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으로부터 9년 전인 2011년. 창사 40주년을 맞이한 스타벅스(Starbucks)는 로고를 바꾼다고 발표했다. 당시의 로고는 STARBUCKS COFFEE라고 새겨진 원형 테두리 안에 세이렌이 그려져 있었다. 스타벅스는 기존 로고에서 과감하게 모든 글자를 빼 버리고 세이렌의 이미지만을 사용하기로 했다. 당시 스타벅스 CEO였던 하워드 슐츠(Howard Schultz)는 이 변화에 대해, 스타벅스 로고 속 세이렌이 원 밖으로 나와 커피를 뛰어넘는 자유와 유연성을 주려함을 의미한다고 발표했다. 지금은 현재의 로고가 익숙할지 모르지만 이전에는 익숙한 기존의 로고가 변경되는 것에 거부감을 드러내는 사람들도 많이 존재했다. 일각에서는 이렇게 단순화하다가 나중에는 로고에 눈코입만 남는 것이 아니냐며 새로운 로고를 비꼬는 이미지가 돌기도 했다.
사람들은 다소 파격적인 결정의 이유에 대해 수많은 견해를 내놓았다. 그중 한 가지 이야기가 흥미로웠는데, 스타벅스의 종이컵에 적혀있는 COFFEE라는 글자 때문에 핫초코를 주문한 사람들이 여기에도 커피가 들어갔는지 물어보는 사례가 많았다는 것이었다. 물론 단지 음료 종류의 혼동을 막기 위해서 기업의 로고를 바꾼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이 사례는 변화하는 시대에 영역을 넘나들고 확장해가는 기업이 기존의 컵으로 새로운 무언가를 담는 것에 생기는 한계를 보여주는, 그 자체로 훌륭한 하나의 메타포라고 생각한다.
과거 로고에서 물리적인 제품을 빼는 것으로 변화에 성공해 시대를 바꾼 유명한 사례가 이미 있다. 바로 애플(Apple)이다. 애플은 2007년 1월 맥월드 엑스포(Macworld Expo)를 통해 애플컴퓨터(Apple Computer, Inc.)에서 애플(Apple Inc.)로 바꾼 사명을 발표했다. 이전까지 대중의 인식 속에서 애플은 곧 컴퓨터였지만, 이 선언은 브랜드를 컴퓨터라는 좁은 영역에 가두지 않겠다는 것을 의미했다. 실제로 그와 함께 발표한 아이폰은 바뀐 기업명처럼, 애플의 기존 핵심 아이템이었던 컴퓨터라는 영역에서 벗어나 전에 없던 새로운 IT 시장과 모바일 생태계를 만들어 세상을 바꾸어 놓았다.
사업을 시작하고 널리 대중에게 알리는 시점에는 사업영역과 다루는 제품을 명확히 알리는 것이 중요하다. 애플=컴퓨터, 커피=스타벅스처럼 어떠한 공식이 대중에게 인식된다는 것은 브랜드에 굉장한 힘이 된다. 하지만 초기 브랜드가 꽃을 피우는 시기로부터 시간이 흘러 세상이 변화하고 더 큰 영역에서의 가치를 제공하는 단계에 도달하면, 제품을 명확하게 나타낸 것이 오히려 기업과 브랜드의 한계를 만드는 틀이 되어버리고 만다. 커피라고 새겨놓은 컵에 다른 음료를 담느라 Strarbucks Coffee와 Coffee Free가 함께 기입되는 것과 같은 아이러니를 피하기 위해서는, 기업이 어떤 한 가지 제품이라는 물리적 존재에 머무르지 않도록 틀을 깨는 변화가 필요하다.
2011년 로고에서 글자를 뺀 스타벅스는 2019년부터 매장 간판에서도 COFFEE를 없애기 시작했다. 하워드 슐츠는 이에 “스타벅스는 커피 비즈니스가 아니라 피플 비즈니스가 이뤄지는 제3의 장소가 되어야 한다”고 경영 방침을 밝혔다. 제3의 장소. 미국의 사회학자 레이 올든버그(Ray Oldenburg)가 자신의 책 『제3의 장소(The Good Great Place)』에서 처음 사용한 단어로, 가정(제1의 장소)∙일터(제2의 장소)에서 얻을 수 없는 활력을 되찾고 뜻이 맞는 이들과 많은 시간을 보내는 장소를 일컫는다. 이는 스타벅스가 사업 초기부터 꾸준히 추구해 오던 개념이었다. 이제 스타벅스는 브랜드의 영역을 커피에 국한하지 않고, 여가를 다루는 시공간으로의 본격적인 확장을 발표한 것이다.
제3의 장소는 거의 30년 전 발표된 개념이지만, 현재 1인 가구 증가 및 도시화의 진전으로 개인 생활공간이 독립되고 축소되면서 급속도로 발생하는 전세계 현대사회의 공통적인 니즈다. 지금도 도시에는 스타벅스 외에 수많은 커피전문점이 존재한다. 그러나 이제는 카페가 단순히 커피를 파는 공간을 넘어, 더 많은 사람이 시간을 보내고 공간을 사용하도록 하는 것에 기업의 미래가 있다고 판단하는 것이다. COFFEE가 적힌 컵은 변화의 바람 속 커피를 넘어 사람들의 시간과 공간이라는 가치를 담기엔 부족한 그릇이 되었다.
그래서 스타벅스는 변화하고 있다. 오래전부터 COFFEE라는 구체적인 단어를 로고와 간판에서 빼기 시작했으며, 사람들이 스타벅스라는 공간과 브랜드에 더 오랫동안 머물며 제품과 경험을 접하는 다양한 방법을 연구하고 시도한다. 고급 커피 문화를 제공하는 스타벅스 리저브(Starbucks Reserve)를 시작으로 도시 속 카페 문화 리조트를 표방하는 스타벅스 로스터리, 커피와 디저트를 넘어 식문화 자체를 제공하려는 프린지(Princi)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시도가 이루어지고 있다. 겉보기에는 고급 커피, 공간, 빵과 음식이라는 물리적인 제품으로 보일지 몰라도, 그 너머에는 사람들이 원하는 문화와 경험 자체를 제공하려는 노력이 가득 담겨 있다.
이제 브랜드로서 커피라는 영역은 단순한 커피 소비량이나 경쟁 음료 분석으로는 판단할 수 없는 영역이 되었다. 커피뿐 아니라 대부분의 분야에서 기업의 목표와 미래는 한 두가지의 영역이 아닌, 사회와 문화를 넘나드는 범주에서 바라보아야 하는 영역이 되었다. 그중 지난 십수 년 동안 다양한 영역에서 일어난 우리 사회와 삶의 급격한 변화는 공간과 제품의 의미를 물리적이고 실제적인 것에서 개념적이고 추상적인 것으로 바꿔 놓았다. 이 새로운 바람 앞에 기업 역시 이를 적극적으로 반영하고 변화해 나가야 하는 환경에 놓인 것이다.
스타벅스가 브랜드의 가장 핵심 제품인 커피를 사명에서 뺀 도전처럼, 공간의 영역에서 존재하는 제품을 다루는 세계적인 기업 역시 변화의 바람 앞에 서 있다. 이케아(Ikea)는 공간에서 시작해 공간으로 끝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들이 다루는 가구 역시 공간을 위해 존재하며, 이케아의 절대적인 브랜드 요소 중 하나가 쇼룸부터 레스토랑, 창고와 판매까지 모든 것을 겸하는 대형매장이라는 공간이다. 하지만 그런 이케아가 물리적인 형태의 매장을 넘기 위한 시도를 하고 있다. 최초의 이케아는 높은 품질과 저렴한 가격의 제품만큼이나 도시 외곽의 거대한 창고형 매장이 브랜드의 큰 요소로 작용했다. 차를 타고 도시 외곽에 나가 쾌적한 공간의 쇼룸에서 가구를 둘러보고, 창고형 매장에서 제품을 픽업해 집에 들고 와 직접 조립하여 사용하는 것이 이케아가 주는 경험 브랜딩의 기본이었다. 하지만 지금의 이케아는 모든 면에서 변화의 앞에 놓여있다.
2020년 2월 4일, 이케아는 올여름 처음으로 영국의 이케아 코번트리 아울렛(Ikea Conventry city centres store)의 폐장을 발표했다. 이 매장은 2007년 문을 연 이래로 일관된 손실과 방문객 수의 지속적인 감소를 보였다고 한다. 이는 초기 이케아에서만 느낄 수 있는 경험이 일반화되었고, 온라인 시장이 급속도로 발전하면서 도시 외곽까지 이동해 가구를 사고, 또 직접 조립하는 수고를 감내하는 사람도 점점 줄고 있기 때문이다. 도시 외곽의 쾌적한 쇼룸, 창고형 매장, 직접 조립하는 수고로움이 들지만 그만큼 내가 만든 가구에 생기는 애정 등 이전에 이케아의 모토이자 핵심이었던 요소들이 시간이 변하면서 영향력이 줄어듦에 따라, 이케아도 변화의 바람 앞에 서게 되었다.
2020년 1월, 이케아가 속해있는 잉카 그룹(Ingka Hplding B.V)이 2019년 회계 실적을 발표했다. 리테일 매출은 367억 유로(한화 약 47조 5천억 원)가 증가해 전년 대비 5% 성장하였는데, 그보다 눈에 띄는 결과는 이중 이커머스(e-commerce) 매출이 전년 대비 46%가 증가했다는 내용이었다. 매장 중심의 이케아도 온라인 비중이 빠르게 증가하고 있으며, 앞으로 이 추세는 더 강해질 것으로 보인다. 이케아는 이에 디지털 역량을 향상시켜 멀티채널 리테일러로 성장하기를 꾀하고 있다. 또한 이케아는 외곽의 대형 아울렛이라는 공식을 깨고 몇 년 전부터 전 세계적으로 도심형 소형 오프라인 매장을 지속적으로 시도함으로써 접근성을 강화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2017년 8월 연희동에 팝업스토어를, 2019년에는 강남과 부산에 각각 팝업스토어를 오픈했다.
조립 측면에서도 이케아는 새로운 변화 중이다. 기존에 조립은 고객이 직접 해야 하는 불친절함은 이케아라는 브랜드가 가진 특징 중 하나였다. 사람은 자신이 직접 만든 것에 보다 높은 가치를 부여한다는 점을 훌륭한 비즈니스 모델로 만들었다고 평가되어, 행동경제학의 주요 사례로 자주 언급되었다. 하지만 그 경험이 주는 신선함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줄어들었다. 이는 쉽게 경쟁업체의 공격 거리가 되기도 했다. 직접 조립하고 노력하는 수고를 오히려 우스갯거리로 삼는 경우도 종종 발생했다. 또한 배송∙설치를 함께 제공하는 경쟁업체들의 온라인 서비스가 늘어나며 이 역시 변화가 불가피한 지점에 다다랐다. 이케아는 이제 보다 편리함을 추구하는 고객의 니즈를 만족시키기 위해 자체 배송 및 조립 서비스를 제공한다. 뿐만 아니라 2019년 10월부터는 국내 생활편의 대행 서비스 플랫폼과 협업하여 배달, 가구 조립, 설치 등의 서비스를 플랫폼 제공사를 통해 받도록 지원하고 있다.
또한 이케아는 1인 가구 시대에 맞춰 원룸형 임대주택 인테리어 시장에도 도전했다. 이케아는 SK D&D와 협업하여 2월 한 달간 성수동의 에피소드 성수 101에서 휴가, 숙면, 반려동물, 홈오피스, 수납, 재미있는 디자인의 총 6가지 콘셉트로 꾸민 원룸을 선보인다. SK D&D의 기획, Plus X의 BI 디자인, 최중호 스튜디오의 공간∙가구 디자인에 이케아의 홈퍼니싱을 더해, 기존의 틀을 깬 새로운 시도를 꾸준히 진행 중이다.
영원한 브랜드는 없다. 브랜드는 태어나 성장하고, 빛을 발하고, 어느 시점에는 사그라져가는 생명체와 같다. 하지만 한 번의 사이클로 일생을 마무리하는 브랜드가 있는가 하면, 완전히 성장한 애벌레가 고치를 뜯고 나와 하늘을 날아다니는 나비가 되어 새로운 삶을 살아내는 브랜드도 있다. 세상은 빠르게 변화했고, 제품 자체가 브랜드의 핵심 가치인 시대는 저물었다. 제품을 넘어 그것이 의미하는 바와 제공하는 경험, 그리고 그로 인해 만들어지는 사람들 사이의 문화 자체가 앞으로의 브랜드가 사람들에게 제안하고 제공해야 하는 가치가 되었다. 누구보다 물리적인 제품을 다루었던 두 브랜드의 변화를 통해 우리는 앞으로의 브랜드와 기업이 가져야 할 방향을 미루어 짐작해 볼 수 있다.
“가장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것이 아니다. 가장 영리한 자가 살아남는 것도 아니다. 변화에 가장 잘 적응하는 자가 살아남는다.”라고 했던 찰스 다윈(Charles Darwin)의 말처럼, 결국에는 변화에 적응하는 브랜드가 살아남는다. 이 변화의 바람이 지나간 후, 바람에 날아가 사라지는 것과 남아있는 것이 무엇인지에 따라 우리가 사는 사회와 우리의 삶은 또 한 번 바뀌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