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

코로나19가 전 세계를 패닉으로 몰아넣었다. 아침에 눈을 뜨면 스마트폰으로 전날 확진자 수를 확인하는 게 하루의 시작이 됐다. 수시로 울려대는 재난 안전문자에 가슴이 철렁한다. 한숨이 나온다. 세계보건기구(WHO)가 팬데믹을 선언했다. 세계적 대유행이다. 지구촌 지역과 산업을 가리지 않는다. 공포를 넘어 생존을 위협한다. 삶을 지배한다. 사회 활동이 줄고 실내 생활이 길어져 생기는 우울함을 뜻하는 코로나 블루(corona blue)라는 신조어도 생겼다.

 

문화예술계도 직격탄을 맞았다. 감염증 예방과 확산 방지를 위한 유일한 방법이 개인위생 철저와 사회적 거리두기가 되면서 전시, 공연, 영화 등 문화산업이 된서리를 맞고 있다. 오지 않는 관객, 텅 빈 객석. 행사 취소와 임시 휴관이 잇따른다. 민간 영역만의 문제는 아니다. 문화체육관광부는 국립문화예술시설의 휴관을 4월 5일까지 연장했다. 국립중앙박물관, 현대미술관, 중앙도서관 등 문체부 소속 24개 박물관∙미술관∙도서관이다. 국립중앙극장 등 7개 국립예술단체도 공연을 중단했다. 연극, 뮤지컬, 클래식, 오페라, 무용, 국악 등 공연 현황을 볼 수 있는 공연예술 통합전산망(KOPIS)에 따르면, 코로나19 사태가 본격화된 2월 전체 공연 매출은 206억 원으로 1월(402억 원)의 절반 가까이 줄었다. 예매 추이에도 그대로 나타난다. 1월 103만 건에서 2월 51만 건, 3월은 15일까지 9만 건을 간신히 넘겼다.

 

 

코로나 블루 달래는 랜선 문화

문화 절벽을 해소하고 지친 심신을 달래주기 위해 문화예술계도 애를 쓰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온라인을 활용하는 것. 비접촉 랜선 문화다. 미술사학자∙평론가이며 전시기획자인 조은정 고려대 초빙교수는 기획전 <미술관의 평화의 전사들(The Peaceful Warriors in Museum)>을 온라인으로 선보이고 있다. 뉴욕의 박유아, 런던의 신미경, 파리의 윤애영 그리고 서울의 김홍식 등 세계 4개 도시에서 활동하는 한국 여성 작가들의 작품을 한데 모았다. 그림과 판화, 사진, 조각, 멀티미디어 설치미술까지 가상의 전시장에서 무료로 감상할 수 있다. 기획자인 조은정 교수는 “미술관에 가고 싶은 마음들이 만든 전시이다. 자리에 누워 생각한 말들을 메신저로, 카톡으로 쏟아냈을 때 전시에 참여한 작가들은 한결같이 가슴 뭉클함이란 표현으로 답했다”고 했다. SNS로 작가를 섭외하고 랜선의 미술관에서 작품을 감상한다.

공공부문도 팔 걷고 나섰다. 국립현대미술관은 언제 어디서든 만날 수 있는 미술관을 지향한다. 관람객과 더 가깝게 소통하기 위해 유튜브,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등 다양한 SNS 채널을 운영 중이다. 코로나로 문화 활동이 위축된 상황에서 온라인으로 집에서 편하게 예술 콘텐츠를 즐길 수 있도록 했다. 국립현대미술관 유튜브 채널 MMCA TV는 새로운 전시 예고 영상부터 1시간이 넘는 분량의 기획전까지 미술관에서 제작하는 대부분의 영상을 제공한다. 특히 전시를 기획한 학예사가 직접 전시실을 둘러보며 작가와 작품을 안내하는 학예사가 설명하는 전시 투어가 인기다. 국∙영문 자막을 함께 제공한다.

 

국립중앙박물관은 홈페이지 대문에 온라인전시관을 만들었다. 지난해 <가야본성> 등 그동안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진행한 8개 전시를 가상현실(VR)로 볼 수 있는 특별전시 VR 콘텐츠와 동영상 코너를 별도 마련했다. 네이버TV’와 손잡고 <핀란드 디자인 10 000년> 특별전도 온라인 중계했다. 담당 학예연구사와 KBS 아나운서의 해설을 들으며 전시를 즐길 수 있도록 했다. 80분 가량의 프로그램에 1만 6천여 명이 접속했고 7천 개가 넘는 하트가 달렸다. 휴관으로 인기 전시를 볼 수 없어 아쉬워하는 이들에게 큰 호응을 얻었다. 인터랙티브 매체의 특성을 살려 방송 중에는 온라인으로 전시에 대한 질문도 받았고 경품 이벤트도 진행했다. 생중계가 끝난 후에도 녹화중계를 제공해, 놓친 이들도 다시 볼 수 있도록 콘텐츠를 제공한다.

 

세종문화회관은 한 발짝 더 나아갔다. 다양한 공연을 온라인으로 준비했다. 지난해 우수 공연을 세종문화회관 유튜브 채널을 통해 선보이는 내 손 안의 극장 프로젝트다. 산하 9개 예술단이 총출연하여 화제가 됐던 음악극 <극장 앞 독립군>을 비롯하여 서울시오페라단의 <돈 조반니(Don Giovanni)>, 어린이 공연인 <모차르트와 모짜렐라의 마술피리 이야기>, <베토벤의 비밀노트> 등 총 8편을 서비스한다. 또한, 자체 공연과 코로나로 피해를 입은 예술가와 단체를 지원하는 <힘내라 콘서트>를 진행한다. 이달 31일에는 서울시오페라단의 <로시니>가 첫 번째 무대로 관객을 만난다. 오페라 작곡가의 유명 곡들의 연주와 함께 제작진의 토크쇼 형식의 공연이다. 오페라를 좀 더 쉽고 재미있게 즐길 수 있도록 준비했다.

전통 공연과 우리 소리도 즐길 수 있다. 국립국악원은 하루에 한 편의 국악 공연을 감상할 수 있는 영상 콘서트 <일일국악>을 진행한다. 흥겨움 가득한 남도시나위를 시작으로, 천년만년 오랜 수명을 기원하는 천년만세, 정악의 백미로 꼽히는 수제천과 한국을 대표하는 무형문화유산 종묘제례악을 비롯해 판소리 다섯 바탕의 주요 대목과 가야금과 대금산조 등 다양하다. 서울문화재단 유튜브 채널에서는 웹 판소리 <달문, 한없이 좋은 사람> 14편을 감상할 수 있다. 전통적인 판소리 공연을 넘어, 국내에서 처음 시도된 융복합 문화 콘텐츠다. 김탁환 소설가(문학)와 소리꾼 최용석(국악), 그림 작가 김효찬(시각예술) 등 서로 다른 장르의 예술가 간 협업으로 탄생한 작품이다.

 

이외에도 각 지자체에서 다양한 공연, 전시 프로그램을 마련했다. 대표적으로 서울시 홈페이지에서 관련 정보를 확인할 수 있다. 세계 유수의 미술관과 박물관도 휴관과 동시에 전에 없던 디지털 관람 방식을 제시하고 있다. 영국 박물관(The British Museum)과 내셔널 갤러리(National Gallery of Art)는 컬렉션을 웹상에 무료 개방했고, 메트로폴리탄 미술관(The Metropolitan Museum of Art)은 콘서트 영상, 예술 기사, 온라인 리소스 등을 #MetAnywhere 해시태그와 함께 발행하고 있다.

Art has the power to connect, to heal, and to build communities.

예술은 연결하고, 치유하고, 공동체를 이루는 힘을 가졌다.

–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우리 세대가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재앙이다. 보이지 않는 적과의 싸움이라 더욱더 지루한 전쟁이 될 것이라고들 한다. 어려움 속에서도 인류는 진화해왔고 한 발짝씩 전진해 왔다. 적지 않은 대가를 치르겠지만 더 많은 것을 얻고 배우게 될 것이다. 결코 혼자 살 수 없는 인간으로서 함께 슬기롭게 헤쳐가는 지혜를 얻길 바란다. 지친 몸은 정신이 지탱해준다. 위안과 희망을 주는 문화예술 본연의 가치가 더 소중한 때다. 혼자 즐기는 문화적 사색이 서로를 치유하는 새로운 백신이다.