성에서의 삶을 상상하며 유럽우주국(ESA), 미국항공우주국(NASA)과 협업한 달 거주지 프로젝트(2012), 화성 거주지 프로젝트(2015)는 이미 10년 전에 실행되었다. 지구 밖 행성에서의 삶을 연구하는 이러한 프로젝트를 수행하면서 주력했던 부분은 건설 자재를 지구에서부터 운반해 오는 비효율성을 피하고, 현지 재료를 토대로 구현이 가능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이 프로젝트가 발전된 결과가 바로 2016년에 고안된 드론공항이다. 드론공항은 접근성이 현저히 낮은 중앙아프리카의 고립된 지역에 긴급 생필품이나 의약품 전달이 원활하도록 돕는 항공 인프라 구축을 목표로 한다. 벽돌용 자재와 목재는 모두 현지 자원을 기반으로 하고, 조립이 쉬운 모듈 시스템을 사용해 지역 공동체 또한 건설에 함께 참여한다. 노먼 포스터 재단은 학생들과 함께 2016년 베니스 건축 비엔날레에서 드론공항의 실제 크기 프로토타입을 선보였으며, 2030년까지는 아프리카의 고립된 전 지역에 드론공항 인프라 구축을 목표로 하고 있다.

 

몇몇 키워드로 세계적인 건축 거장의 작품 세계를 다 설명하기란 당연히 역부족이다. 그럼에도 기술과 공공성, 지속가능성 등을 필두로 개진되는 포스터의 작품 세계는 인간사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을 건물을 매개로 아름답게 잇는다. 기술 공학적 지식과 친환경적 디자인이 얽히고설켜 만들어진 건축물은 특정 시대에 고여 있는 그 무엇이 아닌 지속적인 혁신을 이룬다. 더불어 놀랍게도 최첨단 테크에 의존한 이 건물과 기관이 지향하는 정점에는 늘 자연과 함께 살아가는 인류가 있다. 그렇기에 앞으로도 포스터 + 파트너스의 프로젝트들은 단순히 미래지향적이거나 기술 예찬론적이 아닌 사용자의 경험을 향할 것이다. 이는 인류가 삶을 영위하고 다양한 생명 종이 공생하는 세계를 위한 제안으로 읽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