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

밴쿠버 도시문화 ‘크리스마스 라이트’

 

어렸을 적엔 쉽게 성탄절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길거리에 나가면 곳곳에서 캐럴이 울려 퍼졌고 성탄절 등불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다. 당시 멋모르고 나갔던 크리스마스의 명동에선 군중에 휘말려 내 몸이 내 뜻대로 움직이지 않는 신비한 체험도 했었다. 최소한 도심에선 성탄절하면 도심 전체가 들썩거렸다는 표현이 적절하지 않을까 싶다. 지금은 일부러라도 혼잡한 곳을 피하지만 여러 이유로 길거리에서 예전만큼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느끼기 어려워졌다.

 

내가 사는 밴쿠버는 과거 한국에서 느꼈던 수준의 시끌벅적함은 찾아볼 수 없으나 매번 크리스마스 시즌이 다가왔음을 굳이 도심까지 가지 않더라도 집 근처에서도 쉽게 느낄 수 있는데, 이는 많은 집이 외부에 수놓은 크리스마스 라이트 장식 덕분이다. 매년 연말이 되면 마치 경연대회에라도 나가는 마냥 상당수의 집이 성탄절을 기념하여 크리스마스 라이트 장식으로 집 외부를 아름답게 꾸미는 것이 하나의 전통이자 문화로 자리 잡았는데, 이 덕분에 크리스마스가 되면 밴쿠버 곳곳이 은은한 크리스마스의 분위기로 가득 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역에 따라 거리의 코너만 돌아도 각종 라이트 장식을 볼 수 있으니 차 안에서 캐럴을 틀어놓고 또는 산책을 하며 각 지역의 집 외부 라이트 장식을 구경하는 것도 이곳에서 성탄절을 즐기는 방법의 하나다.

창문을 자세히 보면 안에서 산타가 움직이는 홀로그램 영상을 틀어놓았다. 산타가 손도 흔들어주는데 보는 이의 순수함(?)의 정도에 따라 도둑으로 보일 수도 있겠다

어느 지역은 거리 전체 모든 집이 라이트 장식에 참여하였다. 물론 이러한 집 외부 크리스마스 라이트 장식 문화가 밴쿠버만의 것은 아니며, 미국, 캐나다 등지의 다양한 곳에서 매년 성탄절마다 크리스마스 라이트 장식을 확인할 수 있다고 한다.

성탄절의 집 밖 라이트 장식 문화는 언제, 어떻게 시작된 것일까? 

 

각종 자료에 의하면 전기의 발명 전, 크리스마스 트리는 주로 촛불로 장식했다고 한다. 이는 예수님의 빛을 기리고 상징하기 위함이었다고 하는데, 촛불의 특성상 불가피한 화재 위험 때문에 항상 물이나 모래를 주변에 두고 있어야 하는 어려움이 있었다.

 

1880년대 전기 발명 후, 토머스 에디슨의 동료 에드워드 존슨이 빨강, 파랑, 하얀색 전구 80개를 사용하여 자신의 집의 크리스마스 트리를 장식한 것이 전기 등불을 사용한 크리스마스 트리 라이트 장식의 시초라고 한다. 당시 에디슨의 회사는 맨해튼에 전기 공급 계약을 따내기 위해서 다양한 방법을 연구하고 있었는데, 크리스마스 트리 장식으로 사용한 것이 노이즈 마케팅 중 하나이지 않았을까 싶다.

 

그 당시 전기등불은 각 전구 하나하나 직접 전선으로 이어야 하는 어려움과 전기에 대한 불신 등으로 널리 사용되지 못했는데. 1895년 미국 대통령인 그로버 클리블랜드가 백악관 크리스마스 트리에 전등불 장식을 사용하면서 비로소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손님 홍보 목적으로 상점에서 사용하기 시작했고, 1900년대초 부터 상류층에서 파티에서 장식으로 활용했다. 이는 시간 당 임금이 22센트였던 당시 시기에 등불 24개가 약 12불가량 하였고, 전선으로 전구를 잇는 작업도 당시 기준으로 고난도 기술이 필요로 했던 가운데 전기료과 설치비용만 약 300불가량 소요된 점이 큰 몫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라이트가 대중에게 퍼지기 시작한 것은 비싼 등불을 감당하지 못해 촛불로 트리 장식을 했다가 화재를 겪었던 가난한 가족의 이야기를 듣고 1917년 당시 15살이던 알버트 사다카란 청년이 사업을 하던 부모를 설득해 전선에 전구가 달린 대중화된 라이트를 판매하기 시작하면서 부터라고 한다. 이 청년은 1925년 NOMA Electric Company란 회사를 설립하여 본격적으로 크리스마스 트리 라이트의 대중화의 문을 열었다.

NOMA Christmas Light

1920년부터 크리스마스 트리 라이트 장식은 산타, 눈사람, 꽃 등 다양한 형태를 띠기 시작하였고, 본격적으로 집 바깥에도 라이트로 꾸미는 문화가 이어지고 있다. 이러한 크리스마스 라이트 장식 문화는 미국에서 2차 세계 대전 때를 제외하고 지속 되고 있다.

 

1959년에 알루미늄으로 만든 크리스마스 트리가 유행하면서 한때 크리스마스 전등불의 인기가 시들했지만, 1970년대부터 소규모 전구(미니라이트)로 이루어진 크리스마스 트리 라이트가 도입되었고, 편리함 및 저렴한 가격으로 라이트를 활용한 크리스마스 집 꾸미기가 1990년부터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최근 LED의 등장도 도움이 되었음은 물론이다. 이제 미국에서 매년 약 1억 5천만개의 라이트 세트가 판매된다고 하며, 라이트에 소요되는 전기량이 평균 미국 12월 전기 소요량의 6% 정도를 차지하는 것으로 예측한다.

집 외부의 크리스마스 트리 라이트 장식은 상당한 비용과 시간이 필요한 일이다. 특히, 어두운 밤에만 보이는 장식으로 집주인보다는 주변 행인들이 더 즐겁게 즐긴다는 입장에서 볼 때 순수한 성탄 축하와 나눔의 의미인지 과시의 의미인지는 집주인의 성격에 따라 다르지 않을까 싶다. 아마도 두 가지 의미를 동시에 지니는 경우가 많을 것 같다.

 

다만 과시보다는 나눔의 의미가 더 클 것이라고 생각하는 순수한 생각을 하는 이유가 있다. 캐나다에 살면서 느낀 그들의 삶 여러 면면을 볼 때, 이곳에서 크리스마스의 정신(spirit)은 온전히 “나눔(generosity)”을 추구하고 있다고 느껴지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아이들 학교에서는 매년 12월이 되면 푸드 드라이브(Food Drive) 및 토이 드라이브(Toy Drive)라는 캠페인을 진행하는데, 아이들이 나눔의 의미를 체험할 수 있도록 새 음식과 장난감을 기부 할 수 있는 기회이고 실제로 상당수의 학생이 참여한다.

 

또한, 어떤 마트를 가더라도 카운터에서 결제 시 불우이웃 등을 위한 기부 참여 여부를 물으며, 애완견용품 가게에서도 카운터에서 유기견을 위한 도네이션 참여 여부를 질의한다. 갈 때마다 꾸준히 이러한 질의를 하는 것을 보면 내가 참으로 선하게 생겼든지 또는 하나의 문화로서 참여도가 높으니 모든 고객에게 질의하는 것으로 보이는데, 아마도 후자의 경우가 아닐까 한다.

 

매년 성탄절마다 도시 내외 곳곳을 밝히는 크리스마스 라이트는 밴쿠버 뿐만 아니라 북미 지역의 확고한 도시 문화로 자리 잡았다. 지금도 거리를 지나는 행인들에게 크리스마스의 나눔 정신과 함께 기쁨과 기대감을 심어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