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

최근 홍콩의 새로운 핫플 여행지로 서구룡 문화지구가 떠오르고 있다. 전통과 현대를 아우르는 다양한 전시와 공연, 프로그램 등을 즐길 수 있을 뿐 아니라 각종 숍, 식당, 카페, 야외 공원까지 휴식과 여행을 위한 모든 명소가 한데 모여 있기 때문이다. 자금성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홍콩 고궁박물관, 전통 연극 공연을 만날 수 있는 시취 센터, 현대 공연을 선보이는 프리스페이스, 산책과 피크닉을 위한 야외 휴식 공간 아트파크가 바로 그것이다. 그중 필수 코스로 언급되는 장소가 하나 있다면 바로 서구룡 문화예술지구의 랜드마크이자 가장 트렌디하고 실험적인 현대 미술을 선보이는 M+뮤지엄을 꼽을 수 있다.

 

서구룡 문화지구가 처음부터 유명했던 것은 아니다. 최근까지도 홍콩 예술문화의 중심지는 갤러리가 모여있는 상업 지구, 센트럴이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서구룡 문화지구는 아무것도 없는 간척지에 불과했다. 그러나 2019년부터 정부 주도 아래 예술문화 중심지를 서구룡으로 옮기기 위한 사업이 추진되었고, 박물관, 미술관, 공연장 등이 설립되기 시작했다. 그렇게 서서히 홍콩의 예술문화 중심지는 센트럴에서 서구룡으로 옮겨왔고, 2021년 M+뮤지엄의 개관과 함께 완전히 자리를 잡았다. 아트 바젤 홍콩이 열린 2023년에는 M+의 개관을 알리기 위한 뮤지엄 나이트를 성황리에 개최하며 아시아 미술시장의 중심지로서의 홍콩의 위상을 알렸다.

 

M+뮤지엄이 서구룡 문화지구의 랜드마크가 되며 문화예술중심지가 옮겨졌다고 평가받게 된 배경에는 단순히 정부 주도의 정책만 있는 게 아니다. M+는 설립과 건축 단계부터 다양성에 기반을 둔 폭넓은 관계 맺음의 장소로서 지역 커뮤니티와의 통합과 글로벌 문화예술 사업 유치를 선포했다. 우선 M+의 공간부터가 그 방향성을 보여준다. 갤러리뿐만 아니라 극장, 카페, 레스토랑, 공원이 모두 합쳐진 미술관은 지역 주민들과 관광객을 모두 끌어들이기에 이르렀다.

 

공간에 담기는 콘텐츠도 마찬가지다. 전통문화와 지역 예술가, 글로벌 아트 트렌드와 세계적인 예술가들을 새롭고 획기적인 시각으로 포괄하는 M+의 시도는 큰 주목을 받았다. 그뿐만 아니라 M+는 전문가와 대중 모두를 위한 예술 교육, 강연, 체험 프로그램을 수시로 열어 미술관의 역할에 관한 더 넓은 담론을 펼쳐가고 있다. 이처럼 M+뮤지엄이 단기적인 핫플레이스가 아닌, 소위 문화예술의 든든한 구심점이 된 이유를 하나씩 살펴보자.

홍콩 M+뮤지엄 전경 ©WKCDA, Hong Kong © M+ Museum

미술관의 건축, 공간으로 관계 맺기

M+뮤지엄은 미술관 그 이상의 미술관(Museum and More)이라는 슬로건을 품은 아시아 최초의 현대 시각문화 미술관이다. 독일 괴츠 갤러리와 영국 테이트모던을 디자인한 건축가 자크 헤르조그(Jacques Herzog)와 피에르 드 뫼롱(Pierre de Meuron)이 설계한 건물로 알려져 있다. M+는 기획부터 설계, 운영까지 모든 과정에서 미술관의 정체성을 관계 맺음과 다양성으로 표현하고 드러낸다.

 

M+는 다양한 국적을 가진 예술가들의 미술, 건축, 디자인, 미디어 등 분야를 넘나드는 예술 작품이 빛을 발할 수 있도록 크기, 구성, 비율, 재료, 빛까지 모두 각각 다르게 설계된 총 33개의 전시관을 보유하고 있다. 전시실에서 극장, 콘서트홀, 미디어 테크 라이브러리, 뮤지엄 숍, 카페, 레스토랑, 빅토리아 항구와 이어지는 야외 공원 등 미술관을 관람하는 모든 동선은 예술과 일상을 잇는 연속적이고 통합적인 경험을 제공한다.

 

정도련 부관장은 애초에 M+가 단일한 미술관을 생각해서 만들어진 건축물이 아니라고 밝힌 바 있다. 전시만 열리는 미술관이 아닌, 주변 환경과 관계 맺는 장소 자체로서 M+가 존재한다는 의미다. M+를 설계한 헤르조그와 뫼롱은 미술관을 고정된 구조와 공간이 아닌 예술과 문화, 지역과 자연, 현지인과 여행자가 상호작용하며 만들어 가는 공간으로 보았다. 언뜻 복잡해 보이지만, 그 복잡한 면을 오히려 다채롭게 이으며 담아내는 것이 M+의 의의라는 것이다.

 

실제로 M+의 입구는 별도로 마련되어 있지 않다. 지하철역, 야외 수변 공원에서 걷다 보면 미술관 안으로 자연스럽게 들어가게 된다. 즐거운 관계 맺기의 방식이 바로 거기에 있다. 예술 애호가나 전시를 보러 온 사람들뿐만이 아니라 홍콩의 서구룡 문화지구를 거니는 관광객들, 빅토리아 하버를 산책하는 지역민들 모두에게 M+가 사랑받는 공간인 이유다.

관계와 대화의 장, M+가 선보이는 전시

M+는 건축, 디자인, 영상, 미디어, 시각 예술 등 다양한 분야에서 20세기와 21세기를 아우르는 근현대 미술 컬렉션을 갖추고 있다. 컬렉터 율리 시그(Uil Sigg)가 기증한 1,500여 점의 작품을 포함해 지금도 꾸준히 업데이트되고 있는 M+의 컬렉션은 과거로부터 현재로 이어지는 예술의 족적과 통찰을 담고 있다. 그중 중국 예술의 연대기를 볼 수 있는 M+ 시그 컬렉션과 한때 홍콩의 거리를 대표했던 네온사인 컬렉션이 가장 널리 알려져 있다. 홍콩에서 미술관을 딱 한 곳만 갈 수 있다면 사람들이 주저 없이 M+를 선택하는 이유도 바로 이러한 방대한 컬렉션이 가진 역사적 의의 때문이다.

 

하지만 그뿐만이 아니다. M+는 지역 문화와 예술을 보존하고 전통 예술가를 소개하는 동시에 신진 예술가와 실험적인 현대 예술 작품을 알리며 끊임없이 새로운 대화를 시도한다. M+는 지역 예술가를 대상으로 시그 프라이즈(Sigg Prize)를 수여하며, 최종 후보에 오른 예술가들의 작품을 한 테마의 전시로 선보인다. 경계를 넘나들며 역사와 현대의 문제를 예술을 통해 고찰하는 다양한 작품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이 전시의 특징이다. 2023년 시그 프라이즈 후보에 오른 작품의 공통 주제는 유동적인 경계(Fluid Borders)다. 주제만 봐도 M+가 추구하는 방향성이 무엇인지 드러난다.

 

이외에도 M+는 시대와 국가를 넘나드는 전시로 다양한 이야기를 펼쳐가고 있다. 현재 M+에서는 1980년대 중국의 패션 아이콘이었던 마담 송(Madame Song, Song Huai-Kuei)의 삶을 담은 기록과 일본의 유명한 예술가 쿠사마 야요이(Yayoi Kusama)의 전시가 열리고 있다. 미술관 야외에 설치된 M+파사드에서는 인도네시아 예술집단 트롬라마(Tromarama)의 작품을 만날 수 있다. 2023년 11월에는 미술관 안에 있는 극장에서 한국 영화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박찬욱 감독의 특별 상영전이 열릴 예정이다.

 

이처럼 M+가 선보이는 전시와 다양한 프로그램은 국가와 시대를 초월한 예술을 다양한 시선으로 담아내고 그 문제의식과 비전을 제시하는 작품으로 가득 차 있다. 한 마디로 M+에서 선보이는 전시는 역사와 현대의 수많은 대화가 시공간을 넘어 교차하는 장이라고 할 수 있다.

서구룡 문화지구 아트파크에서 휴식을 취하는 주민들과 관광객들 © 서구룡문화지구
빅토리아 하버에서 미술관 안으로 이어지는 M+의 모습 © Herzog & de Meuron

일상과 예술의 폭넓은 관계 맺기

M+는 전시 외에도 예술가와 대중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프로그램으로 폭넓은 관계 맺기를 시도하는 중이다. 우선 M+는 동시대 예술에 대한 논의를 이어가는 장을 연다. 그 예로 M+는 엠플러스 매터스(M+ Matters)라는 공개 강연을 열어 시각 예술, 디자인, 건축 등 다양한 분야에서 가장 핫한 이슈를 논의하는 자리를 마련하고 있다. 가장 최근에는 메타버스를 주제로 창작과 초연결 등 다양한 관점을 소개하고 논의하는 공개 강연을 열기도 했다. 이외에도 M+는 예술가, 메이커, 큐레이터, 실무자 등이 대중과 함께 이야기는 나누는 자리인 인 컨버세이션(In Conversation), 예술과 기술 분야의 지역 창작자들을 모아 혁신적이고 다양한 협업을 만드는 워크숍 엠플러스 해커톤(M+ Hackathon)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창작과 대화를 장려하고 있다.

 

하지만 그보다 더 주목할 만한 행보는 따로 있다. 바로 전시와 연계된 다양한 프로그램과 워크숍이다. M+의 이러한 기획은 전시를 단순히 그저 관람하는 게 아닌, 예술을 체험하며 생생하게 느끼는 하나의 통합된 경험으로 이어낸다. 그 예로 1980년대 홍콩 패션 아이콘인 마담 송의 전시와 더불어 열리는 리스타일링 워크숍은 전시를 경험하고 직접 체험할 기회를 제공한다. 워크숍에서 패션 스타일리스트는 참여자들이 집에서 가져온 옷과 소품을 이용해 개인에게 맞는 스타일링을 추천해 주고, 참여자는 시대를 초월한 마담 송의 패션을 자신의 옷장으로 가져올 수 있게 된다.

 

독특한 워크숍 외에도 가족 단위의 지역민이 즐길 수 있는 패밀리 프로그램 역시 곳곳에서 만날 수 있다. 일요일마다 상시로 열리는 패밀리 데이(Family Day) 프로그램에서는 미술관의 폭넓은 관계 맺기 방식이 빛을 발한다. 이러한 프로그램은 대부분 전시와 연결되어 진행된다. 쿠사마 야요이의 전시의 연계 비주얼 페인팅 워크숍, 연결을 주제로 한 특별전과 연계 퍼포먼스 워크숍 등 무척 다양하다. 이외에도 일상 소품을 활용해 거품을 만들며 놀 수 있는 버블 플레이(Bubble Play),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예술 도서를 접하도록 독서 장소를 만든 북 플레이(Book Play) 등이 팝업으로 열린다. 반응이 무척 좋아 주말만 되면 미술관을 찾는 가족들이 북적일 정도다. 일상에 깊숙이 녹아든 미술관은 어른과 아이 모두의 예술 놀이터이자 정원이 된다.

M+에서 열린 80년대 홍콩의 패션 아이콘 마담 송의 전시 전경 © M+ Museum
M+에 설치된 쿠사마 야요이의 작품 © YAYOI KUSAMA © M+ Museum

M+의 다양성에 기반을 둔 관계 맺기는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M+에는 30개 이상의 국적을 가진 직원들이 모여 수많은 전시 기획과 컬렉션을 만들어 내고 있다. 최전선에서 예술의 새로운 담론을 만들어 내는 M+의 온라인 전시와 자체적으로 발행하는 M+매거진 등 오프라인 공간 밖에서도 만날 수 있는 콘텐츠가 가득하다.

 

M+가 만드는 미술관이라는 세계관은 예술, 건축, 문화, 여가가 이어진 수많은 연결고리다. 폭넓은 관계 맺음이라는 미술관의 모토가 직조해 낸 이 연결고리는 국적과 시대를 초월한 대화의 장을 만들고 전문성과 대중성의 경계를 넘나드는 예술의 즐거움을 만끽하게 한다. M+를 찾는다는 건 결국 미술관 그 이상의 미술관이라는 하나의 통합된 세계관을 경험하는 것과 같다. 그렇기에 전 세계에서 그 세계관을 경험하러 수많은 사람이 M+를 찾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